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철 중앙승가대 교수
김응철 중앙승가대 교수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특징을 가진 호모사피엔스의 인류(human beings)는 새로운 변화의 기로에 직면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류는 자연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생물학적인 유전자의 변이를 통해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인간의 모습은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자연의 능력을 넘어선 새로운 인간종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자연 상태의 인간(human)은 변화 과정에 있는 트랜스휴먼(trans human)으로, 그리고 이를 넘어선 포스트휴먼(post human)으로 달려가는 중이다. 이러한 변화는 전쟁이나 각종 사건 사고로 신체적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첨단 의료기술이 적용되면서 시작되었다. 암벽을 등반하다가 동상으로 두 다리를 잃은 휴 허(Hugh Herr) 박사는 인공지능과 생체공학을 접목한 로봇 의족을 개발하였고, 자신이 만든 로봇 의족을 착용하면서 첨족, 뇌졸중, 뇌성마비, 다발성 경화증 등으로 발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공했다. 

이러한 변화의 근저에는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규정 기술’의 개발이 자리 잡고 있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불의 활용은 인간의 음식문화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으며, 이동해야만 하는 수렵사회에서 정주사회로 전환하는 획기적 변화를 초래했다. 쟁기의 개발은 농업 생산을 비약적으로 증대시켰으며 농경사회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증기기관의 등장으로 인류는 인간의 노동력이나 동물의 힘, 바람 등 자연 에너지를 대신하여 인공적인 동력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전기의 생산은 인간의 삶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명사회로 변모시켰다. 그리고 반도체를 활용한 컴퓨터의 개발은 인공지능과 로봇을 활용하는 포스트휴먼의 시대를 도래하게 한 것이다. 

줄리언 헉슬리(Julian Huxley, 1887~1975)는 트랜스휴먼을 “인간을 넘어선 인간”으로, 그리고 포스트휴먼을 “인간을 초월한 후의 인간”으로 설명한 바 있다. 이미 인류는 마비를 극복하고 근력을 강화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현재의 인간보다 몇 배의 힘을 낼 수 있는 도구 제작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인공심장을 비롯하여 다양한 인공장기가 등장하고, 인간을 복제할 수 있는 기술까지 개발했다. 그리고 이제는 트랜스휴먼의 시대를 넘어서서 인간의 뇌와 기계를 결합한 새로운 인간의 시대 즉 포스트휴먼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휴 허의 로봇 의족은 인간의 뇌세포와 신경, 그리고 기계장치인 의족이 결합된 것으로 기존의 의족과는 전혀 새로운 형태였다. 이러한 형태를 사이보그(Cyborg) 즉, 컴퓨터와 인간의 육체를 합성한 합성인간 혹은 인조인간이라고 명명했다. 사이보그는 인간보다 지적 능력이 뛰어날 수도 있고, 육체적으로도 더 강인하다. 인공신경과 연결할 수 있는 생체 칩이 개발되어 인간의 육체에 이식된 완벽한 합성인간 탄생도 기대할 수 있다. 

한편 초정밀, 초미세의 반도체 칩의 개발은 인간과 기계의 결합을 촉진시키고 있다. 더 나아가 로봇이라고 하는 기계에 생체 칩이 결합되어 자율적으로 인식하고 생각할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도 등장하고 있다. 순수한 프로그램만으로 제작된 기계지능(machine intelligence)이 얼마나 강력한 능력을 가졌는지는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의 개발로 확인된 바 있다. 그렇지만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결에서 완승을 거둔 알파고는 이미 낡은 기술이 되어 버렸다. 자율 심화학습 프로그램이 내장된 새로운 인공지능은 전 세계의 모든 프로 바둑기사가 동시에 도전해도 이길 수 없는 신의 경지에 도달한 상태이다.

이 같은 배경에는 일반 머리카락의 십만 분의 일 크기에 해당하는 나노미터급의 반도체 칩 개발, 그리고 원자의 크기를 측정할 수 있는 1조 분의 1미터에 해당하는 피코미터를 측정할 수 있는 초미세 기술이 자리 잡고 있다. 1피코미터는 1,000나노미터로, 3나노미터부터는 양자현상이 나타나 전혀 새로운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데우스’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이미 인간은 불생불멸의 경지에 들어섰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간은 신의 경지에 도달하여 새로운 인간을 탄생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인공 자궁을 개발하여 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소셜 로봇을 만들어 인간의 사랑을 왜곡, 혹은 변형시키는 단계에 진입했다. 다만 윤리적인 논쟁 때문에 주춤하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인류는 싫든 좋든 개인의 선호와 관계없이 순수한 자연 상태의 인간, 첨단 반도체 칩의 도움을 받는 인간, 인간의 생체를 활용하는 로봇 등 다양한 존재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 포스트휴먼 시대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브루스 매즐리시(Bruce Mazlish, 1923~2016)는 이러한 현상을 “인류의 네 번째 불연속성”으로 규정한 바 있다. 그는 인류의 역사상 중요한 지적 혁명은 기존의 생각과 다른 불연속을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하면서, 네 가지의 지적 혁명을 제시했다. 첫째는 지구와 우주의 관계를 재설정하게 만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 인간이 사는 곳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우주의 극히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했다. 둘째는 다윈의 진화론으로 인간과 동물의 차이에 대한 불연속의 인식을 극복하게 했다. 오늘의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며 앞으로도 계속 진화해갈 것이라는 과학적 지식을 수용했다. 셋째는 프로이트의 정신병리학적 이론으로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불연속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넷째로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의 개발은 인간과 기계 사이의 관계를 재인식시키며 포스트휴먼의 세계를 다시 인식하게 했다는 것이다.

포스트휴먼 시대의 인간은 출산 방식의 변화, 인간과 동물의 사고 교류, 인간과 기계적 인간의 관계 재설정, 급격한 자연환경의 변화에 대응해야만 하는 생존 방법 모색, 그리고 우주로 나아가야만 하는 인류가 활용할 수밖에 없는 인공지능 로봇 등에 대해서 새로운 통합적 인식이 필요해졌다. 

불교에서 바라본 전통적 인간관은 색 · 수 · 상 · 행 · 식의 오온설에 근거하고 있다. 포스트휴먼의 관점에서 보면 신체를 구성하는 색온(色蘊)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으며, 정신을 구성하는 식온(識蘊)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게 되었다. 색온은 전통적 인간의 생체, 장기, 모발 등을 중심으로 설명하였는데 여기에 기계적 부품, 생체와 소통하는 반도체 칩의 개발이 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통적인 인간의 의식은 색온의 지속적인 접촉, 상상, 의지 작용 등의 결합과 축적으로 형성된다고 설명해왔다. 그러나 프로그램으로 구현된 인공지능, 인공지능과 결합된 생체 칩 등으로 전달되는 의식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는 더 논의가 필요하다. 

무명에 빠진 중생들이 밝은 지혜를 가진 존재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수행을 통한 자각과 궁극의 깨달음의 과정이 요구되었다. 십이연기법에서 설명하듯이 태어남과 병들고 죽는 윤회의 삶에서 벗어나려면 근본 무명의 타파가 필요한데, 포스트휴먼들은 어떻게 무명을 타파할 것인지를 모색해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무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 과정이 인공지능의 개발에 포함된다면 포스트휴먼의 수행법 개발에도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부처님은 무명의 타파를 위해서는 정견(正見)이 성취되어야 하고, 정견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사성제(四聖諦)의 체득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포스트휴먼에게 정견이란 무엇이고, 사성제는 어떻게 체득할 것인가, 그리고 선정 체험은 어떻게 하며 이를 통해서 깨달음과 해탈을 이룬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불교의 가르침에는 이미 현재의 인간들이 미래의 포스트휴먼 시대의 인간들과 소통할 수 있는 원리가 포함되어 있다. 그렇지만 세부적인 방법을 찾는 것은 포스트휴먼 시대를 살아가야만 하는 현재의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불교평론》에서 논의하는 포스트휴먼에 대한 전문적인 의견들이 향후 전법교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해주기를 기대한다.

 

2022년 9월

김응철(본지 편집위원)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