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명산이 많다. 그리고 명산엔 틀림없이 고즈넉하고 멋스러운 사찰이 자리 잡고 있다. 사찰을 둘러보는 것이 잔잔한 즐거움이다. 

나는 부처님 앞에선 언제나 같은 기도를 올린다. 호국불교 아닌가? “우리나라를 보호해 주시고 하루빨리 남북통일이 되게 도와주소서!” 요즘은 대세에 따라 ‘통일’이 아니라 ‘남북 공동의 번영과 평화’를 간절히 빈다. 하느님께도 빌지만 부처님께도 비는데, 정성이 모자라서인지 시민들의 무관심 때문인지 정치가들이 장난을 치는 건지, 아직도 남북의 번영과 평화는 요원한 느낌이다. 죽어서나 고향 땅을 굽어보고, 못 가본 내 나라 내 땅을 구석구석 둘러보면서, 동포들의 삶도 엿보게 될 것 같다. 또 가슴이 아려온다.

오래전의 일이다. 인도와 우간다의 선교를 마치고 2006년 귀국하여 3개월간 재교육 시간을 갖게 되었다. 마침내, 엉터리로라도 꼭 해보고 싶었던, 내 나름의 ‘홀로 참선(參禪)’을 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참선은 무슨 참선, 역사적으로 불교가 국교였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누구나 불교적 DNA가 인성에 박혀 있으니, 불교에 전혀 무지한 나도 불교책 한 권이라도 진지하게 읽으면서 선방에서 고요히 지내고 싶었다. 

해남 은적사 주지 스님 덕분에 아직은 이른 3월, 나 홀로 한 달간 조용한 선방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툇마루에 앉으면 조그만 뜰 너머로 말라버린 잡풀들이 무성한 평지가 아래로 쭉 펼쳐져 있고, 왼쪽은 나지막한 언덕, 길너머 오른쪽엔 제법 높은 산이 있었다. 산꼭대기 가까운 곳에는 사자가 편히 쉬고 있는 듯한 멋진 모습의 큰 바위가 있었다. ‘사자바위’라 이름 지어 주었다.

참선하려고 한다니까 불교학을 공부하신 지인께서 제법 두툼한 《수능엄경 연독(首愣嚴經 硏讀)》이란 책을 빌려주셔서 그 책을 들고 무조건 선방에 틀어박혔다. 불교를 연구하자는 것도 아니니까 굳이 내용을 이해하려 애쓰지도 않고 마음에 와닿는 말씀에 머물기도 하고, 메모도 하면서 고요함을 즐기고 있었다. 

어느 날 번쩍, 눈이 뜨였다.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물상은 무엇으로 구분되는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기에 궁금증 폭발, 책을 탁 덮었다. ‘개개의 물상은 어떻게 인지되는가?’ 종교적이거나 과학적 질문은 아닌 것 같고 답도 단순할 것 같은 예감에, 두뇌게임 하듯 답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답이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온종일 툇마루에 앉아 눈에 뜨이는 모든 것들을 뚫어져라 쳐다봐도 답은 안 나온다. 눈, 빛, 형태…… 무엇을 생각해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삼일 지난 즈음 새벽에 눈을 뜨니, 온 세상이 짙은 안개로 덮여 있었다. 뜰 앞만 겨우 희미하게 보일 뿐 언덕도 산도, 사자바위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무슨 연유일까? 해는 이미 떠 있고, 산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텐데…… 아무리 봐도 보이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세상이 온통 희끄무레한 회색뿐이다. 

시간이 지나니까 안개가 서서히 사라지면서 차츰차츰 물상들이 제 모습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자기만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개개의 물상들이 하나같이 자기만의 고유한 색깔을 가지고 다른 것들과 구분되어 선명히 나타나고 있음을 보았다. 

앗! 답을 찾았다. ‘물상은 무엇으로 구분되는가?’ 개개의 물상들은 어떻게 ‘그것이 그것’으로 인지되는가? 색(色, colour)이다. 결국은 색깔로 구분할 수 있는 거다. 꽉 막혔던 머리가 확 트이는 느낌이었다. 책을 펼쳤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다. “모든 물상은 색(色)으로 구분되어 지각된다.” ‘아하― 그래서 불교에서는 물상을 색으로 표현하며 핵심 교리에 그리도 많이 색이 언급되는구나!’ “색불이공 공불이색(色不異空 空不異色)” 색은 공(空)의 용(用), 공은 색의 체(體). 색과 공의 본체가 일여(一如)하니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다. 공을 말하려니 색이 언급되지 않을 수가 없고, 색을 말하려면 공이 나올 수밖에! 색에 담긴 의미는 여러 가지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깨달았다. 물상은 색으로 구분된다는 것! 안개 덕분이다. 안개가 없었다면 나 스스로는 끝내 답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안개가 스승이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세계로 이끌어준 부처님께 지금도 감사하다. 

꽃피는 4월, 찬란한 봄이다. 생강나무와 산수유가 노란색으로 봄을 불러내니, 여기저기 꽃들이 향기를 품고 서로 구분되는 자기만의 색깔을 뽐내며 자태를 드러낸다. 자연은 각기 자기만의 기질과 형태, 향기와 색을 가지고 자신을 가장 아름답게 연출해낸다. 부처님은 “모든 강은 이름이 있지만 바다에 들어가면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시지만, 생각한다. 나의 고유한 색과 향기는 무엇일까? 나를 창조하신 분이 나에 대해 가지신 소중한 꿈을 70대 노년인 지금 어떻게 아름답게 마무리해 갈 수 있을까? 언젠가 화룡점정(畵龍點睛)을 하고 그분께로 훨훨 날아가고 싶은데…… 삶이 문제다. 아주- 아니! 시간이 별로 없다. 좀 길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소희숙 / 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서울수녀원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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