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현대시조와 불교 ⑥ 

1.

1990년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냉전체제 아래서 강제 분단된 독일의 통일은 단순한 국가 간의 통일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역사가 해체되는 것과 동시에 공산권의 파산을 의미했다. 독일 통일 이후 소련연방 국가들이 해체되며 공산 진영 자체가 무너져 버림으로써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세력 사이의 냉전체제는 완전히 종식되었다.

이에 따라 이데올로기라는 거대 담론이 점차 논쟁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한국사회에서도 진보 진영의 사회변혁적 이념이 소멸해 갔다.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이어서 1998년 국민의 정부에 이르는 민주화 정착 과정에서 현실참여 계열의 문학은 더 이상 문학적 담론을 생성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데올로기 논쟁이 사라진 자리에는 대중문화와 대중 소비사회가 도래하여, 후기 자본주의의 소비적, 즉흥적, 물신적 요소들이 폭발적으로 분출했고, 급기야 1997년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했던 외환위기로 IMF 구제금융 사태를 맞이했다. 이러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부문의 성장과 쇠퇴라는 급격한 변화는 현대문학사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90년대 현대문학사에서 특이한 양상으로는 그동안 소외되었던 개인 · 타자 · 욕망 · 여성 · 환경 · 동물 · 지방 등 근대 주체들에 대한 미시적 존재의 가치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것은 근대화 과정의 중심에 있던 역사 · 조국 · 해방 · 민중 · 계급 · 통일 등 민족문학과 진보 진영이 사유했던 거시적 담론이 과거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후기 자본주의가 대중문화 속으로 침전되면서 다양한 시청각 매체의 등장과 함께 1990년대 문학은 근대적 주체로부터 배제되었던 타자들을 소환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다양한 시적 인식과 현대적 미학을 투영시키면서 현대시조를 견인했다. 

교육적인 측면에서는 전문화된 문학 창작인들을 육성하면서 고양된 문학 정신이 두드러졌다. 수도권은 물론 지방대학교와 전문대학에 문예창작과가 개설됐다. 국어국문학이라는 순수학문의 한계를 벗어나 제도권하에서 전문 창작인들을 직업적으로 배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지방자치제가 활성화되면서 관공서 및 문화센터에서 시 창작과 관련된 문화강좌가 곳곳에 생겨나 대중의 참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자유시뿐만 아니라 시조를 병행해서 교육함으로써 현대시조의 저변도 확대되었다. 그것은 20~30대의 젊은 층이 아닌 30대 이상의 중년기 남성과 여성에게 내재해 있던 문학에 대한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일간지 신춘문예와 각종 문예지의 신인 공모에 40대 이상의 등단자가 속출하면서 2000년대의 이른바 실버문학이 주류를 이루는 데 기여하게 된다. 거기에 지역 분권화가 강화되면서 지역 문예지들이 자립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하여 지역 시조시인들의 역량을 발산할 수 있는 장이 되었다. 이처럼 신인문학상 제도를 통해 시조시인들을 배출하고 시조문학상이 확대, 신설되면서 1990년대 시조단은 그동안 축적된 시조의 다양성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대 문화적인 측면에서 1988년 올림픽 이후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고유성을 찾아가는 문화 역사의식의 각성이 생겨났다. 단적으로 ‘신토불이’와 같이 우리의 것을 의식적으로 지향하는 대중들이 늘어나면서 자국민으로서 긍지를 높이기 시작했다. 원래 ‘신토불이(身土不二)’는 불교에서 유래한 용어다. 여기서 말하는 ‘불이’는 근본적으로 모든 사물이 둘로 대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서 구분이 없다는 것. 불이(不二) 는 신토(身土)와 함께 사람의 몸은 그 몸이 태어난 땅과 둘로 나눌 수 없다는 의미이다. 사실상 신토불이는 이분법적 구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불이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부처의 가르침이 스며들어 있다. 이처럼 보편적 가치를 가진 불교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1990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정신에 침윤되고 있었다. 

 

2. 

당시의 시조시인들 역시 고유한 언어로 민족의 감정과 정서를 파고들고 있다. 이 가운데 1990년대 시조시단의 주류를 형성한 시인으로 하순희, 이종문, 박명숙, 이달균, 문순자, 김수엽, 김삼환, 서숙희, 홍성운, 강현덕, 우은숙, 박권숙, 김세진, 이해완, 장수현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일상에서 시적 소재를 담아내면서도 다양한 불교적 스펙트럼과 함께 다원적인 시조 미학을 추구하였다. 요컨대 1990년대 불교시조는 불교를 날 것 그대로 형상화하지 않고, 시조라는 형식 속에 불교 의식을 이성과 감각으로 용해하고 있다. 급변하는 시대에 맞서 생경한 불교적 사유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탐구한 존재론적 의미를 불교적 사유로 사물화하면서 깨달음의 경지를 감각화한 것이다. 

먼저 살펴볼 김삼환, 서숙희, 홍성운 등의 시조는 선법을 참구하는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형상화하고 있다. 

 

좌선은 불교의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방법의 하나다. 김삼환(1958~  )의 〈묵언(默言)의 힘〉 역시 불교의 묵언과 가부좌 수행으로 불교적 사유를 드러낸다. 1992년 《한국시조》 신인상으로 등단한 김삼환은 ‘역류’ 동인으로 첫 시집으로 《적막을 줍는 새》를 펴냈다. 말보다는 성찰로써 언술보다는 고백으로써 시조를 완성하는 그의 시편을 통해 부끄러워할 줄 아는 묵언의 향기를 볼 수 있다.

 

표지 낡은 계간지가 꽂혀 있는 서가에서

책 속에 숨어 사는
벌레들은 말이 없고

빛바랜 인물사진이
가부좌를 틀고 있다

말 많은 그 입에서 말버짐꽃 피고 질 때

상처를 씻어내는
저 묵언의 힘을 보라
새순을 싹 틔우는 나무
허공에서 붓을 치듯!

— 김삼환 〈묵언(默言)의 힘〉 전문

 

2수 10행으로 된 이 시조는 ‘오래된 서가’에서 ‘낡은 계간지’에 ‘묵언’이라는 시의식을 투사하면서 시작된다. 말 없는 계간지에 말없이 살고 있는 ‘벌레’와 ‘빛바랜 인물이 가부좌를 틀고’ 있다. 그렇지만 계간지 밖에 실재하는 인물은 ‘말 많은 그 입’으로 ‘말버짐꽃’을 피운다. 이때 말은 언어의 한계에 대한 모순을 드러내는 것으로 무의미하게 쏟아내는 일상 언어를 대변한다. 반면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책 속에서 형상화된 말은 말이 없어도 “상처를 씻어내는/ 저 묵언의 힘”을 가진다. 마치 말없이 한 곳에서 가부좌하고 “새순을 싹 틔우는 나무”처럼 고요한 “허공에서 붓을 치”고 있는 ‘묵언의 생명성’으로 확장된다. 

가부좌의 수행법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시편 〈민들레 스님〉의 서숙희(1959~  )는 1992년 〈매일신문〉과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첫 시집 2000년 《그대 아니라도 꽃은 피어》를 발간했으며, 시조의 형식은 시인에 의해 조립되고 독자에 의해 공인된다고 믿는 그녀의 시조는 보수적 형식을 고집한다. 시조의 기본적인 음절을 추구할 때 자유시와 변별성이 생기며 이를 시조 형식으로 취할 때 시조시인의 임무를 완수한다는 것이다.

 

우리 동네 골목길 허름한 담벼락 밑
한 스님 터를 잡고 하안거에 들었다
얼굴빛 노랗게 뜨도록 장좌불와 정진이다
이마에 얹힌 화두는 비움과 가벼움
비틀대는 걸음들을 묵언으로 받아내며
깊숙이 뿌리로 내린 꼿꼿한 결가부좌

그 여름 다 끝나던 어느 맑은 해제일에
흔적 하나 벗어 놓고 깃털 되어 떠났다
신발도 바랑도 없는, 참 가벼운 만행길

— 서숙희 〈민들레 스님〉 전문

 

이 시는 어느 곳에서나 터를 잡고 사철 꽃을 피우는 ‘민들레’를 ‘스님’으로 표상한다. 화려하진 않지만 생명력이 강한 민들레가 어느 날 화자의 “동네 골목길 허름한 담벼락 밑”에 피어난 것을 스님이 터를 잡고 하안거에 들어간 것으로 비유한다. 그러면서 민들레 이미지와 불교의 좌선을 치환하여 묘사한다. 이를테면 1, 2수 각 종장에서 “얼굴빛 노랗게 뜨도록 장좌불와”와 “깊숙이 뿌리로 내린 꼿꼿한 결가부좌” 등으로 병치하고 있는데, 눕지 않고 용맹정진하는 수도승의 장좌불와 모습을 “얼굴빛 노랗게 뜨도록” 피어 있는 민들레꽃으로 비유한다. 또한 ‘결가부좌’는 명상을 위한 좌법으로 “깊숙이 뿌리로 내린 꼿꼿한” 자세로 버티고 있는 ‘민들레 뿌리’의 모습을 상징한다. 3수 ‘하안거 해제일’은 “흔적 하나 벗어 놓고 깃털 되어”가는 민들레 씨앗을 수도승의 “신발도 바랑도 없는, 참 가벼운 만행길”로 표상한다.

좌선하는 스님을 형상화한 시조시인으로 199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홍성운(1959~  )이 있다. 제주 봉성 출생의 홍성운은 첫 시집으로 《숨은 꽃을 찾아서》가 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제주도 자연과 역사 문화를 바탕으로 식물적 상상력이 주를 이룬다. 제주 4 · 3 사건에서 휘발된 모순을 시대적 침묵에서 불러내어 강인한 자연의 생명력과 포용력으로 정화하는 에너지를 보여준다. 

 

새소리가 모이네
환한 단청 빛으로

 

절집에 뭐 쪼을 게 있다고 참새들 부산떠나. 둥치 굵은 소나무에 목청 굵은 비둘기, 담장 너머 옥수수밭에 제주휘파람새, 미루나무 우듬지에 입도(入島) 2세 까치 부부, 산울림인 듯 먼 데서 발정한 수꿩 울음

참말이지 생각의 끈을 풀면 어디 푸르지 않은 게 있으리. 소리 아닌 게 있으리. 색깔 밖의 문, 소리 밖의 문을 열어 좌선하는 스님들, 넋두리 새소리쯤은 놓아주고 있음이다

 

한 등짐
나도 부릴까
아, 이 세상 잡새 소리

— 홍성운 〈한마음선원에서〉 전문3)

사설시조로 된 이 시편은 사찰 ‘한마음선원’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거기에 깃든 모든 사물을 시적 사건으로 만들며 “환한 단청 빛으로” 되살려낸다. 이른바 절집에 있는 참새, 소나무, 비둘기, 옥수수, 휘파람새, 미루나무, 까치, 수꿩 등을 하나의 주제로 합일한다. 바로 “참말이지 생각의 끈을 풀면 어디 푸르지 않은 게 있으리”라는 언술이다. 이는 시인이 발견한 깨달음의 핵심이면서 나아가 모든 생명의 원천은 “소리 아닌 게 있으리”라고 귀결된다. 거기에 “색깔 밖의 문, 소리 밖의 문을 열어 좌선하는 스님들”을 통해 사찰은 “이 세상 잡새 소리”와 변별되는 지점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3.

불교의 교리를 총체적으로 밝혀 놓은 경전을 통틀어 ‘일체경’ 또는 ‘대장경’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팔만대장경이라고 할 만큼 방대해서 그 내용과 해석도 다양하다. 정치, 경제, 사회로부터 천문학, 의약, 약학 심지어는 철학 사상에 이르기까지 고대로부터 이어온 세계의 이치와 삶의 지혜가 기록되어 있다.

경전은 형식상 경(經), 율(律), 논(論) 세 가지로 분류한다. 경은 부처님 말씀이 기록된 경전이고, 율은 주로 불자들이 지켜야 할 실천 덕목으로 계율과 규약이며, 논은 ‘경’과 ‘율’에 대한 해석과 주석이다. 

불교 교리를 소재로 하는 시편들은 부처님 말씀을 시인 나름대로 해석한 것이다. 이처럼 시적 상상력을 불교 교리를 통해 현시하고 있는 1990년대 시조시인으로 문순자, 강현덕, 우은숙, 장수현 등이 있다. 이들은 사물에 깃들어 있는 존재 의미를 경전을 통해 비유하거나 이미지화하고 있다. 

사월 초파일이 코앞이라 그런가
시루 속 콩나물이
까까머리 동자승 같다
톡 치면
금강경 한 구절
묻어나는
물방울

— 문순자 〈금강경〉 전문

 

《금강경》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이 본래 이름으로 지혜의 정체를 금강의 견실함에 비유한 불경이다. 단수로 된 이 시는 ‘사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시루 속 콩나물”과 “까까머리 동자승”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교차시키면서 어디에도 집착 없는 천진난만한 마음을 담아냈다. 종장에 “톡 치면/ 금강경 한 구절/ 묻어나는/ 물방울”에서 물방울은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치환할 수 있으며, 사랑을 주면서 무엇을 바라거나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금강경 한 구절” 말씀이 배어 있다. 

 

파계사
어둔 저녁
울리는
저 북소리

가여운
산새들
허둥대다
숨어버리고
돌계단
오르던 바람
놀라 되돌아가고

대웅전
문 열려서
성큼
내려선 관음

어느새
달도 내려
앞뜰 가득
환한 보리수

파계사
저 큰 북소리
울려 젖는 저 화엄.

— 강현덕 〈파계사 북소리〉 전문

 

대구시 팔공산에 있는 파계사의 북소리를 소재로 하는 이 시편 종장의 ‘화엄’은 《화엄경》에서 나온 말이다. 《화엄경》에서 화(華)는 부처님의 만행과 만덕을 꽃에 비유한 것으로 이 꽃으로 ‘장엄’하는 것이 화엄이다. 파계사에서 울려 퍼지는 “어둔 저녁 북소리”는 대중들을 향한 부처님의 자비가 들어 있다. 1수 중장과 종장은 파계사의 북소리에 놀란 “산새들/ 허둥대다/ 숨어버리고/ 돌계단/ 오르던 바람’ 또한 ‘놀라 되돌아”가는 풍경을 묘사한다. 2수에서 “대웅전/ 문 열려서/ 성큼/ 내려선 관음”은 아미타불의 왼편에서 교화를 돕는 관세음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은 세상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어느새/ 달도 내려/ 앞뜰 가득/ 환한 보리수”에서 우리가 사는 이곳이 부처님의 화엄 세상임을 밝히고 있다. 

《천수경》을 시편에 새기고 있는 우은숙(1961~  )은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그 전에 시조 전문지 《시조와 비평》에서 신인상을 받았으며 첫 시집으로 《마른꽃》이 있다. 경희대학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의 시조는 형식의 ‘멋’과 내용의 ‘맛’을 한껏 느낄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언어를 시조로 조탁하는 행위가 얼마나 고독한지 보여주면서 새로운 현실세계 인식을 추구한다.

어머니는 굴을 파고 그 속에 사신다
우물이었던 몸에서 세월을 다 토해내고
오늘 또, 몸속 깊숙이 두레박을 내린다

퍼내도 다시 고였던 화수분의 어머니
천천히 한 움큼씩 화농의 시간 덜어
천수경 독경 소리를 빈 우물에 새긴다

— 우은숙 〈빈 우물〉 전문

 

2수로 된 이 시조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천수경》을 현시한다. 《천수경》은 관세음보살의 광대한 자비심을 찬양하는 대표적인 경전이다. 1수에서 관세음보살의 자비심을 드러내는데, ‘우물’을 굴을 파고 살아오신 어머니의 마음으로 비유하여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다. 시인은 “오늘 또, 몸속 깊숙이 두레박을 내린다”에서 마르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을 표상한다. 그것은 2수에서 “퍼내도 다시 고였던 화수분의 어머니”라고 구체화되고 있으며 곪아서 고름이 생겨난 “화농의 시간”에 가닿게 한다. “천수경 독경 소리”가 새겨진 ‘빈 우물’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온, 지워지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이다.

《반야심경》을 시조에 담아낸 장수현(1973~  ) 시인은 199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시조단에 나왔다. 금호시조대상을 수상했고 첫 시집 《기억의 모서리에 푸른빛이 스며 있다》를 출간한 그는 학창 시절 조태일, 이은봉, 박현덕 시인으로부터 시와 시조를 배웠다. 

 

1.

볕 좋은 밭고랑마다
쭈그려 앉은 아낙네들

온종일
무딘 호미로
반야심경 새기고 있다

 

2.

무한천공 바람도 멎는
저, 수고로운 들판

겨우내
웅그린 씨알들

화두(話頭)
피워 올린다

— 장수현 〈들판경(經)〉 전문7)

연작 시조로 된 이 시는 ‘들판’을 한 권의 경전으로 판독함으로써 〈들판경〉이라는 조어를 생성해 낸다. 장 시인의 〈들판경〉은 대승불교의 핵심 교리를 담은 《반야심경》이 원형이다. 반야 경전의 중심사상이 270자로 함축된 《반야심경》은 가장 널리 독송 되는 경전으로 공 사상을 담고 있으며, 완전한 명칭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는 의미로서, 물질적인 존재는 서로의 관계 속에서 변화하므로 현상으로는 존재해도 실체와 주체 그리고 자성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이같이 ‘봄날 들판’에서 “쭈그려 앉은 아낙네들”의 ‘무딘 호미’로 심는 씨앗은 주기와 계절에 따라서 자라나고 성장하고, 꽃과 열매 등으로 변화한다. 그러므로 이 ‘꽃’을 피워올리는 ‘화두’는 실체가 없는 존재로부터 공의 의미를 파고들게 한다. 

 

4.

사찰은 세속과 분리된 성스러운 공간으로서 수행 도량이다. 이 도량을 구성하는 석탑, 석불, 석등 등은 사찰의 경내에서 승속을 오가는 대중을 먼저 맞이한다. 백제 시대에 최초로 건축되어 오늘날 전해오는 석탑 중에는 익산 미륵사지석탑이 가장 오래되었고 석탑의 시원 형식을 갖추고 있어 한국 석탑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부처 형상을 한 석불의 경우 돌을 조각하여 만든 것으로 석불상과 바위에 새겨 만든 마애불상이 있다. 

이 같은 석탑과 석불은 구도자에서 중생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상징이며 부처의 또 다른 현현으로서 신성시되어 왔다. 1990년대 시조에서 경내에 있는 석탑과 석불 등을 소재로 불교 의식을 첨가한 시조시인으로 이종문, 김수엽, 이달균, 김세진 등이 있다. 이들 시인의 공통점은 주로 천년 사찰을 모티브로 불교적 가치에 다가선다. 이른바 김수엽과 김세진이 석탑에 집중하여 불교적 사유를 탐구한다면 이종문, 이달균은 석불과 석등을 통해 불교 의식을 탁마하고 있다. 

 

푸른,
하늘 한 조각
삶의 영역은 높다. 

정 끝에 실린 땀
서러움 그 깊이로

그 높이
사랑을 쌓고
그림자를 뱉었다

돌 하나
인연 하나
층층이 쌓아놓고

세월을
각인하는 거친 손놀림 자국

탑 밑에
이끼 숨소리
연꽃으로
피어

— 김수엽 〈탑〉 전문

 

민들레의 삶에도
오랜 망설임은 있다

송림사 오층 전탑
탑신부 옥개석 위

여태껏
탐색 중에 있는
만개한 저 홀씨들

최적의 낙하점을
오래도록 고누다가

몇 번의 바람길을
줄곧 놓쳐 버리고

서둘러
곤두박질치는
어디쯤일까, 저 탑 그늘

— 김세진 〈삶에는, 망설임이 있다〉 전문 

 

위 시편들은 석탑을 소재로 하고 있다. 먼저 〈탑〉을 창작한 김수엽은 1991년 샘터시조상 가작과 1992년 〈중앙일보〉에서 신인들을 대상으로 매월 실시하는 시조백일장에서 연말 장원을 수상했다. 이 같은 김수엽의 습작은 199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결실을 맺었다. 군산여자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었던 그의 시조 세계는 현대사회의 자아와 타자, 개인과 공동체, 도시와 농촌 등의 갈등과 혼돈을 매개로 하고 있다. 대중성과 현대성을 회복해 기득권에 의해 잠식된 1990년대 시조문학의 새로운 지층을 쌓는 데 기여했다는평가를 받고 있다.

2수로 된 이 시편은 석탑을 향한 “푸른,/ 하늘 한 조각/ 삶의 영역”에서 출발하여 천년을 넘나들며 “정 끝에 실린 땀/ 서러움 그 깊이”를 상상한다. 시인의 상상력은 이때 석탑을 봉헌했던 대중들의 “그 높이/ 사랑을 쌓고/ 그림자” 속으로 파고든다. 그것은 2수에서 “돌 하나/ 인연 하나/ 층층이 쌓아놓고”로 이어지는데, “탑 밑에/ 이끼 숨소리/ 연꽃”을 향한다. 그리고 “피어/ 온/ 다”라는 마지막 구절로 석탑층 마디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여운을 남긴다. 

1998년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연말 장원으로 등단한 김세진(1962~  )은 조형적 언어로써 시각적 요소들을 통해 공간과 탈공간을 넘나든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공간이 해체되고 변형되는 과정에서 시조의 몽타주 기법이 사용된다.

그의 시조 〈삶에는, 망설임이 있다〉에 등장하는 ‘석탑’은 경북 칠곡군 동명면에 보물로 지정된 ‘송림사 오층 전탑’이다. 이 석탑이 있는 송림사는 신라 진흥왕 때 진나라 사신이 불서 2,700권과 불사리를 가져왔을 때 이를 봉안하고자 세운 절이다. 시인은 1수에서 오층 석탑 “탑신부 옥개석 위”의 “만개한 민들레 홀씨”를 발견한다. 이어서 2수에서는 “최적의 낙하점을” 찾고 있던 민들레가 “몇 번의 바람길을/ 줄곧 놓쳐 버”렸다는 서술로 뜻대로 되지 않는 세계의 갈등 구조를 나타낸다. 이로써 “서둘러/ 곤두박질치는/ 어디쯤일까, 저 탑 그늘”에서 민들레 씨앗처럼 모든 사물은 어디 가도 부처의 세계 아래 위치할 뿐이며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상기한다. 

다음 이종문과 이달균 시조 시인은 석불을 소재로 시조를 창착하고 있다.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시조단에 나온 이종문(1955~  )은 계명대에서 한문학을 전공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한문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계명대 교수 출신이다. 그의 작품은 시조 아닌 시조의 형식을 통해 시조의 변용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를테면 ‘시’의 원형에 집중하면서 확산 이미지를 구가하는 가운데 압축과 절제미를 시조 형식으로 보충하고 있는 것이다.

 

1.

눈물이여!
눈물이 나서 눈 뒤집힌 돌 계집이 돌부처 코를 깨어 産樂으로 달여 먹고,
코 없는 돌부처 앞에 밤새도록 빌었다.

 

2.


없는
돌부처 위에
宿緣처럼 앉아 있는

풀무치 날개 끝에 장삼 빛 밤이 오면,
천년을 숨어 산 이의
가을 병이
도진다.

 

3.

천년을 하루같이 남의 머리 이고 서서 피도 안 도는데 숨인들 쉬었을까.
산처럼 밀려온 놀을 어이 참고 견뎠노

— 이종문 〈石佛〉 전문

 

사람아 얽은 석장승 맘같이 고운 사람아
다래끼의 눈썹 하나 섬돌 밑에 묻어두고
실상사 어둔 석등같이 그리워서 운다

— 이달균 〈실상사〉 전문

 

이종문의 시조는 제목에서 보이듯 ‘석불’을 앞세우고 있다. 각 시편에서는 시대를 넘나드는 돌부처에 얽힌 사연을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 소환하면서 천년의 이야기를 전한다. 1편에서는 ‘코 없는 돌부처’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2편에서는 ‘목 없는 돌부처’의 엄숙함을, 3편에서는 “천년을 하루같이” 중생들의 고뇌를 ‘머리에 이고’ 살았던 돌부처를 형상화하고 있다.

〈실상사〉를 쓴 이달균은 1995년 《시조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계간 《시와 생명》 편집인인 그는 첫 시집으로 《남해행》을 출간했으며, 경남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생성과 소멸이라는 존재의 근원을 추구하는 그의 시조 세계는 소멸의 힘이 발휘되는 가운데 존재의 원상회복을 꾀하고 있다. 이 시조의 소재가 되는 실상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고찰로 전북 남원의 지리산에 위치한다. 석등과 함께 등장하는 “석장승 맘같이 고운 사람아”에서 석장승은 실상사로 가는 길목에 세워진 3기의 석돌을 말한다. 실상사를 지키는 각 장승의 몸에는 상원주장군, 대장군, 옹호금사축귀장군이라고 새겨져 있다. 여기에 “실상사 어둔 석등”은 팔각형으로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보물 제35호를 일컫는다. 이 석등은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화려한 무늬와 함께 통일신라 후기의 뛰어난 장식성을 자랑한다. 온 누리를 환하게 비추기 위해 몸체의 여덟 면 모두 사각창을 내어 부처의 자비를 담은 불빛을 밝히고 있다.

 

5.

마지막으로 살펴볼 1990년대 불교시조의 특징으로는 삶과 죽음의 연장선에서 사후의 세계가 펼쳐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윤회와 환생 그리고 초월적 세계관은 각 종교마다 내세의 구원관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불교에서 윤회는 자업자득의 법칙으로 존재하며 현세의 행위가 내세를 결정하는 주요 원인이라는 교리이다. 윤회는 어떤 불변하는 영혼이 육신을 갈아입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결합되어 있던 개체가 해체되면서 현세에 지었던 업에 따라서 재구성되며. 사후 세계는 현실을 초월한 여러 지층의 세계로 구분되어 있다고 한다. 

불교에서 현시하는 사후의 세계를 모티브로 한 시조시인으로 하순희, 박명숙, 박권숙, 이해완 등을 들 수 있다. 이해완과 박권숙은 윤회를 중심으로 환생을, 하순희와 박명숙은 초월적 세계를 통해 개성적 미학을 추구한다. 

아래 〈강천사에서〉를 창작한 이해완(1962~  )은 1990년 《샘터》 시조상을 수상 후 1992년 《겨레시조》 신인상을 받고, 1995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했다. 광주와 목포 등 호남 지역에서 활동 중인 그의 시조는 두 가지로 파악할 수 있다. 이를테면 역사성과 근원성이 두드러지는데 그의 시에서 역사는 분노와 절망이 아닌 용서와 평화로 화합한다. 또한 삶의 근원성을 주제로 한 작품에서는 죽음을 통해 삶을 응시하고자 한다. 

강천사 앞 개울에 멈춘 듯 흐르는 물
이 물빛 맑음새에 환하게 드러나는
알몸의 돌멩이들은
참말 평화로워라

 

한 번은 우리들도 돌멩이로 태어나서
타는 불볕 아래 육신을 말리거나
조용히 흐르는 물에
밀린 때를 벗겨야 하리

 

정말 가능하다면 그렇게 때를 씻고
경건히 그대 손에 들려진 작은 돌멩이로
간절한 소망의 돌탑
그 위에 나 앉고 싶네.

— 이해완 〈강천사에서〉 전문

 

산사꽃 이마 스친 낮달을 따라가다
직지사 관음전 앞 무릎 꿇은 석수 본다
이승의 어느 굽이가 저승에 닿아 있을까

 

산 첩첩 차오르는 범종의 자국들은
마음 깊은 동굴에 종유석을 키우고
세월의 풍랑만큼씩 두터워져 갔을까

 

유폐의 울음들이 돌이 되어 앉으면
봄은 늘 수미산에 펄럭이는 푸른 만장
너머엔 당초무늬 진 먼 환생도 보이느니

— 박권숙 〈돌사자 앞에서〉 전문

 

이해완의 시편 제목인 〈강천사〉는 전북 순창군 팔달면 강천산에 있는 사찰이다. 시인은 이 사찰의 “앞 개울에 멈춘 듯 흐르는 물” 속에 있는 ‘알몸의 돌멩이들’을 통해 평화로움을 발견한다. 시인이 바라보는 ‘평화’는 고요함에서 오는 것으로, 세상의 번뇌를 벗어버린 채 태어남으로 이어진다. 바로 “한번은 우리들도 돌멩이로 태어나서” 세상의 번뇌를 ‘흐르는 물’속에 씻고 있는 돌멩이처럼 살아가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상으로부터 더럽혀진 “밀린 때를 벗겨야” 새로 태어날 수 있다는 시인의 ‘경건한 환생 의지’가 “간절한 소망의 돌탑”에 깃들어 있다. 

위의 시조처럼 3수로 된 박권숙의 〈돌사자 앞에서〉 역시 이승과 저승 사이에 놓인 환생을 노래한다.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시인 박권숙(1962~2021)은 1991년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연말 장원으로 등단했으며, 1993년 중앙시조대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첫 시집으로 《겨울 묵시록》이 있는 그녀의 시조는 죽음의 한계를 넘어서 고독과 절망을 견디는 힘으로 세계에 저항하면서 실존을 탐구한다. 이 시 또한 “직지사 관음전 앞 무릎 꿇은 석수”를 관찰하면서 “이승의 어느 굽이가 저승에 가 닿아 있”는지 파고든다. 그것은 ‘범종의 자국들’과 ‘마음 깊은 동굴에 새겨진 종유석’을 통해 그 너머에 있는 “먼 환생”의 불가역적인 시간을 떠올린다. 

다음의 시조를 창작한 하순희와 박명숙의 시편에서는 불교 의식 속에서만 통하는 초월적 세계를 보여준다. 〈하회마을〉의 하순희는 경남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1990년 한국아동문학연구소 신인문학상 동시조 부문으로 등단했다. 그다음 해 각각 〈경남신문〉과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첫 시집으로 《별 하나를 기다리며》를 발간했다. 그녀의 작품 세계는 시조 장르의 전통적 서정의 원리와는 생경한 지점에 있다. 말하자면 시적 발상 자체가 자아의 감정에서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 세계를 통해 근원성을 탐색하고 역사를 음미하는 것이다.

기왓장

내 살아 건너가는 이승의 한 구비에
물도리동 토담 위 퍼렇게 눈뜨고 있는
조선의 기왓장처럼 뉘 품에 안기울까

 

삼신당 느티나무

가고 오는 발길은 육백 년이 더 지났어도
합장하는 마음은 붙박이 그대로다
애끓는 소원들 맺혀 잎눈 붉게 터진다.


병산서원

평생 지녀 살고픈 마음속의 그림 한 폭
서책에 파묻힌 나날 매화 눈을 틔우며
빛나는 화장세계를 펼치어 보이는가.

— 하순희 〈하회마을〉 전문

 

초경을 치르는 날
선운 숲은 어둡다
눈썹 긴 처녀들은
혼령보다 서늘한데
도솔천
낭자한 선혈이
세상으로 새고 있다

— 박명숙 〈개상사화〉 전문

 

3수 3연으로 각 편마다 소제목을 달고 있는 하순희의 시조는 하회마을의 역사적 생태성을 통해 시적 전경이 조직되면서 초월적 세계로 확장된다. 이를테면 ‘기왓장’에서는 세계를 “건너가는 이승의 한 구비”로 파악하고, ‘삼신당 느티나무’에서는 ‘육백 년’ 합장하는 발길 속에서 그 소원들을 읽어낸다. ‘병산서원’에 이르러 “빛나는 화장세계를 펼치어 보이”는 하회마을의 진면모를 형상화한다. 이때 ‘화장세계’는 불교에서 그리는 연꽃에서 태어난 세계 또는 연꽃 속에 담긴, 도를 이룬 세계다. 현실을 초극하여 나타나는 이 세계는 반야의 지혜로 완성한 절대 긍정의 진리로 다가온다. 

〈개상사화〉를 창작한 박명숙(1956~  ) 시인은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대구 지역에서 활동하는 그녀는 첫 시집으로 《은빛 소나기》를 펴냈으며, 중 · 고등학교 국어 교사를 지냈다. 관념과 추상에서 벗어나 있는 박명숙의 시조는 이미지와 상징을 통해 응축과 울림으로 시적 진폭을 키우는 데 지난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 시는 ‘선운산 숲’에 붉게 피어 있는 ‘개상사화’를 소재로 한다. 매년 9월이면 전북 고창 천년고찰 선운사 주변의 숲과 계곡이 벌겋게 물들어 이른바 상사화라고 불리는 붉은 꽃무릇이 만개한다. 장엄하게 피어 있는 상사화를 시인은 처녀의 ‘초경’ ‘낭자한 선혈’ 등으로 비유하면서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한 진한 그리움을 ‘혼령보다 서늘’하게 삭이고 있는 모습을 몽환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군락을 이룬 선운산 골짜기와 선운사 도솔암 사이에서 ‘도솔천’을 불러온다. ‘도솔천’은 덕업을 쌓고 불심이 깊은 사람만이 죽어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장소라는데, 문학에서 정신적 이상향을 상징한다. 

 

이처럼 1990년대 불교시조는 우리 삶의 보편적 가치 탐구를 불교적 사유로 편철해 나갔다. 그런 이유로 경전과 사찰, 석탑, 석등 등을 소재로 하거나 윤회, 환생 등을 주제로 한 시편을 1990년대 시조 작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거기에 다양한 현실 인식과 시조 미학이 합일되면서 이성과 감성이 혼전하는 가운데 정화되고 정제된 시적 양상이 나타난다. 절제된 시조 형식으로 고도화된 시 세계를 구성하는 데 불교의 보편적 가치가 자연스럽게 침윤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의 보편적 가치를 자연스럽게 흡수한 1990년대 현대시조는 2000년대를 향해 가면서 다양한 미학을 추구해왔다. ■

 

권성훈
문학평론가. 2013년 《작가세계》 평론 신인상 당선. 한신대 종교학과, 경기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고려대 박사후과정 수료. 시집 《밤은 밤을 열면서》 외 2권과 저서 《시치료의 이론과 실제》 《현대시 미학 산책》 《현대시조의 도그마 너머》 등이 있다. 현재 경기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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