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에 수행을 접목한 아비담마 권위자

흔히 ‘초기불교’ 혹은 ‘남방불교’ ‘상좌부’ 등으로 불리는 테라와다(Theravāda) 불교전통은 지역적으로는 남아시아 전역에 분포된 불교전통을 지칭한다. 이들의 대표적인 언어는 빨리(Pāli)라 불리는 성전 언어체계이며, 경-율-논을 포함한 삼장(三藏)은 물론 이를 근본 텍스트로 삼은 방대한 주석서와 해석을 담은 논서들도 보유하고 있다. 삼장은 빨리 언어체계로 전승되고 있는 반면, 주석서와 논서들은 빨리뿐만 아니라 지역 언어들로도 제작 · 전승되고 있다. 이 불교전통이 지닌 기본적인 세계관은 삼장을 통해 전해지고 있지만, 사실 여타의 다른 불교전통들과 테라와다를 구분해주는 그들만의 고유한 정체성은 주석서와 논서에 더욱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예컨대, 우리는 연기법, 사성제, 오온, 무아와 같은 용어들에는 익숙하다. 그러나 세계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법칙(pañca-niyāma)―계절(utu), 씨앗(bīja), 행위(kamma), 마음(citta), 법(dhamma)―에 대해서는 생소하다. 더불어 16 혹은 17 심찰나로 이루어진 인식과정이론인 ‘찟따 위티(citta-vīthi)’는 특별히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또한 낯설게 여겨질 것이다. 이들은 테라와다 전통만의 독특한 이론들로서 아비담마와 주석서를 통해서만 그 정확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란스 셀르윈 카즌스(Lance Selwyn Cousins, 1942~ 2015, 이하 카즌스)는 다양한 테라와다의 세계관이 담겨 있는 방대하고 난해한 빨리 문헌들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던, 그렇기에 불교학 연구사에서 반드시 재평가되어야 하는 학자들 중 하나일 것이다.

 

1. 세간의 평가에 무관심했던 불교학자

현재 영국 불교학회장인 선덜랜드 대학(University of Sunder-land)의 피터 하비(Peter Harvey)는 카즌스의 광범위한 학문을 빨리 문헌, 초기 부파 역사, 아비담마, 초기불교 수행 전통이라는 4개의 키워드로 정리한 바 있다. 실제로 카즌스는 초기불교로 통칭되는 빨리 문헌의 대가이며, 난해한 남방 아비담마는 물론 초기 부파불교와 다양한 수행방식에도 정통했던 학자였다. 또한 불교에 대한 이론적 접근에만 국한되지 않고 자신의 연구 성과를 직접 실천하고 증명하고자 평생 노력했던 수행자였으며, 동시에 진실한 불교 신자였다.

초창기에 활동했던 대다수의 영국 불교학자들은, 불교를 연구 대상으로서 철저히 객관화하고자 했고 의도적으로 개인적인 신앙과 연구를 분리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카즌스는 부처님에 대한 깊은 신앙을 숨기지 않았던 불자였으며, 불교 문헌에 서술된 수행법과 행동양식을 몸소 실천하고자 했던 성실한 수행자였다.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원장이자 불교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정덕 스님에 따르면, 스님의 옥스퍼드 유학생 시절이었던 2000년대 초반, 카즌스는 건강이 많이 상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수행에 전념했으며 자신의 불교적 신념에 따라 오후불식을 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1942년 4월 7일 영국 잉글랜드 남동부 하트퍼드셔(Hert-fordshire)의 히친(Hitchin)에서 태어났으며 1961년 케임브리지대학교(University of Cambridge)에 입학하여 세인트존스칼리지(St John’s College)에서 역사와 동양학을 전공했다. 그는 이곳에서 해럴드 베일리 경(Sir Harold Bailey)에게 산스끄리뜨(Sanskrit)를, 케네스 로이 노먼(K.R. Norman)에게 빨리(Pāli)를 비롯한 중인도 언어를 배웠다. 그리고 노먼의 지도제자가 되어 상윳따 니까야 복주석서(Saṃyutta Nikāya ṭīkā)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박사논문은 1972년 《담마빨라와 복주석서(Dhammapāla and the ṭīkā literature)》라는 제목으로 정식 출판되었다. 

카즌스는 1967년 맨체스터대학교(University of Manchester)에 부임하여 비교종교학과에서 불교와 자이나교, 힌두이즘은 물론 빨리와 산스끄리뜨, 비교신화학 등을 가르쳤다. 그리고 1970년부터는 빨리성전협회(Pāli Text Society)에서 이사로 활동했으며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이 단체의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1995년 영국 불교학계를 대표하는 피터 하비와 이안 해리스(Ian Harris) 등과 뜻을 모아 영국불교학회(UK Association for Buddhist Studies)를 창립하여 초대 회장(1996~2000)을 역임했다. 

카즌스는 공명심이나 세속적 성공, 혹은 세간의 평판에 큰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대중 앞에 서는 것 또한 그다지 즐기지 않았다. 그는 50대 초반의 젊은 나이였음에도 공식적인 모든 대학 활동에서 물러나 은퇴했다. 그리고 옥스퍼드로 이주하여 옥스퍼드대학교(University of Oxford)의 울프슨칼리지(Wolfson College)와 옥스퍼드불교연구센터(Oxford Centre for Buddhist Studies)의 일원으로서 더욱 열정적인 연구 활동을 이어갔다. 지인들에 따르면, 카즌스는 옥스퍼드에서의 자유로운 삶을 진심으로 행복해했다고 한다. 실제로 맨체스터대학 시절과 달리 학과 업무의 스트레스를 떨친 그는 옥스퍼드에서 엄청난 양의 논문들을 저술했고 더욱 왕성한 학계 활동을 펼쳤다.

그는 옥스퍼드대학교의 동양학부 및 신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고전 언어학습과 초기불교 경전 강독을 주도했으며, 2000년대 초반에는 일본 교토대학에 초청받아 당시 새롭게 발견된 장아함 필사본의 로마자 표기 작업에도 참여했다. 2005년에는 런던대학 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에서 초빙교수 자격으로 자신의 저술을 모아 특강을 했을 뿐만 아니라, 빨리 경전을 전산화하여 인터넷에 올리는 작업과 경전 번역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름이 앞에 드러나는 것을 매번 꺼렸기에 그의 업적은 주로 그가 속했던 단체의 이름으로 대체되었다.

2. 영국불교의 수행을 이끌던 수행자

카즌스는 학문과 수행이 상호보완의 관계에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수행을 통해 학문이 완성되고, 학문을 통해 수행이 더욱 정교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불교학자이자 수행자였으며, 학생들과 일반인들을 불교 수행의 세계로 이끌었던 정신적인 지도자였다. 

카즌스는 케임브리지 학생 시절부터 불교 수행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963년 케임브리지대학교 불교학생회(Cambridge University Buddhist Society)에서 당시 영국에 정착했던 태국 출신의 명상가 나이 분만(Nai Boonman)과 함께 입출식념을 통한 체계적인 사마타 수행법을 익혔다. 이때부터 카즌스는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은 수행을 통해 체득된다고 믿었으며, 나이 분만을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고 수행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맨체스터대학에 부임한 이후 1971년부터 불교 수행법과 관련된 강좌를 개설하여 학생들에게 경전에 묘사된 수행들을 실천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했다. 

이는 이론의 틀 속에서만 불교를 바라보던 당시 맨체스터 대학생들에게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켰고, 이에 힘입어 맨체스터대학 불교회(Manchester University Buddhist Society)를 만들어 대학생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초기불교 수행법을 가르쳤다. 이후 지인들과 함께 1973년 수행공동체인 사마타협회(Samatha Trust)를 결성하여 초대 회장을 맡게 된 카즌스는 사마타협회에 일반강좌를 개설하여 불교의 교리와 수행법을 함께 가르쳤다. 그는 수행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개별 면담을 통해 불교 자체에 낯설었던 영국인들을 불교 수행의 심오한 세계로 이끌었다. 

사마타협회는 현재까지도 영국에서 대표적인 재가불교 수행단체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카즌스에게 사마타 수행을 지도받으며 함께 수행에 전념했던 불교학자 사라 쇼(Sarah Shaw)는 카즌스가 추구했던 일대일 대화법이 사람들을 매료시켰고, 결과적으로 사마타협회가 지금까지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카즌스와 함께 사마타협회를 이끌었던 피터 하비 또한 카즌스를 추모하는 글을 통해 영국사마타협회가 이렇게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간 것은 카즌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며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사마타협회 역시 홈페이지를 통해 다음과 같이 카즌스를 추모했다. “란스는 선견지명이 있는 지도자였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했던 모범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이 확립한 깊은 불교적 성찰을 바탕으로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수년간 그는 변함없이 주변 사람들이 올바른 진리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며, 이를 위해 헌신과 열정을 다했다.”

카즌스의 수행에 대한 집념은 1977년 맨체스터 초튼(Chorlton)에 위치한 사마타수행센터(Centre for Samatha Practice) 설립으로도 귀결되었다. 그는 이 수행센터에 남방불교 스님들과 수행자들을 초청하여 교류를 이어 나갔으며, 당시 맨체스터를 방문했던 스님들로부터 아비담마 연구와 수행을 접목시키는 것에 큰 영감을 받았다. 그는 아비담마와 수행의 접점을 찾기 위해 스리랑카와 태국 등을 빈번히 방문했으며, 이 과정에서 다수의 현지 수행자들이 유럽으로 유학을 오는 학문적 교량 역할을 맡아주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태국 방콕의 마하마쿳불교대학(Mahamakut Buddhist University)은 그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그를 명예교수로 추대했다.

몇몇 학자들은 카즌스의 전문영역을 수행과 학문으로 나눈 후 수행적으로는 초기불교 수행법을, 학문적으로는 아비담마를 연구했다고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그에게 아비담마는 건조한 학문적 연구주제가 아닌, 수행을 위한 매뉴얼 혹은 지침서였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불교학자 리처드 곰브리치(Richard Gonbrich)는 이처럼 수행과 연구를 함께 접목시켰던 카즌스를 가리켜 진정한 아비담마의 대가라며 존경을 표했다.

실제로 카즌스는 아비담마가 단순히 학문의 대상이 아닌 수행과 직결되는 수행서임을 증명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특히 그는 아비담마 논서들 중 가장 중요하고 난해하다고 알려진 《빳타나(Paṭṭhāna)》를 서구 학계에 알린 선구자였다. 이 논서는 리즈 데이비스(C.A.F. Rhys Davids)에 의해 1900년대 초반에 이미 빨리성전협회에서 출판된 바 있다. 그러나 이 출판물은 2,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원전의 내용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기에 학문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으며 후속 연구 또한 이루어지지 못했다. 카즌스는 1981년 〈빳타나와 테라와다 아비담마의 발전(The Paṭṭhāna and the Development of the Theravādin Abhidhamma)〉이라는 논문을 통해 이 난해한 논서의 특징을 서구 학계에 알렸고, 더불어 후대 주석 전통의 산물로 여겨져 왔던 인식과정이론이 초기 아비담마 논서인 《빳타나》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었음을 증명했다. 

버마 출신 영국 이민자인 피 표 죠(Pyi Phyo Kyaw)는 카즌스의 이 연구를 바탕으로 2014년 〈버마 불교전통에서의 빳타나(Paṭṭh-āna in Burmese Buddhism)〉라는 제목으로 런던대학 킹스칼리지(King’s College London)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버마 6차 결집본을 바탕으로 5권 분량의 《빳타나》를 전체적으로 분석한 연구로서, 카즌스는 죠 박사가 논문을 완성하기까지 성심을 다해 조언해주었으며, 장문의 손편지를 써서 죠 박사를 격려했다. 죠 박사는 박사논문을 통해 버마 전통에서 이 논서가 수행과 의례서로 사용되고 있음을 밝혔다. 그녀는 현재 샨스테이트불교대학(Shan State Buddhist University) 교수로서 현지 수행자들과 함께 후속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는 아비담마와 수행 간의 접점을 찾고자 했던 카즌스의 관심사가 전승 · 확장된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3. 에피소드

카즌스는 결코 사회성이 좋거나 사교적인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 세간의 평판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탓에 그의 삶과 업적들에 대한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필자를 포함하여 그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카즌스는 언제나 친절했고 권위 의식이 없었으며 누구에게나 성실하고 진지한 태도로 대화에 임했다. 그의 이러한 모습은 그를 만났던 수많은 젊은 후학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자따까(Jātaka)》 및 남방 내러티브 연구의 권위자인 에든버러대학(University of Edinburgh)의 나오미 애플튼(Naomi Appleton)은 “카즌스와 나누었던 모든 대화들, 심지어 커피를 마시며 나눈 담소들마저 내게는 큰 가르침이었다.”고 회고했다. 카디프대학(Cardiff University) 종교학과 교수였던 제프리 사뮤엘(Geoffrey Samuel)은 “그는 불교학에 있어서 나의 진정한 첫 번째 스승이었고,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창조적인 사유를 하는 진실한 학자였다.”고 카즌스를 평했다. 카즌스와 함께 다양한 활동을 이끌었던 피터 하비는 다음과 같이 카즌스를 추모했다. “불교 연구와 수행 모든 면에서 란스는 언제나 내게 고무적이었다. 나는 그의 학자적 태도를 선망했고, 이는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마치 거울과도 같아서 그를 만날 때면 언제나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이 멋진 분께 너무나 큰 은혜를 입었다.”

필자가 런던대학에서 경험했던바, 특히 영국에서 아비담마를 연구하는 학생들에게 카즌스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가르침을 청할 때면 성심성의껏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2014년 런던대학 킹스칼리지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던 필자 역시 카즌스와의 짧은 만남을 통해 이를 경험할 수 있었다. 옥스퍼드에 거주하던 카즌스는 런던대학에서 매주 개최했던 소규모 세미나도 세심하게 살펴보고 흥미로운 주제발표에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참석했다. 당시 필자는 런던대학 교수였던 케이트 크로스비(Kate Crosby)의 지도를 받아 《해탈도론(解脫道論)》의 인식과정이론(citta-vīthi)에 대한 발표를 준비했고, 이 과정에서 카즌스의 논문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었다. 필자의 발표에 오류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카즌스는 발표가 끝난 후 별도로 시간을 내어 늦은 저녁까지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보잘것없었던 발표에도 그는 질책보다는 격려를 해주었고, 심지어 옥스퍼드 자택으로 되돌아간 직후 새벽에 필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그날 있었던 발표의 오류들을 정확히 지적해주었다. 동등한 연구자로서 어린 연구원의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많은 배려를 해주었던 그날의 카즌스는 지금도 필자의 마음에 큰 스승으로 남아 있다.

필자가 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감사 인사를 전하러 갔을 때, 카즌스는 향후 아비담마 연구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한 권 추천해주었는데, 그게 바로 미산 스님의 1999년 박사논문 《상좌부 찰나설 연구(The Theravādin Doctrine of Momentariness)》였다. 카즌스는 비록 이 박사논문이 꽤 오래전에 저술되었지만 여전히 남방 아비담마 연구자들에게는 필독서임을 강조했다. 실제로 영국에서 아비담마를 전공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이 박사학위 논문은 교과서로 알려져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미산 스님의 이 논문을 실질적으로 지도해준 것 역시 카즌스였다.

현재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 소장인 미산 스님은 1990년대 중반에 카즌스에게 아비담마 인식과정이론과 찰나설 및 주석서 강독 등을 지도받았다. 옥스퍼드 유학 당시 미산 스님의 공식적인 지도교수는 리처드 곰브리치(Richard Gombrich)였다. 그러나 미산 스님은 지도교수가 제시했던 논문 주제가 박사학위 논문으로서 부족함을 발견했고, 지도교수와의 심도 있는 논의 끝에 결국 자신이 원하는 남방불교 아비담마인 찰나설로 논문 주제를 변경했다고 한다. 이에 곰브리치는 아비담마 최고 권위자인 카즌스를 미산 스님에게 소개해주었다. 당시 맨체스터대학에서 퇴직한 직후였던 카즌스는 한국에서 온 열정 가득한 아비담미까(abhidhammika)를 위해 성심성의껏 논문을 지도해주었다. 

여담이지만, 당시 옥스퍼드 학생들 사이에서 곰브리치는 엄격한 지도교수로 소문나 있었다. 곰브리치의 제자로 미산 스님과 함께 공부했던 앤드루 스킬튼(Andrew Skilton)과 케이트 크로스비는 맨체스터까지 기차로 통학하며 아비담마를 지도받으러 다니던 미산 스님을 일컬어 지도교수에게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킨 ‘옥스퍼드의 전설’이라며 존경심을 표했다. 카즌스 역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먼 곳까지 찾아와서 성실하고 치열하게 공부하고, 엄격한 지도교수에게도 자신의 뜻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던, 그리고 결국 자신의 소신을 학문적 결실로 증명했던 미산 스님을 ‘훌륭한 아비담마 연구자’라고 칭찬했다. 이러한 일화를 통해 드러나듯, 카즌스는 누구든,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절실한 마음으로 가르침을 청하는 학생에게 언제나 진실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든든한 스승이었다.

이 글을 준비하던 중, 필자는 현재 옥스퍼드에서 빨리 문헌을 가르치는 앤드루 스킬튼 교수에게 카즌스와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전해 들었다. 당시 런던대학 학회에 참석했던 두 사람은 일정을 마치고 옥스퍼드로 돌아가는 버스에 함께 올랐다. 그리고 그 안에서 스킬튼과 카즌스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당시 카즌스는 자신이 논문저술과 출판을 너무 일찍 그만둔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평생 연구와 수행을 하며 떠올랐던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많기에, 이제부터라도 이러한 것들을 글로 옮겨 후학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로부터 몇 주 지나지 않은 2015년 3월 14일, 옥스퍼드 학생들과 5학기째 이어오던 빨리 경전 강독을 끝내고 돌아온 다음 날 카즌스는 자신의 옥스퍼드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당시 그의 나이 72세였다. 연구와 수행에만 몰두하며 홀로 자택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기에, 주변 동료들이나 제자들은 물론 가족들까지도 그가 사망한 지 5일이 지나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옥스퍼드 불교사원(Oxford Buddha Vihāra)의 주지이자 동료였던 담마사미(Dhammasāmi) 스님이 불교 전통 방식에 따라 장례식을 주도했고, 옥스퍼드 불교사원의 승려들은 망자를 위한 아비담마 독송에 이어 《자애경(Metta Sutta)》을 독송했다. 카즌스의 동료였던 리처드 곰브리치는 그의 학문적 업적을 기렸으며, 폴 데니슨 박사(Dr. Paul Dennison)는 사마타협회를 대표하여 카즌스를 추모했다. 그리고 현재 빨리성전협회장이자 브리스톨대학(University of Bristol) 교수인 루퍼트 게틴(Rupert Gethin)은 자신의 지도교수였던 카즌스와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존경심을 표했다. 그와 인연을 맺었던 학계 인사들뿐만 아니라, 그에게 불교 수행을 지도받았던 수많은 제자들도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가 살던 집은 그 자체로 빨리 문헌과 관련된 거대한 도서관이었는데, 이는 그가 젊은 시절부터 열정을 바쳤던 맨체스터 사마타 수행센터에 기증되었다. 

사망 직전까지 카즌스는 불교 수행에 대해 강연했던 자료들을 모아 《불교수행: 과거와 현재(Buddhist Meditation: Old and New)》, 그리고 아비담마 논서인 《야마까(Yamaka)》의 주석서 번역을 출판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당시 카즌스와 저술 작업을 함께 작업했던 사라 쇼(Sarah Shaw)와 그녀의 남편 찰스 쇼(Charles Shaw)에 의해 이 마지막 저술들이 곧 출판될 예정이다. 

 

4. 추모집 《불교의 수행과 가르침》

영국불교학회는 지난 2019년 그동안 카즌스에게 영향을 받아왔던 학자들의 논문을 모아 추모집 《불교의 수행과 가르침(Buddhist Path Buddhist Teachings)》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여기에 실린 모든 논문은 각각의 저자들이 카즌스에게 동기부여를 받아 진행했던 연구 성과를 담은 것이다. 세간에 자신을 알리는 것에 별다른 흥미가 없었던 카즌스였기에, 어찌 보면 이러한 추모집은 학문 그 자체였던 카즌스의 삶을 재구성할 수 있는 독특하고 유일한 방식이었을 것이다.

첫 번째 단원인 ‘명상과 불교수행(Meditation and the Buddhist Path)’은 카즌스가 평생 흥미를 가지고 연구했던 해탈을 향한 불교적 수행법을 조망하는 세 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 두 번째 단원인 ‘비교신화학(Comparative Mysticism)’은 불교뿐 아니라 다양한 종교들에서 발견되는 초월적 성스러움, 그리고 비교종교학적 관점을 통해 새로운 시각에서 불교를 재해석하고자 했던 카즌스의 광범위한 관심사를 조망하는 두 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 번째 단원인 ‘불교 해석(Interpreting Buddhist Teachings)’은 카즌스의 초기 경전 분석을 통해 초기불교 전통이 전해주는 핵심적 가르침이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논의를 담고 있다. 네 번째 단원인 ‘아비담마(Abhidhamma)’는 21세기 최고의 아비담마 논사였던 카즌스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더불어 그의 아비담마 연구가 전문용어 분석뿐만 아니라 비문 자료와 주석서까지 아우르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섯 번째 단원인 ‘부파불교와 문헌(Schools and Scriptures)’은 카즌스의 또 다른 전문 분야였던 초기 부파불교에 대한 연구 성과를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단원인 ‘불교문학(Literature)’에서는 카즌스가 노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자따까(Jātaka)》에 대한 연구를 조망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까지 그와 함께 《자따까》를 강독했던 사라 쇼와 나오미 애플튼이 저술을 맡아 카즌스의 마지막 학문적 행보를 담아냈다. 

이상의 논문들은 카즌스의 동료 혹은 제자들이자 동시에 각 분야 최고의 학자들인 피터 하비(Peter Harvey), 루퍼트 게틴(Rupert Gethin), 리처드 곰브리치(Richard Gombrich), 아날라요(Anālayo), 피터 스킬링(Peter Skilling), 페트라 키퍼 퓔츠(Petera Kieffer-Pülz), 마크 알론(Mark Allon), 알렉산더 위니(Alexander Wynne), 사라 쇼(Sarah Shaw), 나오미 애플튼(Naomi Appleton) 등에 의해 저술되었다. 이는 카즌스가 학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의 세계관이 여전히 현대 학자들의 연구와 삶 속에서 현재진행형이며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학자로서의 성공은 저마다의 가치관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맨체스터대학에서 조기 은퇴를 선언했을 때 카즌스의 학자적 삶은 단절되었으며, 그로 인해 노년이 외롭고 초라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를 비롯한 아비담마 전공자들에게 그는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었고, 의지하고 본받고 싶은 이상적인 학자의 전형이었다. 필자가 마지막으로 카즌스를 만났던 것은 오스트리아 비엔나대학에서 열렸던 국제 불교학회였다. 그는 예전에 런던에서 만났을 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홀로 배낭을 메고 학회장에서 발표를 경청하며 메모를 하고 있었다. 

책상이 답답하게 느껴지고 대중의 찬사를 받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때면, 필자는 카즌스의 그 마지막 모습을 떠올린다. 학자의 본분이 평생 진리를 추구하며 스스로를 연마하고, 배움을 청하는 후학에게 기꺼이 길벗이 되어주는 것이라면, 카즌스는 누구보다 자신의 본분에 충실했던 성공한 불교학자였다. ■

 

김경래
국대학교 불교학부 및 동 대학원 졸업 후 영국 런던대학 킹스칼리지 신학-종교학과에서 박사후과정 및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주요 논문으로 “Avici Hell and wujian in the Cognitive Process: Observations on Some Technical Terms in the Jie tuo dao lun(Vimuttimagga)”와 “A Critical Examination of Research on the Legacy of Daehaeng” 등 다수가 있다. 불이상(연구 분야)과 불교연구 신진학술상 수상.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