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진리를 사모한 벽안의 학자

에드워드 콘즈의 삶과 저술

에드워드 콘즈(Edward Conze, 1904~1979)
에드워드 콘즈(Edward Conze, 1904~1979)

한국 불교학계는 1980년대에는 주로 일본 학계의 연구성과를 수용하였고, 그와 함께 영어권 연구도 학계에 소개되었다. 일본 학계의 연구성과는 기본적 설명이 충실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거시적 관점과 자신의 분명한 주장에서 무언가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런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 영어권 연구성과라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영어권 연구성과에서 대표적 인물의 한 사람인 에드워드 콘즈(Edward Conze, 1904~1979)의 삶과 학문적 성과를 간단히 검토하고자 한다. 콘즈는 독일 사람이지만,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가 영국 주재 독일 부영사로 근무했을 때 런던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영국의 시민권을 가질 수 있었다. 콘즈는 산스끄리뜨어 등 14개의 언어가 가능했다고 한다. 1928년에 독일의 쾰른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고 나서 본대학과 함부르크대학에서 ‘유럽과 인도철학의 비교’로 박사후연수과정을 마쳤다. 

한편, 그는 마르크스 사상에도 관심이 많았다. 1932년에 《모순의 원리》를 저술하였는데, 그 내용은 변증법적 유물론에 관한 것이었다. 1930년 초에 콘즈는 독일 공산당의 활동을 도왔고,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영국 생활 초기에는 야간대학에서 독일어, 철학, 심리학 등을 강의했고, 나중에는 여러 대학에서 비교종교학, 불교와 반야바라밀을 가르쳤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영국에서도 노동당에 가입해서 당시 대표인 엘렌 윌킨슨과 함께 《왜 전쟁을》 《왜 파시즘》을 공저했다. 그러다가 1939년에 정치 활동을 그만두었다. 1941년에 콘즈는 그전부터 영향을 받았던 불교를 종교로 받아들였다. 그는 일본 선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인 스즈키 선사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콘즈는 붓다고사의 《청정도론(淸淨道論)》의 지침에 입각해서 명상과 엄격한 고행을 단기간 실천하기도 하였는데, 그때 괴혈병에 걸린 적도 있다고 한다. 그 후 옥스퍼드대학으로 가서 대승불교의 토대인 반야부 계열의 산스끄리뜨 경전을 연구하였고, 평생토록 이 연구 작업을 이어갔다.

콘즈의 저술과 번역서는 19권이고, 논문은 98편, 서평은 152편, 기타가 25편에 이른다. 그의 대표적 저술로는 《불교: 그 핵심과 발달(Buddhism: Its Essence and Development)》(1951), 《인도불교사상사(Buddhist Thought in India)》(1962), 《30년간의 불교 연구(Thirty Years of Buddhist Studies)》(1967)를 거론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번역된 콘즈의 저서는 《불교: 그 핵심과 발달(한글세대를 위한 불교)》(1990/1992), 《인도불교사상사》(1988/1990), 《불교의 성전》(1983/1988), 《불교 지혜의 원천: 금강경 반야심경 뜻과 풀이》(1980) 등이다. 

그리고 J.W. 드용에 따르면, 콘즈는 반야 계열의 문헌에 대해 포괄적인 개론서를 쓰고, 또 《현관장엄론》 《금강경》 《팔천송반야경》 《이만오천송반야경》 《일만팔천송반야경》 등에 대한 교정본을 내고 번역하였으며, 반야 계열의 문헌에 대한 사전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그의 저술 《불교의 성전》을 번역한 정병조는 ‘옮긴이의 말’에서 먼저 서양 불교학의 경향을 비판한다. 그것은 ‘머릿속의 불교’와 같은 경향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서양 불교학자의 냉정한 학문적 입장은 존중해야겠지만, 사상성(思想性)을 고양하는 측면에서는 서양 불교학자의 연구에 아쉬운 대목이 많다고 비판한다. 그러고 나서 에드워드 콘즈는 그렇지 않은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콘즈는 앞에서 거론한 내용, 곧 서양인이 지니는 불교학 연구의 한계점을 극복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초기 저술 《불교: 그 핵심과 발달》에서 콘즈는 다분히 계몽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책에서 불교적으로 순화되지 않은 마음 상태의 서구인을 불교로 인도하기 위한 사명감을 같은 것을 그가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불교: 그 핵심과 발달》을 읽다 보면, 콘즈는 불교의 진리를 사모하는 벽안(碧眼)의 이방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때로는 서구적 편견을 은근히 꼬집고, 불교의 지혜가 가진 당위성을 힘주어 강조한다. 그는 진실한 불교인이 되고자 하는 서구인의 한 명이라는 것이다. 

콘즈는 《인도불교사상사(Buddhist Thought in India)》의 서문에서는 정신적 지혜가 퇴보하는 3단계를 말하고 있다. 우선 A.D. 5세기 이전에 아시아와 유럽에서 모두 정신적 창조력이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탁월한 재능이 엿보이는 권위 있는 종교적 저술은 그 시기 이후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19세기까지는 정신적 감수성이 최저의 수준에 이르렀는데, 이것이 두 번째 단계라는 설명이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생동하는 정신적 지혜의 전통은 거의 사라졌고, 정신적 명상을 위해 조직된 센터도 여러 곳에서 파산했으며, ‘진보의 문명’이라는 주제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세 번째 단계이다. 게다가 이런 현상을 전혀 염려하지 않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

그러면서 콘즈는 매스컴의 빠른 발전으로 인해서 동양문화와 서양문화가 서로 직면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까지 유럽, 특히 영국의 철학자는 그전보다 더 편협한 방식으로 동양문화에 대응하였다고 콘즈는 진단한다. 그렇지만 영국의 철학자가 언제까지 이런 편협한 방식을 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도의 요가(선정)를 전제로 할 때, 철학적 체계는 현대과학에 근거하는 것만큼이나 타당하고 설득력이 있을 것이며, 또 일관성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콘즈는 《인도불교사상사》를 통해서 불교철학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소개함으로써 유럽의 철학자가 이러한 주제에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서 콘즈가 현대문명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리고 불교철학에 어떤 기대를 품고 있는지 잘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2. 《불교: 그 핵심과 발전》의 내용 

콘즈의 《불교: 그 핵심과 발전》의 맨 앞부분에 아서 웨일리(Ar-thur Waley)의 서문이 있다. 여기서 아서 웨일리는 콘즈의 이 책이 현재(1951년 기준) 영어 또는 다른 언어로 저술된 불교 개론서 가운데 가장 포괄적이고, 쉽고 읽을 만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 이전에 여러 개론서가 있긴 했지만, 콘즈의 이 책에서는 불교에서 제시하는 질문과 대답이 역동적이고 생생한 것이 되도록 하였고, 또 불교를 역사와 현재성의 관계에서 검토하였다고 평가한다. 

또 콘즈의 이 책을 번역한 한형조는 ‘옮긴이의 말’에서 앞의 아서 웨일리의 말을 다시 인용하면서 콘즈의 이 책만큼 포괄적이면서도 쉽고 읽을 만한 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이 책을 번역하였다고 밝힌다. 또 엘리아데의 찬사처럼, “불과 200쪽 남짓한 지면에 붓다에서 일본의 선종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정수를 한 편의 드라마로 엮어내는 데 성공한 작품, 아름답게 쓰인 작품, 빛나는 작품”이기 때문에 번역하였다고 밝힌다. 물론 한형조는 콘즈가 한문과 일본어에 밝지 못하기 때문에 동아시아불교에 대해 제대로 평가할 능력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불교: 그 핵심과 발전》은 서론과 본론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는 1장, 2장, 3장의 일부 내용을 선별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특히 2장과 3장의 내용에서 콘즈의 거시적 시각을 읽을 수 있다. 

1) 불교는 무신론인가

제1장에서는 불교의 공통된 근거에 대해 거론하는데, 여기서는 ‘불교는 무신론인가’에 대해 알아본다. 이 문제를 두고 논쟁이 있는데, 하나의 주장은 불교에서 신(God)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종교가 아니라는 것이고, 다른 주장은 불교에서 신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불교는 종교에 포함되는데, 왜냐하면 신에 대한 믿음이 종교의 핵심적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콘즈는 이러한 논쟁이 생긴 것이 신에 대한 관념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고, 신을 다음의 3가지로 구분한다. 

첫째, 우주를 창조한 인격신이다. 불교에서는 우주를 창조한 인격신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둘째, 비인격적인 신성(神性) 또는 인격신의 맥락을 넘어선 신성이다. 불교에서 이러한 신성에 해당하는 것은 열반이다. 열반의 구체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불타’이고, 이 ‘불타’는 자연스럽게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셋째, 많은 수의 신(神) 또는 수호신이다. 불교의 초기문헌에서는 브라만교의 여러 신을 수용하였고, 후에는 지역의 여러 신을 수용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불교에서 우주를 창조한 인격신을 인정하지 않지만, 여러 신을 수용하고 있어서 완전한 무신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2) 승가 생활의 3가지 핵심 덕목 

2장에서는 ‘승가의 불교’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승가 생활의 3가지 핵심 덕목이 있는데, 그것은 청빈, 독신, 불살생(不殺生)이다.

① 청빈은 승려의 생활에서 주요한 덕목이다. 승려는 재산을 사적으로 거의 갖지 못하였다. 그리고 승려는 먹을 것을 탁발을 통해 구했다. 탁발의 실천은 승려에게 3가지 기회를 주었다. 그것은 자신의 몸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고,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며, 분별망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승불교에 와서 이러한 탁발의 실천은 거의 포기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국, 한국, 베트남에서 탁발의 전통은 단절되었다. 물론 과거의 중국에서는 탁발 수행을 하였다. 예를 들면, 당나라 왕조 때에 율종(律宗)이 성립되어서 탁발 수행을 강조하였고, 송나라 왕조 때에는 선종의 승려가 탁발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일본에서 선종의 승려가 이 탁발 수행을 계속하였다. 그런데 일본에서의 탁발은 그 의미가 조금 변화된 것이었다. 탁발이 생계의 주요한 원천이 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참자를 위한 훈련용 의식, 특별한 경우, 자선의 목적을 위해서 모금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② 독신은 승가 생활의 중심적 요소이다. 승가의 정통적 견해는 성행위를 아둔하고 짐승과 같은 짓이라고 보았다. 그러다가 독신을 주장하지 않는 종파가 등장하였다. 인도의 카슈미르에서는 A.D. 500년경에 결혼을 한 승려가 등장하였다. 또 A.D. 800년경부터는 탄트라불교에서 결혼한 승려를 인정하였다. 티베트의 뛰어난 승려 파드마 삼바바(Padma Sambhava)와 마르파(Marpa)도 결혼을 하였다. 그리고 탄트라불교에서는 성적 교섭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A.D. 1200년경 일본의 정토진종에서도 승려의 결혼을 인정하였다. 다만 그 동기가 탄트라불교와 다르다. 정토진종에서는 자신들의 근기가 낮고 열등하기 때문에 붓다의 엄격한 계율을 수용하기 어렵다고 인정하였다. 이처럼 콘즈는 독신이 승가 생활의 중심적 요소라고 말하면서도, ‘불교사’의 전체적 흐름 속에서 독신생활을 하지 않은 사례를 지적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콘즈의 거시적 시각이 잘 나타난다. 

③ 불살생은 불교와 자이나교에서 주장된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첫째,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친족 관계에 있다는 믿음이다. 이는 윤회의 관념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둘째, 우리의 정서를 개발해서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는 범위를 넓혀 가서 자아에 대한 애착을 줄여가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처럼 불살생을 강조하기 때문에 채식주의로 연결되고, 또 종교적 박해 같은 것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콘즈는 불살생을 언급하는 곳에서 그것을 어기는 경우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티베트, 버마, 일본, 중국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티베트에서 겔룩파(Ge-lug-pa)의 성공은 몽골군의 군사적 지원에 힘입은 바가 크다. 몽골군은 17세기에 겔룩파와 경쟁 관계에 있던 빨간 종파(Red sects)의 사원을 여러 번 황폐화하였다. 그리고 몽골군은 이러한 군사 활동을 통해 노란 교회(Yellow Church, 겔룩파)의 수장, 곧 달라이 라마(Dalai Lama)를 지원하였다. 또 버마(미얀마)에서는 11세기에 아누룻다(Anuruddha)왕이 불교 경전의 복사본을 탈취하기 위해 타톤(Thaton) 왕국과 전쟁을 벌였다. 1930년대 사야산(Saya San)이라는 민중운동가는 ‘세존의 이름’으로 승가의 커다란 영광을 위해서 영국인에게 전쟁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불교 사원이 중세 동안 소동의 근원지였다. 승려는 산의 은신처에서 무장하고 많은 무리를 이루었고, 교토(京都)에 자주 침입하였다. 중국에서 의화단(Boxer)도 불교 전문용어를 사용하면서 폭력에 의존하는 민중운동 사례의 하나이다. 여기서도 콘즈의 거시적 시각을 읽을 수 있다. 

3) 불교와 세속권력의 관계

3장 ‘대중의 불교’에서는 불교와 세속권력의 관계를 검토하고 있다. 여기서는 세속의 군주가 불교를 보호한 이유에 대해 분석한다. 첫째, 이 세상에서 진정한 행복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부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그래서 정부에 대한 비판을 가로막는 기능을 한다. 또 불교에서 비폭력을 강조하는 것이 나라를 안정시키고, 지배자의 위치를 더욱 확고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는 것이다.

둘째, 불교의 이념이 지배자를 신성화하는 역할을 한다. 10세기에 자바, 캄보디아, 실론(스리랑카)의 지배자는 보디사트바(보살)로 대접을 받았다. 12세기 말엽 캄보디아에서는 자야바르만(Jayavarman) 7세가 그의 어머니 초상을 반야바라밀로 모셨다. 20세기에서도 태국의 왕은 신성한 부처이다. 1326년에 세워진 위구르 비문에서 칭기즈칸이 ‘마지막 삶의 보살’로 불린다. 쿠빌라이 칸은 몽골인의 전승에서 전륜성왕이고 현인이자 성인으로 추앙되었다. 이러한 관념은 주민이 정부에 고분고분하게 만들고, 승려는 정부를 정신적인 차원에서 단속하도록 하였다. 

셋째, 지배자는 불교만이 아니라 지배자의 권위를 올려줄 수 있는 것이라면 어느 종교든지 후원하였는데, 이러한 지배자가 불교에 대해 선호한 것에는 2가지 요인이 있다. 하나는 불교가 전파될 때 뛰어난 문명도 아울러 전해졌기 때문이다. 쇼토쿠 타이시(聖德太子, 574~622/621)가 불교의 신념을 수용하였을 때, 중국의 전반적 문명이 불교와 함께 전해졌다. 또 티베트에서 불교를 수용했을 때 불교와 함께 인도의 세속적인 학문, 곧 문법, 의약, 천문학, 점성술도 아울러 전해졌다. 다른 하나는 불교에 세계주의적이고 국제주의적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광대한 영토를 통일하고자 하는 군주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불교의 유연하고 적응적인 교리는 이질적 요소를 가진 여러 사람을 통치할 때 도움이 되었다. 

3. 비교철학의 관점 

콘즈는 두 편의 논문, 곧 〈불교철학과 유럽철학의 비교(Buddhist Philosophy and Its European Parallels)〉(1963)와 〈불교철학과의 잘못된 비교(Spurious Parallels to Buddhist Philosophy)〉(1963)에서 자신의 비교철학에 대한 관점을 제시한다. 

1) 고전적인 철학과 과학적인 철학의 구분

콘즈는 고전적인 철학과 과학적인 철학으로 구분한다. 고전적인 철학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구분이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고전적인 철학에서는 다음의 내용을 주장한다. 첫째, 인식의 계급이 있을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은 본성에서 볼 때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인식할 수 있다. 둘째, 실재의 수준에도 계층적인 구조가 있으며, 더 높은 단계의 것이 더 실재적이다. 셋째, 고대의 현자는 참다운 지혜를 발견했는데, 이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일반적 경험에 토대를 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어떤 현자는 생생한 실재와 직접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넷째, 참다운 가르침은 위대한 인물의 모범적인 삶이나 카리스마적 자질에 의한 권위에 근거를 둔다.

그리고 이러한 고전적인 철학에서 인도 사상이 두드러진 점은 다음의 2가지이다. 첫째, 요가(선정) 수행을 통해서 가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다고 신뢰하는 것이다. 둘째, 업과 윤회를 수용하는 것이다. 

과학적인 철학은 앞에서 소개한 고전적인 철학에서 벗어나서 1450년 이후 유럽에서 발전한 것이다. 이 과학적인 철학에는 다음의 4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자연과학, 그중에서도 무기물을 다루는 자연과학은 우주의 실제 구조를 알려주는 것인데, 이 자연과학에서는 수학적으로 공식화할 수 있으면 있을수록 더 과학적이라는 표준을 얻는다. 또 반복 가능한 관찰에 의존하면 할수록 더 과학적이라는 표준을 얻는다. 둘째, 인간은 과학을 인식하는 최고의 존재자이므로 인간의 권능과 편의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셋째, 비범한 정신력은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 없으며, 죽은 뒤의 생(生)은 과학적으로 입증되기 어렵기에 무시된다. 넷째, 삶이란 현세에서의 삶을 의미하고,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사회적 기술을 통해 대중의 복지를 개선하는 데 있다.

2) 의미 있는 비교철학의 주제 

콘즈가 위와 같이 고전적인 철학과 과학적인 철학으로 구분한 것은 과학적인 철학에 속하는 것과 불교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콘즈는 불교와 비교될 수 있는 유럽 철학으로 3가지 경향을 거론하는데, 여기서는 불교와 쇼펜하우어 철학의 비교를 살펴보고, 그의 이전의 저술 《불교: 그 핵심과 발전》에 이러한 비교철학관의 맹아가 있었음을 알아본다. 

① 먼저 콘즈는 쇼펜하우어와 불교의 친화성을 거론한다. 콘즈에 따르면 쇼펜하우어는 3가지 전통 곧 정적주의, 금욕주의, 신비주의를 모두 계승하였다. ‘정적주의’는 모든 의지작용을 포기하는 것이고, ‘금욕주의’는 인간의 의지를 의도적으로 억제하는 것이며, ‘신비주의’는 인간 내면의 존재가 모든 존재자(또는 세계)의 핵심과 동일함을 의식하는 것이다. 또 쇼펜하우어는 이 세상의 삶은 무의미하고, 그것은 본질에서 보면 괴로움이며, 우리의 욕망을 충족하고자 하는 시도는 좌절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괴로움은 ‘생의 의지’ 때문인데, ‘생의 의지’는 욕망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고통스러운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생의 의지’가 부정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고행자 등의 삶에서 보이는 ‘자제’와 ‘금욕’에 의해서 얻어진다고 주장한다.

콘즈는 쇼펜하우어와 불교는 2가지 점에서 다르다고 한다. 첫째, 쇼펜하우어는 잘 훈련된 명상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19세기 독일의 비(非)기독교 지식인은 종교적 묵상의 전통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이러한 지식인은 휴식을 위해서 미술관을 찾거나 야외로 산책을 하곤 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풍조에 친숙하였던 쇼펜하우어는 열반의 숭고한 평정 상태를 선정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미학적인 관조에서 체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미에 대한 관조와 선정의 상태가 어느 정도 유사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미의 관조는 훈련이 필요 없는 재능으로서 인간성을 변형시킬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둘째, 쇼펜하우어는 의지가 ‘물자체’라고 주장하지만, 불교에서는 무위(無爲)의 본체는 갈망을 소멸시켜서 얻어지는 열반 속에 있다고 주장한다. 쇼펜하우어는 요가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인간의 마음 밑바닥에 열반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고요한 평정 상태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② 사실 콘즈의 이런 비교철학의 관점은 그 이전의 저술 《불교: 그 핵심과 발전》에서도 그 맹아를 읽을 수 있다. 콘즈는 중관학파의 공사상은 그리스의 회의주의자 피론(Pyrrhon, B.C. 360~275)의 사상과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피론은 ‘판단중지’를 주장하였고, 또 피론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피론과 같은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흥미롭게도 콘즈는 중관학파와 피론의 사상의 유사점에서 중관학파의 성립 연대를 추정한다. 피론과 그의 스승 아낙사르코스(Anaxarchos)는 알렉산더대왕의 군대와 함께 아시아를 방문하고 나서 회의주의학파를 세웠다. 로뱅(Robin)이나 다른 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피론이 주장하는 철학적 회의론은 그리스에서는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에서 콘즈는 피론의 회의주의는 인도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고, 그중에서도 자이나교 공의파 수행자에게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자이나교와 불교는 서로 긴밀하게 교류하였고, 사상의 측면에서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렇다면 피론이 자이나교 공의파 수행자에게 영향을 받은 것에는 자이나교의 사상만이 아니고 거기에는 불교의 사상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콘즈는 이러한 추정에서 중관학파의 사상이 B.C. 350년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콘즈의 주장은 상당히 대담한 가설이고, 일정 부분 비약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그리스 사상과 인도 사상의 교류는 더 연구되어야 할 대목이다. 

3) 의미 없는 비교철학의 주제 

그 다음에 콘즈는 다른 논문에서 불교와 유럽 철학의 사이비 유사성을 거론하는데, 여기서는 불교와 실존주의 비교에 대해서만 살펴본다.

콘즈는 불교와 실존주의 비교는 사이비 유사성을 검토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존주의는 지적인 유럽인이 지니는 절망적인 불안감에서 출발한다. 이들의 실존적인 불안은 자신의 사회적 상황에서 시작된 것이다. 실존주의자는 인간실존의 비참한 상태에 대해 진단을 내렸는데, 이러한 내용은 불교의 주장과 일치한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불교와 실존주의에는 다른 측면이 더 많다. 사성제를 기준으로 해서 보면, 실존주의자는 모든 것이 괴로움이라는 고제(苦諦)를 포함한다. 그런데 실존주의자는 괴로움의 근원이 갈망에 있다는 집제(集諦)에 대해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멸제(滅諦)와 도제(道諦)에 대해서도 실존주의자는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실존주의자가 세상에 대해 권태를 느끼고 있지만, 불교에서는 괴로움은 열반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에 의해 치유되고, 다양한 명상체험을 통해서 괴로움이 완화된다. 실존주의와 불교는 이러한 차이점이 있다고 콘즈는 주장한다.

4. 맺음말 

이 글에서는 콘즈의 《불교: 그 핵심과 발전》의 일부 내용과 비교철학의 관점을 소개하였다. 그런데 콘즈의 비교철학관은 크리스 거드문센에 의해 비판된다. 크리스 거드문센은 자신의 저술 《비트겐슈타인과 불교》의 서문에서 위에 소개한 콘즈의 비교철학관을 소개하고, 콘즈의 이러한 주장이 정통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긴 하지만, 이제는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크리스 거드문센은 중관학파의 사상을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에서 재해석할 수 있다고 말한다.17) 그리고 《불교: 그 핵심과 발전》의 내용에서 거시적 시각이 돋보이는 것만큼 동아시아불교, 그중에서도 한국불교에 관한 내용에서는 작은 실수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외국의 ‘대가의 글’이라고 해서 무조건 기죽을 필요는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대가의 글’이라도 꼼꼼히 분석하면 실수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소한 잘못을 발견해 놓고 대가의 업적을 넘어선 것처럼 착각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우리가 취해야 할 입장은 외국의 대가의 업적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도 거기에 종속되지 않고 나름의 주체적 관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의 연구성과를 몇 가지 피상적인 사실에 근거해서 무조건 거부한다면 한국 불교학계가 발전하고 앞서나갈 원동력을 잃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외국의 연구성과를 추종하자는 것도 아니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면서도, 연구자의 주체성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현 단계 한국 불교학계에서 지켜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런 태도에 근거해서 외국의 연구성과를 수용한다면 한국 불교학계가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이병욱 lbw33@hanmail.net

한양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 ·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천태사상연구》 《고려시대의 불교사상》 《인도철학사》 《한국불교사상의 전개》 《불교사회사상의 이해》 등이 있고, 〈천태지의 철학사상 논구〉 등의 논문이 있다. 현재 고려대 · 한국외대 강사.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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