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근무하는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는 한국 천주교회의 사목 전망을 거시적으로 연구하는 곳입니다.(‘사목(司牧)’은 하느님을 믿는 백성을 위한 돌봄으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지상에서 교회가 하느님 백성을 위하여 행하는 모든 활동을 사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가 사목 비전을 성찰하고 사목의 발전적 걸음을 디딜 수 있게 도와주는 주교회의 연구기관입니다. 본 연구소가 《한국 천주교 코로나 팬데믹 사목 백서》를 준비하고자 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천주교 신자(1,063명)와 비천주교 신자(1,000명)를 대상으로 올해 1월에 시행했습니다. 유의미한 설문의 결과를 다 나눌 수 없지만,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설문 문항이 있습니다. 일반 국민(불교, 개신교, 원불교, 무종교인 포함)이 생각하는 “한국 천주교회의 바람직한 사회적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문항입니다. 이 문항에 대한 가장 많은 응답은 ‘사회통합’이었습니다. 이 설문의 결과는 우리 사회가 사회적 갈등을 크게 겪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어느 사회나 사회적 갈등은 있을 수 있고 그 구성원들은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개인과 지역 그리고 정부가 상호 간에 영향을 미치고, 그 상호 관계로 인해 이해 충돌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해 충돌이 때로는 잘 해결되기도 하고 때로는 갈등으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이해 충돌이 발생하는 것은 상호 간 생각의 다름에서 출발합니다.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생각들을 조정하고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조정과 화합의 과정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상호 간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서로의 주장에 귀를 닫아버립니다. 그러면서 서로 상처 입고 상처 입히기도 하며 반목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이 많아진다면 사회 구성원들은 지치고 힘들어할 것입니다. 

국민은 한국 사회의 갈등에 대해 정의롭고 공정한 종교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불교, 개신교, 천주교가 이 역할을 잘하고 있는가는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여러 조사에서 드러나듯이 이들 종교에 대한 신뢰도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역할이 사회적 갈등의 해소를 위해 더 노력하고 솔선수범해야 하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여기에는 명확한 준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가 지닌 의미와 내용이 ‘구원’ 혹은 ‘해탈’이라면 그 대상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향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회적으로 힘없고, 고통과 슬픔에 처한 이들을 위한 선택이 언제나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소홀히 하면 종교 본래의 아름다움을 잃게 됩니다. 이는 예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종교인들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약자와 어려움에 부닥친 이들, 고통과 슬픔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한 삶을 선택하고 있는가? 어떤 형태로든 이들을 위한 내어줌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이러한 성찰이 사회적 갈등 해소를 위한 첫걸음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이러한 첫걸음을 바탕으로 사회적 갈등이 해소되는 사회적 통합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종교인들 각자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정의롭고 공정하게 종교의 의미와 가치를 구현하며 살아간다면, 사회통합의 중재자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공동체 의식’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공동의 문제 해결에 함께하려는 ‘공동체 의식’이 견고하다면 사회통합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현시대에서 공동체 의식이 절실히 요구되는 문제로 생존과 직결된 ‘기후 위기’가 있습니다. 홍수, 태풍, 산불, 지진, 이상 기후 등의 자연재해로 인해 삶의 터전은 황폐해지고 우리의 생명마저도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런 자연재해는 인간의 탐욕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이 자연을 무분별하게 훼손시키고 그러한 자연의 병듦이 고스란히 인간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이상 기후와 자연의 파괴적 재해에서 우리를 지킬 수 있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제 ‘생태적 회심’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인식하고 이 생명체에 폭행하는 인간의 반성과 성찰인 ‘생태적 회심’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지구를 살리고 함께 살아가는 길을 걸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생태적 회심을 통해 지구의 병듦을 치유하고 서로 평화롭게 화합하며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본래의 모습인 화합의 공동체가 되고 사회통합의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이미 불교계에서는 이 생태적 회심의 삶을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살생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간이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야 함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임을 명찰(明察)하지 않고는 가능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삶으로 구현하시는 불자들과 함께 생태적 회심을 통한 사회통합을 주창하고 싶습니다. 인간의 탐욕을 멈추고 생태계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만 합니다. 이 소명이 사회통합의 과제가 되어 우리의 사명으로 실천하였으면 합니다. 

이제 우리는 각자의 가정에서, 일하는 터전에서, 사회적 공동체에서, 종교 생활에서 자연을 소중한 벗으로 존중하고, 생태계를 회복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생태적 회심을 통한 기후 위기 극복 문제를 공동체 의식으로 잘 해결해 나간다면 사회통합에 이르는 길은 한층 더 가까워질 것입니다.

 

곽용승 /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소장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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