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천사(香泉寺)에서 은은한 분 향내를 따라갔더니 마당 한쪽에 핀 백일홍꽃이 성숙한 여인의 얼굴처럼 화사했다 화사한 백일홍에 젊은 스님이 붙어서 심심풀이로 줄기의 겉껍질을 벗겨내고 있었다 탈피된 백일홍의 매끈한 속껍질이 여인의 속살처럼 보여 얼굴이 화끈했다 바닥에 쌓인 껍질들은 여인이 벗어놓은 옷 같았다 미술관에서도 누드화만 만나면 눈길을 떼지 못하는 나인지라 한창 젊은 나이의 수도자가 한편으로 이해가 되었지만 절마당엔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그래도 내가 아는 스님이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놀리듯 한마디 했다 “옷을 벗겨놓으니 살이 곱네요” 그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번뇌를 한 겹 한 겹 벗겨내니 마음이 맑아졌어요” 미처 몰랐는데 마음에도 누드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백일홍 누드가 깨끗이 닦아낸 거울처럼 고왔다

 

— 시집 《너는누구냐》(문학아카데미, 2021)

 

이용하
2019년 《문학과창작》으로 등단. 동국대, 카이스트, 시라큐스대 컴표터과학 박사. 현재 컴퓨터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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