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성찰

이 책은 ‘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시리즈 중 하나로 출간되었다. 

뇌를 이해하는 것이 시대의 화두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의 뇌는 심장이나 허파와 같은 세포로 이루어진 몸의 장기의 하나이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나를 나답게 만드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심장이나 허파와 같은 생명 유지를 위한 장기와는 다른 의미가 있다. 물론 뇌는 우리가 생명 유지를 위해 숨을 쉬고 호흡하며 조절해야 하는 수많은 생리학적 현상을 통제하는 기능을 하므로, 뇌가 정지하면 우리의 생명은 정지한다는 점에서 필수 장기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뇌는 우리가 모르던 것을 학습을 통해 알게 해줌으로써 거의 아는 것이 없이 태어난 험난한 이 세상을 배워가며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생존의 도구와도 같다. 

뇌의 학습 능력은 실로 놀랍다. 특히 고등동물인 인간의 학습 능력은 지금의 가장 발달한 인공지능 컴퓨터를 마치 최신식 컴퓨터 옆에 있는 초라하고 오래된 타자기처럼 보이게 만들 정도로 차원이 다른 수준을 자랑한다. 

대학에서 뇌의 학습과 기억에 대한 연구를 하는 나로서는 이처럼 뇌의 경이로운 능력에 감탄하는 일이 잦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뇌의 학습능력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탓인지 뇌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거나 컴퓨터나 인공지능이 뇌의 능력을 따라잡아서 인간이 컴퓨터의 지배를 받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알파고라고 불렸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이 세계적인 바둑 기사인 이세돌을 이기면서 이러한 불안감은 사회에 만연하기 시작했고, 때를 놓치지 않고 인공지능의 위대함을 설파하는 공학자들과 미래학자들에 의해 이러한 불안은 더욱 증폭되어 왔다. 생물학적 뇌의 인지 능력에 대한 연구를 하는 나로서는 이러한 대중의 불안이 정보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극심한 불안의 이면에는 불안을 초래하는 대상에 대한 정보의 부족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의 빅데이터 기반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위주의 인공지능 기술이 갖고 있는 장점과 단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또 우리 뇌의 학습과 기억 능력을 정확히 이해하여 이 둘 간의 비교를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위에서 말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은 상당 부분 근거가 희박하다는 결론에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 중 하나는 오랜 진화의 세월을 거치며 발달한 뛰어난 자연지능 컴퓨터라고도 볼 수 있는 뇌의 위대함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또한, 우리 사회는 학습에 유난히 민감하다. 교육열이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할 정도로 어려서부터 자식 교육에 많은 관심과 투자를 한다. 어린 나이부터 학원을 가서 무언가를 배우고 최근에는 대학을 나와서 사회인이 되더라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우려는 욕구를 가진 청장년층과 노년층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새로운 것을 학습하는 것에서 오는 희열을 계속 맛보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건, 현대사회와 미래사회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을 학습하지 않는 사람으로 남아 있기는 정말 어려운 사회이다. 

이처럼 학습이 우리의 인생과 삶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는 뇌의 학습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등 뭔가 좋은 위치에서 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하는 것이 곧 학습인가? 뇌의 학습에 대해 연구하는 과학자에게 이러한 학습의 목적들은 한마디로 ‘생존’이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그리고 생존의 수단으로서의 학습은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공통된 속성이다. 심지어는 식물도 학습을 하며 아메바나 곤충도 학습을 한다. 하등동물의 학습이 죽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면, 고등동물인 인간의 학습은 사회적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더 잘 사는 것은 2차적인 목적이고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 중 하나도 바로 이러한 학습의 근본적 의미에 대해 모두 같이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고 뇌의 인지적 학습이 이루어지는 원리에 대한 기초적 지식을 습득함으로써 모두가 더 나은 학습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뇌의 기본적 학습과 기억 기능이 잘 작동하지 않을 경우의 예를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우울증이나 조현병 등의 정신질환과 치매 등의 뇌질환 환자에게서 목격할 수 있다. 학습은 변화하는 환경에서 적응하며 생존하기 위한 도구와도 같은 것이다. 이 도구가 무뎌지거나 망가지면 변화에 적응할 수 없고 생존은 점점 힘들어진다. 현대 의학으로도 아직 정신질환이나 뇌질환을 완치할 수 없는 이유도 이들 뇌질환의 뇌인지과학적 발현 원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인구의 노령화와 함께 쓰나미처럼 닥쳐올 인지적 장애와 행동장애에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보면 거의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 중 하나도 이러한 위험성을 직시하고 우리 사회가 보다 뇌인지과학의 중요성을 깨닫고 많은 훌륭한 인재가 뇌인지과학 연구에 뛰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인아 / 서울대 뇌인지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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