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침사의 탄생과 역할을 추적한 학술서

조선시대 불교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가 ‘숭유억불(崇儒抑佛)’이다.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왕과 유학자들은 불교에 대한 억불, 폐불 정책을 끊임없이 시행했다. 사찰 소유의 전답과 노비를 몰수해 경제권을 억압하는가 하면, 승려들을 부역에 동원했으며, 도첩제를 폐지해 출가의 길을 막기도 했다. 500년간 꾸준히 이어진 존폐의 기로에서 과연 불교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조선 불교를 공부하면서 한 번쯤 가졌을 의문은 《조선 왕릉의 사찰》을 읽으면서 해소할 수 있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사찰이 조선 왕실과 연계해 불교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기반을 마련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조선 왕실 원당 중에서 큰 축을 이루는 능침사(陵寢寺)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학술서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능침사는 왕릉의 제사와 능역 보호를 담당하는 사찰로 서울 봉은사, 흥천사, 화성 용주사 등이 대표적인 조선시대 능침사찰이다. 조선왕실 원당을 꾸준히 연구해온 탁효정✽ 순천대 연구교수가 능침사를 통해 유교 사회인 조선에서 불교가 지니고 있던 역사적 의미를 정리해 흥미롭다. 저자는 오랜 연구를 통해 얻은 탁견으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일성록(日省錄)》 《묘전궁릉원묘조포사조(廟殿宮陵園墓造泡寺調)》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범우고(梵宇攷)》 능지(陵誌), 등록(謄錄) 등의 사료와 현실의 간격을 메워나간다. 

저자는 불교가 수천 년간 지속돼온 가장 큰 요인으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중생의 마음 때문이라고 봤다. 왕실 또한 마찬가지로 세상을 떠난 부모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사찰을 지었다. 이런 의미에서 조선 왕릉을 유교적 효치주의(孝治主義), 풍수를 통한 자손 발복(發福), 불교를 통한 내세추복(來世追福) 등의 요소들이 함께 공존한 시설물로 해석할 수 있다. 유교적 상장례에 따라 왕릉을 건립하는 동시에 망자의 명복을 빌며 사찰을 세움으로써 유교와 불교문화가 융합된 산물이라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왕릉사찰의 기원을 찾다

조선시대 왕릉수호사찰은 재궁(齋宮), 능침사, 조포사(造泡寺) 등으로 불렸으며, 이름에 따라 담당하는 역할도 조금씩 변한다. 그렇다면 왕릉에 사찰을 세운 건 언제부터일까. 저자는 왕릉수호사찰의 기원을 찾아가는 것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중국 역대 왕조의 능침사를 따라간 결과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秦)에서 능침제도 기원을 찾아낸 것이다. 후한과 북위, 남조, 수당 대, 송 대에 이르기까지 능침사를 살펴보면서, 남송 대에 이르러 중국에 능침사 제도가 사라졌음을 확인했다.

이어 우리나라 삼국시대 불교 전래 이후 능침사찰의 변화에 대해서도 서술하였다. 고구려 동명성왕의 능침사 평양 정릉사지와 백제 성왕의 능침사 부여 능산리사지, 신라 문무왕의 능침사 경주 감은사지 등을 통해 삼국시대에도 왕릉수호사찰이 건립되었음을 확인한 것이다. 또한 고려 왕실은 진전사원을 설치, 사찰 안에 진영을 봉안한 전각을 세워 선왕을 추모해 왔다. 이런 고려 왕실의 전통이 조선 초기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조선시대 왕릉 50기 능의 수호사찰을 연구 대상으로 하여, 62개 수호사찰에 대해 살펴봤다. 왕릉사찰의 변천을 기준으로 조선 초기(태조 대부터 세조 대까지)와 중기(예종 대부터 임진왜란 이전), 후기(임진왜란 이후부터 순종 대까지)로 나누어 시대별로 왕릉수호사찰의 조성 과정과 능침사의 역할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특히 피장자와 능 형태, 조성 시기, 능과 사찰과의 거리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직접 가보지 않은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핵심은 조선시대 왕릉수호사찰의 개념과 범주가 어떻게 변모했으며, 왕릉수호사찰의 역할이 시대별로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조선 초기에는 능침사를 설치한 주체가 국왕이었다면, 예종~명종 대에는 왕비나 대비가 주도적으로 능침사를 세웠다. 주체가 달라지면서 능침사가 왕릉 제도에서 배제돼 능역 밖으로 벗어나게 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명칭 또한 재궁, 능침사, 조포사 등으로 달라진다. 능침 내에 설치된 불교식 재궁에는 승려들이 상주해 능묘를 수호했다. 중기에 설치된 능침사 대다수는 능역으로부터 1~2km 떨어진 독립된 사찰이었으며, 국가 주도가 아닌 왕실 주도로 제례를 지냈다. 후기 조포사는 두부를 만드는 절이란 의미를 뛰어넘어, 왕릉 제사에 필요한 제수품을 공급하는 의미를 지녔다. 이처럼 명칭에 따른 역할도 조금씩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능침사를 통해 본 조선 불교

저자는 왕실수호사찰이 조선왕조 내내 존속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종교적 이유와 경제적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종교적인 면은 당연하게도, 왕실 내에 지속적으로 이어진 불교 신앙 때문이다. 국가정책과 별개로 조선 왕실에서는 불교를 믿고 따르는 이들이 많았다. 조선 초부터 현종 대까지 궁궐 인근에 정업원을 비롯한 비구니 사찰들이 왕실의 비호 속에서 운영됐고, 이곳에서 왕실 여성들이 출가해 비구니가 되기도 했다. 세종 대부터 연산군 대에는 선왕 후궁들이 줄지어 출가했고 왕비와 대비, 후궁, 왕자, 공주, 상궁, 내관, 일반 궁녀들은 사찰 불사의 주축이 됐다. 

왕실의 비빈들은 불교를 깊이 신행했으며, 관료들 반대에도 불구하고 능침사 건립을 추진했다. 선왕(先王) 선후(先后)가 사후에라도 불법을 듣고 정토왕생 하길 발원하는 마음으로 불사를 주도한 것이다. 이는 유교가 해결하지 못한 죽음 이후의 영역을 불교가 담당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적인 측면으로 보면, 왕실과 사찰은 공생관계라 할 수 있다. 왕실은 사찰 승려들을 동원해 능역을 보호하고 제사를 준비하게 함으로써 왕릉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 승려들이 능침 주변 산림을 보호하는 것을 비롯해 각종 잡역을 담당했기 때문에 수호군을 줄일 수 있어 국가 재정에도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능침사로 지정된 사찰은 왕실로부터 사위전(寺位田)이라는 명목으로 비용을 받았으며, 면세특권도 받았다. 조선 전 · 중기에는 능침사에 위전과 노비가 지급돼 사찰 경영이 비교적 수월했다. 특히 임란 이후 사찰은 잡역 대상으로, 지방 토호나 관아로부터 막중한 역에 시달려야 했다. 다만 조포사의 경우 왕실 수호의 명분을 내세워 여타 관청이나 서원, 향교, 지방 토호의 역을 담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일부 왕릉과 멀리 떨어진 사찰들이 조포속사(造泡屬寺)를 자청해 왕실의 보호를 받으려고 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런 경제적 상관관계가 있어 왕릉수호사찰 제도가 조선왕조 내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정리해보면, 저자는 억불시대 500년을 불교가 버틸 수 있었던 배경으로 왕실의 불심, 능침사의 경제적 효율성과 승려들의 노력을 꼽았다. 왕실 특히 비빈을 중심으로 선왕선후 추선에 공을 들였고, 그 결과가 능침사 건립으로 이어졌다. 왕릉을 유지하기 위해 왕실은 주변 사찰의 승려를 적극 활용해 능역 보호 비용을 절감하는 이익을 얻었으며, 사찰에서는 왕릉 수호 명목으로 재정 지원을 받았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조포사에 대한 왕실 지원이 끊기면서 일부 사찰들은 폐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방 관아나 토호들의 막대한 승역에 시달려온 사찰들은 지원 없이 조포사나 조포속사가 되기를 자청하기도 했다. 잡역만 면제되어도 사찰 운영에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조선 왕릉의 사찰》을 읽다 보면, 조선불교가 폐지의 위기를 극복하고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왕릉수호사찰이 돼 왕실과 공생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억불시대 불교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 왕실의 이렇다 할 경제적 지원 없이 조포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승려들의 노력이 컸다. 당시 승려들은 성곽복원이나 국가 재건을 위한 각종 잡역에 투입되면서도 지방 토호와 관아의 잡역도 부과된 현실에서, 승려들은 사찰 존립을 위해 막중한 노동을 버텼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 조선불교를 숭유억불의 암흑의 시대로만 생각하고 있었거나 호국불교, 산중불교 등 단편적으로만 생각했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조선시대는 물론 지금의 한국불교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좋은 실마리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

 

어현경 eohk25@hanmail.net

동국대학교, 동 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현재 불교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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