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성찰

 《철학자의 불교 공부 노트》(지지엔즈 저, 류화송 역, 불광출판사, 2022)
 《철학자의 불교 공부 노트》(지지엔즈 저, 류화송 역, 불광출판사, 2022)

이 책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서양철학을 전공한 학자가 불교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여러 가지 상념을 논리적으로 서술한 글이다.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것은 불광출판사에서 의뢰가 왔기 때문이다. 번역을 시작하기 전에 저자인 지지엔즈(冀剑制)를 검색하고는 상당히 놀랐다. 그것은 저자가 대만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상당히 많은 책을 출판하였으며, 발표한 학술논문도 수십 편이 검색되었고, 더욱이 논문의 주제들이 본인의 전공인 서양철학 이외에 유학과 도교 등 상당히 광범위하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중국에서는 화범(華梵)대학에서 건학이념으로 삼는 ‘깨달음의 교육’에 관심을 두고, 지지엔즈와 인터뷰한 내용이 다양한 사이트에 올려져 있으며, 심지어 그의 저술 가운데 문구들을 모은 ‘지지엔즈 명언(名言)’이라는 글들이 인터넷에 올라 있어, 중국에서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학자라고 볼 수 있다.

지지엔즈는 대만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중정대학에서 석사학위를, 그리고 뉴욕주립대학교 버펄로캠퍼스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화범대학에서 철학과 교수 겸 불교대학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2006년도 이후부터 중국 학계에 본격적인 논문 발표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어느 정도 나이를 짐작하겠지만, 구체적인 출생 연도는 검색되지 않는다.

본서는 상편 〈이고득락의 사색〉과 하편 〈이고득락의 수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저자는 무엇보다도 ‘이고득락’을 불교의 출발점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불교적 논리를 서양철학의 분석적 입장에서 상세하게 논하고 있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불교를 배우려면 먼저 의심을 해야 할까 아니면 먼저 믿어야 할까?”라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믿음은 종교적 신앙이고, 의심은 철학적 태도로서 각각 이로움과 폐단이 있음을 지적하고, “먼저 믿고 실천하며 다시 몸소 체험을 통해서 검증하는 것이 비교적 좋은 학습 방식”임을 강조하지만, 이 책의 전체적인 입장은 철학적 입장이 더욱 강하게 흐르고 있다.

번역을 진행하면서 이러한 입장은 상당이 공감되었는데, 무엇보다도 “내가 없다면[無我] 누구를 위해 불교를 배울까?”라는 항목에 이르러서는 필자가 처음으로 불교를 공부할 때가 떠올랐다. ‘이고득락’을 ‘무아’의 입장에서 본다면, “내가 없다면, 누가 즐거움을 얻는가?”라는 필연적인 의심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업설(業說)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선인락과(善因樂果), 악인고과(惡因苦果)”가 업인과보의 원칙인데, ‘무아’라고 한다면 지은 자와 받는 자의 동일성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만약 숙세에 ‘내가’ 나쁜 업을 지은 것을 현세에 ‘내가’ 받는다면, 그것은 억울할 일이 없겠지만, ‘무아’로서 숙세의 ‘나’와 현세의 ‘나’가 동일성이 확보되지 않다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이다. 그렇다면 현세에 선업을 짓는 것도 ‘내가’ 아닌 ‘딴 사람’이 좋은 과보를 받을 터이니, 그다지 흥미를 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본래 필자는 유학을 신봉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학(漢學)을 배웠고, 대학에서도 유가 전적을 중심으로 하는 한문학을 전공하였던 까닭에 불교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반감이 있었다. 그렇지만 어렸을 때 집이 자광사와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있었고, 그 절에 계시는 할아버지 스님과는 밀접한 인연이 있었다. 절에 가서 놀고 있으면 늘 맛있는 것을 주셨기에 인자한 할아버지로 알고 따랐지만, 그 스님이 그렇게 유명한 스님, 탄허(呑虛) 대종사인 것은 남경대에서 박사과정을 수학할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남경대에서 불교를 전공하는 김진무 선생을 만나게 되었고, 인연 있는 스님들과 사람들이 모여서 고익진 선생께서 편찬하신 《불교근본경전(佛敎根本經典)》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였는데, 당시 ‘무아’와 ‘업설’을 공부할 때, 이상과 같은 의문에 한동안 침식조차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때의 ‘나’는 본래 허구의 ‘나’와 다른 것이며, 다른 존재 방식에 해당한다. …… 이러한 자아의식은 반드시 무아의 관상(觀想)을 통해서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 과정이 바로 수행이다.”라는 해답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불교에 대한 입문에는 상당히 적절한 제시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본서에서는 불자들이 기본적으로 받아들이는 불교적 사유에 대하여 철학적 의심의 태도로 논리적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번역의 과정에서 필자 자신의 불교 공부 과정을 되짚는 것만 같아 상당히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하였다. 비록 저자가 제시하는 몇 부분은 필자와 견해의 차이가 보여 공역자와 여러 차례 논쟁했지만, 번역서는 역자의 견해가 아니라 저자의 견해에 따라야 한다는 원칙에 따랐다.

본서의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의 완성이 나에게는 철학 쪽에서 불학 쪽으로 넘어오는 하나의 교량이 되었다.”라고 하며, 이후 더욱 깊은 내용을 가지고 집필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따라서 본서는 저자 자신에게 있어서 입문의 과정을 논술한 것이고, 또한 불교를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훌륭한 입문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오히려 본서는 불교에 상당히 식견이 있는 이들에게도 필요한 책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그것은 이 책이 훈습된 불교적 관념에 매몰되어 아무 의심 없이 당연시하는 자신에게 경각심을 일으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류화송 / 충남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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