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1933~2022)
박경훈(1933~2022)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한국 불교계에는 크나큰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1960년 1월 1일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계 신문인 〈대한불교〉가 창간된 것이다. 물론 일제 강점기에 〈불교시보〉라는 친일 신문이 있었지만, 일왕의 얼굴을 1면에 올리며 굴욕적인 기사를 다루어 국민을 부끄럽게 한 그 신문은 우리 불가의 정통 신문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조계종의 기관지 〈대한불교〉의 창간은, 지지부진한 불교 근대사를 떨쳐버리고 한국불교의 사회참여를 주창하는 첫 언론지의 위치를 차지하였다. 그 후 〈불교신문〉이라고 이름을 바꾼 이 신문은 총무원장인 청담 스님이 발행인을 맡고, 효봉 스님의 상좌인 일초 스님(시인 고은)이 주필로 활동하며, 종교언론계와 문화계에서 불교의 위상을 높이는 데 핵심을 이루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이 신문사에 한 기자가 입사하여 편집의 실무와 운영의 핵심을 꾸려나간다. 바로 금오 스님의 제자였던 유찬(幽燦) 스님으로, 3년여의 출가 생활을 끝으로 환속한 월탑(月塔) 박경훈 선생이었다. 박 기자는 이미 1959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경력이 있는 문학가이자 한문 번역에 뛰어난 능력을 지닌 귀한 인재였다. 젊은 시절 《유마경》을 읽고 불교에 심취했던 초심을 살려, 박 기자는 매월 발행되던 신문의 편집과 기사 작성, 원고 청탁 등에 탁월한 기량을 선보이며 신문 창간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앞장섰다. 그러한 공로로 박 기자는 1963년도에 편집국장으로 승진하면서 신문사 경영의 주춧돌이 되었다. 

한편 1962년도에 조계종은 종단 3대 사업의 하나로 역경위원회법을 제정하고, 역경위원회를 구성하여, 고려대장경의 한글화를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위원장으로 운허 스님이 위촉되었고, 석주 스님, 탄허 스님, 법정 스님 등 교계의 원로들이 동참한 역경위원회에는 서정주, 조지훈 선생, 그리고 〈대한불교〉의 박경훈 국장이 종정 효봉 스님으로부터 위촉장을 받았다. 

이 역경위원회가 강남 봉은사에 역장(譯場)을 두어 역경 연수생을 양성하는 등 역경사 양성과 역경사업을 전개하면서, 2년 뒤에 동국대학교 부설로 고려대장경을 한글화하는 작업을 펼치는 동국역경원이 창설된 것이다. 

이 시기에 박경훈 국장은 신문사 편집국장으로 활약하면서, 당시 봉은사 다래헌에 머물며 역경에 진력한 법정 스님 등과 함께 위원회의 중심에서 경전의 번역과 윤문을 진행하였고, 마침내 동국역경원 첫 작품 《잡아함경》이 1965년도에 출판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리고 같은 해, 이한상 거사의 지원으로 《한국불교백년사》 편찬실을 만들어 일간지, 월간지 등에 실린 불교 관련 기사와 사찰 문헌 등을 수집해 《근세불교백년사자료집》 4권을 만들어 불교계에 배포했다. 

이러한 역경과 경전 자료 편찬에 대한 공과로, 박경훈 국장은 1968년 11월 신문사를 떠나 동국역경원의 편찬부장으로 영입되었다. 그리고 오로지 역경사업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1993년까지 25년간 136권의 한글대장경을 편찬하는, 누구도 쉽게 따를 수 없는 크나큰 공적을 쌓았다. 

그리고 1976년에는 고려대장경 영인본 전 48책 1질을 완간해 불교계에 법공양을 했다. 이외에도 역경원은 단행본 출판 사업에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불교사전》 《불교성전》 《능엄경 주해》 《원각경 주해》 《신역 화엄경》 《법화경》 《시와 불교의 만남》 《청허당집》 《인도철학의 산책》 등을 출간했다.

또한 박경훈 부장은 개인적인 저술에도 발군의 성과를 이루었는데, 《석가의 생애와 사상》 《불전》 《서산대사집》 《설국》 《유마경》을 출판하였고, 1980년에는 석주 스님이 구술하고 박 부장이 정리한 《불교근세백년》을 펴냈다. 이 책은 1889년부터 일제의 종교탄압, 8 · 15 해방,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불교의 역사를 생생한 증언을 통해 서술한 근세불교의 목격기이다. 

박경훈 부장이 역경원을 떠난 것은 1994년이다. 환갑의 연세였다. 그리고 3년간 〈법보신문〉 주필을 맡아 불교 언론인의 자리를 지키며 후배를 양성하고 출판의 갈 길을 지도하였다. 

필자가 ‘박경훈 부장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70년 대학생 시절이었다. 불교학과를 다니면서 학보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는 필자를 박 부장님께서는 특히 아껴주었다. 역경원으로 찾아뵐 때마다 기자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경험과 우스갯소리를 섞어가면서 가르쳐주었다. 다른 스님이나 선생님들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1973년도 5월에 필자가 불교신문사 기자로 입사하게 되자, 친히 신문사로 오셔서 당시 주필이던 법정 스님께 잘 부탁한다는 뉘앙스의 농담도 하셨다. 

그렇게 50년이 넘도록 그때그때 가르침을 주었던 우리 언론출판의 가장 큰 스승 ‘박 부장님’이 지난 3월 작고하셨다. 아들이 거주하는 미국에 사시다가 89세를 일기로 열반하신 것이다. 우리 후배들 모두 깊은 슬픔을 안고 비보를 나누었다. 부장님의 후덕함을 떠올리며 그 따뜻함을 추모하고 크나큰 업적을 그리워했다.

‘부장님, 떠나시었습니까? 연락을 올리고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김형균 / 불교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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