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성찰

《한국불교통사》(운주사, 2022, 392쪽)
《한국불교통사》(운주사, 2022, 392쪽)

불교와의 첫 인연은 우연히 찾아왔다. 예비고사를 끝내고 독서 토론을 지도하던 선생님과 산사를 찾았다. 당일로 다녀오려던 일정이었지만 눈이 많이 내려 차량 운행이 일찍 끊겼다. 본의 아니게 산사에서 하루를 머물게 되었다. 

다음 날 새벽 여명에 창호지가 비취색으로 물들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황홀감이 찾아왔다. 그 순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불교를 공부해 보겠다고 생각하였다. 

그해 마지막 달력이 떨어지기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생각조차 못 했던 죽음이 눈앞에서 일어나자 무엇인가 의지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산사에서 느꼈던 불교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준비도 없이 시작한 불교학은 어려웠다. 분위기와 용어도 그렇지만 학문적 깊이와 공간적 넓이의 방대함에 좌절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신앙심도 깊어지고 불교 이해도 넓어지면서 전공하고 싶은 분야가 생겨났다. 한국불교를 전공한 것은 우리가 사는 이곳에 불교가 언제 들어오고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석사과정에서 관심을 두었던 분야는 신라불교였다. 한국불교 초기 모습을 살펴보려는 생각이었다. 그 가운데 대중들에게 많은 호응받았던 정토 신앙을 택했다. 그것은 불교 신앙이 어떤 위안을 줄 수 있느냐에 대한 평소의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의도였다. 또한 죽음에 직면한 중생들의 신앙적 염원이 어떻게 표출되는지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박사과정에서 관심을 두었던 분야는 근대불교였다. 현대불교가 태동하는 시대이며, 근대 이후 세상에 나온 전적에서 현재 우리의 모습을 알 수 있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격동기를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간 불교계의 모습도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이렇게 고대와 근대를 연구한 후 아래로 내려오고 위로 올라가면 한국불교를 통찰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근대불교 연구를 시작하자 가지처럼 파생되는 여러 주제를 연구하느라 좀처럼 상향(上向)하기 어려웠다. 자연히 고대부터의 하향(下向)도 쉽지 않았다. 

재주가 미천하여 힘든 여정이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일어난 불교의 모습을 찾는 일이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탐색하였다. 한 걸음 한 걸음 순례자의 자세로 연구하던 차에 기회를 제공한 곳이 대한불교진흥원이었다. 불교학 연구자들을 위한 ‘대원불교 학술 · 콘텐츠 공모’에 《한국불교통사》를 집필하겠다는 제안이 채택되어, 미흡하나마 한국 불교사 전체를 정리하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본서의 사관(史觀)은 두 방향이다. 하나는 삼국시대에서 현대까지 불교가 한국사회에 영향을 준 사상과 정책, 그리고 문화에대한 연구이고, 다른 하나는 왕조와 사회의 정책과 흐름이 불교에 미친 영향에 대한 통찰이다.

그런 토대 위에서 다음과 같은 집필 원칙을 세웠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한국 고대불교에서 현대불교까지 각 시대를 균등하게 분배하여 서술하는 것이었다. 연구자의 전공에 따라 특정 시대의 분량이 많아지는 것을 배제하기 위함이었다.

시대구분은 왕조 구분에서 벗어나 각 시대의 불교가 지향한 점을 강조하였다. 그것은 시대마다 불교의 발전과 침체는 물론 사회적으로 추구한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본서에서 가장 중점을 둔 참고 자료는 정사(正史)였다. 그 외 참고한 학술연구 자료는 뒤에 적시하였다. 이것은 본문을 간결하게 하여 역사서가 주는 무게를 줄이려는 생각이었다.

참고한 선행연구는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성과를 기준으로 하였다. 그러면서 최근 성과 가운데 중요성이 있는 것을 반영하였다. 학문 연구에 있어 초석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따라서 그 업적은 각주와 참고문헌을 통해 제시되어야 한다. 하지만 점점 그런 전통이 희석되면서 예전 연구 업적이 퇴색되고 있다. 안타까운 심정에 가능한 한 가장 앞선 선행연구를 참고하려고 노력하였다.

마지막으로 본서를 집필하면서 한글 서술을 기본 원칙으로 하였다. 역사서이지만 좀 더 대중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었다. 그렇지만 인명과 고유명사 그리고 한문으로 쓰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 내용은 한문을 병기하였다.

불교학을 전공한 세월이 40년이 넘었다. 그 시간 속에서 알게 된 가장 큰 진리는 법계는 누구 하나의 힘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연기법으로 볼 때 모두는 서로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관계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불교 역사를 집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게 되기까지 많은 학은(學恩)이 있었다. 그리고 학문의 장에서 만나 절차탁마의 시간을 보낸 많은 연구자의 진심 어린 비평이 있었다. 지면을 통해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처음 불교학을 시작할 때 가장 안타까운 것은 한글로 발간된 서적의 부재였다. 그러나 40성상의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이제는 학문적 안목이 깊은 학술서 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너무 지나쳐 원숙하지 못한 내용의 책들도 생겨난다. 

이 책 역시 불필요하게 서재의 공간을 차지하거나, 한쪽에 놓여 먼지만 쌓이는 존재 가운데 하나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김경집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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