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함께 돌아봐야 할 소수자 인권

1. 난민법제의 연혁

많은 경우 법률은 특정 사회공동체가 이미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치적 논의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반면 아직 사회공동체 전반의 주목을 받고 있는 주제가 아님에도 해당 주제에 관한 일부 전문가들의 관심과 열정 덕분에 법률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왕왕 볼 수 있다. 전자가 마치 몸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작아진 옷으로 인해 불편함을 겪게 되자 비로소 몸에 맞는 잘 어울리는 옷을 장만하는 격이라면, 후자는 몸이 성장할 것을 예측하고 미리 옷을 마련해두는 형국이다. 대한민국의 난민법제는 후자 쪽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일찍이 서구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전쟁 와중에 발생한 대규모 난민 문제의 해결이 시급한 국제적 과제로 대두되자 ‘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이하 ‘난민협약’이라 한다)과 ‘1967년 난민의정서’(이하 ‘난민의정서’라 한다)’라는 국제적 약속을 통하여 난민 문제에 대처해왔다. 우리나라는 한동안 지정학적 요인 덕분에 서구에서 그러한 만큼 난민 문제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체감하기는 어려웠다. 우리나라는 1992년에 이르러 비로소 난민협약, 난민의정서에 가입한 이후로 상당 기간 ‘출입국관리법’에서 난민 문제를 규율하는 방식을 취하다가, 2012년 ‘출입국관리법’으로부터 난민에 관한 부분을 분리하여 별도로 난민법을 제정하여 2013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처럼 출입국관리법령과는 독립된 별도의 난민법이 마련된 나라는 독일, 아일랜드, 스페인, 스위스 등이며,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가 독립된 난민법을 가진 최초의 나라이다.

난민법은 크게 총칙(제1장), 난민인정신청과 심사 등(제2장), 난민위원회(제3장), 난민에 관한 처우(제4장) 규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해외 난민캠프에 보호 중인 난민을 수용하여 정착시키는 재정착 난민제도를 도입하고, 난민불인정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 전담 심의기구인 난민위원회 설치를 규정하고 있다. 이와 함께 난민신청자에 대한 안내, 면접 시 녹음, 녹화, 통역인 및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규정하고, 난민인정자의 기초생활 보장, 교육 보장, 직업훈련 및 사회적응 교육, 사회보장 등의 지원을 규정하는 등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처우 내용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출입국관리법의 한계를 극복하고 난민의 인권 보호 관점을 보다 충실히 포함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 난민수용을 둘러싼 찬반의 관점

그런데 우리나라의 법률 전문가들이 더 앞서 난민에 대한 법적 규율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관련 법제도 준비해왔던 것에 비하여, 일반 시민들이 난민 문제를 일상의 문제로 인식하게 된 계기는 비교적 최근에 이르러서야 마련되었다. 2018년쯤의 제주도 예멘 난민사태가 바로 그러한 계기가 되었는데, 당해 연도에 예멘의 내전 상황을 피해 무비자로 제주도로 입국하는 예멘인들의 숫자가 560명대에 이르렀고 이들 대부분이 난민인정 신청을 하였다.

대한민국 사회는 제주도의 예멘 난민수용을 둘러싸고 격렬한 의견대립의 갈등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난민수용에 반대하는 입장이 제시하는 논거는 다양하다. 대표적인 것이 사회통합의 어려움이다. 그렇지 않아도 계층, 세대, 성별, 지역 등을 이유로 하는 우리 사회의 분열 양상이 심각해지고 있는데 역사, 문화, 언어 등을 달리하는 이질적인 존재들이 우리 사회에 유입되게 되면 이들은 더 하나의 추가적인 분열 요인이 될 뿐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보다 먼저 난민 유입을 겪었거나 현재 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여러 서구의 나라들의 통합 실패라든가 이들 나라들에서 발생한 난민 관련 치안 불안 사태들이 집중적으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사회통합의 어려움을 반대의 근거로 제시하는 견해는 비단 난민뿐 아니라 이민자 유입 전반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독일, 프랑스, 영국, 오스트리아, 그리스, 이탈리아 등 서구 여러 나라들에서는 반난민, 반이민을 주장하는 극우성향의 정치세력들이 유권자의 반난민 정서를 등에 업고 그 정치적 세를 불려 가는 실정이다. 특히 제주 예멘 난민신청자의 대부분이 특정 종교를 가진 이들이었기에 해당 종교의 교리에 대한 반감이 반난민 정서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역사적 책임 여부도 반난민 논거의 하나로 제시된다. 우리나라는 서구 유럽과는 달리 난민수용을 통하여 책임져야 할 역사적 부채도 없는데 굳이 난민을 수용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시각이 그것이다. 난민수용이 일정한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국내 기존 소외계층에 대한 처우 개선이 우선적이어야 한다는 실용주의적 관점의 반대 논거도 제시된다. 이러한 반난민적 입장은 난민수용을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나 난민법 개정 제안 등으로도 표출되었다.

난민수용에 긍정적인 입장도 다시 그 결을 달리하는 여러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진다. 한편으로는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난민을 지원이 필요한 포용의 대상으로 보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심각한 출생률 저하로 인한 인구 감소, 지방 소멸의 위기에 대한 대응 전략의 하나로 난민 인구를 수용하자는 실용주의적 관점도 존재한다.

 

3. 법적 용어로서의 난민과 일상용어로서의 난민

그런데 난민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 과정을 살펴보면 많은 학문영역에서 그러하듯이, 용어의 사용을 둘러싸고 해당 영역의 전문가들과 일반 시민들의 인식 사이에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대중적인 언론매체에서 사용하는 난민과 난민법에서 말하는 난민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일반 언론매체에서 난민에 대하여 언급하는 경우, 대부분 본국에 장기의 내전이나 무력 충돌 등 폭력 사태, 자연재해, 기아 등 인도주의적 관점의 위기가 발생하여 본국을 떠난 사람들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난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난민법에서 말하는 난민은 이른바 ‘난민협약’상의 5대 사유로 인하여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가 있을 것 등, 엄격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는 개념이다.

전자를 ‘협약사유 외 난민’, 후자를 ‘협약상 난민’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난민법이 정하고 있는 난민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보호받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외국인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대한민국에 입국하기 전에 거주한 국가(이하 ‘상주국’이라 한다)로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무국적자인 외국인을 말한다”(난민법 제2조 제1호. 이하에서 법은 난민법을 의미한다). 누군가 자신이 난민임을 주장하면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난민인정신청을 한다면 그자는 난민신청자의 지위를 가지게 된다(법 제2조 제4호). 더 나아가 소관청이 소정의 절차를 거쳐 그 사람이 난민임을 인정한다면 그는 난민인정자의 지위를 갖게 되고(법 제2조 제2호) 난민이 아니라는 인정을 한다면 그는 난민법이 정하는 여러 난민인정자의 처우를 당연히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어떤 외국인이 난민인정을 받지 못하였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그 사람을 즉각 내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난민법은 인도적 체류자라는 제도도 마련하고 있는데, 인도적 체류자란 난민에는 해당하지 아니하지만 “고문 등의 비인도적인 처우나 처벌 또는 그 밖의 상황으로 인하여 생명이나 신체의 자유 등을 현저히 침해당할 수 있다고 인정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사람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체류허가를 받은 외국인”으로서 인도적 체류자 역시 일정한 범위 안에서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게 된다(법 제2조 제3호). 실제로 제주 예멘 난민사태에서도 난민인정자는 극소수였던 반면, 대다수에 해당하는 330여 명이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바 있다.

 

4. 박해의 의미 및 박해의 5대 원인 사유

그렇다면 난민으로 인정되는 데 필요한 박해란 무엇이며 박해의 원인이 되는 5대 원인 사유는 무엇일까? 어떤 외국인이 생명 또는 자유가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박해로 인정받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생명 또는 자유에의 위협에는 미치지 않는 정도의 정신적 고통이나 경제적 박탈도 그것이 인간의 본질적 존엄에 대한 심각한 침해에 해당한다면 박해로 인정될 수 있다. 우리 법원도 난민인정 요건으로서 박해를 보다 넓은 의미로 파악하고 있다. 즉 박해란 “생명, 신체 또는 자유에 대한 위협을 비롯하여 인간의 본질적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나 차별을 야기하는 행위”라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다(대법원 2008.7.24. 선고 2007두3930 판결).

통상적으로 박해의 주체는 국가기관이지만 민간 영역에서 심히 차별적이거나 공격적인 행위를 하는 경우라고 하여 그것이 난민법상 박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비정부기관 등의 행위가 정부 당국에 의해 고의로 용인되거나, 정부 당국이 핍박받는 자들에 대한 효과적인 보호의 제공을 거부하거나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비정부기관의 행위도 박해로 인정될 수 있다(서울행정법원 2007.1.9. 선고 2006구합28345 판결).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란 ‘공포’라는 주관적 요소와 ‘충분한 근거가 있는’이라는 객관적 요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리 법원도 난민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신청인이 박해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이러한 주관적 심리상태가 객관적 상황에 의하여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서울행정법원 2006.1.26. 선고 2005구합21859 판결). 한편,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가 있음은 난민인정을 신청하는 외국인이 증명하여야 하나, 난민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여 그 외국인에게 객관적인 증거에 의하여 주장 사실 전체를 증명하도록 요구할 수는 없고, 그 진술에 일관성과 설득력이 있고 입국 경로, 입국 후 난민 신청까지의 기간, 난민 신청 경위, 국적국의 상황, 주관적으로 느끼는 공포의 정도, 신청인이 거주하던 지역의 정치 · 사회 · 문화적 환경, 그 지역의 통상인이 같은 상황에서 느끼는 공포의 정도 등에 비추어 전체적인 진술의 신빙성에 의하여 그 주장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경우에는 그 증명이 된 것으로 본다(대법원 2008.7.24. 선고 2007두3930 판결). 또한 외국인이 국적국을 떠난 후 거주국에서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는 바람에 ‘박해를 받을 충분한 공포’가 발생한 경우, 난민으로 보호받기 위하여 스스로 박해 원인을 제공하였다고 하여 난민인정을 거부할 수는 없다고 본다(대법원 2008.7.24. 선고 2007두19539 판결).

더 나아가 박해는 바로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한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5대 원인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국가 사이의 무력 충돌, 내전 또는 국가 내부의 폭력 사태는 엄격한 의미에서는 난민협약상의 난민인정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우리 법원도 “국적국 내에서 내전이 발생하여 치안이 불안정하다는 사정은 국적국에서 존재하는 보편적인 위험 상황으로 볼 수 있을 뿐 그 자체만으로 난민법이 정한 난민 사유 즉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집단의 구성원인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한 박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서울행정법원 2017.11.2. 선고 2017구단29323 판결).

일반적으로 인종은 생물학적 관점에서의 신체적 차이에 토대한다는 점에서 국적과 차이가 있다. 종교를 이유로 하는 박해의 주장은 신앙이라는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판단을 요한다는 점에서 난민 심사 실무상 많은 어려움을 야기한다. 대개 종교 교리에 대한 지식 수준이나 신앙생활의 진정성이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활용되곤 하는데, 유엔난민기구(UNHCR)는 〈국제적 보호지침: 종교적 사유에 기반한 난민신청〉(2004)에서 종교에 대한 신청인의 지식이나 교리를 시험해 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거나 유용한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종교에 대한 세부적인 지식이 곧 신앙의 진실성과 관련된 것은 아니라는 점, 해당 종교에 대한 교리나 종교 행위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거의 없거나 또는 전혀 없을지라도 종교로 인한 박해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참고하도록 제안한 바 있다.

정치적 사유로 인한 박해인지를 결정함에 있어서는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견해와 비교하였을 때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인 신분은 개념의 불확정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이라는 사유는 박해의 원인 사유들 가운데 가장 논쟁이 많은 영역이기도 하다.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인 신분이라는 개념이 열려 있는 개념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난민협약 당시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박해 원인이 대두되었을 때 이를 포용하여 난민 보호의 폭을 넓혀주는 긍정적 기능을 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난민 실무에서 특정 사회집단인지가 문제가 되는 대표적 영역이 성(gender), 동성애, 할례 등이다. 우리 법원은 여성 할례는 여성의 신체에 대한 극심한 고통을 수반하는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박해’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2017.12.5. 선고 2016두42913 판결).

 

5. 난민신청자, 난민인정자, 인도적 체류자의 구별

난민법이 난민신청자, 난민인정자, 인도적 체류자를 구분하고 있는 것은 그 각각마다 대한민국이 베풀어야 할 의무로서의 처우가 달라져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난민인정자가 되면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체류 및 경제생활, 가족생활이 가능하게 된다. 예컨대 난민인정자는 허가 없이 취업이 가능하게 되고 가족 결합도 가능하게 되며 ‘사회보장법’이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의 적용을 받게 된다. 반면 인도적 체류자나 난민신청자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약한 수준이다. 물론 이 세 유형 모두에 공통되는 처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강제송환의 금지이다. 난민인정자와 인도적 체류자는 물론 난민신청자도 난민협약 및 ‘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하거나 비인도적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협약’에 따라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로 송환되지 아니한다(법 제3조). 인도적 체류자나 난민인정자에게는 강제송환 금지의 필요성이 어렵지 않게 수긍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난민신청을 한 단계일 뿐인 사람들에게까지 강제송환을 금하여야 할 필요성은 무엇일까? 아마도 일단은 난민신청을 한 이상, 해당 신청이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심의되고 결정될 때까지는 대한민국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절차적 지위의 보장에 바람직할 것이라는 점이 난민신청자에 대한 강제송환 금지의 취지일 것이다. 물론 강제송환 금지가 예외 없이 관철되어야 하는 원칙은 아니다. 난민협약에서는 강제송환 금지 원칙의 예외 사유를 정하고 있는데, 예컨대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현재 체류하고 있는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는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강제송환이 허용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난민법에는 강제송환 금지 예외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과거 20대 국회에서는 강제송환 금지 예외 규정을 신설하는 법 개정안이 제안되기도 하였다.

처우의 차별화는 체류자격의 차별화로도 이어진다. 난민인정자는 원칙적으로 3년의 체류자격이 부여되는 반면, 인도적 체류자에게는 1년의 체류자격이 부여되고 난민신청자에게는 6개월의 체류자격이 부여되어 이들 세 유형 간에는 체류자격의 안정성에도 많은 차이가 나게 된다. 취업 활동의 측면에서도 허가 없이 취업 활동이 가능한 난민인정자와는 달리, 인도적 체류자는 원칙적으로 1년 기간의 체류자격외활동 허가를 받은 후 취업 활동이 가능하고, 난민신청자는 3개월의 체류자격외활동 허가를 받은 후 취업 활동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이처럼 난민인정자는 물론 인도적 체류자나 난민신청자에게 일할 자격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들이 기존 국민의 일자리를 뺏어간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러나 이들 외국인에게 스스로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이들이 스스로의 노동으로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는 의미로서 사회공동체 전체의 관점에서는 사회보장의 수요를 줄이는 방안이기도 하다. 더구나 노동을 통하여 일정한 세금을 낸다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의무를 같이 나누어 진다는 의미를 가지므로 난민 관련자들에게 일할 기회가 부여되는 것을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난민법에서는 제4장에서 난민인정자, 인도적 체류자, 난민신청자의 처우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미약한 단계의 처우를 받는 인도적 체류자에게도 난민인정자에게 보장되는 사회보장, 기초생활보장, 교육의 보장(법 제31조~제33조)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자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제기되고 있으나 재정상의 이유 및 내국인과의 형평성 등의 이유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그간 인도적 체류자에게 건강보험에 가입이 불가능한 체류자격이 부여되고 있어 건강권 보장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2019년 관련 법령이 개정됨으로써 인도적 체류자의 지역건강보험이 가능하게 된 것은 일부 진척이었다고 할 수 있다.

 

6. 진짜 난민 골라내기

일각에서는 난민신청자에게도 일정한 체류자격이 부여되고 엄격한 요건 아래서나마 취업 활동이 가능하게 되다 보니 실제로는 난민과는 거리가 먼 외국인들이 체류자격을 얻거나 더 나아가 경제활동을 할 목적으로 난민신청 제도를 남용하고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이처럼 난민인정 제도를 남용하는 이른바 가짜 난민신청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진짜 난민들에 집중되어야 할 관심과 자원이 희석되는 결과가 되므로 난민제도 남용적 신청을 신속하게 뿌리 뽑을 수 있도록 절차의 모양새가 갖추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위와 같은 우려의 맥락에서 제기되고 있다.

실제 우리 난민법이 마련하고 있는 난민인정 절차를 보면 여러 단계의 불복절차를 마련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대한민국 안에 있는 외국인이 자신을 난민으로 인정해달라는 신청을 한 경우, 이에 대해 일차적으로 소관청이 가부간에 결정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불인정 결정이 내려지게 마련이다. 난민불인정 결정을 받은 신청자는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법 제21조 제1항).

이의신청은 법무부에 설치된 난민위원회에 회부되어 심사되는데(법 제21조 제3항) 법무부 장관은 난민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난민인정 여부를 결정한다(법 제21조 제6항). 난민위원회는 위원장 1명을 포함하여 15명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되며(법 제25조 제2항), 난민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뿐 아니라 변호사, 교수, 그 밖에 난민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구성된다(법 제26조 제1항). 더 나아가 난민법은 공무원 아닌 위원의 공무원 의제(법 제46조의2), 위원의 제척과 회피(법 시행규칙 제12조의 2) 조항을 두어 난민위원회가 공정하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은 최초 난민인정 신청에 대하여 난민불인정 결정을 하는 시점에서 해당 신청인이 난민법상의 난민에는 해당하지 않더라도 인도적 체류허가의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는 인도적 체류허가를 할 수 있다(법 시행령 제2조 제1항 제1호). 또한 이의신청에 대하여 난민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기각결정을 하는 경우에도 인도적 체류허가를 할 수 있다(법 시행령 제2조 제1항 제2호). 이의신청 절차까지는 난민법제에서 근거 규정을 마련하고 있는데, 이의신청 절차에서도 구제받지 못한 외국인들이 추가적으로 밟을 수 있는 절차로는 ‘행정심판법’상 행정심판과 ‘행정소송법’상 행정소송이 남아 있다.

 

7. 절차 간소화 필요성

앞서 난민신청자 개념을 살펴본 바 있는데, 난민법에서는 난민인정 신청에 대한 심사가 진행 중인 사람(법 제2조 제4호 가목)뿐 아니라 난민불인정 결정을 받고 이의신청 제기 기간이 아직 지나지 않은 사람이나 난민불인정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의 기각결정을 받고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의 제기 기간이 지나지 않은 사람(법 제2조 제4호 나목), 난민불인정 결정에 대한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이 진행 중인 사람(법 제2조 제4호 다목)도 난민신청자의 개념에 포섭하고 있다. 난민법에서는 난민인정 등의 결정은 난민인정 신청서를 접수한 날부터 6개월 안에 하도록 원칙을 정하고 있지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다시 6개월의 범위에서 기간을 정하여 연장할 수 있다(법 제18조 제4항).

따라서 난민신청을 한 후 소관청의 결정을 받는 데에만 1년의 기간이 소요될 수 있다. 더구나 난민신청을 한 사람이 난민불인정 결정을 받은 경우 이 불인정 결정을 다투기 위하여 국민권익위원회 산하의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서 소관하는 행정심판을 거치고 더 나아가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3심 단계를 모두 거치는 경우에는 최종적인 법원의 판단이 나오기까지 적어도 수년의 시간이 걸릴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다단계의, 장시간이 소요되는 절차가 오히려 가짜 난민신청자의 관점에서는 강제송환 금지라든지 체류허가라는 유리한 법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인으로 작동할 수 있게 되는 문제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 제주 난민사태 이후 수 개의 난민법 개정안이 제안된 바 있는데, 난민인정 절차의 신속성을 위한 이의신청 특례 신설, 행정소송 제기 기간의 단축, 무사증 외국인의 난민인정 신청 제한 및 이의신청 기간의 단축 등 절차를 신속화하고 간소화하려는 제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8. 부처님께서 보신다면 어떤 가르침을 주실까

엄격한 의미의 난민, 즉 협약상 난민이건 아니면 이른바 협약 외 난민이건 제각각의 고달픈 사유로 본래의 삶의 터전을 떠나 대한민국에서 터 잡고 살아가기를 원하는 외국인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난민 문제를 둘러싼 우리 사회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그런데 논의 과정에서 (엄격한 의미의 협약상) 난민은 이민과는 다른 특성이 있기 때문에 난민과 이민이 하나의 동일한 범주에 속하는 현상으로 파악하는 것은 문제해결을 어렵게 만들 우려가 있다는 점도 간과하여서는 안 된다. 이민자는 교육 기회이건, 일자리이건, 가족관계이건 무엇인가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기회를 능동적으로 찾아서 국경을 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수용국의 관점에서도 모종의 이익이 되는지 여부를 판단할 여지가 수용국에게도 인정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즉 이민자의 수용에는 수용국의 재량이 많이 작용하게 된다.

반면 난민의 경우에는 수용국에 이득이 되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미리 정해 놓은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자들은 수용하기로 하는 국가들 간의 약속이 제도의 기저에 깔려 있다. 즉 난민의 수용은 일차적으로는 국가들 간의 약속에서 유래하는 의무이고 이차적으로는 이러한 국가들 간 약속을 국내법으로 다시 구체화한 결과물인 난민법의 규율로부터 도출되는 국가의 의무이다. 따라서 난민의 요건을 충족하는 사람의 수용에 대해서는 수용국의 재량이 훨씬 더 작아지게 된다. 즉 협약상 난민을 수용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다. 남은 문제는 진정한 난민을 어떻게 하면 신속하게 골라낼 수 있느냐에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협약상 난민에는 해당하지 않더라도 내전 등과 같은 국가의 위기 상황으로 인하여 본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임시적인 보호를 제공하는 수단으로 인도적 체류허가제가 활용되고 있는데, 인도적 체류허가 자체는 난민인정과는 달리 의무로서의 성질이 훨씬 약하기 때문에 인도적 체류자에게 제공되는 처우의 수준도 상대적으로 낮게 제도가 설계되어 있다. 이처럼 제도 자체가 가진 논리적인 구조가 있음에도 난민을 둘러싼 현실의 구호들은 논리와 무관하게 분출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앞서 우리가 제주 예멘 난민을 둘러싸고 겪었던 첨예한 갈등 양상을 부처님께서 보신다면 무어라고 가르침을 주실지 참으로 궁금한 노릇이다. 부처님께서 설파해오신 오묘하고 깊은 진리를 알지 못하는 필자로서는 가늠해볼 수 없어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처럼 불교의 교리에 거의 까막눈인 필자도 불교적 아름다움을 형상화한 조상들의 예술작품에 깊은 감동을 받았던 경험이 있다. 국보 78호 금동반가상과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이 그것인데 그 조형적 면모도 사무치게 아름답거니와 더욱 마음 깊이 남는 것은 그러한 형상화가 전하고자 하는 부처님의 이야기이다. 일설에 따르면 반가사유상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기 전 태자 싯다르타 시절의 수하관경(樹下觀耕) 일화를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이 일화에서 싯다르타는 우연히 농부가 농사를 짓는 모습을 보다가 소의 쟁기질에 갈려 나와 꿈틀거리는 벌레와 그 벌레를 쪼아먹는 새들의 모습을 보며 삶의 고뇌와 인연에 대해 나무 그늘 아래서 깊은 사색에 잠기는데, 반가사유상은 이러한 태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널리 알려진 이 이야기를 난민이라는 주제에 관해서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개별 생물의 아픔에 공감하고 불쌍히 여기는 자애로운 마음은 낯선 외국에서 머물 곳을 호소하는 이방인의 모습에 공감하고 보호해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 이방인의 존재를 불편하게 느끼고 우려하는 일부 국민이 있다면 그들의 마음도 반인도주의적이라거나 반지성주의라거나 하는 등의 폄훼적 용어로 평가절하하면서 무시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더구나 현재 우리가 몸담은 국가라는 공동체의 운영 시스템이 직접이건 간접이건 다수의 구성원이 원하는 바에 따라 작동되도록 그 구조가 짜여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신이 살고 싶은 공동체의 모습이 어떠해야 한다는 점에 관한 다수의 의사는 마땅히 경청 되어야 한다. 결국 국경을 넘어온 외국인들과 부대끼면서 함께 삶을 꾸려가는 것도 시민의 몫이기 때문이다.

벌레와 새가 공존하는 것이 우주의 모습이듯 난민과 국민은 서로 배척해야 하는 관계라기보다는 공존하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 난민을 찬성하는 입장도 난민을 반대하는 입장도 증오와 배척의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기보다는 포용과 자비의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며 합리적인 제도 설계의 길을 모색해나가는 동반자로서 공존하기를 기대해 본다. ■

 

이현수 leeiina@hanmail.net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사법학과, 동 대학원 법학과 졸업(행정학 박사). 이민법, 일반행정법, 부동산공법, 지방자치법을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난민신청자 체류규정의 공법적 쟁점과 개선방안〉 〈외국인의 입국절차와 입국금지결정의 법적 성질〉 〈프랑스 공법상 외국인의 지위〉 등과 저서로 《행정소송상 예방적 구제》 《이민법》(공저) 등이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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