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1월 BBS 불교방송 공채 1기 프로듀서로 입사한 나는 편성제작국 편성부로 배정되었다. 불교방송은 1990년 5월 1일 개국했다.

라디오 방송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소리로 전달하는 매체이기에 편집할 때 녹음된 소리를 들으며 내용을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당시만 해도 BBS의 스튜디오는 몇 개 되지 않고 규모도 협소하여 매일 밤늦게까지 녹음하고 편집해야 했다. 

개국 당시는 릴 테이프로 녹음하여 방송 콘솔을 사용하여 편집하거나, 편집용 가위나 칼로 녹음 테이프를 이어 붙여서 편집하였다. 방송 콘솔을 사용하는 데에도 순서가 있어서, 선임 프로듀서들이 먼저 녹음하고 편집할 때는 다 끝날 때까지 장시간 기다리고 나서야 새내기인 내가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좁은 녹음실에서 편집하느라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았다. 

커다란 방송용 릴 테이프를 가위나 칼로 잘라 편집할 때는 편집한 부분이 끊어지는 경우가 가끔 발생했다. 간혹 대형 방송사고가 발생할 때는 인사위원회 회부되어 징계를 받는 경우가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특히 상업광고 방송사고는 방송국의 재정을 만들어 내는 소중한 현금을 버리는 것과 같아서 담당 피디의 인사고과에도 반영했기에 더욱 신경을 썼다. 

환절기에는 릴 테이프의 편집 부분이 온도 차에 의해 끊어지는 현상이 자주 발생했다. 그래서 녹음방송보다는 생방송이 더 좋다는 얘기가 많았다. 생방송은 방송국 주조정실에서 바로 광고를 송출하기 때문에 방송사고가 드문 편이었다. 

전국적으로 방송의 제작 형태가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되어 갔다. 대형 국책기관과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하이텔, 천리안 등 PC 통신회사가 활성화되며 컴퓨터 통신을 이용한 생방송 청취자 참여가 늘어갔다. 외국에서도 국내 컴퓨터 통신을 연결해서 방송을 듣고 사연을 올리는 사례가 증가했다. 불교방송도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해 가는 과도기를 겪고 있었다. 

1999년 정토회 지도법사인 법륜 스님의 ‘현대인을 위한 깨달음의 강좌’가 서초동 정토법당에서 백 일 동안 열렸다. 당시는 IMF로 국가부도 사태를 맞아 모두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다. 나는 불교방송 피디로서 불교방송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전 국민이 힘들고 어떤 이는 직장을 잃고 가정이 붕괴하는데 불교방송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민을 거듭했다. 

마침 법륜 스님께서 현대인을 위한 백일법문을 홍보하기 위하여 내가 담당하던 〈무명을 밝히고〉 프로그램에 출연하셨다. 생방송을 마치고 나는 스님께 매일 정토 법당에 녹음 장비를 가지고 가 법문을 녹음하고 편집해서 전국으로 방송하겠다고 요청했다. 

100회 방송이 나가는 동안 이 방송을 들은 국내의 불자들은 물론 해외에서도 격려의 글이 담긴 편지와 엽서들이 쇄도했다. 방송이 끝나고도 청취자들의 열렬한 요청으로 재방송까지 하였다. 나는 이 프로그램 방송으로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에서 주관하는 ‘이달의 PD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실 법륜 스님의 백일 법문 제작과 편집은 디지털 방식의 녹음과 편집 체계가 아니었으면 단기간에 방송과 재방송 송출을 실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토회 법당에 가서 녹음을 준비하고 스님의 법문 녹음이 끝나면 바로 녹음 장비를 정리해 방송국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당일 디지털 오디오 테이프 방식으로 녹음된 스님의 법문을 바로 편집 가능한 상태로 변환시키고 다음날 방송할 부분을 가편집하여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기존의 아날로그 테이프의 녹음 방식과 비교해 보면 디지털 방식 제작의 효율이 두 배 정도는 좋았다. 디지털의 힘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BBS 신행상담실〉을 연출하고 있던 2002년, 미국 뉴욕시의 재미교포들이 운영하는 뉴욕불교협회에서 연락이 왔다. 컴퓨터 통신으로 이 프로그램을 들은 교포 청취자들이 출연자인 강남포교원 원장 성열 스님과 담당 피디를 뉴욕으로 초청하겠으니 교포 학생들에게 법문과 불교 상담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뉴욕불교협회에서 항공료와 체재비 일체를 부담한다는 제안이었다. 

디지털 제작 방식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스님과 나는 뉴욕을 방문하고 법문 후에는 뉴욕시 관광도 할 수 있었다. 당시 뉴욕은 9 · 11 테러 참사를 겪은 지 일 년이 지났지만, 세계무역센터 주변을 비롯한 피해 지역에는 여전히 희생자를 추모하는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성열 스님과 함께 뉴욕의 피자집에서 음식을 주문하는데 안내하는 직원이 성열 스님에게 합장하면서 자신도 불자라고 소개하며, 스님을 만나서 너무 기쁘다고 하였다. 미국에서도 불교가 대중 속에 명상과 힐링이라는 새로운 종교의 흐름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음을 느꼈다. 

현대의 통신환경은 하루가 멀다고 빠르게 변해 가고 있다. 처음에 아날로그 방식으로 시작한 방송이 32년이 지난 지금은 디지털 텔레비전과 디지털 라디오 제작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나도 정년퇴임을 하였다. 조금은 빈구석이 있었던 아날로그 시절이 새삼 떠오른다. 디지털 시대, 요즘 나는 어떻게 다시 적응해가야 할지 고민에 빠져 있다.

박상필 / 전 불교방송 프로듀서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