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성찰

《불교문헌 속의 지옥과 아귀, 그리고 구제의식》(역사산책, 2022, 320쪽)
《불교문헌 속의 지옥과 아귀, 그리고 구제의식》(역사산책, 2022, 320쪽)

이 책에서는 초기불교에서부터 동아시아불교에서 찬술된 문헌에 이르기까지, 고대인도에서부터 중국을 거쳐 한국과 일본, 동남아에 이르기까지 불교의례 설행의 교의적 근간을 이루는 지옥 사상과 아귀 사상, 그리고 아귀 상태로부터의 구제를 위해 실천되는 불교의식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다.

이 책의 3분의 1 분량을 차지하는 ‘지옥’ 관련 서술은 2017년 한 해 동안 〈법보신문〉에 매주 ‘지옥을 사유하다’라는 주제로 47회에 걸쳐 연재했던 칼럼의내용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불교문헌 속의 아귀도 관련 교설은 2019년에 연구재단에서 받은 시간강사 연구지원 주제였기 때문에 각 문헌을 심도 있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또한 동아시아의 불교도들이 지옥도와 아귀도라는 두 악도 윤회로부터 망자 구제를 위해 설행했던 불교의례에 관한 연구는 2021년도에 선정된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신청 주제와 직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은 2017년부터 연속적으로 진행되어 온 연구과제들을 수행한 중간 결과물이라고 봐도 좋다. 

참고로 책 제목에 ‘불교문헌’이라는 용어를 쓴 이유는 경 · 율 · 논 삼장(三藏)을 모두 포괄하는 의미 범주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경전과 그에 대한 주석인 논(論), 논서에 대한 소(疏)까지 모두 분석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러한 문헌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명칭으로서 ‘불교문헌’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이다. 또한 ‘구제의식’이라는 용어는 ‘구원의례’ 혹은 ‘천도의례’ 등을 놓고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결국은 ‘망자에 대한 구제’라는 의례의 목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 선택한 것이다. 

왜 하필 ‘지옥’에 관한 내용을 생각했을까 하는 질문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내게는 그런 생각 자체가 좀 생소하게 느껴졌다. 불교문헌의 지옥에 관한 교의와 서사를 들여다보면 인간의 본성을 선보다는 악에 가까운 쪽으로 관조하는 느낌이 든다. 지옥 관련 교설을 찾아 다양한 불교문헌을 뒤지고, 일부 번역된 문헌을 재확인하면서 느낀 것은 적게는 천 년, 많게는 2천 년 이상 된 경문 속의 지옥과 죄악에 관한 묘사가 무척 생생하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모골이 송연할 정도의 생생한 지옥 교설은 당시 사람들로 하여금 악의 본성을 관조하게 하고, 계율을 지키도록 계도하는 역할을 충분히 해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불교문헌 속에서 제시하는 지옥행의 업인(業因)이 비록 다양하기는 해도, 기본적으로는 불자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오계(五戒: 불살생, 불음주, 불사음, 불투도, 불망어)로 수렴된다. 그 다섯 계율 안에 포섭되는 죄의 스펙트럼을 경문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인식시키는 것만으로도 지옥 교설의 계도적 역할은 충분하다 할 것이다.

다음으로 불교문헌 속의 아귀에 관한 교설에서는 무섭다기보다는 역한 내용이 많았으며, 역시 불교도들, 나아가 인간에 대한 강한 계도적 경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본 불교문헌 속의 아귀는 실재라기보다는 악업의 상징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설정되어 있었으며, 아귀마다 다른 명칭 자체에서 악업과 그에 따른 고통의 과보를 연상할 수 있는 구조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아귀라는 존재를 ‘전설의 고향’이나, 지괴(志怪)소설에 등장하는 ‘원귀(冤鬼)’와 유사한 것으로 인식하거나, 경전에 등장하는 것 자체를 낯설어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태도가 내게는 불교문헌 속의 상징과 비유 그리고 상상력에 대해 인색하게 평가하는 시각으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한국불교 구성원, 특히 스님들 가운데 불교와 귀신을 연결 짓는 것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사찰 법회에서 신도들에게 하는 법문 중에 조상 영가(靈駕)니, 무주고혼이니, 망혼이니 하는 귀신 얘기는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이러한 현상은 문헌상의 교의와 불교 신도들의 실제 생활 정서 간의 괴리를 보여주기도 한다. 도대체 삶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혹은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고통을 추스르기 위해 모여든 신도들에게 사후 세계 얘기를 빼면 뭘 들려준단 말인가.

동아시아 불교도들에게 불교문헌 속에 나타난 지옥도와 아귀도의 참상은 무척 두렵고 역겹지만, 바로 그 경문의 페이지에서 두 악도에의 윤회를 피할 수 있는 구제의 길까지 자세히, 친절하게 일러주고 있다. 더군다나 불교도들에게 그 문헌 속의 지옥도와 아귀도를 설명해 준 승려들은 구제의식을 설행해 줄 수 있는 의례 집행자이기도 했다. 따라서 불교문헌 속의 지옥과 아귀도 교설이야말로 구제의 길은 늘 사원으로 연결되는 것임을 인식시키는 강력한 포교의 기제이기도 했던 것이다. 

어느 종교든 교의는 심원하지만, 일단 교단화가 이루어지면 그 현실적인 운영을 위해 ‘구제의식’을 활용하는 사례들을 보게 된다. 불교 역시 붓다 입멸 후에 서술된 수많은 경론 속의 지옥과 아귀에 관한 교설이 결국에는 구제의례를 통해 신도와 사원 간의 결합을 한층 더 단단하게 해주는 기능을 해왔음을 보여준다. 정리하자면, 이 책에서는 그러한 불교문헌 속의 교의와 실천, 구제의식을 장마철에 장롱 속의 옷가지 말리듯 가닥가닥 추려서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라 할 수 있겠다.         

김성순 / 전남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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