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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공(指空)과 조계종의 계승
[76호] 2018년 12월 01일 (토) 허흥식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지공선현(指空禪賢, Dhyāna-bhadra Sūnyādina, 1300.11. 29~1363.11.29, 이하 지공 화상)과 회암사에 대한 새로운 자료와 사실이 속속 발견된다. 지공 화상의 생애와 사상을 돌아보고 그를 제대로 자리매김하는 작업은 한국과 동아시아 나아가서 불교학을 지킨 나란다와 함께 세계불교사적으로 시급한 일이다. 그에 관한 유적과 저술과 계승자에 대한 기록은 한반도에만 주로 남아 있다.

유적이 밀집된 곳은 회암사지만 이밖에도 지공을 포함한 삼화상 진영은 전국의 여러 중요한 사원에 있다. 장단의 화장사와 묘향산 보현사, 그리고 금강산 장안사를 비롯하여 북쪽에도 많다. 제대로 연구되지 못한 채, 그의 사리를 비롯한 여러 유물이 해외로 유출되었다. 또 다른 시급한 과제는 회암사지가 현재 발굴된 형태를 유지하는 방법 모색과 지공을 비롯한 삼화상의 부도와 진영을 모신 현재의 (살아 있는) 회암사 일부분의 복원과 보존으로, 불교계와 학계가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경기문화재단은 1998년부터 10년간 회암사지를 발굴하고 보고서를 제출하여, 진입로에 회암사지 박물관을 짓고 출토된 유물을 보관하였다. 본래의 회암사는 터만 유지하고 사찰과 박물관이 선의의 경쟁을 함께 하면서 공존하는 상황이다. 필자는 연구와 발굴을 지켜보면서 회암사지를 사랑하는 모임을 만들어서 학술적인 기반을 모색하였다. 회암사와 관련된 국내 사원을 거의 다 찾아보았으나 어느 곳에도 지공 화상이 입적한 날짜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였고 알려고 노력하거나 제대로 추모하는 사원조차 없었다.

 

회암사에 지공화상탑비가 있지만 이 비문에 대한 전문조차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다. 원래의 비문은 1821년에 묘지를 만들면서 파괴되었고, 8년 후에 복원된 비는 본래의 비문이나 조형, 글자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탑비 후면의 전문은 아직도 적지 않은 글자가 미상으로 남았다. 본래 비문은 북원의 선광(宣光) 연호가 쓰인 보기 드문 자료이다. 비문의 첫머리에는 혜종(惠宗)과 기황후, 그리고 태자였고 후에 황제로 즉위한 소종(昭宗)과의 관계가 생동감 있게 실렸다.

연천에는 기황후 능으로 전하는 유적이 지리지에 실렸고, 적지 않은 석물이 능 앞부분에서 수습되어 보존되었다. 기황후가 별세한 시기조차 여러 견해가 있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적어도 1371년까지 생존하여, 고려와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하였다. 1377년부터 다음 해까지 고려에서는 북원의 연호를 사용하였다. 이 시기에 회암사에 세운 나옹과 지공의 부도탑비가 있다.

연천의 기황후 능은 나옹혜근이 회암사를 확장하여 낙성한 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다. 회암사는 지공 화상을 추모한 사원이면서 기황후의 진전사원으로 조성되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를 주도한 나옹화상이 마무리하고 낙성식을 하였다. 한국불교의 종가인 대한불교조계종은 애써서 이를 배제하려 한다. 종헌에서 규정한 태고보우와 다른 지공과 나옹으로 계승된 계보를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종헌은 기원과 종조에 대해서 월저도안과 사암채영의 저술을 따른다. 이에 대하여 많은 반론이 일어났고 대표적인 근거가 〈선문조사예참의문〉이었다.

 

〈선문조사예참의문〉이나 《해동불조원류》의 오류는 필자가 여러 차례 불교사 관련 글에서 지적하였다. 그런데도 본격적인 논의 없이 야금야금 이를 전거로 제시하지 않으면서도 따른다.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지나쳐서는 안 되는 사항을 불교계와 학계에서 외면한다.

불교사 연구기관에서 이를 모르지 않고 조계종의 여러 교구본사에서도 이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있다. 그러나 이를 주제로 본격적인 토론을 하지 못하고 기피하고 있다. 한국불교계가 이 주제를 회피하고 불교를 바로 세우기는 어렵다. 자기 뿌리도 모르면서 어찌 뻗어가는 줄기가 무성하기를 기대하겠는가?

오늘날 우리나라 불교계의 가장 대표적인 종파는 대한불교조계종이고, 고려불교 종파의 하나인 조계종과 깊은 관계가 있다. 조계종은 9세기 말부터 다음 세기까지 형성된 여러 산문에서 육조혜능의 사상을 추종하면서 선종과 함께 이미 조계종을 명칭으로 사용하였다. 이 가운데 오월(吳越)로 떠난 유학승이 참선보다 우월하다는 법안종의 지관 수양법을 따랐다. 이들은 11세기 말에 이르러 대각국사 의천의 문하로 포함되었고, 육조혜능의 사상에서 이탈하여 고려 천태종의 기반이 되었다.

여러 산문에서 5산문이 천태종을 이루고 나머지 9산문이 고려의 조계종을 고수하였다. 특히 사굴산과 가지산과 희양산의 세 산문은 고려 후기에도 번성하여 조계종에서는 오로지 이들 산문에서만 고려 후기의 국사와 왕사를 배출하였다. 특히 가지산문의 태고보우와 사굴산문의 나옹혜근으로 마지막 산맥을 이루었다. 나옹은 왕사로 생을 마쳤고, 태고는 나옹보다 먼저 태어나 그보다 더 오래 살았다. 그럼에도 나옹이 입적한 다음 그에 대한 평가는 부처로 점차 상승되었지만, 태고보우는 제대로 계승자를 찾지 못하였다. 나옹의 제자인 환암혼수를 태고를 이은 계승자로 간주하는 조계종 종헌의 이론적 근거가 취약하다는 뜻이다.

나옹은 사굴산문 출신이었다. 몽골제국의 임제종 평산처림을 계승하였지만 지공선현의 수제자로 남전불교의 법통을 지켰고, 환암혼수를 대표적인 계승자로 두었다. 조계종의 가장 중요한 법맥은 나옹과 환암혼수를 제외하고 달리 말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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