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원효의 눈으로 붓다를 보다

2,500여 년 전 붓다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이러한 물음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1,400여 년 전에 살았던 원효에게도 삶의 여정 속에서 계속 마음을 맴도는 질문이다. 

《붓다와 원효의 철학》이란 제목의 이 책에서 지은이 고영섭✽은 거기에 더해 ‘왜’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왜 ‘깨침’ 또는 ‘깨달음’이 중요한가?” 붓다는 “어떻게 깨치고 무엇을 깨쳤을까?” 책의 서두를 이러한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이 물음이 오늘 우리에게도 1,400여 년 전의 원효에게도 절실하고 유효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철학이란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서구 학문의 도래로 인해 철학은 ‘필로소피(philsophy)’의 번역어 정도로 알려진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하지만, 인도 대륙에서도 한반도에서도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인간으로서 삶의 방식이 있어 왔다. 그리고 그에 따르는 삶에 대한 통찰이 있어 왔다. 

이러한 삶의 방식을 지닌 인간을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 혹은 ‘호모 렐리기오수스’라고 부른다. 호모 사피엔스로 특징지어지는 인간이 삶의 실용적인 측면에 집중하여 지혜를 발휘한다면, 호모 렐리기오수스로서 인간은 세계와 마주하여 느끼는 근원적 존재 의식과 보다 심층적인 마음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면서 그 문제를 끌어안고 살아간다. 따라서 오늘 우리의 삶이 짊어진 고민의 무게는 하루 이틀 만에 생긴 것이 아닐 것이다. 몇천 년을 이어져 왔을 그 삶의 무게를 지탱해 줄 만한 지렛대를 원효에게서 발견하는 기쁨을 이 책을 읽으며 느낀다. 

원효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어떻게 세계와 자신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얻고자 노력했는가? 또 그의 깨달음의 내용은 무엇이며, 그것은 그 자신과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이러한 물음과 그에 대한 사유의 실마리를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붓다의 깨달음과 그것을 통한 가르침은 불교 사상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된다. 그 다양한 흐름이 만나서 충돌하는 지점이 바로 원효가 살았던 시대, 동아시아라는 지역이었다. 원효는 충돌하는 흐름들의 쟁점을 부각시키며 회통함으로써 한국 철학의 새벽을 여는 역할을 하였다. 그는 붓다의 가르침과 그 다양한 전통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가 살았던 시대와 지역의 특수성을 사유하면서 자신의 철학을 만들어갔던 것이다. 그의 철학과 사상의 궤적을 저자는 촘촘하게 엮어서 보여주고 있다. 

모두 12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원효가 붓다의 깨달음과 열반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어떤 방법으로 그 자신도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고자 했는가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당시의 대중에게 전하려고 했던 깨달음에 이르는 길들은 우리 마음의 심층에도 자리 잡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제1장에서 저자는 돈오(頓悟, 즉각적인 깨침)를 의미하는 개념으로서 ‘깨침’을, 점오(漸悟, 점차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깨달음)를 의미하는 개념으로서 ‘깨달음’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깨침’ ‘깨달음’이라는 차원에서 붓다와 원효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는 이 책의 첫 장에서부터, 우리말을 통한 현재적 사유를 전개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붓다의 가르침은 언어적 이해를 넘어선 것이기에 명상과 수행을 통해서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만 그 또한 언어를 통한 선이해가 있어야 하며, 우리가 이해한 내용 또한 언어를 통해 전달될 수밖에 없다. 오늘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가 스스로의 언어로 깨달음에 대해 이해하고 사유해야 하는 까닭이다. 제2장 ‘원효의 생애와 사상’은 당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신라인 원효의 주체적 사유와 삶의 단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의상과 함께 떠난 유학길에 땅막에서 이루어진 ‘깨침’의 장면은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이지만, 그 깨침을 전후하여 고대 한반도에서 삼국이 각축을 벌이던 역사적 배경과 삼국통일을 전후한 원효의 상황 인식이 이 장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원효가 ‘깨침’ 혹은 ‘깨달음’을 얻은 곳, 그의 오도처(悟道處)는 이 땅, 곧 우리가 사는 곳이기도 하다. 제3장에서 펼쳐지는 원효의 오도처에 대한 탐구 역시 우리가 살고 여행하는 곳들이기에 낯설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제4장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원효의 철학을 지은이는 ‘일심의 철학’이라 명명한다. 원효는 기신론 사상을 중심으로 ‘일심의 철학’을 구축하면서, ‘일심과 본각과의 관계’를 ‘여래장과 불성과의 관계’로 파악하고 있다고 지은이는 정리한다. 유식의 이론으로 여래장을 분석하는 한편, 본각으로서 자성청정한 불성을 깨달음으로써 본각과 시각이 같아지는 일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원효의 일심철학은, 여래와 범부의 동일성을 인정하면서도 여래와 범부의 차이성을 강조함으로써 깨달음을 향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게 하려는 생각을 담은 것이라고 지은이는 해석한다. 원효의 기신론 사상은 후대의 사상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태현(太賢)은 《대승기신론》에 대한 원효와 법장의 주석을 대조하여 소개하고 있으며, 견등(見等) 역시 원효와 법장의 주석을 토대로 《기신론》 연구를 진행하였다고 한다.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원효의 사상을 이으려는 이들이 끊이지 않았음을 본 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5장에서 지은이는 원효가 말하는 일심지원과 일심의 차이를 분명하게 구분하여 설명한다. 원효가 말하는 일심은 ‘적멸로서의 일심(심진여문)’과 ‘여래장으로서의 일심(심생멸문)’으로 구성되며, 이 외에 일심지원으로서 ‘본법(本法)으로서의 일심’을 세움으로써 삼제설(三諦說)을 구축하고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이러한 삼제설의 입론은 《금강삼매경론》에서 확인되며, 원효의 일심철학은 《기신론소》와 《금강삼매경론》에서 이론과 실천을 아우르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원효는 ‘본각의 결정성’과 ‘일심의 신해성’을 보여줌으로써 역동적인 마음의 본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우리가 그러한 원효의 눈을 통해 붓다의 깨달음을 찾고자 할 때 자유롭게 사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지은이는 역설한다.

제6장에서는 기신학의 일심이 삼매론의 일미(一味)와 어떻게 통섭되는가를 보여준다. 그것은 일심지원의 행법과 삼공지해의 관법에 의해 가능한데, 이러한 통섭의 과정은 곧 원효 당대의 쟁점이 되었던 유식과 중관의 화쟁으로 귀결되는 것이었다. 이어 제7장에서  《십문화쟁론》을 중심으로 한 ‘원효의 화쟁, 회통에 대한 탐구’를 정리하고 있다. 인명학에 대한 원효의 식견 또한 당대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데, 그의 저술 중 《판비량론》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제8장은 인명학을 통한 원효의 논리적 추론과 논의의 구성을 《십문화쟁론》과 《판비량론》에 대한 지은이의 탐구를 통해 추적할 수 있다. 

제9장에서는 동아시아 불교사상의 토대가 되어온 《대승기신론》에 대한 다양한 주석들이 신라뿐 아니라 고려,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왔으며, 그 대부분의 주석은 원효의 주석과 사상에 기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어 제10장에서는 원효 《대승기신론소》의 내용과 특징이 정리되고 있다. 중관학과 유식학의 종합 지양으로서 해석되는 원효의 《기신론소》의 특징을 지은이는 ‘심식배대와 삼세육추설 제창’으로 보고 있다. 원효의 ‘구상설(九相說)’ 혹은 ‘삼세(三細) 알라야식설’로도 불리는 원효 소(疏)의 특징을 지은이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이처럼 원효는 삼세상에 무명업상, 능견상, 경계상을 배속하고 제8(아리야)식위에 배대하고 있다. 이어 육추상의 첫 번째인 지상을 제7(말나)식위에 배대하고, 육추상의 상속상, 집취상, 계명자상, 기업상, 업계고상을 제6요별경식에 배대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배대는 제8식위를 제외하는 이전의 담연과 혜원과 다른 것이며, 제8식위를 인정하면서도 제7식위를 제외하는 이후의 법장과도 구분되는 독자적인 주장이다. 여기에는 원효의 인간 이해와 세계 인식이 투영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본문 446쪽) 

최종적으로 제11장에서는 《금강삼매경론》의 내용과 특징을 설명한다. 무상법품, 무생행품, 본각리품, 입실제품, 진성공품, 여래장품으로 이어지는 《삼매경론》의 정설분 6품과 제7 총지품의 구조는 중관과 유식의 일미적 통섭을 잘 보여주고 있음을 지은이는 밝히고 있다. 또한 삼국통일을 전후하여 마주하게 된 정치적 상황을 신라계와 가야계의 연합을 통해 돌파하려 했던 신라 왕실의 문제의식과 평등사회를 지향하며 대중불교를 전파하고자 했던 검해(혜공)-대안-원효의 선지식이 만나서 이룬 성과가 《금강삼매경론》이었음을 추론하는 지은이의 시대를 꿰뚫는 통찰을 여기서 만날 수 있다. 제12장에는 원효 연구 논저 목록이 총망라되어 있다. 

지은이는 원효를 해석하는 기호로서 ‘일심’ ‘화쟁’ ‘무애’를 들고 있다. 문헌학적으로도 촘촘하게 구축된 이 책의 글들은 나아가 불교해석학의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하여 지은이가 제시한 기호들과 그 기호들이 출몰하는 지형을 따라갈 때, 독자들은 원효의 사상을 제대로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으며, 원효의 철학이 붓다의 철학과 맞닿아 있는 지점들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 

 

김현희 rapingus@chol.com

서울대 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경상대 철학과 박사과정 졸업. 현재 경상대 철학과 강사.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