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주의 《아소까대왕》(전 3권)이 출간되었다. 2천2백여 년 전 인도 전역을 통일한 정복왕 아소까가 피의 살육을 멈추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파하는 과정을 주목한 작품이다. 이것은 한국문학인가 인도문학인가. 불교문학인가 보편문학인가. 역사인가 허구인가. 이런 질문 앞에 서면 답하기 어렵다. 다양한 성격이 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문학의 소재와 형식과 지평이 풍요로워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단언컨대 정찬주 작가의 이 작품은 한국문학인 동시에 세계문학이다. 세계인 누구나 읽어도 이해하고 감동할 수 있다. 특수한 문화권의 이야기라기보다 인류의 보편적인 스토리로서 손색이 없는 것이다. 전쟁과 살육의 사건들이 파란만장하게 이어지는 가운데 사랑과 평화의 위대한 가르침이 사건의 내피와 외피를 감싸고 돈다. 2천 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그렇다고 시의성이 떨어지지 않는다.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 전달 위주의 이야기는 또 아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을 가지지 않으면 재현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문학으로서의 재미를 담보해주기도 한다. 요컨대 《아소까대왕》은 이야기문학의 다양한 가능성을 확장하고 심화시키는 작품이다. 

일생일대의 명작을 쓰기 위한 작가의 발원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오는 점도 미덥다. 작가는 작품 집필을 위해 인도를 열다섯 번이나 답사하고 왔다고 한다. 칠순의 그 열정이 놀랍다. 한국의 정체성을 늘 탐구하면서 불교문학을 문학의 중심부로 복귀시키려는 작가의 신념이 얼마나 크고 굳센지 가늠할 수 있다. 

장편소설 《아소까대왕》은 사실(fact)과 작가적 상상력(fiction)이 섬세하게 직조된 팩션(faction)이다. 소설이란 원래 공인된 허구인데 여기에 실제를 공교롭게 엮어내면 사실의 적확성과 허구의 상상력이 결합된 독특한 형태가 나오게 된다. 일컬어 팩션이라 하는데 이는 소설 영역의 확장을 위한 새로운 도전이자 즐거움이다. 

B.C 250년경에 살았던, 인도를 통일한 아소까대왕을 현재의 관점에서 불러낸다는 것은 필력이나 여건이 주어졌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다. 작가로서의 주제 의식과 상상력, 수없이 부침하는 인물들의 성격 창조, 사건의 필연적인 구성 등, 과학자의 엄밀함과 건축가의 아름다운 상상력과 메스를 든 의사의 치밀함이 없으면 감내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아소까대왕》 1권 1장은 아소까의 어머니 다르마가 빠딸뿌뜨라성으로 들어가 빈두사라왕의 열여섯 번째 왕비가 되는 과정부터 시작한다. 작가가 다르마를 왜 첫 장에 등장시켰는지 그 의도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아소까의 성격 창조 과정에 필연성을 부여하고자 그랬을 터이다. 아소까는 아버지 빈두사라왕의 잔인한 성격과 어머니 다르마의 자애로운 성격이 혼재된 이중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이런 이중성은 그가 왕이 되는 과정과 왕이 된 이후의 삶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99명의 이복형제를 직간접으로 죽이고 왕좌에 오른다. 잔인함이 극단적 형태로 노골화되는 것이다. 왕좌에 오른 뒤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그는 ‘담마의 정복자’가 되기로 맹세하며 ‘북소리의 정복자’를 포기한 뒤 인도 전역에 8만 4천 개의 사원을 조성하고 스리랑카는 물론 지중해 연안의 그리스, 이집트까지 전법 사신인 담마사절단을 보낸다. 왕의 내면에 숨어 있는 자비로운 성격이 자연스럽게 발현된다. 진정한 전륜성왕의 탄생이다. 

특히 아소까왕이 부처님 성지를 순례하는 장면은 오늘날 부처님의 성지를 순례하는 의미를 배가시켜 준다. 아소까왕 석주에 새겨진 각문은 부처님 진리를 더욱 사무치게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소까대왕》 3권 4장 ‘석주를 세우다’와 ‘담마칙령 공포’에는 석주나 바위 등에 새겨진 아소까왕의 칙령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내가 왕위에 오른 지 12년이 됐을 때, 나는 백성들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 처음으로 담마칙령을 석주에 새기도록 하였다. 백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도 백성들이 여러 면에서 담마로 인해 나아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깊이 생각했다. (중략) ‘나는 사람들에게 담마를 공포하여 알려야겠다. 나는 사람들에게 붓다의 가르침을 가르쳐야겠다. 그러면 사람들은 담마를 듣고, 담마를 따르게 되고, 그들 자신을 향상시키고, 담마를 받아들여 아주 달라질 것이다.’ 이런 목적으로 나는 담마칙령을 공포해 왔고 많은 붓다의 가르침을 시달할 것이다.

 

위대한 성인의 탄생도 중요하지만 성인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는 일이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작가는 주목한다. 붓다가 진리의 발견자이자 생산자라면 아소까는 그 진리의 진정한 전달자라는 메시지이다. 붓다도, 아소까 대왕의 흔적도 희미해진 인도 현지를 열다섯 번이나 방문하여 2천 년 전의 이야기를 오늘에 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일이 잘 사는 것인가를 세계의 모든 이들에게 호소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돌기둥에 남아 있는 희미한 글씨를 밝히는 일은 결국 이 소설의 주제로 이어지게 된다. 

“나는 내 발로 직접 찾아보고 위대한 성인의 가르침을 여기 기록한다. 생명을 존중하라. 화합하라. 위대한 가르침에 경배하라.” 

인류의 스승인 붓다의 가르침을 잊지 말자는 제언이다. 아소까대왕이 남긴 돌기둥 각문은 2천 년 세월을 건너고 공간을 뛰어넘어서 세계의 시민들에게 다시 전해진다. 아소까를 주인공으로 삼은 한국소설의 힘이다. 그러므로 《아소까대왕》은 불교문학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서 한국문학의 풍요로운 자산 목록 안에 들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생명 있는 모든 존재들을 사랑하고, 행복과 복지를 추구하고, 이웃 나라와 평화적 공존을 모색한 아소까왕의 일대기인 《아소까대왕》이야말로 인류애를 지향한 문학의 보편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아소까대왕》의 소설적 성취를 또 하나 든다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빠딸리뿌뜨라성이나 강가강, 다야강, 짬바성, 웃자인, 탁실라 등 인도 지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마우리아왕국의 코끼리부대 같은 특별한 군사 편제와 왕실의 왕자 수업, 전통 감옥의 구조, 다양한 전통 종교의 모습 등을 빈틈없이 재현하고 있다. 이로써 아소까왕의 연대기에 근거한 역사적 사실의 고증이 확실해지고 풍성해졌다. 이 소설의 큰 덕목이다. 

선택적 배열은 서사 전략의 또 다른 방책이다. 작가는 자신이 수집한 모든 자료를 형상화하고 있지는 않다. 소설의 흐름을 속도감 있게 전개하기 위해서 역사적 사실의 부분을 취사선택한다. 가령 석주의 예만 하더라도 룸비니 근처에 꼬나가마불 석주, 까꾸찬다불 석주가 있고, 그밖에 또쁘라 석주, 알라하바드 석주, 아레라즈 석주, 난당가르 석주 등이 있는데 이는 아소까왕이 그곳을 순례했다는 증거이지만 소설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대표적인 삼보디 석주와 사르나트 석주, 룸비니 석주만 소설의 극적 전개를 위해 선택적으로 묘사한다. 이로써 편집의 효율을 지향한다. 

한편 《아소까대왕》은 작가의 대하소설 《이순신의 7년》과 흡사한 작법 경향을 띠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거시적 관점보다는 미시적 관점의 글쓰기를 선호하는 성향이 그렇다. 수많은 인물에 대한 리얼한 묘사, 당시 인도의 여러 종교와 풍속, 부처님 성지 풍광, 인도의 건기와 우기 날씨, 인도의 과일과 음식 묘사 등이 서술의 주요한 특성으로 부각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정찬주 작가는 사건의 우여곡절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스토리텔러의 면모보다는 문체를 중시하는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장점을 더 많이 가진 작가이다. 

마무리 말을 덧붙이자면 이 소설은 정찬주 작가가 그동안 발간해온 작품들의 결정판이다. 역사를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내는 일은 힘들고 어려운 작업인 동시에 보람 있는 일이기도 하다. 때로는 단 몇 줄밖에 남아 있지 않은 사료(史料)에서 스펙타클한 묘사를 이끌어내기도 하고, 보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어 지향하는 삶의 관점을 바꾸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생명 있는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바랐던 아소까왕의 리더십이다. 존중하고, 배려하고, 화합하는 삶이란 현대사회에도 필요한 지혜이지 않은가. 

마침 정찬주 작가가 이 작품으로 2023년 유심작품상 소설부문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동안 작가가 불교소설에 매진해 온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 ■

 

윤재웅 
문학평론가.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동 대학원 졸업(석사 · 박사). 199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으로 등단. 동국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등 역임. 주요 저술로 〈에코뮤지엄으로서의 미당시문학관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고찰〉 〈서정주 ‘화사집’의 문체 혼종 양상에 대하여〉 등의 논문과 저서로 《미당 서정주》 《문학비평의 규범과 탈규범》 《판게아의 지도》 등 다수. 현재 동국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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