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한국 역사를 지탱해 온 중요한 축의 하나이다. 4세기 후반에 한국사회에 처음 수용된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 번의 단절도 없이 지속적으로 한국인의 삶과 심성에 깊게 자리 잡고 영향을 미쳐 왔다.

다양한 사상이 펼쳐지지 않았던 삼국시대에는 전통신앙의 역할을 대신하며 사회에 기반을 쌓았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사회 운영의 틀을 담당했던 유교와 함께 사회, 문화 면에서 광범위한 역할을 맡았다. 유교, 도교 등도 활발하게 꽃피웠던 고려시대에 불교는 사회 전반에 넓고 깊게 모습을 드리웠다.

그러나 분명하게 유교를 이념으로 내세운 조선시대에 불교의 역할과 영향은 사뭇 달라졌다. 교단은 크게 축소되었고 수준 높은 인재의 유입도 제한되었다. 그래서 한동안 조선시대 불교는 억압기 또는 침체기 등으로 치부하고 이전 시대에 비해 그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문화에 애정을 갖고 파헤치던 선각자 중에 조선불교의 긍정적인 의의를 평가하던 이도 있었지만, 최근에 일군의 조선시대 불교 연구자들이 구체적인 작업 끝에 새로운 면모를 밝혀내면서 조선시대 불교를 보는 관점을 일변시켰다. 조선 전기에 지속적인 교단 축소 정책으로 불교의 외형은 크게 줄어들었지만, 왕실과 사대부를 비롯하여 일반민에게 신앙으로서의 불교는 건재했다. 불서의 간행도 예상외로 활발하여, 교단의 교육과 진솔한 신앙 활동을 토대로 1,500여 개를 헤아리는 사원이 간단없이 유지되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불교계는 임란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이후 오히려 신앙공동체로 거듭나면서 현대 사원의 면모를 형성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음도 밝혀냈다. 

저자 김용태✽는 이런 조선불교의 새로운 면모를 밝히는 선도적인 활동을 해 왔다. 11년 전에 출간한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는 조선 후기 서산과 부휴 문도들이 임제법통을 확정하고 문파를 이루어 활동하며 선과 교학이 병행하는 추세 속에 강학 활동을 이끌어 풍성한 불교계를 이루었음을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조선불교를 보는 관점을 전환시킨 역작이었다. 이후 10년의 연구 활동 결과가 이 《조선 불교사상사》이다. 

유학이 풍미하던 조선시대 불교를 사상사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려면 유학자들의 불교관에 대한 파악이 선행되어야 한다. 불교계 자체의 관점은 당연히 전제되어야 하지만, 주도적인 지식인들의 의식에 담긴 불교관을 제대로 파악해야만 유교 사회에서 갖는 불교의 사회적 의의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유교의 시대를 가로지른 불교적 사유의 지형’이라는 부제를 단 것은 바로 그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런 관점에서 유교 사회의 종교적 시대성을 추구한 연구가 이 책이다. 

저자는 《조선 불교사상사》를 4부로 구성하였다. 1부에서는 조선시대 불교 연구 100년을 재조명하였다. 지난날의 성과와 한계를 바르게 파악해야 오늘의 과제와 지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70여 쪽에 이른 많은 분량을 이 부분에 배당한 것은 그만큼 지난 성과를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오늘과 내일을 구상하는 것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랫동안 조선시대 불교의 의미를 축소 평가해 왔기 때문에 이 작업은 필수적이다.

저자는 조선불교의 대표적인 연구자이면서 식민사관의 타율성과 정체성으로 재단하고 조선불교를 억압과 쇠퇴로 발전이 정체되었고 독자적 특성이 없다고 폄하했던 다카하시 도루의 《이조불교》를 그 학술적 가치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고 평가한다. 불교 시책의 변화와 전개과정의 시기적 구분, 다양한 불교 신앙의 지속, 기화, 보우, 휴정 등 주요 승려의 활동과 유불 교류의 양상, 사상의 경향과 교학 논쟁, 사원경제의 실상 등 연구사적 의미를 갖는 성과는 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굴절된 오리엔탈리즘에서 시작된 일본 동양학의 한계와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런 연구사적 지향은 여러 면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서술한 김영수 등 선학의 연구 성과에 대한 평가에서도 드러난다. 이들 연구 성과가 이루어진 배경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 성과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것이 조선불교사 이해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저자의 관점은 매우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2부는 불교사상의 계승과 선과 교의 융합이다. 조선 전기 유불 교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과 억불정책, 배불론과 호불론, 그 속에서 지속된 불교전통, 청허휴정의 사교입선의 수행관, 임제법통의 표방과 계승, 이력과정의 성립과 선교겸수의 전승, 불서 간행과 주석서 찬술, 화엄 기신 강학과 사기 저술의 성행 등을 소주제로 조선불교의 사상적 특징을 고찰했다. 

3부는 조선불교를 빛낸 사상과 실천의 계보이다. 구국의 깃발로 나라를 구한 사명유정, 종통의 계승과 선과 교의 회통을 펼쳐 보인 환성지안, 편양파 강학 전통을 집성하여 유불 공존의 사상적 지향을 보였던 연담유일, 부휴계의 화엄학과 계파를 강조한 묵암최눌, 삼종선론을 제창한 백파긍선과 김정희의 논쟁, 학예일치적 삶과 선교병행론을 가졌던 초의의순 등 교학과 선의 종장들을 개별적으로 살핌으로써 후기 불교의 실상을 파악하고자 했다. 

4부는 유교사회의 종교적 지형과 시대성이다. 임진왜란 시 의승군의 활동과 호국불교론을 성찰하며 살펴본 호국불교의 개념과 역사, 남한산성 승군과 승역에서 드러나는 국가 시스템 내에서 불교의 사회적 역할, 불교상례집에 보이는 불교의례의 유교적 변용과 적용, 승려 계파 문파 조직의 운영, 산신신앙 칠성신앙의 불교화에서 보는 공조와 융합, 삼문체계의 확립과 염불정토 신앙의 확산, 추선과 천도의 정토신앙과 천주교의 도전을 이겨낸 종교적 역할 등 불교의 국가와 사회적 의의를 분석하였다. 

이처럼 저자의 시각은 기존의 교학 중심 또는 역사적 성격에 초점을 맞춘 분석과는 관점을 달리한다. 이들 개개의 주제를 분석적으로 살펴보면서, 당대 사회의 과제에 대해 불교가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이는 저자가 유교 사회에서 불교가 가졌던 역할을 사상사로서 파악하려는 지향을 염두에 두고 지속적으로 그 관점을 확인하며 분석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한 매듭으로서 《조선 불교사상사》는 저자의 총체적 사상사 분석 역량이 잘 드러나는 소중한 결실이다. 

조선시대 불교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불교계의 저술을 구체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주석서 문집 등 각종 저술에 나타난 불교사상과 특징, 시대적 지향을 밝혀야 한다. 동시에 이 시기 문화를 주도했던 유학자들의 불교에 대한 관점을 파악해야 한다. 이는 유불 교류의 지성사적 인식을 밝히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 유학자들의 불교 인식이 시대적 개인적 성향에 따라 어떤 다른 모습을 보였는지를 파악해야만 승려와 불교계의 존재상과 사회적 대응 및 지향을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불교가 유교나 다른 사상 신앙에 어떻게 대응하며 어떻게 사회적 기능을 발휘했는지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또 하나 조선불교 연구는 동아시아적 차원에서도 의미 있는 주제이다. 중국의 명청불교와 일본의 무로마치 · 에도불교, 조선불교의 동아시아 근세불교는 서로 차이점도 많지만, 불교 주류와 타 종교와의 관계, 전통과 근대의 연결고리, 서구 문명과의 조우와 갈등 등 여러 면에서 상호 유사성을 갖기도 한다. 따라서 조선불교의 바른 이해는 동아시아 근세에 불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 과제를 추적하는 담론이 될 수도 있다. 

저자는 이런 과제를 잘 인식하고 있다. 이 일은 저자 혼자만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연구 자료가 신라 고려 불교에 비할 수 없이 다양하고 많다. 파악 대상이 광범위하므로 많은 연구자들이 인식을 공유하며 힘을 합쳐 성과를 쌓아가야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보여주듯이 세부 주제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토대로 거시적인 관점에서 조선불교의 새로운 이해틀을 찾는 과제를 선두에서 이끌고 있다. 저자의 언급대로 유교의 시대를 가로지른 불교적 사유의 지형을 밝히려는 작업은 현재 진행형이자 미래형이다. 이 책은 그 현재의 방향을 분명히 한 데 그 학술적 의의가 있다. ■

 

정병삼 soljbs@naver.com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동 대학원 졸업. 한국불교사 전공. 주요 저서로 《한국불교사》 《의상 화엄사상 연구》 《그림으로 보는 불교 이야기》 등과 공저 《한국의 사원과 세계불교문화》 《신앙과 사상으로 본 불교전통의 흐름》 《찬란한 우리문화의 꽃 진경문화》 등이 있으며, 여러 한국 불교사 논문을 썼다. 현재 숙명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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