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성찰

《그대는 장차 붓다가 되리라》(덕주, 2022) 473쪽
《그대는 장차 붓다가 되리라》(덕주, 2022) 473쪽

1980년에 작가로 데뷔한 이래 42년 동안 수십 권의 책을 내었다. 낸 책들은 문학으로는 소설, 시, 수필, 아동문학을 아우르고, 비문학으로는 철학, 종교, 명상, 리더십 등 여러 분야를 망라한다. 한편으로 보면 전문 분야가 분명하지 않은, 다른 편으로 보면 많은 분야를 아우르는 전천후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까지는 직업인으로서의 내가 걸어온 길이지만, 나는 나 자신을 글쟁이로서와 함께 ‘사람’으로 바라본다. 그것을 나는 “저는 글쓰기가 아니라 인생을 전공하는 사람이다”라는 말로 표현해 왔다. 젊은 시절 문학 잡지사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작가를 보았는데, 그중에는 작가로서는 뛰어나지만 사람으로서는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의 길’은 나를 마음 수양에 관심을 갖도록 이끌었다. 그것은 《논어》 《장자》 《사기》 등 동양 고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마침내는 공자에 대한 존숭의 염으로 자라났다. 이후 소크라테스와 예수를 알게 되었고, 최종적으로는 부처님에게서 삶의 답을 찾게 되었다.

내가 걸어온 사람의 길은 ‘거룩(聖)을 바라보며 살아온 과정’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 어니스트가 그랬듯이 나는 거룩을 우러러보며 살아왔다. 나의 ‘큰 바위 얼굴’인 사대성인들은 글을 쓰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공자님이 글을 쓰긴 했지만 그분은 조술을 했을 뿐 창작하지는 않았고, 나머지 분들은 글을 쓰지 않는 대신 말과 행동을 남겼다. 글을 남긴 이들은 성인에 못 미치는 현인들이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 공부는 멀리 현인에 미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아래아래 단계인 군자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꾸준히 마음을 관리해온 결과 범인 수준은 벗어났다고 자부한다. 나는 나 자신을 보통 사람인 범인과 작은 현인인 군자의 중간 지대에 있는 사람으로서의 학인이라고 생각한다.

사대성인만이 나의 큰 바위 얼굴은 아니었다. 내가 우러러본 큰 바위 얼굴은 글쓰기 분야에도 있었다. 나는 1980년에 수필가로, 1981년에는 동화작가로 데뷔했는데, 수필가로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는 금아 피천득 선생이고, 동화작가로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생텍쥐페리이다. 두 분은 나의 ‘가까운 큰 바위 얼굴’, 예컨대 나의 고향에 우뚝 서 있던 ‘남덕유산으로서의 큰 바위 얼굴’인 셈이다.

문학의 길을 걷는 동안에 나는 두 분 말고도 많은 위대한 작가들을 만났다. 셰익스피어, 괴테,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이 그들이다. 그중에서 소년 시절에 만난 단테를 빼놓을 수 없다. 열여섯 살 때 나는 청계천 고서점에서 그의 작품 《신곡》을 만났었다. 숭고함으로 가득한 그 시어(詩語)들! 그것은 문학으로 쓰인 ‘히말라야산맥으로서의 큰 바위 얼굴’이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단테 또한 ‘거룩’과 ‘문학’을 아우른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단테를 본받아 내가 우러러온 거룩과 평생에 몸담아 온 문학의 결합을 꿈꾸게 되었다. 2011년 1월 1일. 나는 그 목표를 위해 붓을 들었고, 글쓰기는 일 년 넘게 계속되었다. 2012년 부처님오신날을 기해 760페이지에 이르는, ‘소설로 쓰인 팔만대장경’이라는 의미를 담아 《소설경》이라 이름 붙인 작품이 출간되었다.

처음 이 책은 영국의 한 출판사에 의해 전 세계에 보급될 예정이었지만 일이 제대로 성사되지 못한 채 10년 세월이 흘렀다. 그러다가 2022년에 이르러 미국 워싱턴에 있는 마스코트북스(MascotBooks) 출판사에 의해 Six Month with Buddha라는 이름으로 책이 출간되었는데, 그와 시기를 맞추어 같은 책을 한국 덕주출판사를 통해 《그대는 장차 붓다가 되리라》라는 제목으로 재출간하였다. 

지옥, 연옥, 천국을 무대로 펼쳐지는 《신곡》은 역사상 가장 웅대한 무대 배경을 가진 문학 작품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 또한 《그대는 장차 붓다가 되리라》에서 욕계천, 선정천으로부터 수백 수천만, 수억 수십억에 이르는 천인과 천신들은 출현시키고 부처님, 사리뿟따, 밧디야, 웁빨라완나 등 부처님의 위대한 제자들을 통해 불법의 심오함과 미묘함을 드러내며, 그에 더하여 비천하고 타락한 중생들의 모습까지를 두루 아우르는 대작을 꿈꾸었다.

감히 《신곡》에 비견되는 명작을 꿈꾸다니! 그러나 불교가 기독교보다 훌륭한 종교임을 믿는 글쟁이로서 나는 그것을 두려워할 수 없었다. 《신곡》이 아니라도 위대한 기독교 문학 작품은 많다. 그에 비해 전 세계인이 읽을 만한 불교 문학 작품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러니 어찌 나의 능력 부족을 탓하며 이 도전을 멈출 수 있었겠는가.

나의 시도가 성공적이었는지 여부는 내가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 다만 나는 이 작품을 통해 나는 내가 추구해온 두 길을 종합할 수 있었다는 것과 결과물을 독자들과 나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보람을 느낀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향해 지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지금도 그 길을 가는 중이다. 글쓰기의 길과 거룩을 우러러보는 구도의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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