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베이징 수두우 공항

경광등이 돌연 빨간 불빛을 번쩍이며 요란하게 울었다. 출국심사관이 들어앉은 칸막이 위에 붙은 것이었다. 심사를 대기하거나 심사를 막 통과한 일행들이 심사관 앞에 선 보현에게 일제히 눈길을 돌렸다. 주제넘게 굴더니 잘 걸렸어. 그런 말이 보현의 귓속으로 넘실넘실 파고들었다. 보현은 얼굴이 더욱 화끈거렸다.
심사관과 같은 녹색 제복을 입은 사내가 다가왔다. 경광등이 번쩍인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안다는 태도로 칸막이 안으로 손을 내밀어 심사관에게서 보현의 여권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보현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사무실로 들어가자 보온병이 덜렁 놓인 회의용 테이블에 둘러앉은 녹색 제복들 대여섯 명이 보현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모습만 멀쩡했지 속은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을 숱해 접해본 냉정함이 비꼈다. 보현을 데려온 제복이 벽 쪽으로 가서 컴퓨터를 검색했다.
“출국이 금지되었습니다.”
중국식 성조가 밴 투박한 영어였다.
“네?”
제복을 따라오는 도중 짐작 하나가 스쳤었다. 잘못이 있다면 그것밖에 없었다. 제발 아니기를 바랐다.
“당신은 관광비자로 입국했습니다.”
짐작이 맞았다. 중국은 취재비자 발급에 까다롭게 굴었다. 평소 기자들은 관광비자로 들어와 공공연하게 취재했다. 검문검색이 심한 북중 국경지대에서 걸려 추방당한 기자가 어쩌다 나왔지만, 운이 나빠 그렇게 된 것으로 단정할 정도였다. 보현은 자신에게 뜻밖의 불운이 닥친 게 억울했다. 그저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 불교계 회의에 참가한 수행원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변명하지 못했다. 모면하지도 못하면서 얄팍한 술수나 드러내는 짓에 지나지 않을 터였다. 대책은 떠오르지 않고 예측되는 후유증만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다.
“이의 있습니까?”
일단 보현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렇다면 공안국으로 가서 시비를 가리십시오.”
제복은 여권에 ‘추방’ 스탬프를 찍는 대신 공안국 약도를 주었다. 보현은 맥이 빠져 사무실을 나왔다. 누가 신고를 했나? 이내 팔목에 ‘호위’라는 문신을 한 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문신과 심하게 다투었다. 문신이 어느새 내 약점까지 파악했을까? 물론 문신 말고도 악감정을 품은 사람이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외국까지 연계해서 해코지할 사람은 아무리 머릿속을 헤집어도 짚이지 않았다. 북한 담당으로서 주된 취재현장인 중국에 앞으로 3년 동안이나 올 수 없다는 건 기자 생활에 중대한 변곡점이 될 사건이었다. 오랫동안 원하다가 맡은 업무였다. 해보면 안다는 전임자들의 질색이 도리어 도전할 용기를 주었다. 오래 주저앉아 있어도 도전받지 않을 것이라는 안심까지 일었다. 맡은 지 이제 겨우 반년 남짓.
공항청사 내의 공안국 사무실을 일부러 지나쳤다.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북측 대표단이 묵는 호텔로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아직 평양으로 떠나지 않았다. 외국에 나온 김에 구입해 들여갈 물건들이 많다고 했다. 남측 불교계가 체재경비와 1인당 얼마씩의 용돈을 댔다. 그 돈으로 생필품을 사겠다고 한다는, 가만히 도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 서울로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전화를 받은 이는 평양시 신도회 부장인 종범이었다.
“그 양반이 치사하게 제게 개목걸이를 매 놨군요.”
똥개들같이 굴지 마, 엑스들아, 라는 말이 목을 타 넘는데, 꾹 눌렀다. 종범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바로 대꾸하지 못했다.
“두고 봐요. 그 양반에게 저도 한칼 있다는 점을 명심하라고 하세요.”
보현은 전화를 끊었다. 당장 쫓아가서 멱살을 움켜쥐고 싶었지만, 그 후과를 견뎌낼 만큼 강단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협박에 맞설 방책이 있는 것 또한 아니었다.

2.

전날
베이징 차오양구(區)
C 호텔 회의실

비바람에 머리끄덩이를 잡힌 백양나무가 온몸으로 휘청거렸다. 인도를 지나가는 행인들의 우산과 어깨 위로 푸른 이파리들이 우수수 휘날렸다. 종범은 비교적 밝은 창가에 서서 자신의 카메라가 충전되기를 기다렸다. 태양열 패널이 장착된, 근래 보기 드문 카메라였다. 대부분의 남북 불교계 대표들은 회의 중간의 휴식시간을 이용해 저만큼 떨어진 라운드 테이블에 둘러서서 다과를 나누는 중이었다. 3개월 전 첫 번째 회의에서 만났을 때 종범은 평양시 신도회 부장이라는 명함을 건넸다. 하지만 이걸 믿어야 하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위장에 능한 사람들이라는 인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화 중에 애써 기초적인 불교 용어들을 구사했다. 갓 불교 부분에서 일하게 된 사람에게서 풍기는 미숙과 열의가 동시에 엿보였다.
회의가 뭐 이따위야. 보현은 종범에게 쏠렸던 눈길을 거두면서 속으로 투덜거렸다. 회의는 남측 불교계가 북측 지역의 옛 사찰을 복원하겠다는 제의가 의제였다. 벌써 세 번째 열리는 회의였지만, 북측은 일부러 피하려는 것처럼 합의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평양시 신도들을 위한 생필품 지원만을 줄기차게 앞세웠다. 자기들끼리 역할을 분담했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한편에서는 읍소하고 한편에서는 그것도 못 해줄 것이면서 만나자고 했느냐고 신경질을 부렸다. 지원 요구가 사찰 복원의 전제조건이라는 점도 밝히지 않았다. 남측에서는 응당 전제조건이리라고 여겼겠지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잡아떼면 할 말이 없을 게 뻔했다. 그래도 남측은 꼼꼼히 따지지 않았다. 실은 의심하면서도 종교인으로서의 체면과 상대에 대한 존중을 염두에 두었을 터였다. 이 사람들은 보통 북측 사람들과 다를 것이라고 억지를 쓰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요구 규모가 당장 남측이 감당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회의는 본 의제를 제쳐두고 지원 규모를 줄이고 지원 시기를 늘리는 데 치중되었다. 자연 남측은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애를 태우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식으로 북측에 끌려가서는 안 되지. 보현은 가끔 남측 대표들에게 분수를 모르는 훈수를 두었다. 그런 한편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의 열성과 정감이 그만 밍밍하게 옅어짐을 느꼈다. 해보면 안다는 전임자들의 말이 실감 났다. 특종은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다. 보람과 재미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신자가 맞습니까?”
보현이 열대과일 한 조각을 입에 넣는 중인데, 종범이 곁에 다가와 있었다. 묻고 싶었던 말을 되레 묻는 게 우스웠다.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에 지나지 않았지만 보현보살을 닮으라고 할아버지가 직접 거룩한 그분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어 주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신도5계를 받았다. 타사 기자들이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 회의에 일부러 따라오는 이유 중 하나도 신도라는 데 있었다. 사진을 찍을 순간들이 다가오는데, 충전이 안 되니 답답할까? 카메라를 빌려 달라는 의도를 숨긴 질문 같았지만, 구태여 빌려주겠다고 먼저 나설 필요는 없었다.
“아시다시피 기잡니다.”
보현은 자신의 참가 목적을 내세웠다.
“어찌 자비문중 사람 같디 않더라니까니.”
외국어 연습하듯 종범이 어색하게 불교 용어를 구사했다. 억양은 다분히 자신들의 예감이 맞다, 라는 투였다. 보현은 진작 이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어림짐작하고 있었다. 해외에 나오는 북측 대표단에는 반드시 보위원이 끼어 있다나. 남측 대표단에도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보현이 끼어 있다고 여기는 듯했다. 보현은 의연한 체했다. 아니라고 해명하려다가 더 옹색한 국면으로 몰리고 싶지 않았다. 예민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직업적 특성 때문에 종종 오해를 받아 왔다.
“사찰 수 60여 개에 스님은 3백여 분 된다고 했죠? 신도 수는 얼마나 돼요?”
마침 보현은 묻고 싶은 게 많았는데 대화할 기회를 잡지 못하던 중이었다. 북한을 넘나드는 이들로부터 적잖은 이야기를 주워들었다. 그들이 쓴 글들 또한 거의 탐독한 편이었다. 그렇더라도 당사자보다 어찌 더 잘 알 수 있으랴. 설령 위에서 시킨 말을 하더라도 그것 자체로 실상에 접근하는 중요한 재료가 되리라.
“한 만 명 남짓 될 겝니다.”
“에계계, 고작 그 정도예요?”
“우리 사람들은 해방되고 나서 종교를 믿지 않았디요. 과거 시기에 지배계급이 인민들의 계급의식을 마비시키는 수단으로 종교를 리용했기 때문에 인민들이 자발적으로 종교를 배척했디요.”
“그렇다면 지금은 자발적으로 허용했다, 그런 말이 되네요?”
“인민들이 그만큼 교양되었디요.”
보현은 종범의 말을 믿지 않을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다. 1972년 개정 공포한 헌법에서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는 동시에 반종교 선전의 자유 또한 인정한다고 규정했다. 현실에서는 반종교 선전의 자유가 신앙의 자유를 압도했다. ‘종교도 미신도 없어지게 된 나라는 전 세계에서 영광된 우리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단 한 나라’라고 공공연히 자랑했다. 그러다가 1980년대 들어와서 돌연 종교가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주체사상은 종교적 진리를 포함한다’면서. 국제회의에 불교 대표를 참가시키는 한편, 남측 출신 해외동포 스님들의 평양 방문을 선택적이나마 받아들였다. 어디까지나 국제적으로 고립되지 않으려는 위장술책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 평가였다.
지금 회의에 참가한 북측 대표들의 모습에서도 위장술책의 산물이라고 단정할 만한 모습이 엿보였다. 승복을 입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대표단장인, 남측으로 말하자면 종단의 총무원장 격인 조선불교도연맹 서기장조차 양복을 입고 머리를 길렀다. 대놓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노라면 보는 이가 되레 민망할 지경이었다. 묘향산 보현사 사람들은 삭발하고 승복을 입는다고 했지만, 다른 절에서는 대부분 속복을 입고 속가에 살면서 절에 출퇴근한다고 했다. 문화재관리원 격이었다. 필요에 따른 외양의 진화가 아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드러난 위장의 민낯이었다.
“사찰 수 60여 개, 신자 수 1만 명, 승려 수 3백여 명, 이미 1980년대부터 발표했던 숫자로 아는데요. 사찰 수는 그렇다 치더라도 신자 수나 승려 수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증감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종범이 아차, 싶었는지 천장 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못 들은 체했다.
“평양의 신도 수는 얼마나 됩니까?”
“셈해보지 않았습니다만, 미미하디요.”
사실을 일부 인정함으로써 진실에 가깝게 보이도록 하는 어법을 구사할까? 아니면 본디 때 묻지 않은 사람이라서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계속하기가 힘들까?
“그렇다면 생필품 양이 왜 그리 많이 요구됩니까?”
종범이 또 천장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인민들에게 골고루 돌아가기는 할 겁니까?”
보현은 말이 나온 김에 남측 대표들이 묻지 않고 넘어간 문제까지 건드렸다. 지원 대상을 ‘신자’ 대신에 ‘인민’으로 슬쩍 바꿨다. 자신에게 설정된 경계를 넘어선 대화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걸 종범이 비로소 알아차렸나 보았다. 무슨 다짐이라도 하듯 눈동자에 힘을 주었다.
“낮은 데 있는 이는 많이, 높은 데 있는 이는 적게…….”
“그 반대 아니에요?”
종범이 입을 삐쭉이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자기 용건은 꺼내지도 못한 채 보현의 페이스에 말린 걸 자책할까?
“가문 논에 물을 대면 낮은 데, 말라 갈라진 데가 먼저 물을 차지하게 되는 법이라요.”
“모터를 돌리면 낮은 데, 갈라진 데 있는 것도 다 위로 빨아올리지요.”
보현은 이쯤에서 대화를 접고, 아무래도 카메라를 빌려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카메라에서 메모리카드를 빼내려고 어깨에 걸친 카메라를 잡았다. 메모리카드가 서로 같다는 걸 서로 알고 있었다.
“남쪽 것들은 어케 죄 저 모양이야. 갈라진 논바닥을 적시기는커녕 목구멍 때도 못 씻길 만큼 달라는데, 아주 위세를 떤다니까니.”
뜻밖에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가까이에 앉은 북측 수행원 중 한 명이 보현을 향해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팔목에 ‘호위’라는 먹물 문신을 한 자였다. 저녁 식사 때마다 그자는 팔목을 걷어붙이고 이 테이블 저 테이블 옮겨 다녔다. 남들이 문신을 똑똑히 봐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조선불교도연맹 부원이라고 직책을 밝혔지만, 직책과 달리 자신을 중심에 놓고 살 만큼 지위가 있다는 과시가 노골적이었다. 한때 호위사령부에서 근무했다더라고 남측 대표단의 간사 격인 지오 스님이 넌지시 일러주었다. 그 때문인지 서기장조차 문신의 눈빛에서 자신이 취할 다음 행동을 읽어내려 애쓰는 모습이 엿보였다. 지난번 회의 때는 밤에 혼자서 남측 대표단의 객실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대표 중 한 사람을 폭행했다는, 문신을 주인공으로 한 믿고 싶지 않은 소문도 돌았었다. 지오 스님은 전말을 아는 것 같았는데,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래도 문신이 보위원일 터였다. 한담을 나누던 대표들에게까지 문신의 목소리가 들렸는지 몇몇이 이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김 기자, 조용히 해 주세요.”
지오 스님이 보현에게 주의를 주었다. 문신에게 말할 수 없으니까 보현을 지칭했을 터였다.
“남쪽 것들이라니요? 위세를 떤다니요?”
스님이 뭐라 하든 보현은 문신의 말을 못 들은 척하지 않았다. 회의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문신이 지껄인 말을 알게 되었다. 문신은 보현을 쏘아보았다. 휴전선에서 총부리를 겨누고 만난 군인이 저럴까? 머리보다 힘을 구사하는 사람 특유의 무식과 위협이 눈초리에 담겼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저렇게 화가 자라났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일이 진척이 안 되는 걸 내 탓으로 돌릴까? 저러다 사달이 나면?
“전체 인민들에게 골고루 나눠 줄 테니까니 우리가 달라는 대로 다 주갔소?”
“회의하러 오신 게 아니라 시비를 걸러 오셨군요.”
“사돈 남 말 하네.”
문신은 한주먹감도 안 되는 녀석이, 라는 말을 덧붙이듯 말끝에 헛웃음을 머금었다. 종범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난감한 모양이었다. 자신에게서 탓을 찾는 사람처럼 얼굴에 잔뜩 근심을 품었다. 이쪽을 바라보던 몇몇 대표는 여차하면 달려들 태세로 눈동자를 키웠다. 대표들의 눈길이 자존심을 일깨웠다. 보현은 메모리카드를 도로 카메라에 끼웠다. 그래. 이에는 이로! 만약 사달이 난다 해도 이 양반들이 방파제가 되어 주리라.
그때 지오 스님이 곁으로 다가왔다.
“똑똑한 기자님, 이제 회의 시작합니다.”
‘똑똑’이라는 형용어가 ‘헛똑똑’이란 말로 들렸다. 참게 생겼어요? 문신이 표정으로 하는 말을 보세요. 이래서 만날 주고도 당하는 겁니다. 보현도 지오 스님에게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는 와이셔츠 소매를 걷으면서 일어섰다. 종범은 울상이 되었다. 문신은 보현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지오 스님이 문신과 보현 사이를 가로막았다. 문신이 스님을 제치고 주먹을 내질렀다.
“억!”
보현은 자신이 맞은 것 같아 눈을 질끈 감았는데, 종범이 배를 부여잡고 허리를 꺾었다. 어느새 종범 또한 둘 사이에 끼어든 상태였다.
“뭐, 이딴 인간이 있어?”
보현이 안도하며 막아선 지오 스님을 밀어내려고 시도했다. 그러다가 지오 스님의 어깨를 넘어온 문신의 손에 멱살을 잡혔다. 숨쉬기가 버거웠다. 지켜보던 대표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문신의 팔을 붙잡았다.
“불교인들끼리 이게 뭐예요? 말로 해도 될 일에…….”
지오 스님이 참을성 있는 목소리로 훈계했다. 그래서 돼요? 팔을 걷어붙이고 오지게 귀뺨을 날려야지. 문신이 이 정도면 됐다는 듯 멱살을 풀고 돌아섰다. 보현은 숨을 몰아쉬며 옷매무시를 고쳤다. 분이 꼭뒤까지 치솟았지만, 문신의 뒤에 대고 눈을 흘기는 정도로 망가진 체면을 세웠다. 객꾼이 회의를 망칠 수 없어 참는다는 듯.
그때 밖에서 콰당 탕! 소리가 났다. 모두의 눈길이 그리로 쏠렸다. 웅성거리던 소리가 일순 잦아들었다. 휘청거리던 백양나무가 넘어져 인근 건물의 차양을 내리쳤다. 굵은 나뭇가지가 얹힌 차양이 볼품없이 우그러졌다. 와중에도 보현은 태평하게 창밖 풍경에 한눈을 팔았다.

3.

베이징 왕징지역
민박집

멀리 보이는 공항으로 가는 도롯가에 선 버드나무들이 퍼런 어둠에 시나브로 지워지고 있었다. 비바람은 멎었지만, 대기는 눅눅했다. 장기전에 대비해 투숙한 민박집에 벌써 사흘째 발이 묶였다. 아직까지 공안국에 해명하러 가지 못했다. 쉼 없이 머리를 굴려도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중국에서는 애로사항이 있는 기관에 줄이 닿는 사람을 찾는 게 누구나 다 인정하는 해결책의 첫걸음이라는 흘러 다니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소문을 실천하는 데 매달려 있는 중이었다. 베이징 특파원이 나서서 중국 제휴 신문사와 주중한국대사관을 동원했다. 아직 뾰족한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기대에 부응해줄 것 같지 않았다. 공안국이 요지부동이라는 중간 소식을 오전에 전해 들었다. 상념을 깨며 민박집 주인아주머니가 방문을 노크했다. 그런데 이게 누구? 아주머니 뒤에 뜻밖의 인물이 서 있었다.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서 왔습니다.”
종범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뒤를 살펴보았지만, 혼자였다. 문신이 따라왔다면 겪게 될 소란을 두려워하는 인상을 주기 싫어 동행 여부를 묻지 않았다.
“다른 분들은 시장에 나갔습니다. 저는 어제 살 걸 다 샀고요. 사고 싶은 거야 많지만…….”
보현의 의중을 읽었는지 문신이 오지 않았다는 점을 종범이 에둘러 확인해 주었다. 안 해도 될 말과 행동을 하는 걸 보면 문신이 주범이고, 종범은 이름처럼 종범이라는 방증일까? 보현은 쪽팔리는 자신의 모습을 가해자들에게 보이기 싫었다. 종범에게 전화를 건 일조차 후회하는 중이었다.
주인아주머니에게 커피를 부탁하려고 주방에 다녀왔다. 종범은 의자에 앉아 보현이 서울 뉴스를 모니터링 하느라 켜 놓은 KBS코리아에 한눈을 팔고 있었다. 그 사이 뉴스가 끝나고 ‘VJ특공대’가 방영 중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디 다는 모르갔지만, 방송원 해설이 재밌습니다.”
종범은 남쪽 티브이를 보는 게 계면쩍은 듯 과장되게 킥킥 웃었다. 그렇다고 초상집에서 춤을 추면 안 되지. 이런 때 보면 악하게 머리를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무리 저렇게 하라고 가르쳐주어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성품이 느껴졌다. 그래도 비위가 상했다. 구태여 찾아온 속셈은? 내 한칼을 알아내려고? 아니면, 나를 더욱 초라한 인간으로 만들려고?
“군대 이야기는 하나도 나오디 않습니다.”
보현은 대꾸하지 않았다. 엉뚱한 화제로 끌려가서 얼렁뚱땅 헤픈 웃음을 입에 달고 싶지 않았다. 아주머니가 커피를 내왔다.
“우리 성원을 의심하지 말라요.”
커피를 한 모금 머금은 종범이 용건으로 돌아왔다.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데요.”
“증거가 있나요?”
“제가 이곳에서 얼굴을 붉힌 사람은 딱 한 사람밖에 없어요.”
“혹시 해서 우리가 그분에게 확인했디요. 그분이 중국 관계부문의 간부들과 사이는 좋답니다. 기렇다 하더라도 경망스럽게 티끌 하나 날린다고 태풍을 불러오갔느냐고 언짢아하더라고요.”
“모자를 벗겨 가면 될 일에 목을 따가려고 덤벼들 위인이던데요.”
“오해 풀라요.”
풀라면 풀어? 이해한 걸 오해로 바꿔 놓으려고 왔지? 나쁜 엑스들! 남측에 요구한 것들이 있으니까 칼을 휘두르며 웃는 전법을 구사하는 거지?
“내 보복이 두려워서 오신 거 같은데.”
보현은 허세를 부렸다.
“지난번 회의 중에 남쪽 대표 객실에 혼자 들어갔다고 문신한테 혼이 난 분이 있다던데. 그렇게 막돼먹은 사람이라던데.”
보현이 덧붙였다.
“기자 선생이 너무 속상하실 것 같아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일 오후에 평양행 국제열차로 돌아가니까니 지금이 아니면 해명할 기회가 없어서 살짝 나왔단 말입니다. 서기장 동지가 나서서 기자 선생 건을 해결해 달라고 우리 대사관 일꾼들에게 간곡히 부탁했댔습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도리를 다해야디요. 남쪽 사람 일로 우리 대사관 일꾼이 움직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랍니다.”
“무척 고맙네요.”
보현은 ‘무척’을 강조하여 자신의 말에서 진정성을 덜어냈다. 사고를 치고 보니까 미안해서 면피나 하고 보자는 것이겠지?
“옛날에 한 마을에 사는 장님과 앉은뱅이가 만나서 신세 한탄을 했대요. 너는 세상을 볼 수 있으니까니 좋갔다. 보면 뭐하나, 걸어 다닐 수가 없는데. 너는 걸어 다닐 수 있으니까니 좋갔다. 걸어 다니면 뭐하나, 볼 수가 없는데. 마침 인근 절에서 범종 불사를 하는데…….“
“이젠 설법까지 하려고요?”
“조금만 귀를 빌려달라요. 불제자인 두 사람은 고을마다 돌아다니면서 불사에 동참할 시주자를 모으기로 작정하고 그 방법을 거듭해서 강구했댔디요.”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 이야기인 듯했다. 보현은 맞는지 들어보기로 했다.
“기러다가 번쩍 묘안이 떠올랐디요. 장님인 나는 앉은뱅이인 너를 업고, 앉은뱅이인 너는 장님인 나의 눈이 되어서 고을을 돌아다니면 어떨까? 서로 부족한 걸 메꾸어 주기로 한 거라요.”
어느 고찰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였다. 두 사람의 노력이 보태져 절의 불사가 이루어진 날 장님은 눈을 뜨고, 앉은뱅이는 일어났다.
“그래서 어쨌다는 겁니까? 남과 북이 힘을 합치자,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우리 공화국이 좀 어려우니까니 기자 선생도 나서서 생필품 지원에 힘을 써달라요.”
종범이 논쟁을 피하며 씩 웃었다. 매 맞을 놈이 보약부터 져 달라고 하는 꼴이로군.
“서로 돕고 살자는 게 겨우 중국 공안에 신고하는 겁니까?”
“햐, 제발 오핼 풀라요.”
종범이 시계를 보며 일어났다. 악수 대신 합장을 했다. 여전히 어색했지만, 이렇게 하면 맞는지 남쪽 대표들의 합장 모습을 눈여겨보던 때보다는 나았다.
“회자정리(會者定離)면 이자정회(離者定會)갔디요.”
이자정회? 그럴듯한 말이었지만, 보현의 머릿속에는 없는 말이었다. 자기 직분에 충실하려고 열심히 공부한 티는 났다.
“다시 만나자구요? 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질지 겁이 나는군요.”
“제가 여기 왔다 갔다는 건 비밀입니다.”
살짝 나왔고 말했으면서도 비밀을 강조하며 종범이 돌아섰다.
보현이 배웅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돌아와 막 의자에 앉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회사 부장이었다.
“30분 전부터 DL의 중병설이 나돌아. 통신에 1보가 떴어. 당신은 안 가도 될 데 가서 자빠져 있고, 미치겠구먼. 무조건 밤 10시까지 시내판 기사를 써 보내. 못이 틈이 있어 들어가는 게 아니잖아. 부처님 빽이라도 빌려 봐.”
부장은 핀잔인지 하소연인지 모를 소리를 퍼부었다. DL은 북한의 최고지도자(Direct Leader)를 지칭하는 회사 내부 은어였다. 보현은 자신이 이미 주목을 받는 처지가 되어서 베이징에 주재하는 북한 관리를 찾아가거나 전화를 걸 수 없었다. 찾아간다 해도 최고지도자의 동향 정보나 자신의 추측을 떨어 놓을 리 만무했다. 북한대사관 등 주중 북한기관 스케치는 베이징 특파원이 할 것이다. 답답하기만 했지 쓸 내용이 없었다.
전화를 끊고 보현은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공항을 향해 달리는 차량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차라리 ‘추방’ 스탬프가 팍 찍힌 여권을 들고 비행기를 타? 

4.

민박집

가로등 불빛이 만든 나뭇가지 그림자가 전면의 벽에서 일렁였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보현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국에 와서 그림자나 바라보고 누워 있다니. 만리장성은 고사하고 시내에 있는 천안문, 이화원, 북해공원에도 가 보지 못했다. 잘못한 게 없는 건 아니었지만, 잘못했다고 순순히 인정하기 어려운 일로 발목을 잡히다니. 지금까지 웬만한 잘못에는 상대의 양해를 기대해 왔다. 기자라는 신분을 안 뒤 상대는 대체로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지레짐작하고 관대하게 물러나 주었다. 여기서는 묵시적 관용의 관습이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런 이역에 닷새째 방치된 자신이 가엾을 뿐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해야겠다고 맘먹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베이징 특파원 번호를 눌렀다. 특파원을 찾는 신호음이 처량하게 이어졌다.
“전화를 걸려는 참인데, 전화가 오네.”
가슴속에서 싸늘한 바람이 일었다. 전화를 걸려 했다는 건 해 볼 대로 해 보았다, 안 된다, 도장 팍 받고 돌아가라는 선언 외의 마땅한 까닭이 없었다.
“친선우의를 과시한다는 관계를 새삼 실감해. 북한대사관의 노력이 단연 돋보였어.”
무슨 말일까?
“해제되었어.”
“출금?”
보현은 농담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
“공안국에서 막 나오는 참이야. 서기장이 노력하여 북한대사관이 나섰다고 리종범이란 사람이 말했다지만, 서기장을 그렇게 움직이게 한 건 리종범이었어. 공안국에서 북한 영사를 만났어.”
“병 주고 약 주겠다? 은인까지 되겠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네.”
“문신이 김 기자를 고발한 게 아니야. 아무려면 기자 개인의 비자 문제까지 파악했겠어?”
“그럼 누가 왜 출금을 시켰어?”
“중국 정부에서 한국 기자들의 관광비자 취재 관행에 경종을 울릴 필요를 느꼈나 봐. 남북 회의는 중국 정부의 눈길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걸 알잖아. 한국 신문에 실린 김 기자의 베이징발 기사도 다 모니터링했겠지,”
보현은 특파원이 갑자기 북한에 우호적으로 돌아설 사람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했다.
“그리고 DL 중병설은 크게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보고 있어. 일시적인 잠적인 것 같아.”
“지금까지 한 말 다 믿어도 되지?”
“당장 우리 사무실로 와. 술이나 한잔 사고 귀국해.”
보현은 죽어도 뚫릴 것 같지 않은 벽이 일시에 허물어지는 상쾌함을 느꼈다.

5.

베이징 차오양구
우정국 라운지

보현은 작업 테이블에 붙어 서서 물건을 받을 사람 난에 종범의 이름을 기입했다. 오전에 출금 해제 증명을 떼려고 공안국에 나갔었다. 그 김에 전자제품 할인점에 들러 카메라를 구입했다. 베이징 특파원의 전화를 받은 뒤부터 카메라가 가슴 한 귀퉁이에 부담스럽게 얹혀 있었다. 비용을 가늠하다가 신용카드를 긁기로 결단을 내렸다. 소포 안에 넣을 요량으로 메모지에 몇 자 더 적었다.

리종범 부장께,
이번에 저를 도와주신 점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선물이 약소해서 미안할 따름입니다. 두 장애인의 이야기 또한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내내 평안하시길.
김보현 올림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혹시 검열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 간략하게 끝을 맺었다.
창구 안의 국제특송 담당 직원에게 소포를 넘겼다. 종범에게 정을 나누어 주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6.

반년 남짓 세월이 흐른 뒤
베이징 차오양구
C 호텔 회의실

회의실 안팎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종범이 보이지 않았다. 종범에게 특별히 할 말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동안 북한 사회에 대한 소식이 종범을 주인공으로 하는 안타까움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수해가 심했다는데. 쌀값이 올랐다는데. 외화고가 부족해 주민 생활이 무척 힘들다는데. 누가 처형당했다는데. 종범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자라났다. 가능하면 뭐든 돕고 싶었다. 폭행 사건과 출금 사건 때문에 불교계 인사들이나 회사 부장의 눈총이 따가웠지만, 무시하고 또 회의에 따라왔다.
회의에 오기 전 서울에서 지오 스님을 몇 차례 만났었다.
“종교가 없으면서 있는 척하는 건 있게 될 출발선에 섰다는 의미야.”
청명한 날 산에 오르면 먼바다가 보이듯 지오 스님의 말을 들으면서 새삼 새로운 시야가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길냥이한테까지 먹이를 챙겨 주는 사람들이 가난한 형제들한테는 참 못되게 굴어. 자만심을 떨치고 온전한 자비심으로 나누는 보시가 진정한 보시야. 종교인은 정치인과 달라야지.”
지오 스님은 이런 이야기도 덧붙였다.
휴식시간이 되어 화장실에 갔다. 북측 대표 한 분이 옆에서 소변을 보는 중이었다. 
“리종범 부장님은 왜 안 나왔지요?”
대표는 보현을 분명 기억할 텐데도 종범이 누구더라, 헤아리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여름 회의 때 같이 나오셨잖아요. 평양시 신도회 부장님 말이에요.”
“아, 그 동무. 어케 안 왔지? 근데 왜 그 동무를 각별히 챙기나요?
각별히? 이미 보현은 다른 대표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었다. 물론 답변다운 답변을 듣지 못했다. 그게 ‘각별히’라는 의미와 연결되는 다리를 놓았나? 사과를 했지만 여전히 난 너 같은 조무래기 상대가 아니야, 라고 여기는 듯한 문신에게도 질문했었다.
“만나야 할 이유가 따로 있소?”
되레 반드시 알아봐야 할 걸 잊고 있었다는 듯 문신은 되물었다.
왜 평범한 질문을 평범하게 받아들이지 못할까? 나와 연관된, 내가 알아서는 안 되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곰곰이 새김질할수록 의심이 영역을 넓혀 갔다.
화장실을 나오다가 지오 스님과 마주쳤다. 지오 스님은 보현을 복도 구석으로 데려갔다.
“그 양반이 비판투쟁 무대에 섰었대나 봐.”
지오 스님은 보현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읽고 있었다.
“네?”
“남쪽 사람과 사사로이 접촉했대나 어쨌다나.”
“언제요? 누구랑요?”
“그건 말 안 해주네.”
“어떻게 되었대요?”
“자기들도 모른대. 잘 대처하면 비판만 받고 끝났겠지만, 심했다면 농장이나 벌목 현장 같은 데로 혁명화 교육을 갔을 수도 있대.”
보현은 무슨 말인가 더 하고 싶었지만, 할 말이 모이지 않았다. 아, 생선 한 마리 보태 주려다가 잔칫상을 둘러엎었을까? 
회의실로 돌아온 보현은 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지난여름 비바람에 부러진 백양나무는 흔적 없이 치워졌다. 부러지면서 부순 건너편 건물의 차양 역시 아무런 상흔을 품지 않았다. 모든 게 정상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

 

이정 leejungmj@naver.com
소설가. 충남 논산 출생. 2010년 《계간문예》로 등단했다. 경향신문사 민족네트워크연구소 부소장을 지냈다. 북한을 여러 차례 다녀왔으며, 북한과 북한 사람들에 대한 소설을 주로 쓰고 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국경》 《압록강블루》 《기억》 등이 있고, 단편소설집 《그 여름의 두만강》이 있다. 현재 통일문학포럼 상임이사, 공정세상연구소 이사, 6 · 15민족문학인 남측협회 편집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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