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생의 노력 《조론연구》 드디어 결실

승조(僧肇)의 《조론》은 중국불교뿐만 아니라 중국 사상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저술이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한 이후, 중국 전통사상과 불교의 사상을 가장 완벽하게 융섭(融攝)한 최초의 저술을 꼽는다면 단연 《조론》을 떠올릴 정도로 중요한 저술이다. 이처럼 《조론》이 중요한 저술로 평가되는 원인은 무엇 때문인가? 

중국불교는 동한(東漢) 시기에 본격적인 역경(譯經)이 시작되면서 안세고(安世高)의 선수학(禪數學)이 당시의 신선방술과 결합하여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 지식인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지루가참(支婁迦讖)이 번역한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의 ‘반야(般若)’ 사상이었다. 중국인들의 사유양식에 존재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사유체계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관심은 삼국으로 분열된 이후, 오(吳)의 수도인 건강(建康: 지금의 南京)에서 지겸(支謙)에 의하여 《대명도경(大明度經)》이란 제목으로 다시 번역되었다. 그러나 두 경전의 번역은 대부분 불교가 노장사상과 유사하다는 인식으로 노장의 용어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반야’의 진제(眞諦)를 온전히 밝히는 데에는 미흡함이 있었다. 그렇지만 《도행반야경》 《대명도경》은 중국 사상계에 중요한 변혁을 일으키는 매개적 작용을 하였다. 왕필(王弼)이 ‘현학(玄學)’을 제창하는 데 결정적인 사유양식을 제공한 것이 《도행반야경》과 《대명도경》이기 때문이다.

왕필은 조조(曹操)의 양아들인 하안(何晏)과 함께 새롭게 칭제건원을 한 조위(曹魏)를 위하여 황조를 바꾼 당위성과 통치 이념을 설정하기 위하여 다양하게 노력한 인물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유가의 강상명교(綱常名敎)와 도가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융합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서한(西漢)이 건국되면서 도가의 통치술인 황로학(黃老學)을 채택하여 태평성대를 이루었고, 무제(武帝) 이후로는 ‘독존유술(獨尊儒術)’ 정책으로 유가를 통치이념으로 채택하여 동한에 이르기까지 지속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조위에서는 유가와 도가를 융합한 새로운 통치 이념을 고민하였는데, 왕필은 유가의 ‘유(有)’와 도가의 ‘무(無)’를 융합할 수 있는 근거를 바로 ‘반야’의 논리에서 찾아냈다. 

주지하다시피 불교에서는 ‘생멸(生滅)’의 개념을 ‘유무(有無)’로 전환하고 있다. 또 ‘반야’에 이르면 그 ‘유무’조차도 집착에 의한 ‘상(相)’으로 파악하여 ‘소상파집(掃相破執)’의 입장에서 이른바 ‘유무쌍견(有無雙遣)’ ‘진속무이(眞俗無二)’의 논리를 제시한다. 그로부터 ‘중생즉불(衆生卽佛)’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고 하는 진리의 세계와 세속의 세계는 철저하게 ‘즉(卽)’의 관계, 바로 호상관대(互相觀待)라는 논리적 단안을 제시한다. 왕필은 바로 이러한 반야의 사상을 원용하여 이른바 ‘본무(本無)’를 중심으로 하는 현학사상을 제창하게 된다. 여기서 ‘본무’는 《도행반야경》 등에서 핵심적으로 논해질 뿐만 아니라 후대에는 ‘성공(性空)’으로 번역되는 용어이기도 하다.

현학은 흔히 삼현(三玄), 즉 《주역》 《노자》 《장자》를 대상으로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논하면 유가의 ‘강상명교’와 도가의 ‘무위자연’을 융합하여 이른바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새로운 통치이념을 제시하고자 한 통치의 사상적인 성격이 더욱 농후하다. 이렇게 왕필에 의하여 현학이 제시된 이후, 비록 조위는 유학을 기반으로 하는 서진(西晋)에게 멸망하였지만, 현학은 그대로 사조(思潮)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현학이 주류를 이루었던 것은 서진 시기의 불교는 반야학이 주류를 이루었고, 서역으로부터 대량으로 반야부 경전들이 유입되고 번역된 까닭이다. 그러나 이때의 번역은 대부분 현학의 사유양식을 바탕으로 하였다. 이를 ‘격의(格義)’라고 한다. 이러한 풍조가 유행하여 ‘격의불교’라고 칭하는 이른바 ‘육가칠종(六家七宗)’의 학파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승조가 활동하던 시기는 격의불교가 전성기에 이른 때였다. 당연히 현학에 배대(配對)한 ‘반야’의 이해가 미진했었다. 예컨대 당시 명승으로 손꼽히는 도안(道安)이나 그의 제자이며 남방불교의 대표자인 여산혜원(廬山慧遠)조차도 ‘반야’ 사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승조의 《조론》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환경에서 찬술되었다.

주지하다시피 《조론》은 〈반야무지론(般若無知論)〉 〈부진공론(不眞空論)〉 〈물불천론(物不遷論)〉 〈답유유민서(答劉遺民書)〉 〈열반무명론(涅槃無名論)〉과 찬술이 의심스러운 <종본의(宗本義)〉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승조의 다른 저술들과 다르게 《노자》 혹은 《장자》의 구절을 모두 97차례 인용하여 논술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방식은 ‘현학’과 ‘격의불교’를 비판하여 바르게 이끌고자 했던 승조의 의도를 짐작하게 한다. 실제로 승조 이후에 현학이나 격의불교는 모두 종식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승조의 《조론》을 “인도 중관학과 중국 노장사상의 결합” “현학과 격의불교의 종결자”라고 평가한다. 이는 《조론》이 중국불교뿐만 아니라 도가와 유가에도 심원한 영향을 끼쳤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오늘날 우리가 《조론》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현학의 사상적 흐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런데 현학은 기본적으로 《주역》 《노자》 《장자》를 텍스트로 한다. 나아가 유가의 강상명교를 논하는 경전들을 파악하고 있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둘째는 불교의 반야학, 특히 서역의 반야학이 아니라 구마라집으로부터 시작된 다분히 중국화된 반야학에 정통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우리 학계에서 현학을 전공으로 하는 학자는 그다지 많지 않다. 더욱이 불교학자가 현학을 이해하는 이는 극소수이다. 그런데 조병활✽ 박사는 이를 모두 장악하여 《조론》을 연구하고, 또한 《조론》과 후대의 주석서들을 번역해냈다. 이러한 작업을 한 개인이 해냈다는 것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업적이다. 

조병활 박사의 《조론연구, 조론오가해》는 모두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책이 《조론연구》인데, 여기에는 ‘Ⅰ. 연구편’에 〈공사상, 현학 그리고 《조론》〉 〈조론서 연구〉 〈종본의 연구〉 〈물불천론 연구1-성주(性住) 개념을 중심으로〉 〈물불천론 연구2-상견론(常見論)인가 성공론(性空論)인가〉 등 5편의 연구논문이 실려 있다. 

이러한 연구논문은 모두 승조의 행적과 사상, 그리고 《조론》의 구성과 사상 등을 상세히 밝혀주고 있어 전집의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더욱이 앞에서 간략하게 소개한 현학의 발생과 그 흐름에 대하여 상당히 세밀하게 논증하고 있는 점이 두드러진다. 제1책의 ‘Ⅱ. 역주편’은 바로 승조의 《조론》에 실린 〈조론서〉 〈종본의〉 〈물불천론〉 〈부진공론〉 〈반야무지론〉 〈열반무명론〉 등의 번역과 주석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조론》에 실린 이러한 승조의 논문들은 그 난이도가 중국의 어떤 저술보다 높다. 조병활 박사는 여러 판본의 원문을 모두 교감하였고, 또 표점을 붙여 그를 근거로 번역했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번역에 있어서 원문에 대한 상세한 주석은 읽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학술적 계시를 얻을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조론연구, 조론오가해》 가운데 ’조론오가해‘는 모두 5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권은 진대(陳代) 혜달(慧達)의 《조론소》, 제2권은 당대(唐代) 원강(元康)의 《조론소》, 제3권은 송대(宋代) 비사(秘思)의 《조론중오집해(肇論中五集解)》, 제4권은 원대(元代) 문재(文才)의 《조론신소(肇論新疏)》, 제5권은 명대(明代) 감산(憨山)의 《조론략주(肇論略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놀라운 점은 각 권에 “해제”이다. 각 권에 “해제”를 적게는 43쪽, 많게는 74쪽에 이르도록 기술하고 있다. 이 해제는 각 권의 배경과 서지 상황, 나아가 사상적 개요와 평가까지도 포함되어 있어 더욱 그 가치를 높이고 있다.

모두 6책에 달하는 《조론연구, 조론오가해》는 실로 놀라운 작품이다. 각 권의 끝에 붙인 ‘저자 후기’에는 조병활 박사의 학문적 역정을 비교적 상세히 밝히면서 《조론》과 관련된 주소를 번역하게 된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번역은 힘들다. 피와 살 그리고 마음마저 갉아먹는 작업이다.”라고 토로한 문구에서는 이 작업이 얼마나 험난했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사실 번역은 힘들다. 필자도 많은 번역서를 낸 바 있지만, 가끔 불현듯 그런 의미가 아니었음을 깨닫고 얼굴이 붉어질 때가 있다. 혹은 기존의 상투적인 오류의 번역을 옳게 번역한 것을 잘못이라 지적할 때는 답답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번역 작업 자체가 서로 다른 언어체계를 사용하여 언어적 등가(等價)로 옮기는 것인데, 이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 특히 다양한 함의를 가진 한문(漢文)은 더욱 그렇다.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깊은 함의를 하나의 의미만을 채택하여 옮기는 작업은 번역하면서도 좌절을 겪는다. 조병활 박사의 후기에는 그러한 고충들이 충분히 배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필자의 전공 분야에 있는 《조론》과 관련된 주소(註疏)들을 번역 출간한 일에 무한한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

 

김진무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동산법문과 그 선사상 연구〉로 석사학위를, 중국 남경대학 철학과에서 《불학과 현학의 관계연구(佛學與玄學關係硏究)》(中文)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부교수 역임. 저서로 《중국불교 거사들》 《중국불교사상사》 등과, 번역서로 《선학과 현학》 《철학자의 불교 공부 노트》(공역) 등 다수. 현재 충남대 유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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