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나 그 일은 인생에서, 아니 영혼에서 단 한 번 일어나는 축복이 아닐까. 그 축복에 자신을 던질 수 있는가 없는가는 자신의 선택일지도 모르고 불교식으로 말하는 인연인지도 모르겠다.

티베트불교에서는 그러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헌신을 스승에게 바치는 것을 ‘구루 요가’라고 한다. 티베트불교의 구루 요가를 배우면서, 외적인 어떤 존재를 구루로 모시는 것에 한계를 느꼈었다. 그 구루가 진정 내가 모든 걸 바칠 만한 스승인지를 묻는 오만함과 분별이 내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실은 나의 그런 에고와 분별을 더 깊이 녹여주실 수 있는 분이 한 분 계셨는데, 나는 그 축복의 인연을 지나쳤었다.

그분을 처음 만난 건 초등학생 때, 자제정사 양로원에서였다. 다른 종교계에 비해 복지사업에 힘을 쏟지 못했던 불교계 최초로 무상 양로원을 설립하여 밤낮으로 무의탁 할머니들을 돌보는 비구니 스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묘희 스님을 보필하며 양로원 일을 총괄하는 경덕 스님은 다른 비구니 스님들과 함께 새벽부터 밤까지 밭일에서부터 자원봉사자들을 이끌며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셨다. 노년에 갈 곳 없는 수많은 할머니들을 위해 온몸을 바치는 그분들의 얼굴에서는 빛이 났다. 처음 느끼는 밝고 따뜻하며 큰 빛이었다. 그건 사랑의 빛이었을 것이다. 

어린 나였지만 회색 낡은 옷을 입고 머리카락이 없는데도 세상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는 걸 그냥 알았다. 방학 때마다 마치 외가에서 놀 듯이 그곳에서 쉬었고, 늘 따뜻하고 열정적이며 헌신적으로 일하고 계신 경덕 스님에 대한 존경심이 커져 갔다. 그런데 내성적인 성격 탓이었는지 스님 곁에 가는 것이 어려웠고 부끄러웠다. 스님은 한 번도 불교에 관해 설교하신 적이 없었지만, 단 한 번 “우리가 이렇게 귀하게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진실하게 살아야지 않겠나”라고 말씀한 적이 있는데 ‘진실함’ 이 한 마디가 스님의 가르침이었고 삶이었다.

불교를 알게 되고, 출가해서 수행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을 때쯤, 스님도 오랫동안 참선 수행과 위빠사나 수행을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더욱 스님 제자로 출가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 바닥에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토록 존경하는 스승이 네가 도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일을 시킨다면 할 수 있는가?’ 나의 대답은 ‘아니’였다. 나의 모든 것을 바칠 각오와 자신이 없다면 그분 제자로 출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와 생각하면 그건 어쩌면 내 에고가 내놓은 핑곗거리였는지도 모르지만, 당시에는 진지하게 나 자신에게 묻고 내놓은 답이었다.

차선이자 최선으로 불교 공부를 할 수 있는 대학에 가서 나름의 갈증을 풀며 살아왔다. 그러나 스님은 내 가슴에 늘 내가 가지 않았고, 못 했던 길 끝에 있는 빛으로 가물거리셨다. 나는 오랫동안 스님을 찾아뵙지 않았는데, 실은 부끄럽고 내 삶에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스님을 꿈에서 뵈었더랬다. 꿈속에서 스님은 일흔의 나이 너머로 아름다운 존재셨다. 깨어서 그 여운에 기뻤다. 내 영혼은 스님의 영혼을 본 것만 같았다. 살면서 한 인간의 영혼에 깊은 감동과 아름다움의 세례를 받는 일은 드문 일이다. 그래도 어릴 적 받았던 그 축복의 씨앗이 아직 내게 남아 있었다. 아직 내 안에 스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박사학위를 딴 후에 연락을 드려 만났다. 20년을 피땀 흘려 일군 자제정사를 다른 인연에게 넘기신 지 벌써 오래, 스님은 이제 경북 영양 산골짜기에 사신다. 절의 간판도, 명예도 모든 걸 내려놓으신 분이건만 일흔이 넘은 스님은 예전처럼 동네 할머니들을 위해 공양을 차려주고 하루하루 온 힘을 다해 정진하며 살아가신다. 

스님을 뵙고 온 날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스님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뿐이다. 이제 생의 말년에는 정말 부처님의 뜻을 완전히 알고 부처님 곁에서 오로지 수행하면서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씀하는 스님을 떠올리면 나의 안일한 생활이 부끄럽다. 스님의 강인한 정진과 인내, 그 큰 사랑, 그 헌신을 생각하면 나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마음이 든다. 

나는 이제 예전처럼 반항하고 도망치지 않으려 한다. 스승께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는 척도로 가늠하는 관념적 존경이 아니라, 부족한 지금 여기에서 실천하는 존경을 보여드리고 싶다. 멀지만 좀 더 자주 찾아뵙고, 스님께 그저 덜 부끄러운 인간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고 싶다. 스님은 스님의 존재만으로 나의 작은 에고를 녹여주고 끌어 올려주셨다. 그 축복의 빛을 잊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하며, 진실하자는 스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따르는 일이 바로 스님께 보답하는 길일 것이다. 

양영순 / 동국대 불교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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