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일본 국가주의 관계를 파헤치다

 

이찬수 교수의 책 《메이지의 그늘》을 읽었다. 부제는 ‘영혼의 정치와 일본의 보수주의’다. 종교학을 전공한 저자가 ‘평화학’을 시도하면서 일본이 근현대사에서 보여준 보수 정치가 어떻게 ‘영혼의 정치’와 연결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 이찬수✽는 〈영혼의 정치학: 천황제와 신종교의 접점〉(2013), 〈천황제, 군국주의, 그리고 선(禪): 스즈키 다이세츠로 선을 되묻기〉(2021) 등의 논문에서도 잘 보여주었듯이, 종교학자로서 출발한 일본 연구의 성과를 메이지 시대에 나타나는 부정적 국가 이미지에 대하여 ‘영혼의 정치’라는 관점에서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내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메이지 시대 이래 국가를 위해 죽은 이의 영혼, 이른바 ‘호국영령’을 국가적 차원에서 제사하며 제사 대상의 정점에 있는 천황을 중심으로 국가를 통합시켜 온 지난 백여 년 이상의 일본 정치문화를 정리했다. 

총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메이지 시대와 그 그늘을 분석하면서 한국과 일본은 왜 꼬였는지를 묻고, 일제 강점기와 임진왜란, 그리고 그 후 메이지 천황을 내세운 메이지(明治) 정부(1868~1912)는 한국에게 여전히 억압적인 영향으로 남아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조선 정벌의 정한론(征韓論)을 내세운 일본 보수 세력이 청일전쟁을 일으킨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일본 보수주의 정치가 종교와 관련하여서도 어떤 방식으로 작동했는지에 대해 저자는 일본 전체에 해당하는 ‘정치적 종교’, 혹은 ‘종교적 정치’의 방정식을 풀어낸다. 그것이 ‘호국영령’과 애국주의와의 관계다. 죽은 이의 영혼을 국가 차원에서 제사를 지내는 ‘제사의 정치’로 사회와 국가를 통합하면서 정부 정책을 정당화해 간 것이다. 

이 같은 군국주의의 길은 민간의 오랜 정령숭배 전통인 신도(神道)를 활용한 것이었다. 천황(天皇)은 《일본서기》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천상의 주재신 아마테라스의 자손으로 숭배되고, ‘신도’의 세계관은 국가적 통합정책에 이용된다. 신도의 세계관은 위로받지 못하고 죽은 원령(怨靈)이 인간에게 깃들면 불행이 생긴다는 민중적 사고방식의 일본 전통 종교다. 그리하여 호국영령도 전몰자의 원령이 국가의 수호신이 될 수 있게 하는 메이지 정부의 ‘종교적 정치’라는 점을 저자는 보여준다. 이러한 ‘종교적 정치’는 야스쿠니신사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희생당한 영혼을 현창하는 방식으로 국가를 형성해 갔던 ‘영혼의 정치학’이라고도 저자는 명명한다. 이는 ‘영혼의 정치학’에 기반한 ‘천황교’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며, 황실에서 출발한 조상숭배 전통이 ‘확대된 가족’ 국가를 만들어 갔다. 이러한 모습은 제사와 관련된 ‘위령(慰靈)의 나라’로서 일본 종교의 기본의례는 다른 특정 종교의 의례보다 더 근본적이다. 

저자는 ‘제사의 정치’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한다. “조상신을 국가 주도의 담론 속에 살게 하면서 조상의 정점인 천황 중심의 국가적 통합을 도모하는 정치적 과정”이다. 이 부분에서는 동아시아 공공철학의 확산을 도모하는 김태창(金泰昌)의 ‘활사개공(活私開公)’의 이론을 바탕으로 기존의 ‘멸사봉공(滅私奉公)’의 개념에 깃들어 있는 ‘공(公)을 위한 사(私)의 소멸’이라는 부정적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으로 저자는 오오야케(公)와 와타쿠시(私)를 다루면서 일본 ‘너머’의 문제는 공(空)하다는 지적을 이어간다. 멸사봉공의 사례는 메이지 시대 이래 20세기 전반까지 국가라는 ‘오오야케’를 위해 ‘공(公)’은 ‘멸사적(滅私的)’으로 이어졌다. 일본은 천황 ‘너머’의 한국이나 중국이 중요시하는 ‘천지의 도리’와 같은 초월적이고 보편적인 개념을 왜곡하거나 축소하는 오류를 범함으로써 일본 국민마저도 공사(公私)의 구분이 애매해진 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불교와 천황제를 다루면서 이는 불교가 어떻게 국가주의에 기여했는지를 묻는 것으로, 니시다 기타로는 불교의 공(空) 사상을 절대무(絶對無)로 해석하면서, 《반야심경》의 공즉시색(空卽是色)을 ‘절대무의 자기 한정’으로 해석한다. 일본의 황실(皇室)은 일본이 가능하게 해 주는 근거로서의 ‘장소’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흔히 ‘팔굉일우(八紘一宇)’가 일본이라는 나라를 중심으로 한다는 논리도 마찬가지다. 이는 ‘근대 일본의 두 얼굴’로서 전쟁으로 인한 참상과 식민 지배로 고통받았던 이웃 국가의 현실을 외면하는 논리다. 

스즈키 다이세츠 또한 천황제 하의 군국주의를 정당화한 경우다.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 전쟁(1941)이 한창이던 그 사이 선(禪)의 단도직입(單刀直入)적인 측면이 전투 정신과 통한다는 논리를 펼친 것이다. 군국주의에 공헌한 불교계의 사례는 많다. 일련종(日蓮宗)에서 ‘호국불교’를 창건하거나 대범종(大梵鐘)을 군에 헌납한 사례 등이다. 이러한 논리는 불교의 체상용(體相用)의 관점에서 전쟁과 괴로움의 현실을 반영하는 ‘상(相)’의 모습을 간과한 셈이 된다. 이러한 모습을 두고 저자는 일본 정신인 ‘화혼(和魂)’을 다지는데 불교가 기여했을지라도 생명을 죽이는 폭력적 사회와 국가 관계를 외면한 것으로 분석한다. 이는 ‘상화(相和)’가 아닌 ‘폭력적 동화(同和)’라는 여전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반일과 혐한(嫌韓), 그 역사와 전복의 가능성을 논한다. 패전 이후 천황제가 폐지된 오늘에도 ‘상징 천황’으로 남아 있는 ‘메이지의 그늘’ 속에 여전히 혐한의 정서는 남아 있다. 이러한 정서를 지속시키는 데에는 일본 우익 정치의 막후 세력인 ‘일본회의(日本會議)’가 있고 일본 정신의 기원인 이세신궁이나 군국주의의 정신적 근간인 야스쿠니신사의 자금도 들어간다. ‘한일청구권협정’이나 ‘위안부 합의’를 두고도 한일 간의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이러한 국가주의의 일본식 사고를 염두에 두고 한일 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권고다. 일본도 한국의 역사적 아픔에 더욱 이해의 폭을 넓게 가지고 ‘보상’을 넘어서 반성과 공감대를 넓혀가야 한다. 이는 정치인보다는 양심 있는 시민사회가 더욱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메이지의 그늘’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저자는 꼬여 있는 한일관계의 해법을 위해 이렇게 말한다. “한국은 일본의 역사와 문화적 감각을 인정하고, 일본은 이웃의 아픔에 인간적으로 공감하는 일을 확장해 가야 한다.” 작은 책이지만 큰 담론을 다루면서 많은 원전 자료를 동원하여 조밀하고 냉철하며 적확하게 분석하고 있다. 일독을 권한다. ■

 

이명권 
연세대학교 신학과, 동국대 대학원 인도철학과, 감리교신학대학원 졸업. 서강대 대학원 종교학과 박사, 중국 길림대학교 중국철학 박사. 서울신학대 초빙교수, 중국 길림사범대학교 교수, 동 대학 동아시아연구소 소장 등 역임. 주요 저서로 《노자왈 예수가라사대》 《공자와 예수에게 길을 묻다》 《예수, 석가를 만나다》 《우파니샤드》 《베다》 등 다수. 현재 코리안아쉬람 대표, 인문 계간 《산넘고 물건너》 《인문정신》 발행인.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