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교사상에 대한 주체적 접근 ‐

‘한국의 불교사상’에 대한 중도적 해법

한국에서 불교학, 선학, 역사학 등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인문학자들은 자신들의 학문 세계를 주체화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모든 인문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학자들의 공통된 숙명이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한국인이면서 다시 ‘한국’을 주체화시키는 일이란 가장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작업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을 타자화라는 방법을 통해 거리 두기를 해야 하고 그 거리 두기는 다시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라는 인문적 성찰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학, 국학 등을 연구한다는 것은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들거나 창조하는 것이라기보다 사상의 재발견과 주체적 해석을 통해 객관화를 이루는 작업이 요구된다. 물론 이러한 결과가 합리성을 띠기 위해서는 적절한 학문적 방법과 사상적 접근이 동원되어야 한다. 

동국대 고영섭 교수✽의 《한국의 불교사상》은 한국학의 관점에서 불교사상을 다루지만 앞에서 말한 거리두기와 인문적 성찰을 통한 주체적 객관화를 통해 한국의 불교사상을 재해석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한국의 불교사상에서 등한시했던 지성과 실천의 중도적 접근을 전면적으로 부각시킨 저술로서 이 책은 한국의 불교사상이 가진 독특성과 개성을 불교와 동아시아의 사상적 · 역사적 맥락 안에서 보여준다. 

부제로 제시된 ‘실천적 지성인 혹은 실천가의 사상’은 지성과 실천의 중도적 통합을 보여주면서 다시 그것을 지성인과 실천가라는 구체적 주체를 통해 부활시켰다는 측면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 저서이다.

 

불교교학의 방법론: 전개와 합일

《한국의 불교사상》은 우리나라의 불교사상에 대한 전면적인 연구의 결과물인 16편의 논문을 크게 4부로 구성해 싣고 있다. 4부의 구성은 제1부에 실린 〈한국불교사 교재의 구성 목차와 수록 내용〉을 제외하고는 신라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시대적 순서에 의해 배열되어 한국의 불교사상을 역사적 흐름 속에서 살펴볼 수 있게 하였다. 그 구성에 담긴 연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부에는 〈한국불학사 교재의 구성 목차와 수록 내용〉 〈신라 원측(圓測) 유식과 당대 규기(窺基) 유식의 동처와 부동처〉 〈분황원효의 기신사상(起信思想)〉 〈부석의상의 화엄은 성기사상이 아닌가?〉가 실려 있다.

제2부에는 〈신라 중대의 선법 전래와 나말 려초의 구산선문 형성〉 〈보조지눌 사상의 고유성과 독특성〉 〈한국 간화선의 정통성 문제〉 〈일연 《삼국유사》 〈의해〉 편의 중심 내용과 주요 특징〉이 실려 있다.

제3부에는 〈청허휴정(淸虛 休靜)의 선교(禪敎) 이해〉 〈벽암각성의 생애와 사상〉 〈경허성우의 실천성과 지성성〉 〈용성진종의 살림살이와 사고방식〉이 실려 있다.

제4부에는 〈영호당 박한영과 상현거사 이능화의 학문태도와 연구방법〉 〈한암중원의 조계종사 인식과 조계종의 회복〉 〈만해 한용운의 일본 체류 체험과 근대 유럽 인식의 지형〉 〈퇴옹성철의 실천성과 지성성〉이 실려 있다.

저자는 연구사학, 불교학, 선학, 역사학 등의 다양한 접근 방식을 통해 한국 불교사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한 인물과 사상을 중심으로 그들의 불교사상을 주체적 관점에서 풀어냈다. 전체 논문 가운데 9편 정도가 선학과 관련된 주제인데 이것은 한국의 불교사상에서 한국의 선불교가 가진 실천성과 역사성에 주목한 결과이다. 결국 한국의 불교사상은 그 자체가 인도의 것도 중국의 것도 아닌 한국의 사회와 역사적 상황에서 탄생한 결과물로서 우리의 사상 즉 국학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한국의 불교사상을 인도나 중국의 불교사상으로 환원시켜 해석하거나 원리주의적 관점에서 불교사상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주체적 관점에서 한국의 불교사상을 확립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위의 연구 내용 가운데 제1부의 〈한국불교사 교재의 구성 목차와 수록 내용〉은 그간의 한국 불교사상 관련 저술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연구의 주제, 방법 등을 개괄적으로 소개하고 비평하는 동시에 종합하였는데, 이것은 저자가 《한국의 불교사상》이라는 제목 아래 한국의 불교사상을 어떻게 논의해나갈 것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서론의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다음과 같은 기술은 저자의 불교 교학에 대한 방법론적 서술을 가늠해볼 수 있는 일단이다.

한국 고중세 불교교학에 대한 이들 네 사람의 접근 방법은 다르다. 김동화의 교학사, 박종홍의 철학사, 조명기의 지성, 고익진의 사상적 방법론에 따른 기술은 각기 다른 결과로 나타났다. 이들의 개성들은 저마다의 방법론에 의해 구명되었고 그러한 방법론에 의해 해석되었다. 하지만 한국불교철학 또는 한국불교사상 혹은 한국불학사를 기술해 독자들과 널리 소통하겠다는 생각은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26쪽)

고영섭 교수는 기존 한국 불교사상을 연구했던 김동화, 박종홍, 조명기, 고익진의 방법론적 특징인 교학, 철학, 지성, 사상에 주목해 그것을 《한국의 불교사상》에서 녹여내고 자신의 언어로 표현했다. 특히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서술 방법이 ‘전개와 합일’의 중도적 글쓰기를 지향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데 이것은 박종홍이 원효의 진리 탐구 방법으로 인식한 ‘개합의 논리’와도 부합되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의 글은 주제를 풀어낼 때 다양한 방법론을 적용하여 전개하고 그것을 불교사상의 핵심 키워드인 중도, 사상적 주체성, 시대정신 등으로 통섭하고 종합했다.

 

한국 불교사상의 중도철학과 사상의 주체성

이 책을 읽다 보면 연구 주제가 다른 글이라고 하여도 몇 가지 핵심 키워드 또는 핵심 사상이 논지 전개의 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다. 필자가 주목한 것은 중도연기의 사상과 사상의 주체성이다. 

저자는 중도연기의 사상을 불교사상의 핵심으로 보고 있으며,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 역시 중도적 방법론에 의거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한국 불교사상의 핵심 내용을 지성과 실천의 중도적 통섭 혹은 종교적 삶과 철학적 앎의 시대정신으로 풀어내고 있다. 예를 들어 저자는 〈경허성우의 실천성과 지성성〉을 논하며 그의 사상적 핵심을 다음과 같이 묘술했다. 

경허는 탈실천적 실천의 삶과 반지성적 지성의 앎을 보여주었다. 경허는 ‘차별하는 생각이 아직 다하지 못하였든[未盡] 차별하는 생각이 이미 다하였든[已盡] 둘이 없는 것이 아니다’[未是無二]며 미이중도[未已中道]를 역설하였다. 이것은 차별을 떠났든 차별을 떠나지 않았든 둘이 없는 것이 아니므로 이 둘이라는 생각을 넘어설 때 비로소 무이(無二)의 관계에 있게 되는 것이다. 중도와 연기도 이 같은 무이(無二)의 관계에 있다.(346-347쪽)

경허의 중도를 “탈실천적 실천의 삶과 반지성적 지성의 앎”으로 해석한 것은 다음과 같은 그의 중도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붓다는 ‘중도’를 깨치고[覺] ‘연기’를 발견해[見] 인류사에서 가장 매력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는 중도를 상호존중행의 자비로 펼쳐내고, 연기를 상호의존성의 지혜로 거둬내어 보살적 인간과 이타적 인간의 삶을 제시해 주었다.(345쪽)

중도를 ‘붓다의 자비’로 연기를 ‘붓다의 지혜’로 해석한 저자의 안목은 한국의 불교사상 또는 한국의 불교사상가들에 나타난 중도적 개성을 지성의 주체성과 실천의 현장성으로 해석하여 한국의 불교사상을 드러냈다. 예를 들어 그는 성철의 실천성과 지성성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이 실천성과 지성성의 만남은 실천적 지성으로 이어지며 실천적 지성은 현장성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다수가 살아가는 현실도 현장이지만 소수가 살아가는 산속도 현장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실천성을 다수의 현장에만 국한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불교 지성을 논할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성철은 이 시대를 살면서 전통의 복원과 현대의 소통을 나름대로 모색하였다.(534-535쪽)

저자가 중도를 자비로, 연기를 지혜로 해석하고 다시 이들의 관계를 불이(不二)로 해석한 것은 한국의 불교사상을 불교적으로 해석하는 데 멈추지 않고 다시 그것을 시대정신과 역사인식 속에서 재발견, 재해석하고자 한 것이다. 

《한국의 불교사상》에 나온 매 편의 연구 논문들 속에는 저자의 중도관과 해석학적 접근이 담겨 있다. 이러한 점에 유념하면서 이 책을 읽으면 한국의 불교사상과 불교사상가들이 고민했던 인문적 현재성과 교감할 수 있고, 현재의 한국 불교사상에 대해서도 새롭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한국의 불교사상과 관련된 지속적인 작업을 기대한다. ■

 

오용석barabogi1014@naver.com

동국대 선학과, 동 대학원 선학과 졸업. 중국 남경대학에서 《대혜종고 간화선 “의정”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중국철학).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박사수료(명상학 전공). 조계종교육원 불학연구소 상임연구원, 원광대 HK 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마음공부 열 걸음》 《명상, 깨어있는 만큼의 세계》 《선명상과 마음공부》 등이 있으며, 공저서로 《현대사회의 마음병과 치유》 등과 역서로 《깨달음의 실천》 등이 있다. 현재 원광대 마음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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