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포스트휴먼 시대의 도래와 불교

보1. 시작하며

보일스님 해인사 승가대 학장
보일스님 해인사 승가대 학장

인간의 몸은 첨단 과학기술을 통해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그 변화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며 그 변화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귀착된다. 그 질문은 다시 인간과 기계는 향후 어떤 관계를 맺게 될 것인가, 혹은 맺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으로 다시 확장될 수 있다. 

최근 4차 산업혁명 혹은 4차 혁명, 4차 인간, AI 시대 등등 과학기술의 비약적 혁신을 시대에 담아내기 위한 표현들이 속속 등장한다. 그 명칭의 적실성 여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전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 변화는 인간의 삶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꿔가고 있다. 인간의 주변 환경뿐만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 그중에서도 몸에 대한 인식과 태도의 변화가 주목된다. 과학기술을 통해 인간의 신체를 다양한 방법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은 유기적 신체가 반드시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최근 폭발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인간의 몸과 관련한 과학기술의 공통된 속성이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고, 그 속성이 과연 인간의 탈신체화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지를 가늠해본다. 인간은 어째서 몸속으로 기계를 수용하려고 할까 혹은 기계의 힘을 빌려 가면서까지 몸 밖으로 자아를 확장하려 할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이 글에서는 최근의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 대한 유망한 이론적 틀로 논의되고 있는 포스트휴머니즘의 탈신체성 논제를 중심으로 고찰한다. 

1) 연구의 배경

최근 인공지능을 비롯한 메타버스, 빅데이터, 유전자가위 기술, 자율주행 자동차, 블록체인 등등의 양자 도약과 같은 혁신은 경제, 사회, 문화의 다양한 영역에 걸쳐서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현실 세계의 모든 정보가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되는 시점은 더욱 앞당겨졌다. 이러한 대전환은 특정 영역에 국한된 변화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전통적 이해 방식마저도 변화시키고 있다. 즉 기존의 ‘휴머니즘’으로 대변되는 고전적 혹은 전통적 의미의 인간 이해가 더 이상 공감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인간은 첨단기술의 힘을 통해 생물학적, 생리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첨단 과학기술은 그에 부응하듯 그 개별 기술들을 통합 · 연결하는 융합기술이 고도화되면서 그 희망을 현실화시켜 나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과연 인간이 첨단기술을 통한 인간 신체 능력의 향상과 증강 혹은 확대가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으며, 인간과 기계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한 이론적 틀에는 어떤 논의가 있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고자 한다. 

2) 연구목적 및 방법

이 연구는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전방위적인 첨단 과학기술의 혁신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그 의미를 분석하고, 그 변화의 낙처가 어디인지 가늠해 보려는 시도이다. 그리고 이에 더해 이 변화가 인간에 대한 기존의 이해 방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찰하고 기존의 분석틀에 대해 비판적 고찰을 하려는 연구이다. 인간의 정신적 물리적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은 단순히 이전보다 좋아진다는 양적 전환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질적 전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인간이 달라진다면 기존의 인류가 구축해 놓은 교육과 법제도, 예술 등 전 영역에서 전통적 방법에 대한 재고가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선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등장한 기술 중에서 주목할 만한 기술들을 소개하고 그 의미를 하나하나 짚어보도록 한다. 그중에서도 인간의 신체 몸의 생물학적 한계 혹은 생리학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인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과 인공지능 알파폴드2 그리고 확장된 몸이라는 관점에서는 디지털 휴먼 기술과 클라우드 기술을 중심으로 고찰한다. 그리고 이들 기술의 공통된 속성을 도출하고 그 기술이 지향하는 바에 대해 비판적으로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 이를 위해 기존의 인간 이해를 변화시키는 철학적 논의라고 할 수 있는 포스트휴머니즘과 관련하여 탈(脫)신체성 논제를 중심으로 고찰하면서 그 이론적 한계를 비판한다. 

3) 선행연구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최근의 급격한 과학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철학, 종교, 예술, 교육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특히 인간의 신체, 즉 몸을 중심으로 한 인간 능력의 향상과 증강이 가져올 인간과 기계의 관계 정립에 관한 연구를 주로 참고한다. 그중에서도 우정길은 대표적인 트랜스 휴머니스트라고 할 수 있는 닉 보스트롬의 인간향상론에 대해서 교육학적 관점에서 비판적 연구를 시도한다. 우정길에 따르면 닉 보스트롬의 인간향상론은 근대 계몽주의 교육인간학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포스트휴머니즘이라는 상이한 이론적 지평 위에서 논의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김응준은 〈포스트휴먼 딜레마〉에서 포스트휴먼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잉여적인 것으로 변질시킴과 동시에 과학기술의 대상으로 요구하는 모순적 상황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또한 다른 논문 〈포스트휴먼 유토피아?〉를 통해서는 과학기술이 인간의 존재론적 의미를 왜곡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이인영은 〈가상인간과 육체 연구〉에서 가상현실 속 가상인간의 몸의 매개성을 다루면서 탈육체성에 대한 반론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의 몸에 대한 이해와 기계화된 몸 혹은 탈신체에 대한 논의는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의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이다. 대표적으로 로지 브라이도티의 《포스트휴먼》, 야니나 로의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 캐서린 헤일스의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 등에서는 인간의 몸과 기계에 대해서 공통으로 다루고 있다.

 

2. 탈경계와 탈신체 그리고 가상성 

최근 과학기술 발전 방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디지털 대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이른바 ‘빅테크’ 기업들에 의해 현실 세계의 방대한 양의 물리적 정보가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되는 중이다. 구체적인 예로서 인공지능 딥러닝 기술은 대량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동한다. 디지털 데이터는 인간에게 있어 마치 인체의 혈관을 흐르는 혈액과 같은 기능처럼 인공지능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딥러닝 기술이 고도화되면 될수록 인공지능의 학습에 더욱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 이러한 변화는 비단 인공지능 분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생명공학 분야만이 아니라 나노기술 등에서도 동시에 전개되고 있는 변화이다. 

이러한 기술은 모두 이른바 ‘가상성(virtualness)’이라는 공통된 속성을 공유한다. 다시 말해 현실 세계의 물리적 속성들을 가상 세계 혹은 온라인 공간의 디지털 정보로 변환하여 그 능력을 확장 혹은 증강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물리적 세계가 디지털 정보화된다는 의미는 ‘가상성’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디지털은 고정적, 확정적으로 존재하는 현실 세계의 물체들과는 달리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다. 디지털 데이터는 반도체나 하드디스크와 같은 매체에 실려 무한 복제 혹은 삭제도 가능하다. 또한 계산 속도나 메모리 양의 기하급수적 증가 속도에 따라 다양한 매체를 옮겨 다니면서 정보를 확대재생산(scaling up)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물리적인 매체와 거기에 실려 있는 정보는 별개의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매체를 옮겨 다니지만, 정보는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매체로서의 인간의 몸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빅데이터 기술의 등장으로 인간의 몸이야말로 인간이 가장 먼저 디지털 데이터로 구축 혹은 구현하고자 하는 매체가 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온 디지털 기술과 몸 밖으로 확장된 디지털 기술은 존재자와 외부 대상 세계를 구획하는 몸이라는 경계를 초월하게 된다. 

탈경계는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들의 경계가 무너진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탈경계는 기존의 육체를 버리고 완전히 디지털화하는 탈신체를 용이하게 만든다. ‘가상성’에 기반한 디지털 세계에서는 개별자로서의 고유성을 담지하는 정보가 온전하게 유지되는 한, 매체를 얼마든지 새롭게 확보하고 의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의 가상성은 인간의 몸을 관통하면서 외부세계로 확대되기 시작한다.

1) 메타버스: 편재한 가상성

최근의 디지털 기술 발전과 새로운 개념의 공간과 이미지 구현 기술은 기존의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인간의 몸에 대한 이해에 새로운 이해와 해석을 가져오게 만들고 있다. 메타버스 기술은 과거 단순히 온라인 게임을 위한 그래픽 공간 구현 수준이 아니라 막강한 수준의 GPU 혹은 TPU를 이용한 3D 그래픽 기술을 통해 가상현실을 창조해 내고 있다. 메타버스 기술은 상용화 초기 단계에서의 추상적이고 소박한 개념 정의를 넘어서서, 이제는 ‘가상현실과 현실 세계가 융복합되고 공존하는 공간’ 혹은 두 세계가 초연결되는 공간으로 이해한다. 이 메타버스 기술이 상용화 · 고도화된다는 것은 인간을 대신하는 ‘아바타(Avatar)’ 혹은 ‘에이전트(Agent)’와 같은 디지털 휴먼들이 활동할 공간이 확대된다는 의미이고, 대중적 수요와 흥미에 부합할 경우 더욱 무한 확장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때의 활동 주체와 공간 모두 가상성에 기반하고 현실 세계보다 훨씬 많고 다양한 세계가 구현될 것이다. 결국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된 인간의 몸은 메타버스 공간으로 확장 혹은 확대되고, 현실 세계의 유보된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다양한 법계에서 활동할 수많은 디지털 휴먼을 양산해 낼 것이다. 즉 원본인 물리적 신체는 하나이지만, 메타버스 공간에서는 무한 복제, 혹은 무한 양산되는 형태로 인간의 몸은 어느 곳에나 두루 존재하게 된다.

2) 신체 정보의 디지털화: ‘가상성의 시대’ 

캐서린 헤일스는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에서 사이버네틱스 전통에서 인공물의 개념 발전과정을 세 단계로 구분하면서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가상성이 강조된다고 설명한다. 헤일스에 따르면 가상성이란 “물질적 대상을 정보 패턴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문화적 개념”으로 정의한다. 헤일스가 여기서 가상성은 단순히 심리적 현상이 아니라 문화적 개념이라고 하는 이유는 “가상성은 강력한 기술들 안에 예화되면서 가상성이라는 개념이 가상 기술의 개발을 더욱 용이하게 하고, 기술은 개념을 강화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대로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은 정보와 물질 사이에서 정보의 중요성에 더욱 무게를 두면서, 정보가 더 본질적이라는 사고방식이 보편화될 것이다. 인공지능 딥러닝의 개발, 빅데이터, 컴퓨터 연산 능력의 향상 등의 사실들은 디지털 데이터의 확보와 활용이라는 목표로 수렴된다. 결국 우리는 ‘가상성’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그 ‘가상성’은 우리의 몸 안팎의 경계를 지워가고 있다. 

 

3. 몸속으로 들어온 디지털 기계

1)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두뇌의 기억과 생각을 디지털 데이터로

최근 인간의 기억과 생각 혹은 의도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할 수 있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인간의 몸 자체뿐만 아니라 두뇌에서 파생되는 신호나 화학반응을 디지털 데이터화한다는 구상이다. 인간의 몸속으로 기계가 들어온다고 하면, 기계 장치가 인간의 몸에 직접 침습적 방식으로 삽입하는 경우를 우선 떠올리게 된다. 3D 프린터를 통한 심장, 골격, 신장, 장기이식이나 삽입이 바로 그런 사례이다. 

하지만 여기서 다룰 내용은 그보다는 더욱 정밀하고 고도화된 형태의 기술로서 두뇌 정보를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하여 추출하거나 역으로 디지털 정보를 삽입 내지 이식하는 소위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 Computer Interface)’ 기술이다. 일론 머스크가 2017년 3월 설립한 ‘뉴럴링크(Neuralink)’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를 위해 뉴럴링크는 인간의 생각을 컴퓨터나 인터넷에 디지털 형태로 업로드하고 다운로드할 수 있는 ‘신경 레이스(neural lace)’라는 작은 전극을 인간의 두뇌에 이식한다는 구상을 실현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뇌가 만들어낸 신호를 얻고 이 신호들을 대량 분석을 통해 그 의미를 파악하면, 이 신호를 컴퓨터와 인터넷 세계에서 인식할 수 있는 디지털 신호로 변환한다는 것이다. 일론 머스크에 따르면 이러한 ‘피질 직결 인터페이스(direct cortical interface)’로 인간의 두뇌와 컴퓨터를 연결할 수 있다면, 인간의 지능을 비약적으로 증강시켜, 인공지능의 고도화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원리를 바탕으로 현재 ‘뉴럴링크’는 인간의 뇌로부터 뇌파를 수집하고, 기계로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원래 인간의 뇌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한다는 발상은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에서 최초로 창안한 것은 아니다. 소위 “BCI(Brain-Computer Interface)” 개념을 기반으로 한 연구는 1960년대부터 이미 시작되었고, 본격적인 연구는 1990년대 말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이 연구의 핵심은 생체신호를 인식하는 장치를 개발해 뇌의 신호를 정확히 얻어 내는 것과 그 얻어낸 신호의 패턴을 분석하는 것 두 가지로 요약된다. 당연히 이러한 연구에는 고도의 정밀성이 요구된다. 뇌에서 보낸 신호가 조금만 다르게 수집되거나 분석돼도 완전히 다른 결과로 나타나서 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처럼 뇌와 닿지 않은 상태인 헬멧을 쓰거나 많은 케이블이 연결된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는 것으로는 정확한 데이터를 얻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현재의 연구와 실험은 직접 인간의 두개골을 뚫는 것을 시도한다. 대담하다 못해 황당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이 연구 개념이 바로 ‘두뇌의 문’이라는 의미인 ‘브레인 게이트(Brain Gate)’이다. 이것은 바늘같이 생긴 약 100개의 실리콘 전극(Utah Array)을 뇌에 직접 연결하여, 뇌의 신호를 데이터로 측정해 실시간으로 컴퓨터로 전송하는 방식이다. 이 시도는 여러 동물실험을 거쳐 2004년부터 사람에게도 임상시험이 진행되었다. 수천 개의 전극에서 수신된 뇌의 아날로그 신호를 ‘N1’이라는 컴퓨터 칩을 통해 디지털 신호로 변환한다. 이 ‘N1’ 칩은 변환한 디지털 신호를 블루투스 기술을 통해 스마트폰으로 신호를 보낸다. 이렇게 해서 뇌의 신호로 스마트폰을 작동시키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뇌의 신호를 스마트폰이 받아내고 반대로 스마트폰이 뇌의 신호에 자극을 줄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즉 인간의 몸이 디지털 데이터화되면서 인간의 몸을 외부 장치에 의해 통제하고 제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인간의 몸은 이런 방식으로 디지털 기술을 통해 가상화될 수 있는 토대가 구축되는 것이다. 

2) 인공지능 알파폴드2: 생명을 읽어내다 

바둑을 두던 알파고는 이제 단순히 인공지능이 무엇인지를 인간들에게 확인시키는 정도에 머물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알파폴드2’의 개발이다. 2021년 7월, 알파고를 개발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던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는 알파폴드2라는 새로운 인공지능을 개발했다. 이 알파폴드2는 생명체가 가진 단백질 중에서 36만5천 개 이상의 단백질 접힘 구조를 예측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현재까지 구조가 밝혀진 단백질 개수는 약 17만 개, 생명체의 전체 단백질 수는 약 2억 개에 달한다. 인류는 전체 단백질 구조 중 0.085%의 구조를 밝혀냈을 뿐이다. 다시 말해, 1%도 채 밝혀내지 못했다는 말이다. 한 실험실에서 일 년 내내 분석해도 한 개에서 열 개 정도까지 알아내는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이 연구가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 개별 단백질이 접혀 있다는 점이다. 바로 ‘단백질 접힘(protein fold-ing)’ 현상이다. 마치 주머니 속에 욱여넣은 유선 이어폰처럼 제멋대로 얽힌 구조로 존재한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들이 서로 작용을 하면서 3차원의 입체 구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바로 이 3차원 구조에 따라 단백질의 성질이 변화한다. 예를 들어, 바이러스만 하더라도 구조 방식에 따라 그 기능과 작동 방식이 달라진다. 여기서 어째서 생명체의 단백질 구조가 접혀 있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것은 그 접힘 구조로 인해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지 않고도 최적화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단백질 구조를 분석해 내려면 각각의 단백질이 어떻게 접혀 있을지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하는데, 문제는 그 접히는 경우의 수가 천문학적인 수 개념으로 넘어간다는 점이다. 다만 실험적으로는 관측 불가능한 단백질 접힘 현상일지라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서는 관측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미 이 분야 연구에서는 인공지능이나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한 접근이 수년 전부터 시작되었지만, 기대와는 달리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이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 바로 단백질 구조 예측이 부정확하기 때문이다. 지난 50여 년간 연구자들에게 이것은 난제였는데, ‘알파폴드2’의 등장으로 상황은 극적으로 반전되기 시작했다. ‘알파폴드2’라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굳이 정리해보자면 ‘단백질 구조를 예측해서 그 접힘 문제를 해결하는 신경망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단백질 구조를 파악해야만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게 되고 반대로 그 삶을 위협하는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 개발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장에 단백질 구조 예측 연구에 투자하자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이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닐뿐더러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고까지 인식되었다. 연구자들은 누구나 단백질 구조 연구가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들기 때문에 쉽지 않은 분야이다. 

사실, 인공지능이 고도의 기계적 연산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지만 생명공학 분야에서의 활약은 또 예상 밖의 성취라고 할 만하다. 생명체에 대한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리하고 활용하는 일들은 이제 인공지능의 전담 분야가 되어가고 있다. 유기체에 대한 모든 정보가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되면서 신비한 생명 현상마저도 이제 데이터를 통해 분석하고 예측 가능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생명의 구조, 구체적으로는 단백질의 구조를 어떻게 인공지능을 적용하여 풀어내는 것일까. 돌이켜보면, 처음에 데미스 허사비스가 이 분야에 인공지능을 적용해 보겠다는 것도 놀라운 발상이었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라는 회의적 시선이 대부분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공지능 알파폴드는 그 어려운 것을 또 해낸다. 그 구체적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자. 알파폴드의 개발자들은 우선 기존 단백질의 배열이나 3차원 구조 정보를 알파폴드에 학습시킨다. 다시 말해, 이전에 다른 단백질 구조가 이런 구조였다라고 예시를 제시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알파폴드는 ‘CNN’이라는 이미지 인식 알고리즘을 통해 새로운 구조의 각 아미노산 간의 거리와 화합결합 각도, 즉 어느 정도로 접혀 있는지를 스스로 계산하게 된다. 이 방식은 구조 예측 시간을 줄이는 것은 물론 예측 정확도도 높이게 된다. 이제 인공지능은 생명을 연구하는 분야까지 빠른 속도로 도입되면서, 전례 없는 연구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인공지능은 결국 생명의 신비한 영역까지 다 읽어낼 태세이다. 

이 알파폴드2나 로제타폴드의 성과는 단순히 분자생물학 혹은 생명공학 분야의 성취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이제 인공지능은 인간을 비롯한 다른 생명의 구조까지도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딥마인드 측에서도 인정하다시피, 아직은 만족스러운 수준까지 이르지 못했고, 보완되고 향상할 요소가 많다. 하지만 알파폴드2의 등장을 지켜보면서 이제 인공지능이 생명마저도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음을 예감한다. 이 말은 머지않아 생명의 구조 분석을 통해 기존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게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아예 새로운 인간종의 탄생도 상상해 보게 한다.

 

4. 몸 밖으로 확장하는 디지털 기계

1) 디지털 휴먼: 자아의 확장

인간의 몸은 존재의 고유성과 개체성을 확인해 준다는 의미에서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 몸은 그 자체로 생물학적, 생리적 한계를 가진다. 최근의 메타버스와 디지털 휴먼 기술은 인간존재의 공간적 한계나 단일한 신체에서 오는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도전 중의 하나이다. 즉 디지털 휴먼을 매개로 한 ‘탈육체’의 시도이다. 일반적으로 디지털 휴먼을 가상공간 즉 메타버스에서 활동하게 되는 아바타 정도로 이해한다. 하지만 최근 디지털 휴먼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전에는 단순히 인터넷 공간에서 나를 상징하는 아바타가 활동하는 것이었다면, 현재의 디지털 휴먼 기술은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경계를 초월해서 두 세계가 상호작용 즉 상즉상입(相卽相入)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즉 메타버스 세계가 인간의 일상으로 들어오고, 인간의 일상 또한 메타버스 세계에서 구현된다. 따라서 메타버스는 디지털로 구현된 가상(virtual)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그 세계관과 사유 방식이 현실과 단절된 허구가 아니라 현실 세계를 관통하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휴먼은 그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공간 속에서 인간을 대신하거나 혹은 독립적으로 활동하도록 설계된 기술이다. 디지털 휴먼이란 “3D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기반으로 한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 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인간을 대리하거나 자율적으로 활동하는 인간모방형 디지털 알고리즘”이다. 이러한 이해는 메타버스와 현실 세계 사이의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관점을 반영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디지털 휴먼 기술은 인공지능 딥러닝 기술 그중에서도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 알고리즘)을 통해 인간의 원본 이미지보다도 더 선명하고 초정밀한 형태의 가공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기업들은 이 디지털 휴먼을 자사의 상업광고 모델로 삼아 다양한 인간의 고유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 기존 인물을 아바타로서 활용할 수도 있고, 전혀 새로운 인물을 탄생시킬 수도 있다. 현실 세계의 실존 인간과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디자인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도 디지털 데이터와 호환될 수 있도록 분석되고 대체되어 있다면, 디지털 공간으로 자신을 확장 내지 확대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이 될 것이다.

2) 클라우드 기술: 자아의 백업(back up) 장치 

디지털 데이터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기억이나 경험과 같은 방대한 두뇌 정보를 인간 몸 외부의 외장 하드 드라이브 같은 속에 실시간으로 연결해서 저장한다는 구상도 가능하다. 2019년,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네이버는 퀄컴 사와 협력을 통해 이른바 ‘브레인리스 로봇’을 선보였다. ‘브레인리스(Brainless)’ 즉 이 로봇에 뇌가 필요 없는 이유는 실시간으로 클라우드에 접속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굳이 로봇 머리에 공간을 크게 차지하면서까지 충격에 민감하고 외부 환경에 취약한 부품을 탑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제조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 시스템이 구현된다면 로봇 가격은 약 10분의 1 수준까지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이 클라우드 기술이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 Computer Interface)’ 기술과 융합되면 어떻게 될까. 인간의 몸이 현실 세계의 물리적 제약을 벗어나 무한한 가상공간으로 확장되는 경험이 가능해질 것이다. 

‘클라우드’란 컴퓨터를 통해 만들어낸 데이터를 저장할 때, 각자의 컴퓨터 내부에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으로 연결된 중앙 데이터 저장소에 따로 저장하는 디지털 기술이다. 그래서 이용자들은 개인적으로 언제 어디서나 필요할 때 데이터를 끌어다 쓸 수 있게 된다. 이 기술의 명칭인 영어 ‘cloud’는 우리말로 ‘구름’을 뜻한다. 마치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대지의 수분을 빨아들여 머금었다가, 세상 어느 곳이든 비를 뿌리는 것과 같다. 클라우드 기술도 세상의 데이터를 한곳으로 모아서 저장했다가 필요한 곳에 전송해 주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구름에 비유한다고 해서 클라우드라는 게 허공에 둥둥 떠다닌다든지 어떤 실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아마존 등의 클라우드를 운용하는 기업들은 외부 환경에 최적화된 중앙 저장소 즉 데이터 센터를 지구상 곳곳에 두고 있다. 

과거 인터넷을 통해서 사업을 하거나 데이터 활용도가 높은 사업의 경우, 회사에 독립적으로 서버를 구축하거나, 상용 ‘웹하드’를 이용하던 시절도 있었다. 당시 ‘웹하드’가 단지 데이터를 저장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면, 현재의 클라우드 기술은 데이터의 저장뿐만 아니라 데이터를 가지고 작업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까지 지원한다. 예를 들자면, 예전에는 컴퓨터나 태블릿, 핸드폰 등을 새로 구입하면 필요한 각종 소프트웨어를 일일이 설치해야만 했다. 윈도니, 워드니, 파워포인트니 하는 프로그램을 일일이 설치하자면 비용도 비용이지만,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넉넉지 않은 내 컴퓨터의 용량을 이 프로그램들이 차지해 버리는 것이 속상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소프트웨어를 내 컴퓨터에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클라우드에서 이미 설치돼 있는 소프트웨어를 필요할 때마다 불러들여 이용하면 되는 것이다. 이용자들은 비용과 개인용 컴퓨터의 저장용량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니까 훨씬 이득인 셈이다. 

요즘은 한술 더 떠서 이 클라우드에 인공지능 알고리즘까지 탑재한 경우도 등장하고 있다. 개인들이 구입하기엔 너무나 부담이 큰 슈퍼컴퓨터나 인공지능을 클라우드에 가입하기만 하면 이용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편리하다. 내 컴퓨터의 성능을 높일 필요도 없고, 필요한 일을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만 이용하는 방식이다. 이처럼 이 클라우드 기술은 향후 컴퓨터의 데이터만 옮겨 저장하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과 몸을 확장하는 통로이자 새로운 거점으로 활용될 여지가 크다. 

 

5. 탈신체와 마음 연장 기술

앞서 제시한 대표적인 기술 이외에도 다양한 기술이 인간의 몸속으로 수렴하거나 몸 밖으로 확장하면서 신체와 외부 환경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인간의 몸에 국한된 문제라기보다는 인간의 욕망 즉 마음이 작용하는 기술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몸을 매체로 삼은 디지털 데이터 기술들은 인간의 자아를 무한대로 확장하고자 하는 욕망의 산물이다. 특히 메타버스 보급과 상용화는 이러한 추세를 한층 가속화하고 있다. 가상의 디지털 공간 속에서 디지털화된 인간의 몸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작동하도록 설계된다. 트랜스 휴머니스트들은 인간이 이른바 ‘마음 연장 기술(extended-mind-Technology)’20)인 마인드 업로딩,21) 단백질 구조 예측 인공지능, 디지털 휴먼, 클라우드 기술 등을 통해 마음을 육체에 국한하지 않고, ‘가상성’의 도움으로 인종, 성(性), 나이 등의 족쇄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이 ‘마음 연장 기술’이 고도화 · 상용화될수록, 더 이상 신체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1) 포스트휴먼의 몸

캐서린 헤일스는 “포스트휴먼을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특징은 비생물적 요소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주체성이 구성되는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즉 포스트휴먼이 유기체로서 생물적 요소를 보유하는 것이 필수적인 요소가 아닐뿐더러 선호되지도 않는다고 볼 수 있다. 헤일스에 따르면 “포스트휴먼이란 첫째 물질적인 예화보다 정보 패턴을 특권화하고 둘째, 인간의 정체성이 의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식은 부수적인 것으로 보고 셋째, 신체란 인간이 조작법을 배워가는 최초의 인공기관으로 파악하고 넷째, 인간과 지능을 가진 기계 사이에도 경계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접합할 수 있는 관계로 설정”하는 것을 특징으로 삼는다. 이 특징을 토대로 본다면, 포스트휴먼에게는 고전적 의미의 생물학적 신체를 고수할 이유는 없고, 디지털 데이터로 구현된 몸을 통해 더욱 자유롭고 확장된 자아를 실현할 수 있게 된다. 

2) 포스트휴먼의 탈신체화와 새로운 신체

포스트휴머니즘에 따르면, 포스트휴먼에 대해 디지털 데이터의 가상성을 공유하는 인간의 몸과 메타버스가 만나 더 이상 생물학적 육체가 필요하지 않은 단계라고 이해한다. 완전히 디지털 휴먼화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 단계에서 몸이라는 것을 폐기해도 무방하거나 자유로워질까. 여기서 한스 모라벡의 견해는 이 문제에 대한 역설적인 상황을 가늠케 한다. 모라벡은 “특이점이 도래하게 되면, 인간의 마음은 결점 많은 껍데기에 불과한 육체를 벗어던지고, 더 나아 보이는 형상을 갖춘 인공적인 용기(容器)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주장한다. 모라벡이 말하는 ‘용기’는 온라인 공간 속에서 그 개별자로서의 존재를 대내외적으로 확인케 할 수 있는 고유의 형상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탈신체화에 성공한 특정 존재의 의식이 온라인 공간을 부유하다가도 동일성에 대한 신원확인의 필요에 의해서도 디지털 휴먼과 같은 일종의 의식을 담아낼 그릇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최종적으로 인간의 몸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고 하더라도, 디지털 공간에서 또 다른 몸의 속성, 즉 디지털 기반의 수용체는 요구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가상성을 띠고 있는 메타버스 공간 속의 디지털 기반 존재들도 최소한 “인간이 자기동일성을 구축하고 관계적 소통을 유지하기 위한 근간”으로써 몸을 필요로 하게 된다. 결국 탈신체를 기획하는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노력은 포스트휴먼을 탄생시키게 되더라도 다시 또 다른 형상을 필요로 하는 모순과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가상성’을 강조하는 관점이 곧바로 탈신체화를 동조하거나 지지한다고는 볼 수 없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정보와 물질의 단절이 야기하는 문제에 저항하는 신체화된 과정을 복원 또는 반복적으로 환기하는 기능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물리적으로 철학적으로도 폐기 혹은 소거될 수 없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6. 끝맺으며

지금까지 인간의 몸을 매개로 한 디지털 기계 장치의 개발과 그 구체적 사례들을 제시하면서, 가상성에 기반한 탈경계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 트랜스 휴머니즘의 탈신체화 경향에 대해 비판적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현실 세계의 모든 정보가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되어가는 최근 과학기술의 변화 속에서 ‘가상성’은 현실 세계는 물론 인간의 몸마저도 탈경계와 탈신체화로 가는 행로를 더욱 촉진하고 있다. 이러한 전개 방향은 트랜스 휴머니즘에서 추구하는 소위 ‘인간향상(enhancement)’이라는 목표와 궤를 같이하면서, 사실상 인간의 영생 혹은 불멸로 가는 행로를 밟아가고 있다. 이것은 유발 하라리의 지적처럼 향후 인간이 “몸과 마음을 업그레이드하는 데는 성공한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마음을 잃게 될 것이다. 사실 기술인본주의(트랜스 휴머니즘)는 결국 인간을 다운그레이드할 것이다.”25)라는 우려를 낳을 만하다. 처음에는 누구나 기술 일변도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고 심리적 저항을 하겠지만, “살면서 누구나 겪는 위기를 맞아 절박한 선택을 할 때마다 조금씩 기술을 받아들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26) 

무상한 인간의 몸에 대해 집착을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몸을 해방 혹은 폐기할 대상으로 설정하는 것도 극단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는 더욱 거세져만 가고, 몸 안팎으로 가상성이 관통하면서 모든 주체를 마치 무중력 상태의 우주 공간에서처럼 부유(浮遊)하게 만들거나 원심력에 의해 멀리 날려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로지 브라이도티의 주장대로 각 주체의 ‘관계적 능력’27)을 통해 구심력을 확보하려는 모색이 절실해진다. ■

 

보일 padoyang@naver.com
해인사승가대학 졸업. 서울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현재 해인사승가대학에서 기본교육과정 학인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며, 주로 동아시아 불교, 그중에서도 6~7세기 중국과 한국불교의 사상적 교류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또한 출가 학인들에게 불교를 효과적으로 소개하는 방편으로서 불교와 인공지능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의미에 지속적 관심을 두고 있다. 최근의 논문으로 〈디지털휴먼에 대한 불교적 관점〉 〈인공지능 챗봇에 대한 선문답 알고리즘의 데이터〉 등이 있고, 저서로 《AI 부디즘》이 있다. 현재 해인사승가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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