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소설이란 불교를 제재나 주제로 다루고 있는 작품을 일컫는다. 불교적 제재란 승려가 등장하거나 사찰을 배경으로 하고 있거나 탱화, 범패, 염불, 화두, 선시, 고승의 행장, 산사의 역사 등 불교문화를 화소(話素)로 차용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불교적 주제란 연기(緣起), 무아(無我) 무상(無常), 공(空), 중도(中道), 자비(慈悲), 유식(唯識), 윤회(輪回), 업(業), 선(禪) 등 불교사상에 입각한 교훈을 전달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이 글에서는 한글로 쓰인 근현대 불교소설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아전인수식 해석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고자, 설령 불교사상에 입각해 해석이 가능한 작품일지라도 불교소설의 범주에서 제외했으며, 경전이나 선어록의 내용을 인용하는 등 작가의 작의(作意)가 분명한 작품만을 불교소설로 간주했음을 밝혀둔다. 

지면 관계상 본문에서는 연대별 대표작과 문제작만을 간단히 소개하며, 상세한 현대 불교소설 목록은 글의 마지막에 별도 첨부한 목록표를 참조해주기 바란다.


1. 일제강점기(1910~1940)의 불교소설

근대 불교소설의 지반을 닦은 것은 양건식이다. 그는 불교진흥회의 전임 서기로 근무했던 까닭에 《조선불교진흥월보》에 처녀작인 〈석사자상(石獅子像)〉을 발표한 이래 〈한일월〉 〈아의 종교〉 〈오!〉등 단편소설을 《유심》 등 불교계 잡지에 1915년부터 1918년까지 발표했다. 

〈석사자상〉은 보시행을 할 줄 모르는 주인공(김세창)이 석사자상 앞에서 한 걸인에게 50원을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한다는 게 서사의 골자이다. 〈한일월〉은 위산영우 선사와 유철마 비구니의 선문답을 통해 만유불성(萬有佛性)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고, 〈아의 종교〉는 포대화상과 보복의 선문답을 통해 분별망상을 없앨 것을 역설하고 있다. 〈오!〉는 향엄지한 선사의 일화를 통해 참선과 생활이 일치할 때 본래면목이 현전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양건식의 작품들은 이후 발표되는 불교소설들에 비해 구성과 줄거리가 단선적이다. 

많은 평론가가 ‘이광수가 근대문학을 열었다’고 평가하는데, 불교소설도 마찬가지다. 이광수는 〈무명(無明)〉 〈육장기(鬻庄記)〉 〈난제오(亂啼烏)〉 〈꿈〉 등 중 · 단편과 《마의태자》 《이차돈의 사(死)》 《사랑》 《세조대왕》 《원효대사》 등의 장편소설을 남겼다. 

이 작품들 중 《마의태자》 《이차돈의 사》 《세조대왕》 《원효대사》는 역사를 바탕으로 했고, 〈꿈〉은 ‘조신설화’를 바탕으로 했으며, 〈무명〉 〈육장기〉 〈난제오〉는 창작 당시를 시대적 배경으로 했다. 

발표 연대로 작품들을 살펴보면 《마의태자》는 이광수가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재직할 때 연재한 작품으로 상편에서는 궁예를 중심으로, 하편에서는 왕건을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된다. 마의태자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지 않는다는 것은 김동인 등 많은 평자로부터 구성상의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애꾸 소년 미륵(궁예)이 성장 과정에서 태백산에 입산해 승려 선종이 되었다가 하산하고, 작품 말미에서 낙랑공주가 출가해 승려가 된다는 점에서 불교적 제재를 차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차돈의 사》는 이차돈의 행장을 그린 작품이다. 이차돈, 평양 공주, 달님의 삼각관계가 서사의 한 축을 이루며, 이차돈이 고구려의 선승 백봉 국사를 만나 불법을 전해 받고 신라 왕실에 불법을 전하는 내용이 서사의 다른 한 축을 이룬다. 이차돈이 자신의 희생이 불법을 실천하는 길임을 자각하고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은 감동적이다.

《사랑》은 방민호 평론가가 평했다시피 ‘예수의 가르침이 부처의 가르침에 귀일됨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육장기〉는 서간문 형식의 자전소설로 산거(山居)를 목적으로 자하문 밖에 손수 지었던 조그만 산장을 파는 등 당시의 근황을 만주에 있는 친구에게 알리는 내용이다. 

《세조대왕》은 세조가 대원각사를 창건한 뒤 경찬회에서 자신이 죽이거나 폐위한 단종, 안평대군, 금성대군, 사육신 등을 위로하는 재(齋)를 올리는 내용이다. 세조의 심리묘사를 통해 참회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하고 있다.

《무명》은 김사량이 일어로 번역해 동경에서 제정된 제1회 조선예술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화자인 ‘나’가 관찰한 여러 수감자를 통해 인간의 탐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문학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 속 윤이 병이 깊어진 뒤 “염불을 외면 사후에 극락으로 가느냐?”고 묻는 대목에서는 무명 속을 헤매는 중생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원효대사》는 진덕여왕 8년(654)부터 무열왕 5년(658년)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 원효대사의 구도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꿈〉은 조신설화를 모티프로 한 ‘입몽(入夢)-몽중(夢中)-각몽(覺夢)’의 구조를 따른 중편소설이나, 조신이 낙산사 승려인 평목을 살해하고 시체를 동굴에 유기하는 설정이나 조신이 교수형을 당하는 설정은 작가가 창작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이광수 다음으로 많은 불교소설을 발표한 작가는 김동인이다. 〈석가여래〉는 왕자로 태어나 부귀영화를 버리고 출가해 인생의 진리를 깨닫는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고, 〈논개의 환생〉은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강물에 투신해 죽은 뒤 논개의 혼이 중음을 떠돌다가 다시 환생해 20세기 기생 이패연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패연의 육신 안에는 논개의 자아와 이패연의 자아가 공존하면서 갈등한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논개의 자아는 조선 기생의 자존심을 지키려 하는 반면, 이패연의 자아는 배금주의가 만연한 시류에 편승하려고 한다. 

〈낙왕성추야담(落王城秋夜譚)〉은 왕비(노국공주)를 잃은 공민왕이 정신이상을 보이다가 홍륜에게 피살된다는 줄거리이다. 작품의 정조는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공민왕의 번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작품 속에서 편조(신돈)가 정치개혁을 단행하는 주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조신(調信)의 꿈〉은 조신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원작에 충실했고, 《제성대(帝星臺)》는 견훤을 고귀한 집안의 장자로 설정함으로써 후백제 건국을 정당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광수의 〈마의태자〉와 대척점에 서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 도선사가 견훤의 스승 역할을 주요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불교적인 제재를 차용했다고 할 수 있고, 백제 왕조의 부흥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무상함을 깨닫게 한다. 

일제강점기에 발표된 불교소설 중 문학성이 높은 작품으로 만해 한용운의 《박명(薄命)》과 현진건의 《무영탑(無影塔)》을 꼽을 수 있다. 《박명》은 여주인공인 순영의 삶을 통해 불교의 보살행을 강조하고 있다. 남편인 대철을 향한 순영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만해의 시편에 나타난 절대적 사랑의 연장선에 있다. 순영은 정공 선사의 49재 때 선행이란 법명을 받고 출가한다는 게 작품의 결말이다. 

아사달과 아사녀 설화를 모티브로 한 《무영탑》은 민족혼을 대표하는 인물을 평민으로 설정함으로써 역사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주요섭의 《웅철이의 모험》과 김유정의 《두포전》은 숨겨진 명작이다. 《웅철이의 모험》은 한국 판타지 소설의 효시로 평가된다. 땅속 나라에서 웅철이가 풀의 정령을 만나 하찮은 생명이라도 귀중하게 여겨야 함을 배우는 장면은 불교의 생명평화 사상을 연상시킨다. 작품 마지막에 웅철이가 모든 게 꿈이었음을 깨닫는 장면은 전형적인 환몽소설의 구조를 따르고 있다. 

《두포전》은 ‘아기장수 설화’를 변용한 작품으로 기존의 전설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것과 달리 두포가 훌륭한 왕이 된다는 행복한 결말을 취하고 있다. 아기장수 설화를 모티브로 했다는 점에서 김동리의 〈황토기〉의 원류라고 할 수 있다. 

홍명희의 《임거정전(林巨正傳)》은 일제강점기 최장의 신문 연재물이나 미완에 그쳤고, 평자인 이원조, 김남천이 ‘작가 의식이 드러나지 않는다’ ‘전형적 성격의 결여’ ‘플롯의 미약’ 등 혹평을 했다. 작품 속에서 병해 대사는 칠장사에서 생불로 추앙받는 인물로서 임꺽정의 정신적 스승을 역할을 하고, 대왕대비의 신임을 받아 권력을 휘두르던 보우의 위신을 실추시킨다.

장편소설에 등장하는 승려가 민초들의 삶을 위무한다는 점에서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 황석영의 《장길산》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박흥민의 《제칠공주(第七公主)》는 ‘바리데기 설화’를 소설화한 작품이다. 타는 불구덩이에서 꽃을 던지자 지옥문이 열려 바리는 물론이고 지옥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나오는 장면에서는 목련존자 설화와 지장보살의 서원을 떠올리게 한다. 황석영의 《바리데기》 등 바리데기 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안수길의 〈원각촌(圓覺村)〉은 만주의 조선인 이주민 생활을 다룬 작품이다. 목숨을 걸고 금녀를 지키려는 원보의 행동을 조선인 이주민의 만주 정착 의지로 평가하기도 한다. 주제나 제재적인 측면에서 불교소설로 보기 어려우나, 용성 스님이 3 · 1운동으로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른 뒤 만주 북간도에 대각교당과 대규모 농장인 선농당(禪農堂)을 세우고 유랑하는 동포들의 정착을 도왔는데, 〈원각촌〉이 선농당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였다는 주장이 있다. 


2. 1950~1980년의 불교소설 

이광수가 불교소설의 주춧돌을 세웠다면 김동리는 불교소설의 기둥을 올린 작가이다. 

김동리는 일제강점기에 〈솔거〉 〈잉여설〉 〈완미설〉 등 솔거 3부작을 발표했으며, 솔거 3부작은 1968년에 〈극락조〉라는 중편소설로 개작돼 발표됐다. 

솔거 3부작은 불화(佛畵)를 모티브로 한 연작소설로서 비록 불교사상이 서사 속에 제대로 용해되지 못했으나 탐미적인 예술가 소설의 원형이 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후 정한숙의 〈금당벽화〉 〈금어(金魚)〉 민경현의 화승 연작 등 불교예술 소설의 전범(典範)이 됐다. 
〈등신불〉은 만적 선사의 소신공양과 화자가 식지를 깨문 것을 동일시함으로써 성과 속이 다르지 않음을 역설하고 있다. 〈눈 오는 오후〉와 〈저승새〉는 윤회설을 모티브로 했고, 〈미륵랑〉과 〈호원사기〉는 삼국유사의 설화를 모티브로 했다. 

김동리는 고대사의 인물에서 소재를 찾았던 이전의 작가들과 달리 작품 창작 연대를 시공간적 배경으로 한 서사 속에 불교사상을 용해했다는 점이나 탐미적인 문체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불교소설을 한 차원 격상시켰다고 볼 수 있다. 〈바위〉나 〈역마〉 등 토테미즘에 바탕을 둔 소설을 발표한 것도 그의 문학적 업적 중 하나이다. 

1950~60년대에 발표된 불교소설들에도 6 · 25전쟁의 폐해와 전후 시대 상황의 심각성을 고발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선우휘의 〈상원사〉는 월정사가 불에 타 소실될 위기를 목숨 지켜 막은 한암 스님의 일화를 담은 작품이다. 김정환의 〈사하촌〉이 일제강점기에 승려들의 탐욕을 고발한 작품이라면, 박경리의 〈불신시대〉는 전후 헐벗은 대중의 삶을 외면하는 승려들을 비판한 작품이다.

1970년대에 발표된 김원일의 〈바라암(波羅庵)〉도 6 · 25전쟁 중 바라암이라는 암자를 찾아들고 떠나는 유랑민들을 그린 작품이다. 법담 스님에게 갓난애 지수를 남겨두고 떠나는 점례, 젊은 시절 만주를 떠돌았던 강 사공, 역마살만을 유산을 물려받은 듯 지수도 결국 강 사공의 딸 봉녀를 임신시켜 놓고 바라암을 떠난다. 조정래의 《대장경》은 수기 대사가 무인정권을 비판하면서 대장경 판각을 이끈다는 게 서사의 골자인데, 호국불교와 보살사상의 회통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현대문학의 출발점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최인훈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마지막 편인 〈난세를 사는 마음 석가씨를 꿈에 보네〉에서 불교계를 야만의 세속에 인간으로서 고귀함을 지킬 수 있는 곳으로 평가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위 작품에서 화자가 대화를 나누는 스님은 고승대덕이 아니라 소박한 심성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정한숙의 〈금당벽화〉는 고구려 화승인 담징이 관세음보살 벽화를 조성하는 과정에 조국에 대한 사랑과 조국에 두고 온 여인에 대한 연정, 숭고한 불화를 완성하고자 하는 예술 의지로 인해 내적으로 갈등하다가, 끝내 ‘관음상의 아미와 아미 사이의 미간에 일점(一點)을’ 찍어 유여열반을 구현한 벽화를 완성함으로써 마음속의 번뇌도 물리친다는 내용의 빼어난 예술가 소설이다. 

김정한의 〈수라도〉는 김해로 시집온 가야부인의 가족사를 다룬 작품이다.가야부인이 산기슭에 묻힌 돌미륵을 발견하고 미륵당을 창건하는 게 서사의 골자인 까닭에 미륵신앙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여승의 환속을 그린 이문구의 등단작 〈다갈라 불망비〉와 사회적 정의와 불교 계율 중 무엇이 옳은가 하는 심원한 질문을 던진 송기숙의 〈테러리스트〉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이청준의 〈잔인한 도시〉는 비록 불교적인 제재를 쓰고 있지 않지만, 방생이라는 주제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다. 

승려 출신 김성동이 장편으로 개작한 《만다라》는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만다라》의 성공은 작가가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정각 스님과 지산 스님이라는 캐릭터를 생생하게 그렸고, 당시 불교계의 비리를 꼬집는가 하면 , ‘병 속의 새’ 등 화두를 적절히 작품 속에 용해한 데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초반 김성동은 〈피안의 새〉 〈산란(山蘭)〉 〈먼산〉 〈등〉 〈하산〉 〈황야에서〉 등 서정의 결이 돋보이는 불교 단편소설들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산란〉은 모정의 그리움에 못견뎌하는 까닭에 어머니와 관세음보살을 동일시하는 동승 능선의 심리묘사가 아름답게 그려지는가 하면, 무자(無字) 공안 등 다양한 화두를 서사에 적절하게 응용하고 있다. 다만, 김성동의 일부 작품들은 이동하 평론가가 지적했다시피 자기 연민의 정서가 서사의 완결성에 저해요소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1980년대 특징 중 하나는 《만다라》 이후 한승원의 《아제아제 바라아제》, 남지심의 《우담바라》, 강인봉의 《구나의 먼 바다》 등 구도소설이 발간됐다는 것이다.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진성과 청화, 두 비구니 스님의 대비되는 삶을 통해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진성 스님의 이력은 상구보리(上求菩提)에, 청화 스님의 이력은 하화중생(下化衆生)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구나의 먼 바다》는 작가(강인봉)의 15년여 승려 체험이 묻어 있어,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작품 속에서 산과 바다는 깨달음과 자비행으로 나뉘기도 하고 하나로 원융(圓融)하기도 한다. 10 · 27법난을 서사에 용해한 것도 이 작품의 장점이다. 

한승원의 〈극락산〉 1, 2는 6 · 25전쟁으로 부모를 여읜 어린 남매가 극락산 자락의 외가에 의탁해 사는 내용을 다룬 작품이다. 작품 속에서 어린 남매의 안식처는 외할머니의 품이고, 외할머니의 안식처는 아미타 사상이다. 의지할 데 없는 어린 남매의 모습은 아릿하고, 그 어린 남매를 거두는 외할머니의 모습은 한없이 따뜻하다. 

유신독재와 신군부의 광주학살로 이어지는 엄혹한 시대에 발표된 박경리의 《토지》,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 대하소설들은 비록 불교소설이라고 정의할 수 없으나, 작품 속에서 승려가 주인공의 정신적 스승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토지》의 우관 스님, 《장길산》의 운부 대사, 《태백산맥》의 법일 스님은 신음하는 민초들의 삶을 위무하는 동시에 주인공들의 조력자 역할을 한다. 김문수의 〈꿈〉은 전등사 ‘나부 설화’를 모티브로 한 빼어난 여행소설이다.

1980년대 후반 특징 중 하나는 윤후명이 불교를 제재나 주제로 한 사소설(私小說)을 여러 편 선보였다는 것이다. 〈돈황의 사랑〉은 돈황, 혜초 스님, 북청사자춤, 기생 금옥, 누란과 미라, 고대 악기 공후 등 수많은 제재들이 하나로 연결됨으로써 영원성이라는 주제로 귀결되는 작품이다. 소설 속 화자가 꿈꾸는 이상세계는 혜초 스님이 구도를 향해 걸어간 돈황이다. 현실과 환상이, 전생과 현생이 혼재하는 시공간에서는 일념(一念)은 무량겁(無量劫)이 되고 무량겁은 일념이 된다. 〈누란의 사랑〉 〈사랑의 돌사자〉 〈수마노탑(水瑪瑙塔)〉 등 윤후명의 중 · 단편들은 영원성을 희구하기 때문에 시원으로 회귀한다는 점에서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3. 1990~2000년의 불교소설

1990년대 불교소설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1980년대에 이어 다양한 구도소설들이 출간됐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윤후명, 윤대녕, 구효서로 대표되는 서정적인 문체미학이 돋보이는 미시(微示) 담론의 존재론을 전면에 내세운 작가의 작품들이 발표됐다는 것이다. 

1990년대에도 구도소설은 꾸준히 발표되는데, 이전과 다른 점은 실존 인물의 전기를 다룬다는 것이다. 고은은 《화엄경》과 《선(禪)》을, 최인호는 《길 없는 길》을 발표했다.

고은의 《화엄경》은 《화엄경》 〈입법계품〉 선재동자의 구도기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고, 《선》은 초조 달마대사부터 육조혜능 대사까지 이어지는 선맥(禪脈)을 서사화한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은 작가의 탁월한 선리에 명철한 문장으로 경전류 소설의 전범(典範)이 됐지만, 서사문학이 지닌 상상력은 다소 빈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인호의 《길 없는 길》은 꺼져가는 한국의 법등(法燈)을 밝힌 중흥조 경허 선사의 행장을 입체적으로 서사화해 많은 독자에게 사랑을 받았다. 

이문구의 《매월당 김시습》은 출간 당시 10만 부가 팔린 작품으로 설잠 스님의 행장을 독창적이면서도 현실감 있게 그렸다. 통한의 한숨을 삼키면서 풍찬노숙의 길을 걷는 만년의 김시습 모습은 애절한데, 이는 작가가 난세와의 불화로 방황했던 천재 지성인 김시습과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됐음을 알 수 있다. 송기원의 《안으로의 여행》과 《또 하나의 나》는 자전적 구도 여정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명상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박범신의 연작 장편 《흰 소가 끄는 수레》는 작가인 화자가 해인사 대적광전으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작품으로 풍동번동(風動幡動) 등 공안과  화택유(火宅喩) 등 불교 경전의 비유를 통해 본래면목을 돌아보게 한다. 

1990~2000년에는 윤대녕의 〈배암에 물린 자국〉 〈신라의 푸른 길〉 〈천지간〉 〈상춘곡〉, 구효서의 〈나무남자의 아내〉, 한강의 〈붉은 꽃 속에서〉, 심상대의 〈묘사총(猫蛇塚)〉, 김영하의 〈당신의 나무〉 등 빼어난 단편 불교소설들이 잇따라 발표됐다. 특히 윤대녕은 서정의 결이 고운 문체로 불교소설의 층위를 격상시켰다. 

〈신라의 푸른 길〉은 윤대녕의 문체미학이 정점을 이룬 작품으로 “삶의 화두가 물집투성이인 얼굴이 되었을 때 다시금 떠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운수(雲水)의 기질을 타고난 사내와 아름다운 여자의 길 위의 만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만남은 “가끔은 팽팽해지기도 하고 느슨해지기도 하는 그 거리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기 위한” 것인 동시에 향가인 〈헌화가(獻花歌)〉 속 철쭉꽃을 수로부인에게 바친 노인이 실은 소에게 풀을 먹이고 있던 젊은 스님임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선운사를 배경으로 한 서간문 형식의 〈상춘곡〉은 자칫 통속적일 수도 있는 서사를 작가 특유의 문체로 아련한 옛사랑의 노래로 승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꽃은 “벚꽃도 불탄 검은 자리에서 피어나는 게 더욱 희고 눈부시리라”고 믿게 되는 화자 마음의 꽃일 것이다. 

김영하의 〈당신의 나무〉는 앙코르와트에서 주인공이 맨발의 노스님에게서 “나무의 뿌리가 불상과 사원을 부수는 일을 하는 동시에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버텨주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 상생의 가르침을 깨닫는 내용이다. 성석제의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는 건달로 살던 마시오의 마지막 4.5초를 그린 작품으로 불교의 시간론 탐구가 돋보인다. 찰나 속에 영겁이 깃들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는데, 이는 작품 속 일념에 대한 주석을 보면 더욱 명징해진다. 만봉 스님을 모델로 한 민경현의 〈꽃으로 짓다〉 〈내영(來迎)〉 〈인멸(湮滅)〉 등 화승 연작은 김동리의 솔거 3부작을 잇는 예술가 소설이다.

이청준은 꾸준히 불교에 관심을 보이다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주목할 만한 불교문학의 성취를 남겼다. 1980년대에 이청준은 〈서편제〉 〈소리의 빛〉 〈선학동 나그네〉 등 ‘남도사람’ 연작을 통해 한(恨)을 극복하는 길을 모색했고, 〈떠도는 말들〉 〈소문의 벽〉 〈자서전들 쓰십시다〉 〈지배와 해방〉 〈가위 눌린 말들〉 등 언어사회학서설 연작을 통해 진정한 언어의 존재론적 의미를 탐구해왔다.

〈다시 태어나는 말〉은 초의 선사의 동다송(東茶頌)이 언어 정신의 타락상을 넘어서는 한 지경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소리꾼 누이를 찾아다니는 남자의 이야기와 초의 스님의 다도(茶道)에는 동일하게 ‘마음을 뜨겁게 덥혀오는’ 삶에 대한 화해가 있음을 역설한다는 점에서 ‘남도사람’ 연작과 ‘언어사회학서설’ 연작의 마침표를 찍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흐르는 산〉은 일제 말기에 일본인 관리에게 사적인 복수를 한 뒤 대원사로 숨어든 주인공(남도섭)이 장좌불와(長坐不臥)의 수행을 하는 무불 스님을 관찰하는 과정에 자리이타(自利利他)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작품이다. 무불 스님은 일경 형서부의 보조원이었는데, 죄인이 스스로 혀를 깨물어 자살하는 것을 목도하고 출가했다. 이러한 이력으로 보면, 무불 스님의 수행은 참회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남도섭은 “배고픈 사람에게 밤 한 술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의 상한 손가락 하나 아픔을 덜어줄 수도 없는 행위를 이타행으로 볼 수 있느냐”고 자문한다. 그 해답은 “자기 아픔이 산처럼 쌓여 지혜로 높아지는 경지에 도달하면 그 아픔과 지혜의 흐름이 자연 큰 자비의 물줄기로 먼 곳까지 미친다”는 것이다. 장편 《인간인》은 〈흐르는 산〉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으로 남도섭이 우봉 스님의 수행을 지켜보면서 사람을 살리는 권력이 가능한가, 하는 심원한 화두를 제시한다.  

‘남도사람’ 연작도 득음(得音)을 득도(得道)로, 한을 욕망으로 환치할 경우 불교 구도소설로서 충분히 해석이 가능하다.  
   

4. 2000년 이후의 불교소설 

2000년 이후에도 꾸준히 고승의 행장을 서사화한 구도소설이 발표되는데, 한승원의 《초의》 《원효대사》 《사람의 맨발》과 김탁환의 《혜초》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초의》는 한승원 전기문학의 시작을 알린 작품인 동시에 갇힌 공간 속 진아 찾기라는 작가가 천착해온 화두의 연장선 위에 있는 작품이다. 《흑산도 하늘 길》 《추사》 《다산》으로 이어지는 한승원의 전기문학은 남도로 귀향을 가는 주인공들의 삶을 통해 해산 토굴에 스스로를 가둔 작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조선 역사에서 현 시대를 읽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원효》는 ‘자루 빠져버리고 없는 도끼’를 ‘눈을 잃어버린 우주적인 씨앗’으로 유식학에 입각해 해석하고, 원효 대사를 전쟁터에 내보낸 군사들을 철수시키라고 외친 반전주의자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사람의 맨발》은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으로 부처님 가르침의 요체는 “발가락과 발톱들은 돌부리에 차이고 삐죽한 자갈과 가시에 찔리고 긁히는 상처를 입었다가 아물기를 거듭한 까닭에 곳곳에 암갈색 옹이가 박힌” 맨발에 있음을 역설한 작품이다. 

김탁환의 《혜초》는 혜초의 구도기를 통해 길 위의 서사와 그 기록의 좁혀지지 않는 간극에 대해 묻는 작품이다. 작품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곳도, 그 사람들이 만나서 새로운 이야기를 펼치는 곳도 길이다. 하지만 혜초 스님은 기억 속에 숱한 그리움의 길을 묻는다. 자신이 걸어온 길의 기록은 바람이 불면 사라지는 모래 위에 찍힌 발자국처럼 종적 없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스님의 행장을 그린 장편소설들은 불교계 외부로는 크게 반향을 일으키는 경우가 드물어 점차 하나의 장르소설로 전락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2000년대 이후 발표된 황석영의 《심청》 《바리데기》는 불교적인 제재를 내세우고 있지 않지만, 진정한 보살행이 무엇인지 묻게 하는 걸작이다. 여자이고 질곡의 역사를 헤쳐나간다는 점에서 《심청》의 연화와 《바리데기》의 바리는 〈삼포 가는 길〉의 백화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백화는 관세음보살의 다른 이름이다. 혼혈아 양딸에게 의지해 제물포로 돌아온 심청이 황해도 황주의 한 절에서 ‘심청지신위(深淸之神位)’라는 위패를 찾아낸 뒤 임종을 앞두고 “참 길은 멀기도 하다. 남들 해치지 말고 살거라”라는 유언을 남기는 《심청》의 마지막 장면은 ‘연화의 길’이 ‘보살의 길’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2000년 이후 발표된 장편소설 중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은 새로운 작법을 구사한 불교소설이어서 눈길을 끈다. 한국 최초의 맨부커 수상작인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등 3부작 연작소설이다. 작품 속 주인공(영혜)은 기이한 꿈을 꾸고 난 뒤 육식을 하지 않고 스스로 나무가 된다는 망상에 빠진 인물이다.

그런데 〈채식주의자〉의 화자는 두 사람이다. 영혜의 남편은 아내가 채식주의자가 된 뒤 붕괴되는 가족의 일상사를 말하고 있고, 영혜는 자신이 채식주의자가 된 계기인 꿈속의 이야기를 서술하는데, 이 대목은 대단히 몽환적이다. 《채식주의자》는 각각의 작품으로도 미학적 완성도가 높지만, 한 편의 장편으로 봤을 때 작품의 가치가 더욱 빛난다. 영혜는 자신이 먹는 고기가 폭력적인 살해의 희생물이라고 여기고 있다. 즉, 영혜에게 육식은 살생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영혜가 육식을 하지 않으면서 생긴 기벽은 젖가슴을 드러내는 것이다. 영혜에게 육식이 가학성 혹은 폭력성의 상징이라면, 젖가슴은 그 반대급부인 자비의 상징인 것이다. 《채식주의자》는 불교적인 메타포들이 충만해 있다. 채식주의자가 된 영혜의 모습에서 불살생을, 시원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영혜의 모습에서 탐욕에서 벗어난 진아(眞我)를 읽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영혜의 참혹한 일상에서는 우리의 의식이 실은 한낱 환영(幻影)의 작란(作亂)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채식을 제재로 한 소설은 《채식주의자》 이전에도 이제하의 〈초식〉, 김이태의 〈식성〉, 오수연의 《부엌》 등이 꾸준히 발표돼 왔다. 이 작품들 속에서 식욕은 성욕이나 권력욕으로 환치된다. 특히 《부엌》은 주인공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내가 모르는 체하는 사이에 굶고, 병들며, 죽고 있을 것”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점에서 포식자인 동시에 피식자일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의 비의를 다룬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에는 불교 경전 내용이 세 번 인용된다. 소설의 세 번째 단락에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일으킬지니라”라는 《금강경》 구절이 인용되고, 여덟 번째 단락에 《반야심경》 구절이 인용된다. 이 《반야심경》 구절은 말미에 다시 인용돼 수미쌍관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인지 소설 전반에 걸쳐 불교 경전이 인용되거나 소설에 승려나 불자가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해설을 쓴 권희철은 불교사상에 입각해 소설을 평하는 데 상당 분량을 할애했다. 이 소설은 이미 제목에 함유돼 있듯, 연쇄살인범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려서 점차 기억을 상실해가는 과정의 이야기이다. 작가가 흉포한 작품의 앞뒤에 불교 경전을 인용한 이유가 무엇일까? 작품 속에서 주인공(김병수)의 기억이 파편화되다 보니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 작가는 실재와 가상이라는 두 개의 덫을 놓고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김병수가 첫 살인을 벌인 것은 열여섯 살 때였고, 피해자는 아버지였다. 이후 마흔다섯 살까지 살인을 계속했다. 마흔다섯 살 이후 살인을 하지 않는 이유는 피해자의 딸인 은희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냉혹한 뱀의 눈을 가진 박주태가 등장하면서부터 김병수와 은희는 갈등하기 시작한다. 김병수는 박주태가 자신과 같은 종류의 사람임을 대번에 알아보지만, 며칠 후 은희의 약혼자가 되어서 집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후 작품은 김병수와 박주태의 팽팽한 경쟁구도 속에서 과연 누가 승리할 것인가 하는 데 관심이 모아진 채 결말을 향해 전력 질주한다. 그런데 말미에서 서사의 축이 일순간 연쇄적으로 무너진다. 작품의 앞뒤를 장식한 경전 내용은 대숲 밭에 묻어 놓은 시체들이 유일한 삶의 장엄이었던 김병수에게는 아무도 이길 수 없는 시간, 그 영겁회귀의 주문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2000년 이후 발표된 단편소설 중에는 구효서와 김연수의 작품들이 미적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되고 있다. 〈명두(明斗)〉가 황순원문학상, 〈조율(調律): 피아노 월인천강지곡〉이 허균문학상 작가상, 〈풍경소리〉가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것에서 알 수 있듯 구효서가 발표한 불교소설들은 눈부신 문학적 성취를 보였다. 특히, 〈풍경소리〉는 성불사라는 가곡을 모티브로 한 중편으로, 죽은 어머니를 회고하는 딸의 이야기를 통해 인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가을 산사의 풍경과 사찰 속 인물들의 내면세계가 절묘하게 결합돼 소설적 감응력을 높이고 있다. 소설의 말미에서 풍경 소리가 죽은 어머니의 소리임을 암시하는 대목은 대단히 감동적이다. 전통적인 소설을 기법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촌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작가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에 기인한다. 

김연수의 〈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는 낙태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를 심도 있게 묘사하고 있으며, 그 기저에 모성애가 깔려 있다는 점에서 〈명두〉와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명두〉가 보다 원시적이고 주술적인 반면 〈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는 서정적이고 따뜻하다는 것이다. 

이인(異人)소설인 〈명두〉의 화자는 죽은 굴참나무이다. 죽었으면서 살아서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역설인데, 명두집이 죽은 세 아이를 잊지 않았듯이 굴참나무 역시 자신의 뿌리에 묻힌 세 아이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한한 삶이 영구적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잊지 않는 것, 즉 기억 때문이며, 삶과 죽음은 서로를 껴안고 있음을 일깨워준 수작이다. 〈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의 백미는 상처 입은 영혼을 보듬는 따뜻한 정서이다. “아프지 말아라. 너무 아프지 말아라.”라는 대사가 외려 독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독자들도 예정처럼 영혼 깊숙이 박힌 상처 하나씩을 안고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 불교소설 중에는 승려의 작품들도 적으나마 발표됐다. 앞서 만해 한용운 스님의 작품들은 언급했으니 차치하고 나면, 김정휴 스님과 조오현 스님의 작품들이 문제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김정휴 스님의 《슬플 때마다 우리 곁에 오는 초인》은 경허 선사의 행장을 서사화한 작품으로 경허 선사를 단순한 기인이 아닌, 고통의 극한에서 오히려 최고의 깨달음을 완성한 슬픈 초인으로 묘파하고 있다. 김정휴 스님의 글을 통해 경허 선사는 파격을 통해 깨달음의 자유를 시험했고, 명분과 사상의 틀에 구속되기를 거부했던 초인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김정휴 스님의 《열반제》는 TV드라마로 영상화된 작품으로 죽음과 자살의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천착함으로써 서사의 긴장감을 획득하고 있다. 김재홍 평론가가 “죽음=번뇌의 소진, 자살=자유에의 귀환이 바로 열반에 이르는 죽음의 미학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구도와 예술, 속세와 신성, 고통과 깨달음이라는 심원한 주제를 입체적 인물들을 창조함으로써 완성도 있게 그린 작품이다. 

〈원점〉은 1970년 4월경 조오현 스님이 계림사 주지로 있으면서 창작한 중편소설로, 경상도 방언과 개똥이라는 인물의 토속성이 잘 결합돼 서사의 입체성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사주쟁이 영감’의 말대로 돌고 돌아서 원점으로 돌아오는 주인공의 운명에서는 “가도 가도 본래의 그 자리요, 도달하고 도달해도 처음 떠난 그 자리(行行本處 至至發處)”라는 의상 대사의 〈법성게〉 가르침을 떠오르게 한다.   

이상 현대 불교소설을 개괄적으로 살펴봤다. 이 글에 소개된 작품들은 그야말로 필자의 취향에 따른 것임을 밝혀두며, 지면 관계상 많은 작품을 언급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안타깝게도 점차 발표되는 불교소설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도 그럴 게 문학도, 불교도 이전에 비해 사회적 영향력이 현저하게 약화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불교와 문학에 필적할 만한 숭고미의 본령도 없고, 인문학의 보고도 없다고 믿기에 제2의 불교문학 중흥을 기대할 따름이다. ■

 

유응오 arche442@hanmail.net
소설가. 2001년 〈불교신문〉, 2007년 〈한국일보〉 단편소설 당선으로 등단. 장편소설 《하루코의 봄》, 영화평론 《영화, 불교와 만나다》 등 출간. 현재 현대불교문인협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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