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3월 27일은 내 기억 속의 보물과도 같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생명나눔실천본부’가 134명 발기인의 원력으로 불교계 생명나눔운동을 공식 선언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어엿하게 창립을 선언하기까지 창립준비위원장 진철 스님, 초대 이사장 태응 스님(전 불교TV 사장), 본각 스님(전국비구니회장), 종실 스님(대전), 광우 스님(전 정각사 주지), 광오 스님 등의 적극적인 지지가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도법 스님(실상사)과 박광서 교수(서강대 명예교수)께서 실무적 틀을 짜고 추진위원회와 운영위원회 등을 구성하며 각고의 노력 끝에 생명나눔운동이 발족할 수 있었다. 출범 당시 사무실은 태응 스님께서 마련해주셨고, 법장 스님(전 조계종총무원장)께서는 2대 이사장직을 맡아주셨다. 당시 불교계에서 관심이 미미하던 ‘생명나눔’을 위해, 아무런 조건 없이 멍석을 깔아주셨던 고마운 분들이다. 

1990년대 불교계 시민단체들의 움직임이 여러 분야에서 활발해지기 시작할 무렵, 생명나눔운동은 사회적 관심이 매우 컸지만, 기독교에서나 생명 부활을 논하던 상황이었고, 불교계에서는 사람의 신체 일부를 기증하여 다른 사람을 살린다는 생각 자체가 생소한 시기였다. 특히 시신을 기증하여 의학발전에 기여하자는 시신 기증운동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불교계에도 유교처럼 사후제사를 중시하는 문화가 있었던 탓일 것이다. 

단체로서 공식 출범하기 전에는, 소설가 남지심 선생의 작은 오피스텔에서 이미 함께 사무실을 쓰고 있던 ‘우리는선우’ ‘선우도량’과 함께 더부살이로 ‘생명나눔’ 운동을 시작하였다. 이 분야에 아무 경험도 없던 나는, 전국 사찰과 주지 스님들의 연락처가 적힌 목록을 넘겨받아 연신 전화기를 눌러가며, 보험사원이 영업하듯 스님들의 후원과 지지를 호소했다. 다른 상근직원이나 봉사자도 없이 나 홀로, 생명나눔운동을 출발시키는 데 열중하였다. 사무실도 서울 중구 장충동을 거쳐 인사동 등등으로 몇 차례 옮겨 다녔고, 더부살이하던 세 단체가 함께 사무실을 쓰곤 했다. 임차료를 아끼려는 목적으로 마련한 저렴한 사무실들이라, 낡은 건물에서 한여름 더위를 못 견뎌 대야에 물을 받아 발을 담그고 일하기도 했다. 

강추위나 폭염에 시달리며 전국의 사찰을 돌며 홍보를 다니는 건, 신심이 있다고 해도 힘든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오직 자리이타의 원력 하나로 사찰뿐 아니라 불교계 행사장마다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나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주말에 사찰마다 홍보 전단을 돌리는 등, ‘생명나눔’에 미쳐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홍보가 제법 이루어져 자원봉사자가 나타났고, 정기후원자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생명나눔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내 이야기를 듣고 흔쾌히 후원해주시는 스님들도 점점 늘어났다. 나는 용기백배하여 각 신문사와 방송국에 홍보를 요청했고, 휴일마다 부지런히 사찰을 방문하며 홍보를 계속하였다

지금 다시 돌아봐도, 정말 특별히 준비된 바 없는 개척자 정신으로 뛰었다. 기독교계에서 운영하는 장기기증운동본부는 이미 직원도 많고 후원도 많아서 탄탄했지만, 불교계는 활용할 만한 네트워크도 별로 없었고 여러 면에서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렇게 일한 결과로, 많은 사찰에서 도움을 주고 사회적 관심도 높아지면서 운동이 점점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다고 자부한다. 그러다가 이사장 스님과 이사회에 ‘법인화’를 건의하여 어렵사리 추진하던 중에, 소관 부처인 보건복지부 의료정책과에서 귀인을 만나기도 했다. 아주 성가실 정도로 찾아다니며 귀찮게 하는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신 그분은 나중에 알고 보니 불자셨고, 덕분에 정부 지원사업에도 응모하여 일부 사업비를 조달해서 월간 소식지를 만들고 상근자도 4명으로 늘어났다. 

3년 차에 들어서자 생명나눔운동은 불교계를 넘어 일반사회에 굳건히 자리매김하였고, 당시 이사장 법장 스님께서도 직접 적극적으로 사회지도층 인사들에게 홍보해주셨다. 그 무렵 나는 문득 ‘이러다 내가 갑자기 죽으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니더니 빨리 떠났다고 하겠지.’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전화기를 24시간 가지고 다니면서, 기증자의 연락이 언제 올지 몰라도 절대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늦은 밤에 뇌사자가 생겼다고 연락받으면 곧장 달려가 가족을 설득해서 기증을 확약받고, 이식수술이 가능한 병원의 코디네이터에게 긴급 연락을 했다. 주위에 따로 도움을 청하거나 상의할 윗사람도 없었으니, 나 혼자서 병원으로 장례식장으로 뛰어다닌 것이다. 그 긴장감은 이루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었다.

애당초 도법 스님과의 인연으로 이 운동에 동참한 나는 박광서 교수님께 행정실무를 배운 셈이다. 법장 큰스님께서 여러 방면으로 큰 가르침을 주셨으며, 본각 스님과 성운 스님께서도 내가 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많은 격려를 보내주셨다. 

나는 생명나눔운동 실무자로서 8년간 활동한 후 2020년까지 이사로 참여해오다가, 이제 27년 동안의 인연을 내려놓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고 있다. 에너지 왕성하고 의지가 확고하던 시기에 생명나눔운동을 만나게 되어, 가장 보람되고 열정적인 삶을 누렸다고 생각한다. 

2022년 현재 이사장 일면 스님을 비롯한 임원진과 회원 여러분들의 원력이 ‘사단법인 생명나눔실천본부’를 더욱 성장시키고 환우들에게 더 큰 희망을 주는 단체로 거듭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한다. 

박완순 / 전 생명나눔실천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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