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조음 이름으로 출판 일을 한 지 20년이 되었다. 그 전에 출판사에 근무했고, 불교복지법인 신문기자 등 출판에 몸담은 지 그러저러 30년은 된 것 같다. 그것도 불교전문 출판이다. 

인생의 반은 부처님 말씀 안(?)에서 살았는데 아직도 출판에 관해 개운치 않은 일이 있으니 바로 저작권 관련이다. 특히 세상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아름다운 계절, 부처님오신날 즈음이면 괜스레 부처님께 투정도 부리고 싶고, 언론에 오르락거리는 불교학자들에게 부아가 난다.

지금은 자고로 디지털 혁명 시대인데 디지털 서비스 산업에 우리 불교는 어디쯤 있는지 가슴이 답답하다.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 소프트, 알리바바, IBM 등 이런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하다, 이솝우화의 〈여우와 신 포도〉가 떠올랐다. 여우는 높이 달린 맛있는 포도를 따 먹을 수 없자 ‘저 포도는 신 포도야.’ 하고 발길을 돌린다. 나도 슬쩍 생각을 돌려보았다.

지금 불교학자들의 수준이 5세기 날란다대학 학생들의 수준이라면 사람들의 일상은 깨달음으로 향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어 세계가 불교문화 콘텐츠 활성화로 부처님 가르침이 온갖 미디어에 등장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얼마 전 이야기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불교설화를 모아 엮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 친분이 있는 불교학자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자신이 모 신문에 연재했던 불교설화가 있단다. ‘오잉! 그거 괜찮겠네!’ 싶어서 약간의 흥분을 숨기고 원고를 달라고 해 훑어보았더니, 익히 봐왔던 이야기다. 특이할 게 없었다. 약간의 실망을 또 숨기고(내심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를 찾아 넣겠다는 야심 찬 생각으로) 원고료를 물었다. 그런데 와르르― 머리가 복잡해졌다. 마음은 ‘안 해!’라고 결정했지만 씁쓸함이 한편에서 스멀스멀 일어난다.

이쯤에서 불자로서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이 시대에 전법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내 깜냥으로 이야기해야겠다.

나는 학자들이나 스님들이 풀어놓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듬고 폼 나게 꾸며 그것을 엮어내는 일을 하는 불교 출판사를 하고 있다. 그것으로 업을 삼고 있으니 부처님은 내게 무한히 감사한 분이시다. 더욱이 늘 부처님 말씀을 이리저리 접하고 있으니 내 속에 스며들어 나를 맑히기도 하고 올곧게 세우기도 하니 난 참으로 복이 많은 사람이다. 

흩어져 있는 불교설화 즉, 인터넷이나 사찰 등에 전해 내려오는 불교설화는 그 근간이 《삼국유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삼국유사》에서 불교설화 부문을 해석해 놓은 것을 누군가 그럴싸하게 다듬어서 먼저 올려놓으면, 그때부터 그 사람 글이 된다. 그래서 그 글을 허락 없이 다른 곳에 사용하면 저작권 침해가 된다. 어이쿠! 그렇다면 책으로 엮는 문제는 생각해 볼 일이라는 게 그다음 자동으로 드는 생각이다. 저작권이 책으로 엮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니까.

선사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발 알아들으라고, 눈치 좀 채라고 설화를 만들어 전하는 것을 거래한다고? 좋다! 거래해서라도 널리 알려진다면야…… 그렇지만 그 돈이 장애가 되어 거래가 끊어진다. 그것이 문제다. 

보각국사 일연 스님께서 이 사실을 아신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최근 몇 개월 사이의 일이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인 이기화 선생께서 수천 년에 거쳐 그것도 중국에 전해오는 영어로 된 이야기를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을 하셨다. 대만의 불타교육기금회에서 만든 것을 세계 각국어로 번역하여 냈으니 널리 전하는 것에 목적이 있어 번역료니, 인세니 그런 것이 전혀 없다. 그저 마음껏 많이 만들어서 널리 읽히면 된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이 교수님은 서울 모 사찰을 통해 책을 널리 보급할 요량으로 번역료는 물론 당신이 책 제작비의 일부를 보시하고 이리저리 권선하여 주지 스님과 거사들도 보시하고 해서 책을 내게 되었다. 수천 년 전부터 중국에 전해오는 방생 공덕의 이야기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읽히고 있다. 

책을 내는 데 장애가 없으니 내용은 살리고 책의 모양새는 시대에 맞추어 바뀌었다. 그러나 중국 내의 이야기이니 중국 그림이고 중국 이야기이다. 

출판 과정 내내 고개를 드는 생각은 미국과 중국이 디지털 플랫폼 시장을 80%가량 장악하고 있다는데, 이 시대에 한국불교가 우리 문화에 스며드는 역할은 얼마나 하고 있나 하는 궁금증이다. 아마 눈을 부릅뜨고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AI, 메타버스 시대에 우리 불교계는 우수한 디지털 인재(人材)를 얼마나 확보했나? 창조적인 디지털 서비스를 설계할 만한 불자가 어디에 있던가?

생명 존중과 방생의 공덕이 하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플랫폼에서 가져다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인재가 절실하다. 하지만 현실을 절감할 수 있는 것은 지방에서 온 소포를 접할 때다. 살짝 정겹기도 하면서 한숨이 나온다. 그 속에는 손글씨의 원고가 들어 있다. 그게 우리 불교계 현실이다. ‘난 기계는 안 해요!’ 이게 이유다! 호호 누가 모를 줄 알고!(컴퓨터를 할 줄 모른다는 것을)

어쭙잖은 계산으로 부처님 말씀을 가둬두지 말고 지금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디지털 시대라는 현실과 대면해야 할 때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각 종교 간 디지털 플랫폼 전쟁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무궁무진한 불교 이야기가 세상에 널려 있어 어린아이,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모든 불자가 쉽게 접할 수 있다면, 디지털 플랫폼 시대에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그들에 의해 경전이 재탄생할지 생각만 해도 흥분된다. 

 이주현 / 도서출판 해조음 대표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