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기독교의 만남, 그리고 《도마복음》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

《살아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김영사, 2002년 4월, 560쪽
《살아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김영사, 2002년 4월, 560쪽

아널드 토인비(Arnold Toynbee, 1889~1975)는 불교의 서양 전래를 20세기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언급했다. 서구 사회에 미친 불교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이 현대인들에게 흥미 못지않게 큰 당혹감을 불러일으킨 것만큼은 분명하다. 신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는 기독교와 신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 사이의 거리는 쉽사리 좁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한 조우(遭遇) 이상의 교류가 두 종교에 가능할까? 불교와 기독교의 교세가 엇비슷한 우리 사회에서 이 질문은 지적 호기심의 차원을 넘어선다. 이런 상황에서 이해의 돌파구를 제시하는 책이 등장했다. 《예수는 없다》로 유명한 원로 종교학자 오강남✽ 교수가 새롭게 《도마복음》을 풀이한 《살아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이다. 이 책은 2009년에 선보였던 《또 다른 예수》의 증보판으로, 20세기 최대의 고고학적 발견이라 일컬어지는 《도마복음》의 주해서이다. 

1945년 12월 이집트 북부 나그함마디에서 한 양치기 소년이 항아리에 담긴 열세 뭉치의 파피루스를 발견한다. 그런데 52종에 달하는 파피루스 문서에는 오늘날 성경에는 없는 예수의 잃어버린 가르침이 포함되어 있었다. 기독교의 패러다임을 뿌리째 흔든 《도마복음》이 바로 그것이다. 복음서의 저자로 추정되는 ‘도마’는 초기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예수의 쌍둥이 형제로 불리던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도마복음》이 뜻하지 않게 발견됨으로써,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기독교의 숨겨진 모습이 드디어 우리에게 드러나게 되었다.

 

‘깨달음’과 ‘하느님의 나라’

무려 1,600여 년에 가깝게 묻혀 있던 이 문서는 긴 시간만큼이나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다. ‘천국’이 사후 세계가 아닌 인간의 내면에 자리하며, 우리 모두가 ‘깨달음(gnosis)’의 사건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도마복음》에 담긴 114개의 ‘예수 어록’은 믿음을 넘어선 깨달음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 영혼이 궁극적인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도마복음》의 1절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이 말씀의 뜻을 올바르게 풀이하는 사람은 결코 죽음을 맛보지 아니할 것”이라고. 예수가 전한 비밀의 말씀을 깊게 이해하는 사람은 육체적 죽음을 초월한 존재의 불멸성을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이 앎이 바로 ‘영지(靈智, gnosis)’라고 불리는 비범한 영적인 통찰이다. 《도마복음》은 체험을 통해 얻게 되는 직관적인 앎의 내용을 ‘아버지의 나라’로 표현한다. “아버지의 나라는 온 세상에 두루 퍼져 있는데 사람들이 보지 않습니다.”(113절) 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예수가 내재하고 있다고 역설한다. “통나무를 쪼개십시오, 거기에 내가 있습니다. 돌을 드십시오, 거기서 나를 볼 것입니다.”(77절)

하느님의 나라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관건은 하느님 나라가 실제로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알아차리는가’에 달려 있다. 이처럼 깨달음을 강조하는 《도마복음》의 가르침은 우리가 이미 붓다이지만 이 사실을 깨치지 못할 따름이라는 선불교의 일갈(一喝)을 연상시킨다.

‘믿음을 넘어 깨달음을 전하신 예수를 만나다’라는 책의 부제는 《도마복음》의 핵심을 잘 요약한다. 그래서인지 《도마복음》은 우리에게 익숙한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지 않는다. 즉, 공관복음(共觀福音)이 주로 다루는 예언, 기적, 재림, 종말, 최후의 심판 등이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예수가 직접 전했다는 ‘영지’가 초점이다. 

 

‘비밀’스러운 가르침

심층적인 가르침은 여러모로 비밀스럽다. 《도마복음》은 조심스럽게 전승된 말씀으로 이단 논쟁과 탄압을 피해 숨겨졌던 ‘영지주의(gnosticism)’ 교파의 문헌으로 추정된다. 믿음이 아닌 개인의 내면에서 신성을 깨닫는 사건을 신앙의 최종 목적으로 제시한 ‘비전(祕典)’에 가깝다. 《도마복음》은 첫 구절에서부터 이를 명확하게 밝힌다. “이것은 살아 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디무도 유다 도마가 받아 적은 비밀의 말씀들입니다.” 《도마복음》이 예수가 직접 전한 말씀이자, 비밀스럽게 전승된 가르침이라는 의미이다.

오강남 교수는 이 구절을 압축적으로 요약해, 주해서의 제목을 《살아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으로 지었다. 그런데 제목의 ‘살아계신’이라는 단어는 기묘하게도 ‘예수’와 ‘말씀’을 모두를 수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밀의 말씀’은 우리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살아 있다’. 또 말씀을 직접 전해 준 ‘예수’는 비록 지금 우리 곁에 없지만, 비밀의 말씀을 통해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비밀’ 역시 중의적이다. 말씀 자체가 오랫동안 숨겨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의미 역시 쉽사리 이해될 수 없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도마복음》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입으로부터 마시는 사람은 나와 같이 될 것이고, 나도 그 사람이 되어, 감추어진 것들이 그에게 드러날 것입니다’”(108절).예수의 말씀을 듣고, 거기에 담긴 ‘감추어진 것’을 알아차리는 이들은, 곧 예수처럼 불멸하는 존재로 변모하리라는 선언이다.

《도마복음》에 의하면 우리는 육체적인 존재 이상이다. 우리에게 내재한 불멸성을 예수가 직접 전한 말씀을 궁구함으로써 직접 알아차리면, 우리는 곧 예수와 같은 존재로 변모한다. 이처럼 ‘비밀’이 심오한 통찰로 변화하는 일은 표층의 이면에 존재하는 심층적 의미의 차원을 발견하는 해석의 노력에 의해서 가능하다. 하지만 《도마복음》은 그 길이 쉽지 않다는 점 역시 분명하게 알려준다. “우물 주위에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물 안에는 아무도 없습니다.”(74절)

 

《도마복음》과 새로운 종교성

현대사회에서 종교는 선택의 대상이 되었다. 또 현대는 누구나 직접 자기 삶의 의미를 발견해 이를 구현하려는 시대이기도 하다. 인간의 종교성 역시 제도화된 전통 속에서만 갇혀 있기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이 존재의 영적인 의미를 직접 확인하려 시도하는 일은 자연스럽다. 그리고 탐구의 최종 목적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기 정체성의 확인이다. 

《도마복음》은 이 사실을 간명하게 표현한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도 자기를 모르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67절) 즉, 예수의 비밀 말씀이 권고하는 영적 여정의 종착지는 자신이 참으로 누구인지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그러니 《도마복음》이 다름 아닌 20세기에 발굴되었다는 사실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자유로운 탐구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일이 시대정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이 책은 오늘 우리에게 필독서이다. 

《도마복음》 주해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지난(至難)한 물음을 원로 종교학자가 오랫동안 탐구하고 사색한 열매이다. 책의 골간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도마복음》의 모든 구절과 함께 꼼꼼한 풀이가 제시된다. 오강남 교수는 동서양 종교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시공을 넘나드는 통찰을 마음껏 펼쳐낸다. 책의 변화 역시 적지 않다. 독자의 이해를 돕는 자료와 설명은 물론 인용문, 부록 등이 대폭 추가되었다. 또 구절마다 영어 문장을 병기해 그 의미를 더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책의 말미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종교 사상가인 함석헌 선생의 신비주의적 통찰을 다룬 글과 ‘공관복음에 나타난 천국의 비밀’을 덧붙였다. 오강남 교수는 피할 수 없는 난문(難問)에 직면하려는 이들에게 격려와 함께 소중한 지혜를 친절하게 제공하고 있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궁극적인 물음에 대해 《도마복음》은 우리에게 익숙해진 기독교와는 사뭇 다른 길을 제시한다. 놀랍게도 그 길은 불교와 매우 비슷해 보인다. 특히나 ‘우물’ 밖에 머물지 말고, 우물의 심연으로 뛰어들어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을 직접 발견하라고 권고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

 

성해영
서울대 외교학과, 동 대학원 종교학과 졸업(종교학 석사). 미국 라이스(Rice)대학 박사(종교학). 세부 전공은 종교심리학, 신비주의이며 서울대 인문연구원 교수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수운 최제우의 종교체험과 신비주의》 공저서로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문명의 교류와 충돌: 문명사의 열여섯 장면》 등과 역서로 《문명 속의 불만》 등 다수가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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