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국은 한국사회에서 그다지 인기가 없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 불교학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중국불교의 연구자도 인도불교와 한국불교의 연구자에 비교하면 적은 편에 속하고, 게다가 중국 현대불교의 동향에 대해서는 한국 불교학계에서 그렇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한국불교와 중국불교의 관계

그러나 한국불교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중국불교의 영향이 매우 컸다. 물론 한국불교의 대표적 인물 원효(617~686)는 중국 유학을 중도에 포기하고 자신의 사상을 전개하였고, 이 점이 현재 한국불교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그리고 원효의 《금강삼매경》에 대한 주석서가 《금강삼매경소》가 아닌 《금강삼매경론》이라는 제명으로 중국을 포함한 당시 불교계에서 인정받은 것은 한국불교의 위상을 올린 큰 사건이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동아시아불교의 중심이 중국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만 《금강삼매경론》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되고, 그것을 중국에서 수용해 줄 때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원효와 함께 중국 유학을 떠났던 의상(625~702)은 원효와 달리 계속 유학의 길을 추진했고, 지엄(600~668) 문하에서 공부를 마치고 신라에서 화엄종을 세웠다. 동문수학했던 법장(643~712)은 귀국하는 신라 승려 승전을 통해 자신의 저술과 편지글을 보냈는데, 그 편지글에는 자신의 저술을 읽고 일종의 감수  역할을 해달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또한 의상의 식견이 뛰어남을 보여준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한국불교가 중국 불교계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고려시대로 들어오면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은 중국에 1년 2개월 동안 유학을 갔는데, 그때 송나라의 뛰어난 승려를 모두 만나보고 가르침을 받고, 귀중한 불교 저술을 가지고 고려로 돌아왔다. 또 의천이 중국 송나라 유학을 통해 자신의 식견을 넓혔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의천은 원효의 재발견을 통해 중국의 천태종과는 구분되는 독자적 색채를 가진 천태종을 세울 수 있기는 하였다. 그렇지만 의천의 활동에도 중국불교의 영향은 상당히 많이 남아 있었다.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은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를 말년에 저술하였는데, 이는 종밀(780~841)의 저술 《법집별행록》을 요약해서 간추리고 거기에 자신의 주석을 붙여서, 종밀의 시각을 넘어선 새로운 내용을 선보인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저술도 중국 종밀의 관점 위에 자신의 새로운 관점을 추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는 조선시대에는 강원 교재로 채택되었고, 조선 후기 불교계가 어느 정도 활성화되면서 여기에 주석서가 등장하였다.

이는 한국불교의 전통이 되었다는 것이고, 달리 보자면 중국불교의 영향 아래 한국불교의 전통이 형성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불교의 전통을 말할 때, 중국불교의 영향을 따로 떼어놓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대륙의 불교 인식 변화

중국에서는 1950년대 후반부터, 특히 문화대혁명(1966~1976) 기간에 종교와 신앙의 자유가 억압을 당하였고, 그에 따라 불교계의 여러 지도적 인물과 일반 신도까지도 박해를 당하였다. 1978년 11차 삼중전회(三中全會)가 열리고 나서 비로소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었고, 파괴되었던 사원도 점차로 복구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 불교학의 연구 동향에서도 나타난다. 중국 불교학계는 불교를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는데, 이러한 관점이 불교의 사상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려는 것으로 전환하였다.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 곧 경제적 영역이 그 사회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에서 불교사원을 지주계급의 하나라고 파악했고, 불교의 이념은 사람들을 봉건적 규범에 빠지도록 하였다고 지적하였다. 또 ‘변증법적 유물론’은 물질만이 실재한다는 유물론에다 ‘헤겔의 변증법’의 요소를 결합한 것인데, 이러한 관점에서 중국불교를 유심주의(唯心主義)라고 파악하기도 하였다. 여기에 추가해서 중국불교의 사상 속에서 ‘변증법적 요소’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변화가 일어난 것은, 1978년에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어 ‘변증법적 유물론’이나 ‘사적 유물론’의 관점을 빌리지 않고, 불교의 사상에 직접 뛰어들어 연구하면서부터이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에 번역된 라이용하이(賴永海)의 《중국불교문화론》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중국의 불교와 불교학에 거는 기대

중국의 불교계는 문화대혁명 때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현재는 상당 부분 회복 추세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중국 불교계의 동향을 소개하는 글을 보면, 중국의 종교 현황에서 불교 신자가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도시마다 불교 거사림 조직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게다가 대도시와 중소도시의 일부 거사림은 외관과 규모 면에서 사찰에 뒤지지 않고, 사찰보다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 북경의 경우에는 직장 내 불교 공부 소그룹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승려교육에서 경쟁 시스템도 도입하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2008년부터 도입된 승려 강경대회(講經大會)이다. ‘강경대회’라고 이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출가자의 법문 경연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중국 불교학계는 양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연구성과가 축적되고 있다고 하며, 한국에서도 남경대학 중심의 연구자 저술과 중국인민대학의 팡리티엔(方立天)의 저술 등이 번역되었다. 이들의 시각은 거시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점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국의 불교학계가 일본 불교학계의 영향을 받아서 문헌 중심으로 작은 주제에 천착하는 경향이 강한 편인데, 중국불교의 이런 흐름은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들 연구에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하면 서로 교류하면서 부족한 점은 보완하면 될 것이고, 그러할 때 중국과 한국 불교학계가 서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기대한다.

중국 불교학계는 관심 사항에서도 일본 불교학계와 다른 점이 있다. 일본 불교학계에서는 ‘의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그에 비해 중국 불교학계에서는 ‘의례’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많다. 중국 천태사상을 연구할 경우, 일본학계에서는 ‘의례’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 편이지만, 중국 불교학계에서는 ‘의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지면을 할애해서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 한국 불교학계에서도 ‘의례’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고, 관련 학회가 점차 생겨나는 상황이다. 이러한 때 중국 불교학계에서 ‘의례’를 앞서 연구한 점은 한국 불교학계에서 ‘의례’를 연구할 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구 14억이 넘는 중국에서 불교의 바람이 분다는 것은 한국 불교계에 상당히 좋은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의 황사가 봄철에는 한국에도 영향을 주듯이, 중국의 거대한 불교의 훈풍이 한국불교에도 불어오기를 바란다.

 

2022년 12월

이병욱(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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