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천불전(千佛殿) 여명을 가르며 뜰 거닐다
개운한 공기를 한입 들이마시니
옥수에 몸 담그듯 청량해
한순간 요령껏 다 가지려
맑은 공기며 새소리며 엷은 청색 어둠이며
주머니에 가득 담기 시작했는데
지나간 저녁까지 다가올 저녁까지
다 담았는데
서울 와 보니 나도 부처인지
대웅전 뜨락에 다 두고 왔다.
— 시집 《전쟁과 평화가 있는 저녁》(민음사, 2023)
신달자
1964년 《여상》으로 등단. 1972년 박목월 추천으로 《현대문학》 재등단. 《열애》 《종이》 《북촌》 등 시집 다수. 정지용문학상, 유심작품상 만해대상 등 수상. 한국시인협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