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대만불교의 어제, 오늘, 내일


들어가는 말

김현진​​​​​​​인문학기획단체 아카마지 대표
김현진​​​​​​​인문학기획단체 아카마지 대표

대만불교를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철저하게 계율을 지키는 출가 수행자와 계를 지키지 않는 수행자들을 경책하고 수행자만큼 계를 소중히 하는 재가 신도들이다. 식당에서조차 수행자가 육식을 하려 하면 아예 음식을 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대만불교에서 계를 지키는 ‘지계(持戒)’는 불교도들에게 목숨과도 같다. 깨달으면 계율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는 한국 불교도들과 출 · 재가자의 경계가 아예 없는 일본불교와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그래서 많은 대중은 일본불교는 계율이 없고, 한국불교는 수계는 있지만 지계가 부족하고, 대만불교는 수계와 지계가 모두 철저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계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기에 ‘계율주의’란 평가를 받기도 하는 대만불교와 계율이 중요하긴 하지만 또 지키려고 애쓰는 것도 집착의 일종이라고 얘기하는 한국불교 중 어느 쪽이 옳은지 여기서 평가할 수는 없다. 다만 이 글에서는 대만불교가 왜 지계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고 있는지 역사적 이유를 간략히 살펴보고, 계율 중 특히 먹는 부분에 엄격함을 보이는 문화를 ‘재식(齋食)’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불교문화의 하나로서 현재 대만불교 내에서 재식과 같은 여법한 음식과 먹는 행위로 환경보호나 공존하는 삶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새로운 움직임에 대해서도 알아보고자 한다. 현장감 있는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한국 불광산사 주지인 의은 스님과 공양간 ‘적수방’을 담당하고 있는 대만 재가 보살님 그리고 홍서원 정봉 스님과 함께 온라인 법회를 보고 있는 대만의 출 · 재가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신 대만 스님들과 재가 신도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를 전한다. 

 

2. 재식(齋食)의 의미와 사용 

재식의 사전상 정의는 “1. (불교) 정오가 되기 전에 하는 식사. 2. (불교) 재가(在家)나 불가의 식사. 또는 법회의 시식(施食).”이다.

다시 말해 여법한 음식을 여법한 방법으로 드는 식사란 뜻으로 한국불교에선 ‘다례재(茶禮齋)’나 ‘사시불공(巳時佛供)’ 때 많이 쓰는 용어이다. 요즘은 그것도 가사 · 장삼을 갖추고 여법하게 발우공양을 한다고 해서 ‘법공양’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이 법공양은 반드시 12시 이전에 끝내야 하며, 먹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수행의 연장이기에 부처님 시대의 탁발 이후 공양처럼 의식을 갖추고 엄숙하게 진행된다. 한국 승단의 경우, 아침으로 새벽예불을 마친 후 간단히 죽으로 하는 죽식(粥食)을 하든가 안거철에는 점심과 마찬가지로 예를 갖추고 발우공양을 하고, 점심으로는 사시예불이 끝난 후 이 ‘법공양’을 한다.

대만에서는 새벽예불을 마친 후 오전 7시쯤 아침 공양을 발우공양이라는 재식(齋食)의 형태로 엄숙하게 하고, 점심은 한국의 ‘후원 공양’ 또는 ‘산중 공양’처럼 식당에서 조금은 자유롭게 한다. 하지만 대만에서도 마찬가지로 안거 기간 중에는 점심까지 발우공양으로 일종식을 하며 늦어도 오전 11시 45분 전에는 ‘재식’을 마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대만불교에서 ‘재식’이란 오후불식의 계를 지키는 식사라는 의미이므로 재식이라고 한다면 저녁은 먹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간혹 몸이 좋지 않거나 저녁을 가볍게 들어야 할 때는 약식(藥食)이라고 불리는 간단한 저녁을 후원에 신청해서 먹을 수도 있다. 대만에서는 공양을 책임지는 사찰의 후원을 ‘재당(齋堂)’이라고 하고 팔관지회와 같은 큰 행사에서 밖의 스님들에게 청하는 공양을 ‘공재(供齋)’라고 한다. 그만큼 승단의 공양은 반드시 여법하게 계를 지키는 식사여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들어 대만 불자들에게 재식이란 무오신채의 완전 채식을 일컫는 ‘소식(素食)’과 같은 뜻으로 통용되고 있다. 대만의 4대 사찰 중 법고산사는 달걀은 쓰지 않아도 간혹 치즈를 내기도 하지만 불광산사, 자제공덕회, 중태선사의 경우는 우유, 달걀, 치즈도 쓰지 않는 무오신채 완전 채식으로 재식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승원의 구성원이 먹으면 안 된다고 하는 금지식의 범주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불살생에 반하는 일체의 육식과 오신채로 생각한다고 한다. 이것은 남방불교, 인도불교와는 같지 않다. 이곳에서는 탁발을 했기 때문에 이것저것 가릴 수 없었다. 따라서 부처님 당시 인도의 경우는 국가와의 관계를 고려해서 당시 군대나 왕실의 작업에 중요했던 코끼리의 고기와 사회적으로 제일 더럽게 여긴 개고기 또 자기를 위해 죽였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삼정육(三淨肉)을 제외한 모든 고기를 대중 생활에 방해가 되는 파, 마늘과 함께 금했을 뿐이라고 추측된다.

대만불교에서는 출가자뿐 아니라 재가자들도 오신채가 없는 완전 채식으로 불살생계(不殺生戒)를 지키고 술을 일절 입에 대지 않는 불음주계(不飮酒戒)를 지킨다. 인터뷰 중 오계를 수지 했다면 출가자와 재가자 모두 계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모두에게 반복해서 들었다. 그만큼 그들에게 계는 목숨과도 같이 중요하고 엄격한 기본이었다. 간혹 깨달음에 이른 스님들의 거침없는 기행을 전해 듣기도 하고, 재가자들의 경우 오계를 수지했다고 해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잘 지키지 못하는 한국불교와의 차이가 바로 이런 부분이다.

그렇다면 출 · 재가자들 모두 이렇게 계율을 반드시 지키려고 하는 대만불교의 특징은 대만불교 태동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아니라면 어떤 계기로 계율주의란 평가를 받을 정도로 지계(持戒)를 우선시하는 문화가 만들어졌을까? 이 같은 궁금증은 대만불교의 역사를 통해 힌트를 얻을 것이다.

 

3. 대만불교의 역사 

대만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명(明)의 유신 정성공(鄭成功)이 청(淸)에 항거할 근거지 마련을 위해 대륙에서 건너온 1661년이다. 대만 최초의 사찰은 1662년에 창건된 대남시의 죽계사이다. 청대에는 각지에 102개의 불교사원이 건립되었는데, 이 중 55개 사찰은 관음사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청대의 대만에는 재가 거사들의 재교(齋敎)가 크게 번성했다. 재교는 계율을 철저히 지켰다. 대만은 1895년 청일전쟁 종결 후 1945년까지 50년간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이 무렵 일본불교의 여러 종파가 포교소를 설치해 일본불교를 심었다. 특히 정토종 등은 대처육식(帶妻肉食)의 풍습을 전하여 한때 승려가 결혼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만 불교도들은 항일혁명운동에 참여, 식민불교에 대항했다. 이때 재교는 일본인들의 대만 통치 앞잡이 노릇을 하기도 했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하고 1949년 중국에 공산정권이 수립되자 국민정부는 대만으로 천도했다.

1947년 남경에서 재결성된 중국불교총회도 국민정부를 따라 대만으로 옮겨 왔다. 중국불교회는 1950년 대만에서 재건되었다. 대처육식하는 타락한 불교를 정화하기 위해 1953년부터 계단을 개설, 매년 엄정하게 계율을 수계했다. 이로부터 대처육식의 폐습은 사라지게 되었다. 1981년 중국불교회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승려는 약 5만 명(비구 1만3천 명, 비구니 3만7천 명), 신도는 전체 인구의 70%에 달한다. 중국불교회는 전국에 1,568개의 지회를 갖고 있으며, 이에 소속된 사묘(寺廟)는 3천여 개에 달한다. 신도 단체로는 1968년에 창립된 중화불교거사회와 대학생 모임인 불교학사(佛敎學社)가 대표적이다. 대만불교의 특징은 활발한 사회봉사와 승려의 높은 자질이다. 중국불교회 산하 지회와 사찰 단체에서는 사회교육 · 의료복지시설 운영 등을 의무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대만불교에서 뺄 수 없는 것은 불광사(佛光寺)다. 1967년 성운(星雲) 대사가 개창한 이 절은 5천 명이 동시에 법회를 볼 수 있는 대도량이다.

— ‘대만불교’ 〈문화원형 용어사전〉(한국콘텐츠진흥원) 2012

〈문화원형 용어사전〉에 나오듯 대만불교가 일제강점기에 일본불교의 영향으로 고기를 가리지 않는 식육문화와 처자식을 두는 대처제가 만연하게 되었다. 또한 재가 법사 중심의 재교는 대표적인 친일 세력 중 하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던 대만이 50여 년간의 일본 지배를 벗어나자 불교에서도 일본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정화 작업을 시작하고 여기서 중국공산당을 피해 대만으로 건너온 중국의 대선사들도 합세하여 본격적으로 대만불교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고 알려졌다. 

 

4. 대만불교 정화 과정과 계율주의 

대만불교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계율을 중시하는 청정불교 교단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1945년 이전의 50년간, 대만불교는 일본불교의 영향 때문에 지계정신이 크게 해이해져 있었다. 이 당시에는 출 · 재가의 구분이 모호해져 있었으며, 대처식육의 혼란상이 만연해 있었다. 그러나 1945년 독립 이후 대만불교는 청정 비구 중심의 계율 정신을 회복하였다. 지계의 정신은 승단뿐만 아니라 재가불자에게도 계승되었다. 대만의 불자들은 지계의 정신을 계승하여 채식을 중심으로 하는 소식(素食)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대만의 전통 사찰음식인 소식은 전통불교 사찰의 중요한 음식문화로, 불교도 수행 방식의 하나로 수용되고 있다. 대만불교의 지계 정신은 대처 반대, 식육 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대만불교 정화의 주체는 전통불교계에 몸담은 스님들과 재가 신도들이다. 정화 운동은 조직적 차원과 개인적 차원, 그리고 사회적 차원 세 분야에서 동시적으로 일어난 ‘율장 정신의 회복 운동’이었다.

건국 후 일본불교의 적폐를 일소하고, 미신이나 다른 유사 종교와 습합되어 있던 대만불교를 정화하는 데 앞장선 선구자는 석백성(釋白聖) 스님이다. 그는 1953년 봄 시방총림 중 하나인 대선사(大仙寺)에서 수계식(授戒式)을 직접 주도하였다. 이때 승속이 불분명한 폐단을 척결하기 위한 일곱 가지 규정, 이른바 ‘칠조규정(七條規定)’을 제정하고 이를 지키지 못하는 승려들을 점차적으로 모두 제거하고 도태시켰다. 칠조규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반드시 집과 속세를 떠나 승려의 위의를 갖추지 않으면 비구계를 수여하지 않는다.

둘째, 출가자는 속인 복장을 해선 안 된다. 만약 승복이 없으면 3일 안으로 승복을 갖추고 그렇지 않으면 거사계를 반납한다.

셋째, 출가자나 재가자나 모두 일률적으로 승보를 스승으로 삼는 자라야만 수계를 받을 수 있다. 만일 재가인을 스승으로 모시는 자는 하루빨리 고칠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계를 내리지 않는다.

넷째, 거사계를 받은 모든 자는 신도나 무리를 거느려서는 안 된다.

다섯째, 계를 타인에게 위탁하는 것을 금한다. 위탁한 계는 모두 무효로 한다.

여섯째, 과거 다른 종파의 계를 수지한 자는 반드시 삿됨을 개정하고 바른 도리로 돌아올 것을 선서한다.

일곱째, 수계를 받은 날로부터 음주, 흡연, 육식을 절대 금한다.

이와 같은 칠조규정을 분석해 보면 출가자와 재가불자의 위의를 강조하고 수계의 조건을 간결하고 분명하게 정하였음을 보여준다. 대만불교는 매우 복잡한 계를 수지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간단한 계율만으로 정화를 이루어냈다. 계의 핵심 내용은 출가자는 그에 부합하는 위의, 복장을 갖추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불교계 내부의 혼탁과 막행막식을 막으려는 조치였다.

칠조규정의 두 번째 의도는 재교 또는 운재교를 중심으로 하는 비승비속의 문제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재교 형태의 불교 종파는 일본불교의 영향을 받았는데, 일본불교 대다수가 대처식육을 허용하는 재가 교단과 같은 모습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그 문화가 대만불교에도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대만 내에도 그 이전부터 이와 유사한 재가불자 중심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습합된 측면도 있었다. 이로 인해서 거사계는 반납해야 했으며, 거사를 스승으로 모시는 승니도 퇴출되었다.

칠조규정의 세 번째 의도는 음주, 흡연, 육식을 금지하여 승가의 위의를 지키고자 한 것이다. 이로써 대만 내에는 콩과 채소 중심의 음식문화가 자리 잡게 되었다. 이른바 소식(素食)이라는 대만불교 전통 사찰음식 문화는 이 규정으로 인하여 발전한 것이 사실이다.

이와 같은 칠조규정은 대만 국민들이 스님의 위의를 구분하는 결정적 기준으로 작용하였다. 즉 스님은 승복을 입고 사찰에서 거주하며 취처와 육식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기준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이 기준을 넘어서는 스님들에 대해서는 공양을 올리지 않으므로써 자연스럽게 퇴출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렇게 대만불교에서 지계는 불교의 생존과 직결되어 굳건해졌다. 철저하게 계를 지키는 승원만이 재가자에게 존경받고 승려로서 존중되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지계의 삶을 출가자들만 견지하는 것이 아니라 재가자에게도 강력하게 조언하여 지금의 대만불교를 만들었다. 특히 소식은 대만 불자들의 아이덴티티이며 자존심이다. 이제는 불자들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환경보호와 건강, 동물권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숫자가 증가세에 있다. 

대만의 ‘재식’에 대해 스님들과 인터뷰할 때 여러 번 언급된 것은 공존하는 삶의 방식과 지구 환경보호였다. 그리고 그 책무에 대해선 출 · 재가가 따로 없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한국 불광산사 주지 의은 스님은 대만의 불교는 인간 중심 불교로 의례보다는 내용이 중요하고, 무오신채 완전 채식인 소식을 통해 벌이고 있는 새로운 활동들을 더욱 알리고 싶어 했다. 

대만 불교도들에게 불제자의 여법한 식사인 재식, 소식은 섭생이 아니고 수행이며 방생이었다. 대만 재가 신도들은 문제가 많은 출가자에게는 공양을 올리지 않고 정법(正法)을 행하는 출가자에게 힘을 실어 줌으로써 승가를 외호하는 데 큰 몫을 담당한다. 이뿐 아니라 7조규정이 출가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면, 대만 4대종파의 하나인 자제공덕회에서는 십계(十戒)에 금주 · 금연을 제정하고 승속의 구분 없이 이를 지켜나가고 있다. 

그리고 대만에서는 신도 교육할 때 특히 불살생의 계를 중요하게 가르치는데, 살생하면 안 되는 경우를 7가지 상황별로 조목조목 알려주면서 지계의 실천 중에서 완전 채식인 소식을 더욱 강조한다.

① 생일날 살생해서는 안 된다.(生日不宜殺生)
② 자식을 낳은 날 살생해서는 안 된다.(生子不宜殺生)
③ 조상에 제사 지내기 위해 살생해서는 안 된다.(祭祖先不宜殺生)
④ 결혼식에 살생해서는 안 된다.(婚禮不宜殺生)
⑤ 잔치에 살생해서는 안 된다.(宴客不宜殺生)
⑥ 기도할 적에 살생해서는 안 된다.(祈神不宜殺生)
⑦ 생계를 위해 살생해서는 안 된다.(營業不宜殺生)

이처럼 불교 정화운동에서 강화된 이 소식 문화가 현재 대만사회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대만의 불교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현지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5. 대만의 채식 운동과 산업

한국사회에서 채식은 1980년대 후반 몇몇 유명인과 동호회를 중심으로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시절 채식은 ‘삶’이기보다 ‘운동’에 가까웠고, 채식을 하는 것이 문화적 계층적 행동이라는 인식에 채식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채식에 대한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한국사회 채식 운동 1세대라 불리던 시절, 처음으로 비건 식당이 문을 열었고 일반인들에게 한국형 비건 식단의 대표라고 여겨지는 사찰음식의 대중화도 시작되었다. 이후 한국의 채식은 유행을 타다 말기를 거듭했고 지금은 문화적 운동이기보다 같이 살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간헐적 채식’이란 용어까지 등장하면서 익숙하게 되었다. 이전까지 한국사회의 채식이 동호회 중심 운동이었다면 지금 채식은 운동이 아닌 생활로 개개인의 선택과 실천이 기반이 된 것이다. 대기업들도 앞다투어 채식에 관련된 제품을 내놓고 예전보다는 더 많은 식당에서 채식 옵션을 갖춘 메뉴를 개발하면서 사람들의 새로운 소비패턴에 발맞추고 있다. 이렇게 이제야 채식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는 우리와 다르게 대만은 일찍부터 채식이 발달하였다. 

대만은 인구의 10%가 완전 채식으로 인구 비율로 따지면 채식인의 비중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 대만의 채식 인구가 유독 많은 이유로는, 전체 인구의 80% 가까운 불교도들이 불살생의 계율을 지키고자 채식하는 식생활과, 인구의 19.3%를 차지하는 객가(客家) 민족―중국 광둥성(廣東省), 장시성(江西省), 푸젠성(福建省) 일대에 정착했던 민족 집단―의 정월 초하루를 삼시 세끼 채식으로 섭취하는 전통의 영향을 들 수 있다. 그뿐 아니라 근래 들어선 건강과 환경에 대한 관심 확산도 채식 인구가 계속 증가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018년도 대만 식품공업발전연구소의 결과에 따르면, 대만의 채식 시장 규모가 연간 600억 대만달러(원화 2조 3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CNN은 2017년 4월 보도에서 채식주의자들이 여행하기 좋은 10대 도시 중 하나로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를 소개하였는데, 현지 채식 전문 소셜네트워크인 suiis,com은, 대만 내 채식 전문점 수가 600개를 넘고 이 중 4분의 1이 타이베이에 집중되어 있다고 밝혔다. 

또한 대만 가공식품업계는 세계적으로 채식 열풍이 불기 전인 1990년대 중반부터 이미 대두, 밀을 사용한 식물성 대체육을 통해 시장수요에 대응해 왔다. 예를 들어 대만의 주요 대체육 업체 베지팜(Vegefarm)의 경우 연 매출이 6억 대만달러(원화 229억 원)에 달할 정도라고 한다.

이 같은 대만의 채식 제품 유통은 채식 제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슈퍼마켓과 온라인 쇼핑몰에서 성업 중이다. 이에 대만 정부는 소비자들의 요구로 2009년 7월부터 사람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채식 식품을 고를 수 있도록 채식 식품 포장의 표시 기준을 5가지로 분류해서 사용하고 있다.

1) 완전 채식(全素 · 純素, vegan): 식물성 원료만 사용(달갈, 우유, 파 · 마늘 · 부추 · 양파 · 달래의 오신채도 사용하지 않았음)
2) 달걀 채식(蛋素, ovo): 달걀 사용
3) 우유 채식(奶素, lacto): 우유 사용
4) 달걀 · 우유 채식(蛋奶素, ovo-lacto): 달걀, 우유 사용
5) 오신채 채식(植物五辛素): 달갈, 우유, 파 · 마늘 · 부추 · 양파 · 달래 사용 

국제사회도 채식을 보통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나누고 있다.

1) 비건(vegan): 모든 동물성을 먹지 않음
2) 오보 베지테리언(ovo-vegetarian): 식물성 원료와 달걀 사용 
3) 락토 베지테리언(lacto-vegetarian): 식물성 원료와 유제품사용 
4) 락토오보 베지테리언(lacto-ovo-vegetarian): 식물성 원료와 달걀과 유제품까지 사용
5)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vegetarian): 식물성 원료와 생선, 달걀, 유제품 사용

위의 두 가지 채식 분류 비교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듯이, 대만의 채식 기준이 국제기준과 확연하게 다른 점은, 오신채가 채식의 단계에 중요 기준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보통의 경우 오신채는 채소 즉, 식물성 원료로 오신채가 들어 있다고 해서 완전 채식이 아니라고 하지 않는데, 대만에서 말하는 완전 채식, 소식(素食)은 무오신채면서 동시에 완전 채식으로 보다 더 정교하고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대만의 공식적인 채식 기준이 불교 기준에 관련된 오신채의 유무를 적용시킬 만큼 대만사회에서 불자들은 그 영향력과 파급력이 크다. 대만불교의 4대문파 중 하나인 불광산사(佛光山寺)의 활동만 보더라도 불교가 대만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다.

한국 불광산사 주지 의은스님과공양간적 수방담당재가보살.
한국 불광산사 주지 의은스님과공양간적 수방담당재가보살.

 

6. 대만 불교도의 사회 활동

대만불교의 4대문파 중 하나인 불광산사는 알려진 대로 1967년 성운(星雲) 대사가 개창한 절로 5천 명이 동시에 법회를 볼 수 있는 대도량이다. 

인터뷰에 응해준 한국 불광산사 주지 의은 스님은 불광산사의 주요 모토인 ‘인간불교’에 대해 여러 번 강조했는데, 개창주 성운 대사는 ‘인간불교’로 불사의 범위를 정하고 사람들을 교육하기 때문에 불광산사는 출 · 재가자의 구분 없이 교육사업을 가장 중요시한다고 이야기했다. 

불광산사는 이렇게 문화 활동을 통한 불교의 포교, 교육을 통한 인재양성, 자비를 통한 사회복지, 그리고 수행을 통한 심신(心身) 정화라는 4가지 목표를 천명하면서 활발하게 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4월 22일 지구의 날에는 사라져가는 밀림 보호를 위해 각국의 국제불광총회에서 108그루의 나무 심기 운동을 벌였고, 코로나로 어려운 채식당을 포함한 이웃을 돕기 위한 적극적인 캠페인도 하는 중이라고 한다. 이 캠페인은 국제불광회 중화총회가 주체가 되어 시민들에게 전국 5,000곳 채식당에 가서 식사하거나 배달을 주문하거나 불우이웃에게 식사를 기부하자는 것으로, 현재 390곳의 대만 채식당이 참여한다고 한다. 총회는 이 캠페인은 다섯 가지의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홍보하는데 첫째는 채소농사 짓는 농부, 둘째는 과수원 소유자, 셋째는 유통업자, 넷째는 소상공인(채식당)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불우이웃이다.

의은 스님은 어려운 시절에 ‘재식’으로 이어진 ‘소식’이 위축되지 않도록 소식에 관련된 모든 사람을 돕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또 완전 채식인 소식을 통해 나무를 직접 심고 탄소배출을 줄이고 물을 아끼고 식량 감소를 방지하는 효과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앱을 만들어 모든 시민이 환경보호를 위해 소식에 동참하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한다. 

 

7. 나가는 말

대만불교에 대해 우리가 얘기할 때 제일 많이 나오는 말은 계율주의(戒律主義)와 재식(齋食) 즉, 소식(素食)이다. 하지만 대만 승단의 오후불식을 말하면서 하루에 먹을 양을 한 번에 다 먹는다고 얘기하기도 하고, 육식 금지에 대하여 고기를 고기라 집착하는 것도 문제라고 비꼬기도 한다. 또 한국의 출가자들은 대만 재가자들의 수행자에 대한 존경심을 부러워하고, 재가자들은 철저하게 계율을 지키는 대만 수행자들의 여법함을 칭송하며 부러워한다. 대만의 불교가 철저한 지계로 발달한 것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을 뿐이라고 평가절하하는 사람도 있고, 한국 불자들 중 일부는 지나치게 대만불교나 티베트불교 남방불교를 떠받든다고 경계하는 사람도 있다. 혹자는 대만 불광산사의 엄청난 규모에서 ‘재식’ ‘법공양’ 의례를 하는 모습에 환희심을 느껴 눈물을 흘리다가, 한국에 돌아와서는 내 밥상에 고기반찬부터 올리기도 한다. 또 기후 위기와 환경문제에 대해 심각함을 느끼지만, 기존의 편리함에 길들어 다소 귀찮아 보이는 실천 행동은 시도하지 않기도 한다.

대만불교의 계율주의와 소식은 이제 더 이상 어떤 형식이나 과거의 문제가 아닌 생활이고 현재와 미래의 문제이다. 이 글을 위해 인터뷰 한 대만 불교도들은 한결같이 ‘지금, 여기에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소식은 어떤 이념이나 주의가 될 수 없는, 종교를 떠나 모든 생명체와 공존하기 위해 인간이라면 ‘해야 할 뿐’인 일이라고도 말한다.

계(戒) · 정(定) · 혜(慧) 삼학을 말할 때, 제일 앞선 것이 계이므로 지계가 없는 수행과 지혜가 있을 수 없다는 말은 불교 기초교리 시간 첫 수업에서 들을 만큼 익숙한 이야기이다. 문제는 현대사회에서 내가 붓다의 제자로 다른 이들과 사람을 넘어서 다른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일 것이다. 그 작은 해답을 대만불교의 ‘지금’이 보여주고 있다.

역사상 유례없는 팬데믹 3년 차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이다. 이런 시기만큼 환경의 중요함을 절실하게 느끼고 종교에 기대어 위로받는 게 간절할 때가 있었는가 싶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시기에 붓다가 살아 돌아오신다면 과연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실지 생각해보기도 한다. 결국, ‘네가 있는 그 자리에서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실천하고, 가능하다면 그 실천의 양을 조금씩 늘리라’고 하지 않으실까?

지계 정신과 소식을 머리가 아니라 우리의 몸으로 익혀서 실천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 

 

김현진 kkim213@naver.com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석사(불교윤리 전공). 석사논문은 〈계체관에 대한 불교 윤리학적 연구〉이며, 동 대학원 박사과정(채식을 기반으로 한 종교음식) 수료. 지은 책으로 《신들의 향연 인간의 만찬》이 있다. 현재 인문학기획단체 아카마지 대표,  ㈜마지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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