1.

선가(禪家)에는 저마다 독특한 가풍이 전하여 온다. 그 가운데 널리 알려진 것이 임제할(臨濟喝)과 덕산방(德山棒)이다. 《선학사전(禪學辭典)》에서 ‘할(喝)’을 찾아보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당대(唐代) 이후 선림에서 사용된 규성(叫聲, 외치는 소리)으로, 질타(叱咤)의 뜻을 나타냄”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50여 년 동안 불사의 현장에서 뛰었고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쳐 온 작가 겸 교육자였던 손연칠 화백이 고희를 넘겨 ‘시대정신’이란 할(喝)을 불교계와 한국 화단(畫壇)에 내질렀다. 손연칠 · 손문일✽ 지음, 《불교미술의 시대정신》(뿌쉬낀하우스, 2022)이란 한 권의 책은 경책(警策)이자 화두이다.

풍부한 천연색 도판과 함께 엮어진 이 아담한 책자는 오랜 세월의 인고(忍苦) 끝에 펴낸, 나지막하지만 큰 울림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글을 쓰게 동기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 가톨릭 미술의 현장에서 새로운 조형성을 선구적으로 실천해 온 일랑 이종상 선생께서 평소에 필자에게 당부하신 불교미술의 시대정신에 대한 고언에 따라 기획되었고, 그때마다 느낀 책무감과 사명감이 이 글을 쓰게 된 용기와 동기가 되었다.” 

이어서 저자는 ‘시대정신’이란 화두를 던졌다. 

미술의 생명력은 시대정신이다. 시대정신은 창의성을 담보한다. 불교미술도 마찬가지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자랑스러운 불교미술의 창의적인 전통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나 이웃 종교인 한국교회 미술과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일찍부터 시대정신에 따른 창조적 미술 미술운동을 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미술 역시 시대정신에 따라 독자적인 창의성을 담보하지 않으면 역사적으로 그 가치를 분별하여 냉혹하게 판단한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이 시점에서 한국이란 공간에 가장 절실한 시대정신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데 있다. 구두선(口頭禪)에 그치지 않고 현실 문제의 해결을 위한 참구(參究)의 고뇌는 깊고도 고통스럽다.

 

2.

이 책은 6장으로 구성되었다. 〈Ⅰ.한국 근 · 현대 불교미술〉 〈Ⅱ.일본의 근 · 현대 미술〉 〈Ⅲ. 중국의 미술정책과 미술교육〉 〈Ⅳ. 일본, 중국의 미술교육과 우리나라 미술교육의 차별점〉 〈Ⅴ. 한국 가톨릭 교회미술의 부흥〉 〈Ⅵ. 조사 진영〉. 

구성은 이렇게 되었으나 그 내용을 다루는 방법은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까지 저자는 본업인 화업(畫業)에 정진하면서 작품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왔고, 일반의 언어나 문자의 사용은 삼가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소통의 방법으로 ‘책’을 택했다. 그래서 핵심 내용은 ‘말’보다는 역시 저자에게 낯익은 직관적 형식인 ‘불사의 현장(작품)’을 선정하여 보고 느끼고 사고하여 깨닫게 하는 방식을 택한 듯하다. Ⅰ장이 그러하다. 나머지 Ⅱ장부터 Ⅵ장까지는 Ⅰ장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을 다루고 있어, 객관적인 시각의 접근방법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책의 핵심은 Ⅰ장 한국 근 · 현대 불교미술의 현황에 있다. 그는 화가이기 때문에 작품이 조성된 현장을 찾았고 거기에서부터 실마리를 찾고자 했다. 그리하여 저자 나름으로 1938년부터 2022년까지 이루어진 불사를 정리하여 두 개의 표로 제시하였다. 하나는 ‘시대정신을 담은 불사’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적 혁신 가능성을 담은 불사’인데, 앞의 표는 22가지 사례를 제시하였으며, 뒤의 표는 5가지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표의 끝에 각주처럼 “상기 도표는 건립연대 순이며 시대적 감성에 따른 ‘창의적 작품들’만을 조사한 것이다. 당연히 전승적 기능에 주안점을 두고 작업하는 소위 ‘장인’들의 작업은 제외하였다고”고 사례 선정의 기준을 덧붙이고 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시대적 감성에 따른 ‘창의적 작품’”이라는 설명은 매우 추상적이고 주관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본격적으로 내용을 살펴보자. Ⅰ장은 ‘한국 근 · 현대 불교미술의 현황’을 다루고 있다. 현황에 이어서 다시 세 항목으로 구분하여 한국 불교미술의 흐름을 구체적인 불사의 사례를 꼽아 도판과 함께 개요를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항목은 ‘한국 근대 불교미술’이란 제목 아래, 의곡사 괘불(1938)부터 동국대 부속여중 상상법당(2022)까지 85년간 모두 27건의 사례를 들고 있다.

저자는 이 사례를 다시 시대를 근대와 현대로 나누어 근대 미술을 법주사 미륵대불(1939), 의곡사 괘불(1938)과 부인사 선덕여왕벽화(1939), 흥천사 감로탱(1939), 수덕사 만공탑(1947), 원효사 아미타후불탱(1954), 호미 든 관음상(1959)까지 7개의 사례를 선정하고, 각각의 사례에 연혁, 현황, 작가 등에 대한 설명을 기술하고 있다. 이어 한국 현대 불교미술이란 제목 아래 동국대학교 여래입상(1964)부터 시작하여 천안 각원사대불(1977), 성철스님 부도(1998), 송광사 대웅전 조사탱(1998), 홍은사 벽화(1998), 동국대 만불전(2000), 해인사 미타원(2002), 일타스님 부도(2008), 전등사 무불전(2012), 지리산 실상사(2014), 직지사 만덕전(2018), 제주 선래왓절(2019), 부산 쿠무다 하늘법당(2021), 해인사 만불전(2022), 동국대 부속여중 상상법당(2022)까지 모두 15건의 사례를 선정하여, 앞의 경우처럼 그 불사에 대한 개요를 서술하고 있다. 근대와 현대로 편년을 구분 짓고 있으나 설명이 없어 그 기준을 알 수 없다. 근대로 분류한 7건의 사례 중 4건은 1938~1939년으로 대일항쟁기에 해당하므로 한 묶음으로 할 수 있겠으나, 나머지 3건의 사례는 일제의 통치에서 벗어났으나 미군정이 실시되던 1947년이 1건, 그리고 다른 2건은 1954년과 1959년이어서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이뿐만 아니라 현대로 구분 지은 첫 번째 사례인 동국대 여래입상은 1964년에 조성되어서 시간적으로 겨우 5년의 차이밖에 나지 않고 있다. 물론 이 짧은 기간에 사회적으로는 4 · 19혁명과 5 · 16군사구테타라는 격변을 겪기는 했으나, 미술사의 관점에서 시대구분을 할 만큼의 요소는 찾아보기 어렵다.

Ⅱ장은 일본의 근 · 현대 불교미술, Ⅲ장은 중국의 미술정책과 미술교육, Ⅳ장은 일본, 중국의 미술교육과 우리나라 미술교육의 차별점이라는 제목의 글로 이루어졌다. 비록 장은 나누었으나 그 근저에 공통되는 문제의식은 화두로 던진 ‘시대정신’을 참구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동아시아의 한 · 중 · 일 세 나라의 근대화 과정에서 ‘미술’이라는 낯선 개념의 도입과 수용과정 그리고 그러한 시대 변화에서 불교미술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살펴보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무게의 중심은 근대화에 가장 앞선 일본의 사례와 비교하면서 문제의 해답을 찾고자 한 것 같다. 

특히 Ⅳ장은 일본으로 유학한 한국 작가들의 귀국 후 활동 사항 특히 해방 후 국립서울대학교 미술부의 설립 배경을 설명하고 있으며, 서울대 미술학부의 교수진과 교육 시스템이 지닌 특성을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서울대 미술부는 일본의 교육제도에 기반을 두었지만, 기초과정에서 고화임모나 고제모조 수업과 같은 우리의 전통을 맥을 잇는 미술의 기초교육은 제외되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국립서울대의 위상에 비추어 미래 미술교육의 방향성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교과과정의 문제점과 더불어 초대 학장을 비롯한 교수진의 인적 구성도 가톨릭이라는 특정 종교에 편중되어 그들이 대세를 이루고 교육제도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쳤다. 이 점은 특정 종교에는 행운이었으나 우리 미술계로 눈을 돌리면 아쉬움이 많은 대목이었다고 하겠다. 그리고 남북 분단으로 많은 미술인이 남북으로 갈리면서 미술계도 단절되고 만 시대적 상황도 커다란 불행이었다.

Ⅴ장은 한국 가톨릭 교회미술의 부흥이란 항목 아래 다시 7개의 작은 항목을 두어 가톨릭 교회미술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 끝에는 ‘유럽의 가톨릭 교회미술’이란 세목(細目)을 두고 앙리 마티스를 비롯하여 조르주 루오, 마르크 샤갈, 에드바르 뭉크, 베르나르 뷔페 등 20세기에 활동한 작가와 그 작품들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는 서구 사회에서 종교를 주제로 한 미술 활동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숨은 뜻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 Ⅵ장은 ‘조사 진영’이라는 제목으로 특별히 한국 초상화의 특색을 다루고 있다. 이 분야는 저자가 국가표준진영의 제작에 참여하는 등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시대 회화에서도 진영은 독자적인 발전을 보였고 지금도 전국의 사찰에는 수많은 고승대덕의 진영이 남아 있어, 이 분야의 전통 계승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끝으로 리뷰를 마치면서 못내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각주에 친절을 베풀고 참고문헌을 제시해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점이다. 내용을 담아내는 형식도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

 

 

이기선 
동국대학교 미술학과와 동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우현 고유섭 전집》(전 10권, 열화당)과 《우현 고유섭 전집》(전 4권, 통문관》 그리고 《황수영 전집》(전 6권, 혜안)을 간행하는 데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다. 지금은 현대 불교미술을 진흥하기 위해 불교조형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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