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여성관 바로잡은 뛰어난 저술

《비구니 승가 설립의 역사》운주사, 2022년 6월 360쪽
《비구니 승가 설립의 역사》운주사, 2022년 6월 360쪽

필자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사연은 개인적으로 동국대에서 여성학을 강의했던 이력과, 그간 ‘국제참여불교 네트워크(www.inebnetwork.org)’에 참여하며 만난 여성 출가자들이 정규의 출가 절차를 갖지 못하는 경우도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우리는 쉽게 비구니 스님을 만날 수 있고, 심지어 ‘대한불교 보문종’이라는 비구니 스님들만의 종단도 있는 데 비해서, 실지로 남방불교권에서 비구니 출가가 공식화되지 않음을 들었을 때는 매우 놀라웠다. 그러므로 한국의 비구니 승가 전통에 대한 해외 불자의 관심도 클 수밖에 없는데, 마침 올해 한마음선원에서 ‘세계 비구니 승가 현재와 미래’라는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들었던 즈음에 아날라요 스님이 저술하고 김철✽  교수가 번역한 이 책의 출간도 알게 되었다.  

저자 아날라요 스님은 1962년 독일에서 태어나서 1995년 스리랑카에서 비구계를 받았고 2000년에는 스리랑카의 페라데니야(Peradeniya)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독일 함부르크대학 누마타(Numata) 불교연구소 교수직을 거쳐서, 대만의 아함연구회(Āgama Research Group, 法鼓文理學院) 및 미국의 바레불교연구센터(Barre Center for Buddhist studies)의 교수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그는 초기불교 문헌의 광범위한 비교연구로 유명하고 다수의 저작이 있는데, 명상 수행 관련으로 몇 종의 번역본이 국내에서 이미 출간된 바 있다. 특히 초기불교의 여성 문제와 비구니 승가 연구에 심혈을 기울인 결실의 하나가 여기 소개하는 책이다. 

원서의 탄생지인 함부르크대학교는 아시아 지역의 종교적 양상에 연구 역량을 집중해온 전통이 100년을 넘었고, 특히 누마타불교연구소(Numata Center for Buddhist Studies)는 유럽의 선구적 학술기관의 자부심으로 《함부르크 불교연구》 총서를 발간하여 왔다. 해당 총서 중 6번째 저술로서, 저자는 한문 · 빨리어 · 산스끄리뜨어 · 티베트어로 된 고전문헌들을 분석하고 비교하는 방법으로 비구니 승가의 설립역사를 연구했다. 그의 연구방법은 “고전문헌들 속에서 상충하는 특정 스토리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어떻게 발전하였는지, 폭넓은 원근법적 관점을 반영한다”고, 마이클 짐머만(Michael E. Zimmerman, 미국 콜로라도대학)과 스테펜 돌(Steffen Döll, 함부르크대학)이 책의 서문에 적고 있다.

저자는 이 주제를 다루기에 앞서 《보살사상의 기원(The Genesis of the Boddhisattva Ideal)》 및 《아비달마의 여명(The Dawn of Abhidarma)》을 저술함으로써 붓다[佛]와 법[法]을 연구하였고, 그 연장선에서 승가[僧]에 대한 탐구의 일환으로 본서를 저술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 시작은 2007년 함부르크대학에서 열린 ‘승가에서의 여성 역할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발표논문을 준비한 것이었다. 계속해서 같은 주제로 15편 이상의 저술을 발표하는 가운데, 무엇보다도 다양한 전승(傳承) 즉 빨리어본 · 한역본 · 범어본 · 티베트어본 등 고전문헌을 대조할 필요성이 매우 중요시되었음을 서론에 적고 있다. 이 책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연구한 것이다.

이 책은 서론 · 본론(6장) · 결론으로 구성되었으며, 서술하는 중간에 관련되는 유적지 사진도 친절하게 소개하였고, 맨 뒤에는 참조된 경률문(經律文)을 첨부하였으므로, 역자도 그와 같은 체제로 옮기고 있다. 제1장 ‘《난다까의 교계경》의 마하빠자빠띠 고타미’라는 제목의 글에서 저자는 빨리어[상좌부 계통] 경전과 그에 상응하는 한역본 · 범어본 · 티베트어본 등의 경전이 같은 사건을 어떻게 미묘하게 달리 기술하는지, 무대의 장면들을 묘사하듯이 독자에게 설명한다. 문헌을 비교 분석하는 전문가가 아니라면 무심히 지나쳤을 법한 차이들을 해석해내기 때문에, 그에 따라 읽어가는 재미가 새롭고도 쏠쏠하다. 요컨대 《난다까의 교계경》에서 부처님의 행동방식에 대한 묘사는 여타의 경전들과 비교할 때 서로 큰 차이를 보이는데, 그러한 비일관성(非一貫性)은, 기존의 승가가 비구니들에게 거리를 두고 비구니의 능력을 최소화하려는 서술과 마찬가지로, 후대에 진행된 일들의 결과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제2장은 부처님께 비구니 승가 수립을 간청하는 ‘마하빠자빠띠의 탄원’이다. 저자는 일곱 가지 전승의 경률문을 모두 인용하면서, 최초의 청원―부처님의 거절― 마하빠자빠띠의 반응을 차례로 설명한다. 부처님은 비구니 출가 청원을 거절하면서도 그 대안으로 삭발하고 가사를 입되, 자기 집의 안전한 환경에서 수행하도록 허가했다는 기록을 소개하고, 또 다른 전승에서는 그런 허가를 기록하지 않았어도 실제로 그처럼 삭발하고 가사를 입은 일단의 비구니들이 기록된 점을 주목하게 한다. 부처님의 그런 제안과 그 배경이 비구니 승가 설립 이야기에서 기본적인 요소였으리라고 저자는 추정한다.

제3장 ‘아난다의 개입’에서 역시 저자는 여러 경문을 대조하는 방식으로써, 특히 여성의 성불 가능성을 인증하는 기록들을 해설하고 있다. 거기서 더 흥미로운 대목은, “초기불교 경전에서는 무조건 여자를 마라의 덫[순진한 남자들을 성적으로 유혹하는]으로 여기지 않음이 분명해진다. 그 대신 오히려 성적 유혹과 성적 공격을 상징하는 존재는 바로 남성인 마라다. 비구니들은 저마다 마라의 정체를 알고 유혹을 물리치지만, 비구들은 마라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그 처리를 위해서 부처님의 개입을 필요로 하는 존재로 기록되어 있다”라고 밝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편으로 여성을 비구 수행의 장애물로 지독하게 묘사하는 경문들은 대체 어디서 어떻게 구성되어 온 것인가.

제4장 ‘붓다의 허가’에서 드디어 부처님이 비구니 출가를 허락하는 조건으로 제시한 팔중법(八重法) · 팔경법(八敬法)을 자세히 소개한다. 애초에 비구니를 보호하려던 규정들이 나중에는 가부장적 전통으로 돌아가서, 비구의 손에 비구니를 종속시키고 통제하는 규정으로 변질되고 말았음을 지적한다. 특히 100세 비구니라도 갓 수계한 비구에게 예를 갖춰야 하고, 비구니는 결코 비구의 허물을 지적하면 안 된다는 규정을 비롯해 여인오장(女人五障)으로 확대된 전승들을 제5장에서 다룬다. 경전들은 비구니가 팔중법을 기쁘게 수용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그것은 고대 인도에서 취약한 여성들을 보호할 필요성이 강조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지만, 그런 부담이 차츰 비구니 승가의 설립을 부정적으로 보게 하고 결국에는 비구니라는 존재 자체가 기존 승가에 해로운 요소라는 표현들이 널리 흡수되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마지막 제6장에서는 비구니 승가의 탄생이 불교교단의 쇠퇴를 초래한다는 관념으로 확대된 배경을 분석한다. 경전에 쓰인 것처럼 비구니 승가로 말미암아 부처님 정법(正法)이 오백 년 감소한다면, “부처님은 왜 그런 해로운 일에 발을 디디셨을까?” 그리고 한편으로 훌륭한 비구니들의 기록도 여러 경전에 기록되어 있는데,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 부처님 입멸 후 제1차 결집을 할 때, 부처님의 시자(侍者)였던 아난다와 해당 결집 책임자인 마하가섭 사이 긴장의 불똥이 비구니 승가에 튀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평소 마하가섭은 금욕주의자며 바라문적 선입견을 가졌기 때문에, 부처님께 비구니 출가를 간청한 아난다를 문책 · 비난하였으리라는 것이다. 또한 부처님이 세상을 떠난 뒤 교단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일반적 두려움과, 전통 계승의 책임감 때문에 애꿎은 비구니 승가에 화살을 돌린 것이라고 추정하는 데에도 공감이 간다.

문헌분석으로 접근한 저술이라서 전거(典據)가 풍부하기 때문에 모쪼록 일독을 권하고 싶다. 특히 번역자 김철 교수는 국문학자이며 동시에 제따와나 선원(www.jetavana.net)의 오랜 수행자로서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으신 것 같다. 마침 번역작업을 통해서 저자와 역자로 가까워진 덕분에, 저자가 주재하는 온라인 수행과정(www.agamaresearch.dila.edu.tw)에도 정기적으로 참여하신다고 들었다. 기왕에 저자와 역자와 독자들이 서로 좋은 인연 지어가기를 기원한다. ■

 

이혜숙
동국대 불교대학원 불교학과 철학박사. 동국대 불교대학원 겸임교수, 금강대 초빙교수, 한국사회복지사협회 국제교류위원 등 역임. 저서로 《종교사회복지》(편저) 《아시아의 종교분쟁과 평화운동》(공저), 역서로 《불교사회복지학》 등 다수. 본지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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