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의 '종교인식조사' 분석 결과

1. 여는 글

얼마 전 발표된 한 종교인식조사(주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불교의 신뢰도는 가톨릭, 개신교 다음 3위로 조사되었다. 불교의 신뢰도가 기독교보다 낮은 결과는 이번 조사가 처음이다. 이 결과는 이제까지의 종교인식조사들이 보여준 일관된 경향성, 즉 불교는 이웃종교에 비해 사회적 활동은 적지만 호감도는 높은 종교이며 개신교보다는 높은 신뢰도를 보인다는 경향성을 벗어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불교와 가톨릭은 국가의 방역 정책에 협조하였고, 반면에 개신교(보수 개신교 중심)는 그렇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 일부는 헌법소원과 행정소송, 시위 등의 방법을 동원하며 국가의 방역 정책에 저항하였다. 그런 와중에 개신교 종교시설에서 코로나19 대규모 집단 발병이 발생하면서 개신교의 이러한 저항은 시민사회와 일반 국민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개신교에 대한 호감도는 하락하고 나쁜 이미지가 강화되었고, 반대로 불교와 가톨릭의 호감도는 상승하며 좋은 이미지가 강화되었다고 평가되었다. 하지만 올해 발표된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의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를 보면 최소한 신뢰도 항목에서는 이러한 평가가 무색하다. 

코로나19 이후, 불교와 가톨릭의 협조는 시민사회에서 ‘종교’의 역할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국가와 시민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당연한 행동으로 평가되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불교와 가톨릭도 ‘종교’로서 역할과 기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개신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코로나19 이후 종교 자체에 대한 신뢰도와 관심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실은 이러한 인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의 신뢰도 하락이라는 상황에 한국불교는 이웃종교에 비해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이다.

이러한 해석에도 불구하고, 낮은 신뢰도에도 불교에 대한 호감도는 높으며 불교에 친근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은 여전히 잘 설명되지 않는다. 이에 연구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고 답을 찾으려 한다. 

 

① 사회적 지탄(指彈)의 대상이 된 개신교보다 불교의 신뢰도가 더 낮은 이유는 무엇인가? 

② 불교에 대한 높은 호감과 친근함이 신뢰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앞서 언급한 기윤실의 신뢰도 조사는 종교 간 인식 비교를 위해 ‘신뢰’를 포함하여 6개 항목을 질문하였다. 이 문항들에 대한 조사결과와 다른 기관에서 실시한 조사결과를 종합 분석하여 위에서 언급한 문제에 대해 답을 얻고자 한다. 

위의 질문은 불교, 넓은 의미로는 근대사회에서 종교의 위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또한 전체사회에서 종교가 담당하는 역할과 기능이 무엇이고, 이 역할과 기능을 불교가 제대로 수행하고 있느냐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아래에서는 간략하게 종교 관련 오래된 논쟁인 세속화-탈세속화 논쟁을 정리하고, 우리가 주목하는 종교인식조사를 분석할 것이다. 

 

2. 종교의 재등장: 종교 세속화-탈세속화 논쟁

1) 종교의 후퇴, 쇠퇴 

‘종교’에 대한 가장 논쟁적인 주제는 ‘세속화(secularization)’이다. 종교의 역할은 사회적 통합과 연대에 기여하고, 개인과 집단에 존재론적인 기반이 되는 설득력 구조(plausibility structure)를 형성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세속화론은 이러한 종교의 역할과 기능이 근대이행기 사회분화로 인해 다양한 사회영역들로 해체 · 분화되면서 종교 자체는 쇠퇴할 것으로 전제한다. 세속화는 근대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세속화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근대사회에서 종교는 근대적 가치를 상실하여 사적영역에만 머물러 있게 되었고, 그에 따라 영향력도 축소되었다고 진단한다. 그 진단의 결과는 종교의 쇠퇴로 이어진다. 이러한 종교 세속화론의 초기 형태는 고전사회학자들에게서 시작되었다. 베버, 뒤르켐, 마르크스 등 고전사회학자들은 자신들이 경험하고 있는 근대사회를 설명하기 위해 ‘종교’에 주목하였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전통사회에서 주요한 행위자로서 의미와 해석을 지배하였던 종교가 근대사회에서는 그 영향력을 상실해가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이들의 고전적 연구 이후 종교연구는 지속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그러다 1950~60년대 서유럽과 미국에서 종교연구가 다시 활성화되었다. 

서유럽에서는 교회 참석자 규모, 성당과 교회 규모의 감소 현상이 증거로 제시되며 종교 쇠퇴론이 주장되었다. 미국에서는 이와 다르게 종교는 더 이상 공적영역에 머물지 않지만, 사적영역에서 개인의 영혼 구원이나 심리치료, 가정 문제에 집중하면서 활동을 이어간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종교연구가 활성화된 이유로는 유럽에서는 세속화론의 예측처럼 교회에 정기적으로 다니는 사람들이 줄어들었지만, 같은 시기에 미국에서는 종교가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일부 국가에서 종교적 부흥을 경험하면서 비교적 단순했던 고전적 세속화론은 좀 더 다양하게 설명되었다. 

대표적으로 버거는 세속화 개념을 3가지 즉, 사회와 제도, 문화와 상징, 의식에 관한 의미로 구분한다. 첫째, 사회와 제도의 세속화는 종교가 국가와 분리되고, 교육은 종교의 통제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문화와 상징의 세속화는 예술, 철학, 문화의 영역에서 종교적 내용이 사라지고 과학은 자율적이고 세속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것을 뜻한다. 마지막 의식의 세속화는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조망하는 데에 더 이상 종교적 해석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는 것을 뜻한다. 윌슨은 세속화를 사회 조직, 문화, 집합의식에서 일어나는 근본적인 사회과정으로,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종교적 사고와 수행, 제도들이 사회적 중요성을 상실하는 현상으로 이해한다. 눈에 띄는 점은 그는 세속화를 설명하면서 종교적 신앙과 행위 자체의 쇠퇴보다는 종교가 사회체계에서 지녔던 중요성이 감소하는 현상을 강조한다. 

버거와 윌슨의 세속화론에서 주목되는 점은 세속화는 사회분화(social differentiation)에 의해 촉발되며, 그 결과로 종교는 사사화(privatization)된다는 점이다.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사회는 다양한 가치영역으로 분화된다. 중세 시대에 종교, 교육, 법, 도덕, 정치, 경제 등의 영역은 지금처럼 전문화된 사회영역, 즉 자율적이며 독립적인 영역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종교는 이러한 다양한 가치 활동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통제하였다.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면서 전체사회는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영역들로 분화되었다. 정치, 경제, 지식, 예술, 교육 영역 등이 대표적이다. 각각의 가치 활동들은 각각의 고유한 합리성을 갖추게 되고 독자적인 사회영역으로 분화 · 독립하였다. 종교도 이러한 사회영역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전통적인 세속화론자들은 종교의 기능과 역할이 개인과 가족 등 사적영역으로 제한되었다고 분석하였다. 즉 공적영역에서 종교가 할 수 있는 기능과 역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그래서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쇠퇴할 수밖에 없다고 정리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세속화는 종교가 더는 사회의 모든 질서와 제도를 지배하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종교는 이전 시대의 절대적 위치에서 상대적 위치로 내려와 존재한다. 

사회분화가 종교에 미친 영향 중 하나는 종교의 사사화이다. 근대사회에서 분화된 다양한 사회영역을 그 성격에 따라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으로 구분하면, 정치와 경제 등은 공적영역으로 가족은 사적영역으로 분류된다. 종교는 정치와 경제, 교육 등의 공적영역에서는 영향력을 상실하지만, 가족 영역에서는 잠재력을 유지한다. 이는 종교의 영향력 감소 혹은 쇠퇴를 의미한다. 종교는 전체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구속력을 행사하는 궁극적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며, 이제는 각 개인의 기호나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결국 종교는 개인들의 사적인 욕구에 치중한 그 무엇으로 인식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에서 교회에 주기적으로 참석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개인의 자유와 합리성, 그의 선택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적 경향이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전통 종교의 쇠퇴는 ‘올바른 분석’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하였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세속화론과는 다르게 종교적 삶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오히려 종교가 부활하고 있다는 탈세속화(혹은 신세속화론)이 제기되었다.

2) 종교의 재등장

세속화론의 전망과 다르게, 일부 국가에서 종교 부흥을 경험하면서 세속화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등장하였다. 더욱이 공적영역에서도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례들을 접하면서 세속화론을 새롭게 이해하거나 반대하는 이론들이 등장하였다. 

대표적으로 카사노바는 1980년대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와 가톨릭 주교회의, 브라질과 중남미의 해방신학, 폴란드의 가톨릭 연대, 이란의 호메이니 주도의 시아파 이슬람 혁명 등에 주목하고, 이러한 사례를 중심으로 ‘종교의 재등장’을 분석하였다. 또한 1990년대 동유럽과 소련이 몰락하면서 해당 지역에서는 종교가 부흥하고 확산하는 사례를 경험하였다. 이러한 사례들을 보면서 탈세속화(de-secularization)라는 용어가 등장하였다. 

서유럽과 최근의 한국사회에서 확인되는 종교인구 감소 현상은 종교 쇠퇴와 사회적 영향력 감소를 증명하는 지표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반증 사례들은 모든 사회에서 종교가 쇠퇴한 것은 아니며, 위축된 종교가 특별한 계기를 만나 활발하게 다시 활성화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가 세속화-탈세속화 논쟁에서 주목할 점은 공적영역에서 종교의 영향력은 결코 약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동의하는 학자들이 늘고 있다. 근대 이전, 즉 중세 시대(혹은 전통사회)에서의 종교의 역할 및 영향력과는 분명히 다르지만, 근대사회에서도 종교는 사적영역뿐만 아니라 공적영역에서도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공적영역과 종교의 관계를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이해한다. 첫 번째는 근대사회에서의 종교 기능 및 역할과 관련된다. 오늘날 종교는 자신의 교리를 사회에 전달하고 확산하는 역할에 머물지 않는다. 생태와 환경, 평화, 인권, 다문화, 갈등 해소 등 사회구성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도덕적 담지자’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게 되었다. 이는 종교적 가치와 이념이 사회적 실천 가치와 비교적 쉽게 연결되며 공적영역에서 적용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근대사회에서 종교는 교육, 복지 등의 영역에서 활동하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종교(구체적으로는 종단)은 관련 활동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 또한 종교단체들은 다른 유형의 사회단체들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인 조직과 연대를 갖추고 있어서 관련 프로젝트들을 수행하는 데 유리하다. 따라서 근대사회에서 종교(단체)는 이해관계 당사자 중 한 주체로 활동한다.

세 번째로 보수적이며 근본 지향적인 종교집단들은 주요한 가치와 이데올로기의 수호자로서 정치적 행위에 참여한다. 미국의 보수적인 기독교 근본주의, 서구화에 저항하는 이슬람의 근본주의, 이스라엘의 우파를 대표하는 초정통파 유대교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순수한 가치와 이념을 수호하는 집단으로 자신들을 규정하고 정치영역의 주요 행위자로 자리매김하고 영향력을 확장하였다. 

이처럼 공적영역에서 종교의 역할이 근대사회에서도 전혀 위축되거나 쇠퇴하지 않았다. 이는 종교가 한 사회의 역사적 · 사회적 · 문화적 저수지로서 여전히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연관되어 우리는 에르비외 레제의 논의에 주목한다. 그녀는 종교를 신앙의 공동체이자 집합의식의 전달자로 이해한다. 종교는 개개인을 자신의 자아를 넘어선 무엇인가에 연결시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게 한다. 그녀가 분석한 유럽의 경우는 사회 · 문화적 삶의 공간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공적 활동, 자연과 환경에 대한 태도, 일상활동를 통제하는 규범은 아직도 종교와 역사의 맥락을 떠나서는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럽 사회는 기독교적 집합의식(혹은 정신)이 관통하는 거대한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는 기독교적 언어와 문화의 형식을 빌려 정신을 전승해가는 문화와 언어의 공동체로 기능한다. 이를 통해 유럽인들은 자신과 세상을 구성하고 조망하고 평가하는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독교는 앞서 언급한 유럽 공동체를 구성하는 거대한 저수지이다.

이러한 에르비외 레제의 관점과 유사하게 데이비는 유럽에서의 신앙 유형을 ‘소속감 없는 신앙(believing without belonging)’으로 규정한다. 즉 오늘날 근대사회에서 유럽인들의 교회 참석률 감소를 세속화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유럽인들은 세속적이라기보다는 탈교회화된 사람들이거나 ‘다르게’ 종교적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그는 유럽의 종교현상을 ‘공공적 종교’라고 정리한다.

3) 소결: 현대사회에서 종교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면서 종교는 그동안 점유했던 절대적 위치에서 내려와 다른 사회영역들과 수평적 관계를 이루며 힘과 영향력은 축소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종교적 믿음을 추구하며, 종교는 공동체(국가 혹은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세계와 삶의 의미를 제공하고 행위를 해석하는 체계로서 역할을 한다. 다만 이전에 누렸던 절대성을 상실했으며, 사람들에게 선택되어야 하는 다양한 이념(혹은 신념체계) 중 하나이다. 그리고 공동체의 지평으로서 자리하면서 공적영역에서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최근 다양한 이유로 종교의 재등장이 눈에 띄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에 대한 인식과 평가는 사적영역에서의 경험과 공적영역에서의 경험을 종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개인적 차원에서 자신이 선택한 혹은 직면한 의미체계로서 종교에 대한 인식과 공적영역에서 전개되는 종교의 활동들에 대한 평가가 결합하여 개별 종교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형성된다. 

이러한 인식과 평가 구조를 수용한다면, 한국사회에서는 공적영역에서의 종교 간 활동은 다른 사회에 비해 경쟁적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서구사회는 ‘기독교’로 대표되는 비교적 단일한 종교를 기반으로 한다. 유럽이라는 거대한 공동체는 기독교라는 거대한 저수지에 기대어 있다. 미국과 캐나다 등도 그렇다. 하지만 동양사회, 특히 동북아시아는 이와는 조금 다르다. 오랜 시간 공동체에 사회적 문화적 질서와 해석 체계를 제공하던 저수지 역할을 한 종교는 유교, 불교, 도교 등으로 다양하다. 

한국사회의 경우는 전통 종교에 민족종교와 무교, 그리고 서구의 개신교와 가톨릭까지 더욱 다양하다. 이는 베버가 묘사한 다신교적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베버는 근대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종교가 제공하던 궁극적인 의미체계를 이제는 개인 스스로가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근대사회의 이러한 특징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각자는 자기에게 있어서는 무엇이 신이고 무엇이 악마인지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삶의 모든 질서에 걸쳐서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공적영역에서든 사적영역에서든 모든 순간에,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자 하는 다양한 종교와 이념체계 사이의 투쟁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일상을 견디어 내는 일은 힘든 일이다. 그만큼 종교에 기대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3. 한국사회에서 불교의 위치

1) 분석 자료

한국사회에서 불교의 위치는 곧 불교에 대한 일반사회의 인식과 평가를 의미한다. 안타깝게도 이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종교 관련 통계자료를 활용하면, 간접적으로 한국사회에서 불교의 위치를 추론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개신교 시민운동단체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과 여론조사 기관인 한국리서치에서 주기적으로 시행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는 종교 관련 여론조사를 참고하였다. 이 글에서 참고한 자료는 다음과 같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1. 《2023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결과 자료집》
2. 《2020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결과 발표세미나 자료집》
3. 《2017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결과 발표세미나 자료집》

한국리서치

〈한국리서치 주간리포트(제209-2호) 2022년 종교인식조사: 주요 종교 호감도 및 종교 효능감〉(2022.12.7)

〈한국리서치 주간리포트(제159-2호) 종교지표-2021년: 주요 종교 호감도 및 종교 효능감〉(2021.12.15)

〈한국리서치 주간리포트(제105-1호) 사회지표: 종교인식조사-주요 종교별 호감도, 종교의 긍정적 효과 등〉(2020.11.25)

기윤실에서는 2008년부터 한국개신교회의 신뢰도 측정을 위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신뢰도 조사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는 매년 진행하였고 그 이후부터는 3년 주기로 진행하고 있다. 본 글에서 활용한 자료는 5차 2017년, 6차 2020년, 7차 2023년 조사결과이다.

기윤실의 신뢰도 조사는 한국개신교회의 신뢰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문제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이 글의 주된 관심은 주요 종교 간 상대적인 신뢰도의 차이를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불교 관련 조사는 부수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조사는 기본적으로 시계열적 비교 분석을 위해 같은 설문 문항을 유지하고, 연도별 조사에서 필요한 질문들이 추가된다. 연구자는 올해 진행된 7차 조사에서 추가된 항목을 통해 우리는 각 종교의 사회 내 위치를 추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기윤실의 신뢰도 조사에서 활용할 설문 문항은 위의 〈표 1〉과 같다. 

 

2) 분석 결과

(1) 사적영역에서의 불교

사적영역에서의 관계와 긴밀하게 연결된 호감과 친근감을 묻는 항목에서 불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가장 친근감 있는 종교는 불교가 23.2%로 가장 높게 조사되었고, 그 다음으로 가톨릭 19.9%, 개신교 19.6%였다. 가장 호감 가는 종교에 대한 질문에서는 가톨릭이 가장 높은 24.7%였지만 불교의 23.4%와 큰 차이는 없었다. 개신교는 16.2%로 이보다 낮은 수준으로 조사되었다.

불교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호감도는 다른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한국리서치의 종교인식조사 결과에 의하면, 불교의 호감도는 47.1점으로 다른 종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보통(50점)보다 약간 낮은 호감도이다. 이 호감도는 매년 떨어지며, 자신의 종교를 믿는 신자들의 호감도도 떨어진다. 

불교에 대한 일반 사회의 호감도는 50.9점(2020년)→ 50.4점(2021년)→ 47.1점(2022년)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불교 신도 스스로 평가하는 불교에 대한 호감도도 71.4점(2020년)→ 73.4점(2021년)→ 68.2점(2022년)으로 하락하였다.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할 조사는 2021년에 국민일보와 코디연구소가 진행한 ‘기독교에 대한 대국민 이미지 조사’이다. 이 조사에서도 종교 호감도를 질문하였고, 더불어 각 종교의 상징적인 단어도 함께 분석하였다. 각각의 종교를 대상으로 호감 여부를 묻는 질문에 불교에 대한 호감도는 66.3%, 가톨릭은 65.4%로 각각 조사되었다. 반면, 개신교에 대한 호감도는 25.3%로 가장 낮았다. 

불교를 상징하는 단어로는 ‘포용’과 ‘상생’ ‘친근’ ‘보수’ 등이 거론되었다. 가톨릭은 ‘도덕적’ ‘헌신적’ ‘희생적’이 핵심 단어로 선택되었다. 반면에 기독교를 대표하는 단어로는 ‘배타적’ ‘물질적’ ‘위선적’ ‘이기적’ ‘세속적’ 등이 선택되었다. 

국민일보와 코디연구소의 조사에서도 한국불교의 이미지로 ‘친근함’이 선택되어 앞서 검토한 한국리서치의 조사에서처럼 한국에서 불교는 친근하며 호감 있는 종교로 인식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친근함과 호감은 전통 종교라는 이미지에서 오는 익숙함과 치열한 경쟁과 고립, 소외에서 오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명상 등을 종교를 통해 해소하고자 하는 새로운 종교성이 불교의 이미지와 부합해서 나타난 결과로 이해된다. 한국사회에서 명상은 개인적 활동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불교의 이미지로 선택한 포용과 상생 등은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과 맞닿아 있지만, 아직 사회적 의미로 확장되지 못한 채 사적영역에서의 관계 윤리로 소비되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2) 공적영역에서의 불교

공적영역에서 불교의 위치는 종교의 사회적 활동에 대한 인식 비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기윤실의 신뢰도 조사에는 종교의 사회적 활동에 대한 종교별 인식을 조사하고 있다. 우선 사회봉사 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종교에 대한 질문에 불교를 선택한 비율은 6.8%에 불과하다. 가톨릭은 29.4%, 개신교 20.6%로 그 격차가 15%~20%에 달한다. 

불교는 사회활동이 타 종교에 비해 부족하다는 성찰을 기반으로 이전보다는 활발하게 사회복지 활동을 전개하고 있음에도 일반 국민에게 그렇게 인식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2010년 11.6%였던 비율은 2013년 7.7%, 2017년 7.8%, 2020년 10.2%로 크게 변화하지 않고 있다. 위의 결과는 사회봉사 활동이라는 단편적인 활동에 불과하지만, 공적영역에서 불교의 활동은 사회에서 거의 인식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의 영향으로 ‘한국사회에 가장 도움이 되는 사회봉사 활동을 하는 종교’라는 항목에서 불교를 선택한 비율은 9.8%로 주요 세 종교 중 가장 났다. 또한 한국사회에서 가장 긍정적인 기여를 하는 종교에 대해 불교는 15.1%로 개신교 15.7%와 비슷한 응답률을 보였다. 가톨릭은 26.4%로 가장 높았다.

(3) 불교에 대한 종합적인 인식

앞에서 간략하게 언급했듯이, 종교는 사적영역 혹은 공적영역 어느 한 곳에서만 머물러 있지 않다. 개인의 안녕과 평화를 위한 역할을 담당하며, 동시에 다양한 공적영역과 관계를 유지하고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종교에 대한 인식도 이 두 영역에서의 활동을 종합하여 이루어진다. 종교에 대한 종합적 평가는 ‘신뢰’와 ‘영향력’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선, 기윤실의 신뢰도 조사에서 종교에 대한 신뢰도가 전반적으로 하락하였다. 불교를 신뢰한다고 응답한 비율도 이전 조사(26.2%)보다 약 10% 하락하여 15.7%로 조사되었다. 이는 가톨릭의 21.4%보다 낮고 개신교의 16.5%와 거의 비슷하다. 이전의 6차례 조사에서 불교는 신뢰도 항목에서 가톨릭 다음으로 2위였지만, 7차 조사에서 비록 미비한 차이이지만 3위로 떨어졌다. 

또 다른 항목으로 한국사회에 가장 긍정적인 기여를 하는 종교에 대한 물음에도 불교는 15.1%로 개신교 15.7%와 거의 유사한 비율을 기록하였고, 가톨릭이 26.4%로 가장 높았다. 불교는 사적영역에서의 높은 평가가 공적영역에서의 낮은 평가를 상쇄하고 있으며, 반대로 개신교는 공적영역에서의 높은 평가가 사적영역에서 낮은 평가를 상쇄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불교는 아직도 사적영역에서 개인적 차원에서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지만, 공적영역에서는 기대하는 바의 역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4. 닫는 말

근대사회의 종교에 대한 가장 논쟁적인 세속화-탈세속화 논쟁은 절반의 진실과 절반의 과장을 담고 있다. 이론을 통해 우리가 관심을 두고 있는 사회문제(사회현상)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가끔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자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방해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오늘날 세속화는 더 이상 종교의 쇠퇴, 위축, 감소로 이해되지 않는다. 근대사회에서 이루어진 종교의 변화(혹은 변형)를 의미한다. 물론 종교의 영향력이 전통사회처럼 절대적이지도 막강하지도 않다. 하지만 여전히 공적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저수지로 역할을 하고 기대를 받고 있다. 이를 우리는 최근의 종교인식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불교는 사적영역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공적영역에서는 낮은 평가를 받으며, 기독교는 그 반대로 조사되었다. 그리고 개별 종교에 대한 종합평가에서는 두 종교의 신뢰도와 긍정적 기여도는 유사한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우리는 사람들이 개별 종교들을 사적영역에서의 경험과 공적영역에서의 활동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평가한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러한 추론을 근거로 우리는 두 가지 점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에서 균형 잡힌 역할과 기능이 필요하다. 종교의 역할은 특정한 영역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두 영역에서 모두 역할과 기능을 기대한다. 따라서 특정한 영역에서 부족한 활동은 책무를 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책무를 다하지 않는 종교를 신뢰하기 어려우며, 한국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개신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이미지와 높은 호감도와 친근도에도 불구하고, 개신교에 비해 신뢰도와 긍정적 기여도가 낮은 이유는 공적 활동의 부족에 있다. 불교는 개인적으로 친밀함을 느끼는 종교이기는 하지만,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무를 다하지 않는 그래서 신뢰할 수 없는 매력이 없는 종교이다.

둘째, 최근 불교의 선 수행, 즉 명상에 대한 접근에서도 개인주의적 접근을 보완하는 사회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 불교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은 낮지만, ‘명상’을 매개로 불교에 대한 관심은 높다. 이러한 관심이 일시적인 관심이나 명상 체험으로 소비되지 않기 위해서는 개인의 신념 및 해석 체계로 선택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실제 삶에서 어떤 모습으로 구현되는지, 그리고 공적영역에서는 그 가치가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는 그러한 모습을 찾기 어렵다. 만약 이러한 노력이 부족하다면 서구에서 뉴에이지 운동이 소멸한 것과 같은 길을 걸을 가능성이 크다. 일시적 붐으로 소비되지 않기 위해서도 공적영역과의 관계를 보다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대사회에서 종교의 위상이 하락하였음에도, 종교가 개인과 사회의 의미와 해석 체계 지평으로 기능하고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사적영역에서의 활동만으로 부족하다. 특히 다양한 종교들이 경쟁하는 한국사회에서 공적영역에서의 활동은 더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사람들이 주목한다. 하지만 한국불교는 이제까지 이러한 점을 간과하고 사적영역에서의 활동에만 집중하고 만족하였다. 그 결과는 종교로서 신뢰도 하락이며, 긍정적 기여를 하지 못하는 종교라는 박한 평가이다. 현재와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불교의 신뢰도는 더 낮아질 것이다. 공적 활동에 대한 불교계의 인식 전환과 노력이 함께 요청된다. ■   

 

이명호 
한양대에서 사회학 박사, 동신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 한양대학교, 중앙승가대에서 강의. 주요 논문으로 〈공감의 구조변동, 관계지향적 삶의 실천으로〉 〈코로나19 이전/이후, 사회의 재구조화 가능성〉 〈한국불교 신도들의 종교성과 생태인식에 관한 연구〉 등. 저서로 《문명전환과 불교의 응답》 《노년의 편안한 임종을 관찰하다》 《현대사회의 위기와 동양사회사상》(공저) 등. 현재 경희대 종교시민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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