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9일 저녁, 내설악 만해마을에서는 청년만해축전 행사가 열렸다. 행사에 앞서 당일 금강산 신계사에서는 만해 스님 열반 70주기 남북합동다례재를 봉행했다. 축전 행사에 앞서 신계사 법회를 다녀온 30명을 대표해서 조계종 민족공동체 추진본부장 지홍 스님이 인사말을 했다. 당시 만해마을 교육원장 소임을 맡고 있던 나는 민추본, 대한불교청년회 등과 남북합동다례재를 추진하여 방문단의 일원으로 신계사 법회에 동참했다. 돌이켜보면 그날 행사는 8년여 전에 그 단초가 시작된 것 같다.

개교 100주년을 앞둔 동국대학교는, 100년 전 명진학교 건학에 동참한 북한 지역 5개 사찰을 방문해서 남북의 불교와 학술문화 교류의 장을 펼치고자 평불협 이사장 법타 스님을 통해서 2005년 가을, 북측 조선불교도연맹에 방북의 뜻을 전달했다. 뒤늦게 2006년 3월 초에 조불련은 “동국대 방문단을 초청하여 보현사에서 백주년 기념법회를 허락한다.”는 전문을 보내왔다. 함북 길주에서 일본으로 무단 반출되었던 북관대첩비를 남측 불교계가 앞장서서 일본 정부로부터 반환받아 삼일절을 맞이하여 개성에서 북측에 인도한 직후였다. 나는 2006년 3월 14일부터 4박 5일 동안 동국대 백주년 기념 북한방문단의 실무팀장을 맡아 동행했다.

3월 17일 오전 11시, 묘향산 보현사 대웅전에서 동국대학교 건학 백주년 기념법회가 열렸다. 남측 참가자는 동국대 이사장 현해 스님, 홍기삼 총장, 서윤길 대학원장 그리고 법타 스님 등 14명이었다. 북측에서는 보현사 주지 청운 스님을 비롯해서 묘향산 7개 암자 주지 스님들, 보현사 신도회장과 신도들, 그리고 조불련 심상진(법공) 부위원장과 정서정(성화) 서기장 등이 동참했다. 

그날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1940년대에 동진출가했다는 청운 스님이 현해 스님과 차담을 나누며 해방 직후의 동국대학에 대한 기억과 현해 스님의 은사이신 만화 스님을 회고하는 모습이었다. 노스님들의 말씀과 표정 속에서 분단 이전 남북 불교가 하나였음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에 앞서 방문단은 3월 16일에 김일성종합대학을 방문했다. 성자립 총장이 직접 방문단을 맞이하여 환영 인사를 했고, 건학 100주년을 맞이한 동국대학교와 개교 60주년이 되는 김일성대학의 학술교류에 대해서 양교 총장이 의견을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홍기삼 총장은 독립지사로서 북에서도 높게 평가하는 만해 한용운과 단재 신채호에 대한 공동 학술토론을 제안했다. 그 결과로 양교는 학술교류의향서를 작성하여 동국대 서윤길 대학원장과 김일성대학 조철 부총장이 서명하였다. 양교는 2006년 가을에 학술토론회를 합동으로 추진하기로 하고, 그해 상반기에 개성에서 실무협의를 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서 2006년 4월 3일에 동국대 황종연 교수(국어국문학), 김용현 교수(북한학)와 필자가 개성을 방문하여 김일성대학 문학부 교수와 만나서 공동학술토론회를 위한 1차 실무회의를 가졌다. 단재 신채호와 만해 한용운에 대한 남북의 학술연구를 소개하고 향후 공동 연구를 위한 기초를 마련하자는 우리의 제안에 북측에서도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북측은 단재 신채호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이뤄져 있으며, 발표된 만해 관련 연구논문도 몇 편 있고, 대학 교재에 만해의 시가 일부 소개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나 2006년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인하여 양교의 공동학술토론회는 준비 단계에서 무산되고말았다.

나는 그 이후에도 우리 문화재 제자리 찾기 활동 등으로 두 차례 북한방문을 하면서 동국대 출판부가 편찬한 《한국불교전서》 전질을 김일성대학에 전달했고, 조불련을 통해서 만해 스님 관련 학술토론회를 계속 제안했다. 하지만 금강산관광 중단과 연평도 포격 사건 등으로 북측과의 교류는 지속할 수 없었다. 

2013년부터 나는 만해마을에 근무하면서 만해축전 기획과 행사 준비를 담당하게 되었다. 마침 만해 스님 열반 70주기를 앞두고 만해를 기루는 남북공동 학술토론회와 추모법회를 기획하면서, 2006년 개성 실무회의에 함께했던 황종연 교수에게 학술토론 주제와 세미나 준비를 상의했다. 황 교수는 ‘한용운의 제국주의 비판’과 ‘동아시아 지식인으로서의 한용운’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제안했다. 조계종에서 남북교류를 담당하는 민추본에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조불련에 만해 스님 70주기인 2014년 6월 29일에 금강산 신계사에서 공동행사 개최를 제안했다. 조불련은 뒤늦게 그해 5월에 회신을 보내왔는데, 학술토론회는 준비 기간이 촉박하여 차후에 추진하자는 내용과 함께 70주기 남북합동다례재에 30명을 초청했다. 

행사 당일 금강산호텔 별관 환영오찬장에서 조불련 전국신도회 리현숙 부위원장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이는 예전 북한방문 때 조불련에서 안내를 담당하여 구면이었다. 

나는 만해 스님의 손녀 한명심이 북측 신문에 쓴 할아버지 한용운과 아버지 한보국을 회고하는 글을 읽었다고 말하며, 리 부위원장에게 만해의 후손들에 관한 이야기를 물었다. 그이는 ‘해방전쟁 때 독립지사 한용운의 아들 한보국이 딸들과 함께 평양으로 와서 살았다. 공화국의 배려로 결혼도 하고 자손이 번성했다. 피복소 등에서 간부로 일하면서 유복하게 살다가 돌아가셨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그리고 ‘세 명의 딸이 있는데, 그들 중에서도 한명심과는 자주 만나고 있다.’라고 했다. 

필자가 만해마을에서 매년 열리는 만해축전에 그분들을 초청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좋은 날이 오겠죠.”라고 화답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아직도 가끔 그 ‘좋은 날’을 꿈꾸고 있다.         

김윤길 / 전 만해마을 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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