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대만불교의 어제, 오늘, 내일

1. 들어가는 말

이병욱 고려대 강사
이병욱 고려대 강사

몇 년 전에 우연한 계기로 대만 종교계를 답사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필자에게 대만 답사를 권했던 사람이 대만불교가 대단하다고 하면서 한번 가자고 하였고, 나는 속는 셈 치고 그 답사에 참여하였다. 답사하는 동안 나는 대만불교를 더 일찍 접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사실 그 이전에도 대만에 답사하러 갈 기회가 있었는데, 개인 사정으로 가지 못하였다.

대만불교는 동아시아의 대승불교를 기반하는 것이기에 한국불교와 공통요소가 상당히 많다. 그런데도 한국불교보다 더 진전된 현대불교의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 대만불교의 특징적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대만에 불교가 전파된 것은 17세기 중반이라고 한다. 그 후 1895년에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대만은 일본에 의해 점령되었고 자연히 대만불교는 일본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1949년에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옮겨오면서 대만불교는 중국 대륙의 영향을 받았다. 

오늘날 대만불교의 발전을 이끄는 곳은 대만의 신흥 4대종문이라고 불리는 불광산사, 자제종(자제공덕회), 중대선사, 법고산사이다. 일반적으로 불광산사는 ‘포교’에 강점이 있고, 자제종(자제공덕회)는 ‘봉사’에서, 중대선사는 ‘수행’에서, 법고산사는 ‘교육’에서 뛰어나다고 한다. 이 신흥 4대종문에 대해 한국에서도 소개한 글이 《대만불교의 5가지 성공 코드》를 비롯해서 《불교평론》 등에 제법 실려 있다. 그러한 내용에 근거해서 이 글에서는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2. 성운의 불광산사(佛光山寺) 

불광산사를 일으킨 성운(星雲) 대사
불광산사를 일으킨 성운(星雲) 대사

성운(星雲, 싱윈, 1922〜  )은 대만 불광산사(佛光山寺, 포광산사)를 창건한 인물이다. 성운은 중국 장쑤성(江蘇省) 출신이고, 12세 때에 지개(志開, 즈카이) 상인(上人)을 은사로 해서 출가하였다. 1949년에 대만으로 건너와서 《인생잡지》 《금일불교》 《각세(覺世)》 등과 같은 정기간행물을 창간하였고, 1952년 의란(宜蘭, 이란) 뇌음사(雷音寺, 레이안사)에서 포교를 조직적으로 펼쳤다. 성운은 1967년에 고웅(高雄, 가오슝)현에 불광산사를 세우고 4대 종지를 제시했는데 그것은 교육으로 인재를 배양하고, 문화로써 불법을 펼치며, 자선으로 사회복지를 이끌고, 수행으로 마음을 정화한다는 것이다. 

성운은 서울에 있는 불광산사를 비롯해서 세계 각지에 200여 개에 달하는 사원을 세웠고, 국제불광회(國際佛光會)를 창립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성운은 대만불교의 국제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현재 불광산사에는 2,000여 명의 승려가 활동하고 있다. 불광산사에서는 《불광대사전(佛光大辭典)》을 편찬하였고, 불광대장경(佛光大藏經)을 전산화하여 보급하였으며 TV, 라디오, 인터넷 등 각종 언론매체를 활용해서 포교에 힘쓰고 있다. 

(1) 불광산사에서는 생활에서 불법을 실천할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인간불교를 제창하고 불광정토(佛光淨土)를 건설하며, 사부대중의 교단을 건설하고 세계가 조화롭고 자애롭도록 촉진한다. 불광산사에서 말하는 인간불교는 부처님이 인간 세상에 태어났고 인간 세상에서 수행하였으며, 인간 세상에서 도를 이루었고 인간 세상에서 중생을 제도하고 교화하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인간불교의 근원을 부처님에게 둔다. 불광산사에서는 현세에서 성취하는 것을 중시하고 정토를 인간 세상에 건설한다는 구체적 실천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불광산사의 경제관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혜로써 금전을 대체한다. 보시로 들어온 돈은 모두 공개하며 오직 불사(佛事)에만 사용한다. 둘째, 권한이 있는 사람은 금전을 관리할 수 없고 금전을 관리하는 사람은 권한이 없다. 셋째, 신도가 보시한 것은 승가에 귀속되고 물질은 균등하게 나눈다. 그래서 불광산사의 총본산에서 보시물을 관리하고 배분한다. 넷째, 신도에게 과도한 보시를 요구하지 않는다. 평소에 과도한 보시를 신도에게 요구하면 정작 필요할 때 도움을 받지 못하므로 함부로 보시를 청하지 않는다. 다섯째, 여러 집안의 밥을 먹되 한 집안의 밥을 먹지 않는다. 불광산사에서는 모든 불사와 행사에서 대중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을 취한다. 불사와 행사를 할 때, 많은 돈을 기증하는 특정인에게 의지하면 개인에게 끌려다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섯째, 신도와 금전거래를 하지 않는다. 일곱째, 불광산사에서는 함부로 사찰을 짓고 보시를 청하는 것을 금지한다. 

(2) 불광산사의 전법(포교) 활동에 대해 좀 더 살펴본다. 불광산사의 해외 전법 활동은 각 지역에 따라 적합한 방식을 추구한다. 이는 지역사회와 융합해야 성공적인 전법 활동을 할 수 있다는 불광산사의 실천 이념에 근거한 것이다. 아시아 지역, 곧 대승불교 문화권에 속하는 한국과 일본, 남방불교 문화권에 속하는 태국, 그리고 힌두교 전통의 인도, 다른 종교 전통의 나라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등에서는 현지 종교계와 교류하는 것에 중점을 두면서 지역사회 활동을 통해서 전법 활동을 전개한다. 

미국의 경우, 지역의 인재가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거나 대학가 근처에 불광산사의 사찰을 두어서 적극적인 소통의 장소가 되도록 노력한다. 중남미의 경우, 자선활동이나 문화교육 활동을 통해서 지역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전법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아프리카불학원을 1994년에 설립했는데, 이는 아프리카 현지 사람을 전법 활동을 할 수 있는 인재로 육성하고자 세운 것이다. 이곳에서는 아프리카 여러 지역 출신의 승려가 3년 과정으로 공부하고 있다. 교육과정에는 중국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불교를 이해하고, 대중에게 전법 활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남천(南天, 남천)불학원에서도 불광산사의 현지화 활동을 살펴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미국과 유럽 지역 출신의 승려와 동남아 지역 출신의 승려도 공부하고 있다. 이러한 불학원은 해당 시설이 있는 주변 지역에서 전법 활동을 하기 위한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2003년에는 세계불학 연구센터를 설립하였는데, 이 연구센터에서는 불학(佛學), 관리학, 인간불교, 불광학(佛光學), 영문불학(英文佛學), 일문불학(日文佛學) 등 10개의 연구소가 있다. 이들 연구소에서는 교재를 편찬하고 전문적인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3) 불광산사에서는 신도 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불광산사의 도시불학원은 대도시라는 환경 속에서 불교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불교교리를 비롯해서 차와 선(禪), 범패, 영문불학, 부녀자 법회, 태극권, 요가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불광인문예술학원에서는 꽃꽂이, 기타반 등의 다양한 예능 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이는 문화 활동을 통해 건전한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승만서원(勝鬘書院)은 현대사회에서 여성이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능력을 펼칠 기회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다. 이곳에서는 4개월을 1기로 해서 사람을 모집한다. 불광산사에서 2개월 동안 불교 의례와 불교사상을 가르치고, 사경(寫經) 활동을 하고 좌선 등의 수행도 실천한다. 나머지 2개월 동안에는 해외를 탐방한다. 불광산사의 해외 별원이나 분원을 방문하고, 다른 나라의 문화와 역사 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당 전문가가 와서 강의하기도 한다. 승만서원에 참여한 사람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불광산사의 사업에 참여하거나 국내외 기관에서 문화, 교육, 자선, 전법 활동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승만서원은 불학원에서 공부할 수 없는 환경의 여성 신도를 위해 설립된 것이고, 남성 신도를 위해서 유마서원(維摩書院)이라는 이름으로 동일한 교육과정이 제공된다. 

단기출가 수도회는 1988년 처음으로 실시되었는데, 당시 참가 신청이 8,000명을 넘기도 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 독일 등에 있는 불광도량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매년 200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하고 있다. 

그리고 불광산사에서 운영하는 대학은 대만에는 1996년에 개교한 난화(南華)대학, 2000년에 개교한 포광(佛光)대학이 있고, 외국에 설립한 대학으로는 1991년 미국에서 개교한 서래(西來, 시라이)대학, 1995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문을 연 남천(南天, 남천)대학이 있다.

3. 증엄의 자제종(慈濟功德會) 

자제공덕회 증엄 법사. 만해대상 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자제공덕회 증엄 법사. 만해대상 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증엄(證嚴, 정옌, 1937〜  )은 자제종(慈濟宗, 츠지종)을 세운 인물이다. 증엄은 대만을 대표하는 비구니라고 할 수 있다. 자제종은 화련(花蓮, 화롄)의 자제정사(慈濟精舍)가 근거가 되고, 국제구호단체인 자제공덕회(慈濟功德會), 재단법인 자제공덕기금회(慈濟功德基金會) 등의 단체가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증엄은 1960년에 양아버지가 뇌경색으로 갑자기 사망하자 양아버지의 묘소를 마련하기 위해 여러 곳을 사찰을 찾게 되면서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증엄은 이후 몇 번의 삭발 출가를 시도했지만 좌절되었다. 1963년에 타이베이 임제사에서 인순 대사를 은사로 해서 구족계를 받았다. 인순 대사는 증엄에게 다음과 같은 간략한 법문을 하였다. “너와 나의 인연이 수승하구나. 출가를 했으니, 매 순간 불교를 위하고 중생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여기서 ‘불교를 위하고 중생을 위한다’는 가르침이 현재 ‘자제공덕회’의 근본 이념이 되었다.

1966년 2월 증엄은 화련의 한 진료소에 있는 신도의 병문안을 하러 갔다가, 병원의 바닥에 피가 낭자한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환자가 보이지 않아서 물어보니, 대만 원주민 임산부가 난산(難産)으로 병원으로 왔다가 보증금 8,000원(대만 화폐)이 없어서 다시 들것에 실려 나갔다는 말을 들었다. 이것은 유명한 일화인데, 어느 임산부의 피가 바닥에 낭자한 사건[一攤血]이라고 한다. 증엄은 병의 고통이 생기는 것은 바로 가난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기금을 모으는 방식으로 가난을 구제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이 일로 인해 자제공덕회가 창립되었다.

자제공덕회는 1966년에 대만 보명사에서 불교극난자제공덕회(佛敎克難慈濟功德會)로 시작하였다. 처음 시작한 사업은 85세 이상의 가난하고 병든 노인을 후원하는 일이었다. 처음에 참여한 사람은 증엄을 포함한 출가자 5인, 가정주부 30명이었다. 현재는 세계 33개 국가에 150여 지부가 있고, 500만 명에 이르는 회원과 자원봉사자로 이루어진 국제적인 불교구호단체로 성장하였다. 

자제공덕회의 주요 사업은 크게 8개 영역으로 전개되는데, 그것은 자선, 의료, 교육, 문화, 국제구호, 골수 기증, 환경보전, 지역사회 사업 등이다. 이 가운데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1) 자선사업으로 대표적인 것은 1999년에 시작된 ‘희망공사’를 거론할 수 있다. 1999년 9월 21일 대만 중부지역에 리히터 규모 7.3의 강한 지진이 발생해서 모두 2,318명이 죽고 사회기반시설 상당수가 무너졌다. 지진이 발생한 중심 지역에는 구조대원조차 접근이 어려웠지만, 여러 명의 자제공덕회 회원이 구조대원보다 먼저 도착해서 신속하게 구제활동을 펼쳤다. 자제공덕회원을 일컫는 ‘푸른 옷의 천사들’이라는 명칭은 이때 현지 언론에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제공덕회에서는 대만 화폐로 80억 원(한화 약 3, 200억 원)을 모금해서 재난 지역에 40개 학교를 세워서 기증하겠다는 ‘희망공사’를 발표하였다. 지진의 피해를 입은 곳에 자제공덕회 2만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하였고, 대만 화폐로 1억 6천만 원의 기금을 조성해서 1,630채의 임시가옥을 건설하였다. 그리고 자제공덕회에서는 2003년 4월에 앞서 발표한 ‘희망공사’ 계획을 완수하였다.

(2) 의료사업은 1979년 증엄이 병원을 짓기를 서원하면서 시작되었다. 대만 동부지역에 위치한 화련은 의료시설이 낙후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부에 사는 사람은 병이 들면 타이베이까지 먼 길을 가야 했고, 그 가운데 많은 사람이 타이베이에 있는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망하였다. 이와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증엄은 제대로 된 병원을 짓고자 하였다. 

증엄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병원을 지을 때 정말 중요한 점은 모든 사람이 어떤 방법으로든 조금씩 돕겠다는 결심을 실천하고, 이를 통해서 모인 기부금이 큰돈이 된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점은 이러한 활동을 통해 수백만 명의 가슴속에 진실한 자비의 마음이 우러나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기금을 모으기가 쉽지 않아 병원의 건축공사가 여러 번 중단되기도 하였다. 그때 병원의 공사비를 모두 지급하고도 남을 수 있는 거액을 보시하겠다는 일본인 자선가가 나타났다. 그러나 증엄은 이 일본인 자선가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 이유는 병원의 공사비를 모으는 과정이 수백만 명의 가슴속에 진실한 자비의 마음을 일으키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증엄이 세운 이러한 원칙은 대중에게 호응을 얻어서 결국 1986년에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로 불교자제종합의원(佛敎慈濟綜合醫院)이 세워졌다. 이 병원은 250개의 병상과 4개의 진료과목으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 병원은 대만에서 최초로 예치금을 요구하지 않고 모든 응급환자를 즉각 받아들이는 병원이 되었다. 

그러나 의사 모집공고를 낸 뒤에도 워낙 외진 곳이어서 아무도 면접에 응하지 않았다. 결국, 의료진을 확보하기 위해서 국립대만대학의 협조를 얻어서 양심적이고 능력 있는 의료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5곳이 더 추가되어 모두 6곳에 자제병원(慈濟病院)이 세워졌다. 

(3) 국제구호 활동은 자선사업이 더 진전되어 그 대상이 다른 나라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1991년 4월 방글라데시가 강력한 사이클론으로 인해 약 14만 명이 사망하였다. 이에 자제공덕회에서는 미화 157,200달러를 국제적십자사 LA지사에 전달하였다. 이것이 자제공덕회에서 국제구호 활동을 시작한 최초의 사례이다. 

1999년 7월 중국의 동부에서 대홍수가 생겨서 19개 지역에서 2억 2,200만 명이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자제공덕회는 대만 정부의 허락을 받은 후에 중국 정부에 정치 활동, 선전 활동, 종교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직접 구호품을 전달할 수 있었다. 

중국에 대한 구호 활동을 계기로 해서 자제공덕회는 재난 구호에 필요한 원칙을 세웠다. 그것은 직접 구호하고, 중점적으로 구호하며, 존중하면서 구호하고, 실용적으로 구호하며, 복덕을 짓게 해준 은혜에 감사하며, 필요한 때에 맞추어 구호한다는 것이다.

이후 자제공덕회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여러 재난에 대해 구호 활동을 전개하였다. 1992년 몽골에서 한파로 인한 재해가 발생했을 때 식량과 의류를 어린이와 노인에게 전달하였다. 1993년 1월에는 가뭄과 전쟁으로 고통받는 에티오피아를 구호단체인 메드생 뒤 몽드(세계의 의사들)와 협력해서 도왔다. 1993년 9월에는 홍수의 피해를 당한 네팔에 1,800채의 집을 지어주었다. 1994년에는 캄보디아, 태국 북부에 물 펌프, 디젤연료, 종묘 등을 기증하였다.

1995년 4월에는 남아프리카의 가난한 흑인에게 컨테이너 15개 분량의 중고 의류, 휠체어, 옥수숫가루를 기증하였다. 1996년 태풍 허브가 중국 푸젠성과 허베이성에 피해를 주었을 때도 쌀, 밀가루, 코트, 깃털 이불 등을 전달했다. 1997년부터 2001년 3월까지 약 4년에 걸쳐서 북한 지역에 대한 구호 활동을 하였다. 1999년 11월에는 쌀 26,000톤을 지원하였고, 1999년 3월에는 분유 4,000톤을 지원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북한의 어려운 처지를 세계에 알려서 여러 나라에서 북한에 대해 지원 활동을 하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2004년 말 동남아 여러 나라에 지진해일의 쓰나미가 밀어닥쳐 큰 피해를 보았을 때 세계에서 가장 먼저 구호품과 인력을 태운 전세기를 보내기도 하였다. 

(4) 환경보호 운동은 1990년 증엄이 환경보호에 대한 서원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지구를 살리는 길이고, 지구와 함께 산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원의 재활용도 필요하고, 나아가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생활이 요구된다. 

이를 실천하려면 각자의 생활양식이 바뀌어야 한다. 자제공덕회에서는 3가지 분야에서 3가지 실천 행동을 할 것을 제시한다. 음식 분야에서는 육식을 적게 할 것을 주장하고, 이것을 위한 실천 행동으로 ① 채식, ② 로컬푸드(전통 먹을거리), ③ 음식물 낭비하지 않기를 제시한다. 절약의 분야에서는 대중교통 이용하기를 주장하고,  실천 행동으로 ① 자동차 함께 타기와 대중교통 이용하기, ② 물과 전기 아껴 쓰기, ③ 종이 낭비하지 않기를 제시한다. 생활 속의 절약 분야에서는 적게 소비하기를 주장하고, 실천 행동으로 ① 유행 따르지 않기, ② 물건 아껴 오래 쓰기와 자원 재활용하기, ③ 일회용품 사용하지 않기를 제시한다. 

자제공덕회의 회원은 1992년 8개 지역에 있는 9곳의 재활용 수집장소에서 단 6시간 동안에 176t의 폐지를 수집하기도 하였다. 그 후로는 매월 5세부터 90세까지 6천~7천 명의 인원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알루미늄 캔과 종이 등을 수집하고 있다. 

(5) 증엄은 앞에서 소개한 ‘불교를 위하고 중생을 위한다’는 기본 명제 위에 세 가지 원(願)을 세웠다. 첫째, 사람의 마음을 정화하기를 원한다. 둘째, 사회가 평화롭기를 원한다. 셋째, 천하에 재앙이 없기를 원한다. 그리고 증엄은 《능엄경》에서 지혜를 얻고 《법화경》에서 부처가 된다는 전통불교의 주장을 수용하고 있고, 부처가 되기 전의 단계로서 《무량의경(無量義經)》을 중시한다. 《무량의경》은 자제종의 소의경전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증엄이 《무량의경》을 중시하는 이유는 이 경전에서 헤아릴 수 없는 방편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생의 마음의 병이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에 이 마음의 병을 구제해 주는 부처님의 법문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증엄이 《무량의경》을 해설하는 부분에서도 자제종에서 재난을 구조한 활동한 것에 관해 설명하는 대목이 상당히 많다. 아울러 37도품에 대해서도 증엄은 많은 관심을 보인다. 《무량의경》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편이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밝히고 있고, 37도품은 그 구체적인 방편이라고 자제종에서는 보고 있다. 그리고 증엄은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이 염불과 경전을 외우는 일[誦經]만 하지 말고, 경전의 내용을 실천할 것, 곧 행경(行經)을 강조한다.

증엄의 《아침명상록》 내용 가운데 몇 대목을 소개한다. 

“고뇌하는 중생들 가운데 용맹정진의 마음과 자비심과 기쁘게 베푸는 마음을 일으켜서 고난에 빠진 사람을 구해줄 수 있는 사람만이 자유로운 영혼과 영원한 해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비심이 세상 구석구석까지 퍼져, 사람들이 온화하고 밝은 달빛 아래서, 청정한 즐거움을 얻기를 소원합니다.”

“자비심이 있는 사람은 태도가 부드럽지요. 자비와 부드러움은 사람의 번뇌를 녹여낼 수 있습니다.”

“항상 즐거운 마음을 유지하여 행복한 분위기를 주위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바로 ‘자(慈)’이며, 중생의 고난을 제때 해결해 주는 것이 ‘비(悲)’입니다.”

“인자하고 선량한 사람은 남을 즐겁게 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을 자신의 이익으로 삼지요. 이것이 바로 진정한 지혜입니다. 만약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을 이익으로 삼는다면, 그저 총명함일 뿐 지혜는 아니지요.”

4. 유각의 중대선사(中臺禪寺) 

유각(惟覺, 웨이줴, 1928〜2016)은 30대 초반까지 타이베이현 만리향(萬里鄕, 완리향) 개자산(芥子山, 제스산)에 있는 초가집에 홀로 살면서 수행하였다. 그리고 유각은 대만의 시방대각선사(十方大覺禪寺, 스팡다줴찬사)에서 정토수행을 하였고, 그리하여 유심정토(唯心淨土)를 깨우쳤고, 선(禪)과 정토가 하나라는 이치를 깨쳤다. 그 뒤 유각은 대만의 여러 사찰을 돌아다니면서 수행에 몰두하였다. 유각은 영천사(靈泉寺, 링취안사)를 세우고 그 이후 1987년 4명의 제자가 출가해서 대중이 형성되었고, 재가의 제자들도 모여들었다. 이때부터 불사(佛事)와 수행을 병행해서 7일 동안 집중수행하는 선칠(禪七)수행법을 하였는데, 1992년에는 49일 동안 7번의 선칠수행을 계속하였다. 선칠수행 기간 중에는 유각은 세 가지 수행법, 곧 수식관(數息觀)과 화두 참구와 중도실상관(中道實相觀)으로 참선을 지도하였다. 

대중이 모여들어 영천사가 비좁게 되자, 유각은 2001년, 남투현(南投縣, 나터우현) 중대산(中台山, 중타이산)에 세계 최대 규모의 중대선사(中臺禪寺, 중타이찬사)를 건립하고, 승가 구성원에게만 개방된 중대불교학원(中臺佛敎學院)을 세웠다. 중대불교학원의 교사는 유각의 제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중대선사 쪽은 대만의 다른 3대 종문(宗門)만큼 사회적이지는 않다. 그렇지만 중대선사에는 대만에 62개의 말사와 미국 내에 3개의 말사가 있고, 불교 케이블TV를 운영하고 있다. 

중대선사에서는 수행 정진을 바탕으로 해서 5대사업 곧 학술, 과학, 예술, 교육, 불법의 생활화 등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또 중대선사에서는 사찰 밖의 청소년 교육을 위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등을 세웠고, 사원 안에서는 대학과 대학원 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연구소 등을 운영하고 있다. 중대선사에서 선칠수행을 실시할 때는 출가자 1천여 명과 재가신도 수십만 명이 참여하고 있다. 

5. 성엄의 법고산사(法鼓山寺) 

법고산사 창립자 성엄(聖嚴) 법사
법고산사 창립자 성엄(聖嚴) 법사

성엄(聖嚴. 성옌, 1930〜2009)은 17세에 출가하였지만, 국민당 정부군에 입대해서 10년 동안 장교로 근무하였다. 중화민국이 성립하면서 대만으로 건너온 성엄은 1959년에 다시 출가하여, 1962년에서 1966년까지 홀로 수행하였다. 1969년에 일본의 릿쇼(立正)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6년 동안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75년 성엄은 대만으로 돌아와서 이때 정부에서 발기한 국건회(國建會, 궈젠회)의 불교계 대표가 되었다. 성엄은 3년 동안의 준비를거쳐 1996년 타이베이시 교외에 있는 북투(北投, 베이터우)에 법고산사(法鼓山寺, 파고산사)를 창건하였다. 1985년에는 성엄은 중화불학연구소(中華佛學硏究所)를 세우고 스스로 초대 소장을 지냈고 외국 교수를 영입해서 교학 활동의 활성화를 도모하였다. 2007년부터는 법고불교학원에서 연구생을 모집하면서 인재양성 업무도 하고 있다. 

법고산사에 등록한 신도는 약 100만 명에 이른다. 큰 법회가 열릴 때는 10만 명의 신도가 참석하고, 3천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봉사활동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봉사활동을 위해 등록한 사람이 30만 명이라고 한다. 법고산사가 있는 곳은 20여만 평에 이르는 넓은 규모이고, 본사 이외에는 농선사(農禪寺) 등 20여 개의 분원이 있으며, 미국과 프랑스 등의 해외에도 여러 개의 지원이 있다. 

법고산사는 커다란 대학 캠퍼스를 형성하고 있는데, 실제로 대부분의 건물이 교육과 관련된 것이다. 종교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곳은 대웅보전, 관음전, 수행센터(선불장)이다. 

(1) 법고산사에서는 교육을 최우선으로 하는데, 이것을 위해서 다음의 4가지 사항 곧 이념, 정신, 방침,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 법고산사의 이념은 “인간의 품격을 높여서 인간 정토를 건설한다”라는 것이다. 

둘째, 모든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인간 정토를 건설한다는 이념을 받들어서 건강한 공동체를 완성하는 것이다. 법고산사에서는 자신에 대한 이기심을 벗어던지고 다른 사람과 공동체를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정신적 태도를 가져 달라고 요구한다. 

셋째, 부처님이 본래부터 품고 있었던 마음으로 돌아가서 세상을 맑게 정화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본래 마음은 자비의 마음과 지혜의 마음이다. 자비의 마음에 근거해서 중생을 구제하고, 지혜의 마음에 의거해서 어리석음에서 벗어난다. 이것이 법고산사의 방침이다. 

넷째, 인간 정토를 실현하기 위한 법고산사의 방법은 “전면적 교육을 제창하여 총체적 보살핌을 실현한다”라는 것이다. 교육은 법고산사가 지향하는 이념과 정신을 실현하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법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처럼 교육을 통해서 인간 정토를 실현한다는 것이 법고산사의 목표이다. 

(2) 법고산사에서는 3개의 교육영역에 집중하고 있다. 그것은 대학원 교육, 대보화 교육, 대관회 교육이다. 첫째, 대학원 교육은 교육부의 인가를 받은 공식 기관에서 교육하는 것인데, 이는 완전한 전인(全人)교육을 실시해서 인간 정토를 실현할 수 있는 인재를 배양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법고대학과 법고산승가대학이 포함된다. 법고대학은 학위가 발급되는 정규대학이고, 법고산승가대학은 승려를 대상으로 하는 전문 교육기관에 해당한다. 

정규대학에 속하는 법고대학은 세계의 명문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교수들이 강의를 맡고 있다. 법고대학에서는 학문적 교육과 종교적 수행을 겸비하도록 교육과정이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대만의 대학 교육과정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교육과정이 대만의 교육법과 충돌하였고, 이에 법고산사에서는 교육법의 수정을 요청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서 현재 법고대학은 정식으로 종교학 학위를 줄 수 있는 교육기관이 되었다. 그리고 법고대학에 다니는 재학생의 학비, 후생복지 등의 비용을 전부 법고산사에서 지원한다. 법고대학은 한국의 해인승가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기도하다.

둘째, 대보화(大普化) 교육은 전통적인 수행과 현대적 문화 활동을 통해서 사람의 품격을 고양시키는 것이다. 참선, 염불, 법회, 강경 등은 전통적인 수행과 관련된 것이고 출판, 전산, 서화, 꽃꽂이, 다도 등은 현대적 문화 활동에 속하는 것이다. 

셋째, 대관회(大關懷) 교육은 불법을 생활화하고 생명을 보살피는 것을 통해서 보살핌이 일상화된 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모든 교육은 사람과 세상에 대한 관심과 배려라는 의미인 관회(關懷)로 돌아간다. 이것은 마음의 평화와 육신의 건강에서 시작해서 사회환경이나 자연환경 등에 관심을 갖고 배려하고 보살피는 활동으로 전개된다. 구체적인 사례로서 ‘예의환보운동’과 ‘9 ‧ 21 인심중건공정’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법고산사에서는 1992년부터 예의환보운동(禮儀環保運動)을 전개해왔다. 그 대표적 사례가 합동혼례[佛化聯合婚禮]와 합동제례[佛化聯合奠祭]이다. 이런 활동은 간략하고 간소한 관념과 작법으로 진행되는데, 이는 대만사회에 일종의 모범적 사례를 보여주었다. 성엄은 “인생이 끝나는 것이 비록 기쁜 일이 아니지만 또한 상심할 일도 아니다. 이는 하나의 장엄한 불사(佛事)이다”라고 하여 죽음과 관련된 제의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9 ‧ 21 인심중건공정(人心重建工程)은 1999년 9월 21일에 대만에 발생했던 대지진 이후에 생겨난 활동이다. 지진 발생 후에 법고산사에서는 지진이 발생한 지역의 주민이 다시 자신의 생활을 정돈하고 삶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였고, 이와 관련된 구체적 활동이 다방면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성엄은 “재난 후의 대만사회에서 사람을 안심케 하는 일이 최우선이다”라고 하면서, 성엄은 사람의 마음 상처가 쉽게 치유되는 것은 아니지만 법고산사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다시 세우는 활동을 그쳐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법고산사에서는 ‘자살방지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성엄은 “2분 정도만 더 생각해도 자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2009년 3월에는 생명을 보살피는 전화[關懷生命專線]를 개설하였는데, 여기에 참여하는 상담원은 전문적 훈련과정을 거친 자원봉사자로 구성되어 있다.

(3) 법고산사에서는 7일 프로그램 수행을 제시한다. 그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불칠(佛七)이고 다른 하나는 선칠(禪七)이다. 불칠(佛七)은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수행이고, 선칠(禪七)은 참선 프로그램이다. 이 선칠(禪七)은 1년에 40~50회 정도 열린다. 한 번 참가하는 인원은 최대 250명이고, 이 프로그램을 거쳐가는 사람은 1년에 5천 명 수준이라고 한다.

선칠수행에 관하여 성엄은 우선 호흡을 강조한다. 대다수의 재가신도가 수행의 기초가 부족하기 때문에 호흡에 집중하도록 한다. 그래서 마음이 안정되었을 때 화두(공안)를 주어서 의정(疑情)을 일으키도록 한다. 처음에는 화두를 진언처럼 단순하게 반복하는 수행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마음이 안정된 뒤에 화두에 깊이 의정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내용에 대해 성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칠(禪七)을 시작할 때 학인들의 마음은 보통 산만합니다. 일상생활의 관심사들이 여전히 그들과 함께 합니다. 그들은 선칠에 참가한 것에 대해 두려움과 기대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추위, 통증, 신체적 불편 등의 모든 것이 마음의 불안정한 상태를 다소간 심화시킵니다. 이럴 때는 그들에게 방법을 일러줄 필요가 있고, 그러면 그들이 마음을 안정시키고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호흡을 세는 것[數息]이나 호흡에 따르는 것[隨息]과 같은 단순한 방법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현대의 대다수 재가자는 수행에 확고한 기초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안정되었을 때만 그들에게 어떤 공안을 주어서 의정(疑情)을 일으키도록 합니다. 그럴 때라야 깨달음을 얻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해도, 공안에 대한 의심이 형성되면 그 학인이 최소한 올바른 수행의 길 위에 올라선 것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학인들의 마음이 안정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공안(公案)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진언을 염하는 것과 비슷하게, 단순히 그 구절을 거듭거듭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산란한 마음을 수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학인이 참으로 공안을 참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 공안이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구절이 아니라 깊이 느껴지는 물음이 될 때이고, 그 답을 얻는 것이 생사가 걸린 화급한 일인데도 추리로써는 답을 찾을 수 없을 때입니다. 그렇게 될 때, 즉 공안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을 때, 의정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만 마음이 열려서 어떤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6. 맺음말

이 글에서는 대만의 신흥 4대종문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였다. 여기서는 신흥 4대종문의 부정적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불광산사의 경우에는 정치세력과 공생관계라는 지적도 있다. 

대만의 불교가 현대화에서 상당히 진척을 이루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 한국불교가 따라가야 할 길이라고 단정 지어서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불교도 종교에 포함되는 것이고, 종교는 대중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대만불교에서 이룬 여러 성과에 대해서 한국의 불교계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필자가 대만에 답사하러 갔을 때, 감명 깊게 본 곳이 중대선사였다. 이곳은 선수행(선칠수행)을 표방하는 곳이었는데, 그 선수행이 대중과 함께 호흡하면서도 가능하고, 오히려 그래서 더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에 감명받았다. 선수행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사람과 떨어진 곳에서 하는 것이라는 선입견이 강했고, 그리고 선수행을 하면 아무래도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데 관심이 덜 가게 된다는 인식이 강했는데,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사례를 보고 대만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대만불교와 한국불교는 그 사상의 측면에서는 차이점이 거의 없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불교계를 운용하는 사람의 영역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만불교의 성공사례를 보고 배우면서도 한국불교의 독자적 길을 모색하는 것이 이 시대 불교인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 

 

이병욱 lbw33@hanmail.net

한양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 ·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천태사상연구》 《고려시대의 불교사상》 《인도철학사》 《한국불교사상의 전개》 《불교사회사상의 이해》 등이 있고, 〈천태지의 철학사상 논구〉 등의 논문이 있다. 현재 고려대, 한국외대 강사.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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