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서양음악인 클래식 음악에는 그들의 세계관과 사상이 담겨 있다. 그리고 동양음악도 마찬가지이다. 이 둘 모두 직접적으로 불교와의 연결고리가 강하지는 않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과 부처님의 생애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낯설게 느껴지는 반면, 불교와 동양음악은 서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의 음악은 더욱 그러하다. 한국 음악은 오랜 시간 불교와 그 역사를 함께해 오면서 불교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왔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으로 불교와 부처님의 일생을 이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프랑스의 사실주의 작가 발자크가 “음악에는 한계가 없다. 음악이라는 언어는 음에 의해서 우리의 마음에 어떤 상념, 혹은 우리의 지성에 어떤 심상을 일깨워 준다”고 했듯, 음악으로 표현하고 음악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또한 영국의 시인 존 키츠는 “들리는 멜로디는 아름답지만, 들리지 않는 멜로디는 더욱 아름답다”라고 하며 음악이 소리 이상의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말했다. 필자는 음악 작품의 이면에 존재하는 들리지 않는 멜로디를, 불자의 시선으로 다채롭게 해석해보고자 한다.

 

2. 경전의 숲에서 슈만을 만나다

로베르트 슈만의 음악 세계와 작품보다 클라라와의 사랑 이야기가 더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은, 뜨거웠던 사랑과 짧은 결혼생활, 그리고 긴 인내의 시간 때문일지도 모른다. 1840년에 작곡된 가곡 〈미르테의 꽃 작품 25〉은 슈만이 사랑하는 신부 클라라에게 결혼 전야의 선물로 바친 곡이다. 미르테는 독일에서 신부의 화관을 장식하는 꽃이다. 그중 가장 많이 연주되는 중 첫 곡인 〈헌정(Widmung)〉은 시인 뤼케르트의 시에 의한 곡으로 일종의 ‘청혼가’이다.

세기의 연인으로 불리는 슈만과 클라라
세기의 연인으로 불리는 슈만과 클라라

 

그대는 나의 영혼, 그대는 나의 심장/ 그대는 나의 기쁨, 오 그대는 나의 고통,/ 그대는 내가 그 안에 살고 있는 나의 세상/ 나의 하늘, 그대는 내가 그 속에 떠도는 나의 하늘이요,/ 오 그대는 나의 무덤이니, 그 아래로 나는 영원한 나의 근심을 묻었다!/ 그대는 휴식, 그대는 평화/ 그대는 하늘이 나에게 내려주었소./ 그대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나를 가치 있게 만든다오./ 그대의 눈빛이 나를 광명에 찬 모습으로 나를 변화하게 하고,/ 그대는 넘어서서 나를 사랑스럽게 드높여 주었소./ 나의 선한 영혼 / 더 나은 나!

 

독일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하던 대학생 슈만은 음악에 대한 열정을 꺾을 수 없었고, 엄격하기로 소문난 피아노 교사 프리드리히 비크의 제자로서 그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슈만보다 아홉 살이나 어렸던, 영특하고 재주 넘치는 피아니스트 클라라는 비크의 딸이었다. 그녀는 슈만의 꿈과 열정을 이해해 주는 단 한 사람이었다.

사실 클라라는 슈만보다 더 훌륭한 작곡가나 피아니스트로 성장할 가능성이 컸던 당대의 알파걸이었다. 아버지로서는 유럽 전역에 연주 여행을 다니며 찬사를 받고, 작곡가로서 입지를 다지던 소중한 딸이 경제 능력도 없고 패기와 자신감만 넘치는 제자 슈만과 교제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을 리가 없다. 아버지 비크와의 사이에 법정공방까지 오간 끝에, 1840년 9월 드디어 두 사람은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 1843년부터는 라이프치히음악원에서 교편을 잡게 되는 등, 슈만은 생활 면에서도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슈만은 클라라와의 만남으로 해서 작곡가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 그는 초기에는 주로 피아노 작품을 작곡했다. 결혼 전 클라라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의 작품을 음악회에서 무대에 올렸고, 청중들은 천재 소녀 클라라가 연주하는 슈만의 작품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클라라와 결혼한 해에, 그가 평생 작곡한 가곡의 절반 이상을 완성했을 정도로 그녀는 슈만의 진정한 뮤즈, 즉 음악의 여신이었다. 또한 이듬해에는 작곡하는 데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걸리는 교향곡, 실내악곡, 협주곡 등 규모가 큰 곡들을 여러 곡 탄생시킨 것으로 보아, 슈만은 클라라 덕분에 안정적으로 작품 활동에 몰두 있었던 것임이 분명하다.

 

〈헌정〉을 작곡할 당시, 슈만은 오로지 격렬한 사랑의 감정으로 클라라를 ‘하늘’ ‘영혼’ ‘기쁨’이라고 노래했지만, 후에 더 깊은 의미의 ‘존재의 이유’나 ‘끝없는 원천’이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만약 클라라가 없었다면 서양음악사에서 슈만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슈만에게 클라라는 어떤 구원적인 존재가 아니었을까?

청년 슈만이 사랑하는 여인 클라라에게 바친 사랑의 곡 〈헌정〉은 빤짜시카가 사랑하는 여신 쑤리야왓차에게 바친 구애의 시를 떠올리게 한다. 빤짜시카는 비파와 비슷한 악기인 벨루와빤두를 연주하면서 사랑의 시를 읊는다. 이 시는 단순한 사랑의 노래를 넘어서, 사랑하는 여인을 통해 보다 높은 정신적인 평화와 휴식을 노래하며, 부처님과 아라한의 덕을 칭송하고 있다. 디가 니까야 21경 《제석천 질문의 경》에 나오는 그 시의 일부를 옮겨본다.

 

존귀한 여인이여, 쑤리야왓차여./ 존귀한 여인이여, 타오르는 불을 물로 끄듯이/ 내 사랑의 열병을 꺼주십시오./ 아름다운 여인이여, 나를 안아주소서./ 아름다운 눈을 지닌 여인이여, 나를 안아주소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여, 거룩한 아라한들에게/ 내가 지은 공덕이 있다면 그대와 함께 그 과보를 누리게 되기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여, 이 둥근 대지 위에서/ 내가 지은 공덕이 있다면 그대와 함께 그 과보를 누리게 되기를. 샤카족의 아들인 성자께서 선정을 통해 일념을 성취하고/ 현명한 지혜로 사유하여 사띠를 확립하고 죽지 않는 ‘불사’를 구하듯/ 쑤리야왓차여, 나는 그대를 찾아다닙니다./ 성자께서 최상의 바른 깨달음을 증득하고 기뻐하듯/ 선한 여인이여, 나 또한 그대와 하나 되어 기뻐할 것입니다./ 만약 삼십삼천의 제왕인 샤카가 나의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존귀한 여인이여, 나는 오직 그대 하나만을 원하리니 이처럼 나의 사랑은 견고합니다.

팔부중상 석탑 면석 중 건달바 (통일신라기)
팔부중상 석탑 면석 중 건달바 (통일신라기)

 

부처님께서는 빤짜시카의 연주와 노래를 들으시고 “노랫소리와 음악이 참으로 잘 어우러져 있다. 그대는 이 시구를 언제 지었는가?”라고 칭찬하셨다. 빤짜시카가 사랑한 쑤리야왓차는 간답바 왕의 딸이다. 간답바는 산스끄리뜨어로는 간다르바, 우리말로는 건달바를 뜻한다. 건달은 남을 위협하고 해하는 불온한 존재 혹은 한량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천상세계에서 음악을 관장하는 선신(善神)을 말한다. 서양의 음악의 신 뮤즈와 유사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클라라가 슈만에게 어떤 구원적인 존재였다면, 쑤리야왓차는 빤짜시카에게 공덕을 나누고 싶은 존재이며, 깨달음의 길에 같이하고픈 존재였다. 〈헌정〉에서 ‘기쁨, 고통’은 곧이어 ‘휴식과 평화’로 승화되고, 마지막엔 ‘더 나은 나’로 초월된다. 빤짜시카의 노래에서는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식지 않는 열병이 깨달음에 대한 추구와 붓다와 아라한에 대한 찬탄과 귀의로 이어진다. 에로스적인 사랑이 플라토닉적인 사랑으로 승화되며, 자기초월과 종교적 귀의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두 작품이 공통으로 가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3. 네 번의 부처님오신날

독일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 막스 레거의 〈12개의 피아노를 위한 작품집〉 중 세 번째 곡인 〈봄노래(Frühlingslied)〉는 따뜻한 봄밤의 서정성이 느껴지는 소품이다. 이 작품집의 다른 이름은 〈꽃과 잎(Blätter und Blüten)〉인데, 봄날의 산들바람과도 같은 〈봄노래〉는 이 부제와 가장 잘 어울린다. 부처님의 생애에 관한 서사시인 《불소행찬(佛所行讚)》의 첫 부분이 연상된다.

 

왕은 천제석(天帝釋) 같고/ 부인은 제석의 부인 사지(舍脂) 같았네./ 뜻을 잡아 지님은 땅처럼 안온하고/ 마음 깨끗함 연꽃 같았네/ 임시로 이름하여 마야(摩耶)라 했나니/ 그는 실로 세상에 견줄 이 없네./ 저 코끼리[象]에게/ 신(神)으로 하강하여 태(胎) 속에 들자/ 어머니는 온갖 걱정 시름 모두 여의고/ 허깨비 같은 거짓 마음 내지 않았네./ 시끄러운 세속 일 싫어하고 미워하였고/ 텅 비고 한적한 숲에 살기 좋아했네./ 저 람비니(藍毘尼)의 아름다운 동산/ 샘물 흐르고 꽃과 열매 무성하네.’

 

막스 레거의 후기 작품들은 복잡하지 않은 정제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곡은 특히 감상적이며 섬세하다. 브람스의 간주곡이나 쇼팽의 녹턴과도 같은 달콤한 분위기의 이 곡은 처음 등장한 주선율이 네 번 반복되며 큰 클라이맥스 없이 잔잔하게 끝맺는다. 단정한 모습의 수련과도 같은 분위기를 담고 있는 이 곡을 온화한 마야부인의 모습에 견주어 볼 수 있다. 마치 봄밤의 기대와 설렘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아이를 기다리는 마야부인의 평온한 모습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가벼운 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같은 고요한 설렘이 46마디 안에 녹아 있는 것만 같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작곡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의 대표적인 피아노 작품집인 〈사계, 작품 37a〉는 열두 곡으로 구성되어있다. 차이콥스키는 《누벨리스트》라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월간 음악잡지로부터 한 해 동안 매월 한 곡씩 잡지에 소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1875년 12월부터 한 편의 시와 함께 차이콥스키의 작품이 매달 잡지에 소개 되었다.

러시아의 서정 시인인 아폴론 마이코프의 시와 함께 소개된 〈4월〉은 봄에 대한 동경을 그린 곡이다. ‘스노드롭’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이 곡은 이른 봄 가장 먼저 피기 시작하는 하얀 꽃의 순결하고 깨끗한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막스 레거의 〈봄노래〉가 차분하고 명상적인 봄의 느낌을 표현했다면 이 곡은 훨씬 더 밝은 봄을 그리고 있으며, 평화로움과 따뜻함도 동시에 담고 있다. 특히 중간 부분의 오른손 16분음표 선율은 수선화의 일종인 ‘스노드롭’의 청초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이 곡은 차이콥스키의 〈사계〉 중 가장 평온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담고 있어, 아직 눈이 녹지 않은 산봉우리 아래로 피어난 봄꽃 ‘스노드롭’은 봄기운이 완연한 룸비니 동산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히말라야의 눈 덮인 산이 멀리 보이는, 반짝이는 강물이 흐르는 온갖 풀과 나무들이 향기로운 곳. 덥지도 춥지도 않은 바람이 상쾌한 이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한 부처님의 모습을 《불소행찬(佛所行讚)》에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안팎의 권속들에 분부하시어/ 동산 숲으로 함께 나가게 하니/ 그때 왕후이신 마야(摩耶)부인은/ 아기 낳을 시기가 되었음을 스스로 아셨네./ 편안하고 좋은 침상에 눕자/ 백천 채녀들이 왕후를 모셨다./ 마침 때는 4월 8일이라서/ 맑고 온화한 기운 고르고 알맞았네./ 재계(齋戒)하고 깨끗한 덕 닦았기에/ 보살은 오른쪽 옆구리로 탄생하셨네./ 큰 자비로 온 세상 건지시려고/ 어머니를 고생스럽게 하지 않으셨네.

 

만물이 소생하는 봄, 그 한가운데 고타마 싯다르타,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은 모든 불자에게 가장 큰 의미를 주는 날이다. 불교에서 가장 큰 명절인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부처님의 생애를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들과 함께 감상해본다. 부처님오신날이 고타마라는 한 인물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한다면, ‘출가재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최대한 아들에게 좋고 귀한 것만을 보고 듣게 하고 싶었던 숫도다나 왕의 보살핌 덕분에 싯다르타 태자는 궁 안에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다. 결혼 후 싯다르타 태자는 부왕의 허락을 받고 시종 한 명과 함께 카필라성 밖에 나가 백성들의 삶을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성 밖에서 본 세상의 모습들은 그에게는 새로운 충격이었으며 이 나들이는 결국 출가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이를 훗날의 사가들은 사문유관(四門遊觀)이라고 이름 붙였다.

싯다르타의 탄생을 표현한 부조
싯다르타의 탄생을 표현한 부조

 

요하네스 브람스의 〈호른 트리오 E♭장조, 작품 40〉을 들어보면 사문유관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브람스는 강건하고 소박한 북부 독일 지역 출신답게 겉으로 드러나는 지나친 화려함을 경계하고 음악의 기본에 충실한 깊이 있는 음악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내면적 성찰이 강한 브람스의 성향에 잘 맞는 장르는 실내악이었고 그는 평생 17곡의 실내악 작품을 남겼다.

브람스의 호른 트리오를 살펴보면 그가 호른이라는 악기에 대해 상당한 관심과 애정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호른은 금관악기 중 가장 먼저 오케스트라에 도입된 악기이고 오케스트라에서는 무척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소리 내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악기이다. 마우스피스부터 벨까지의 길이가 무척이나 길어서 정확하고 명료한 소리를 내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따뜻하고 깊이 있는 음색이지만 트럼펫과 같이 화려함을 자랑하는 악기는 아니기 때문에 독주로 연주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낯선 악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거의 독주곡에 가까운 역할을 맡겼다는 것에서 브람스가 독특하면서도 신중하고도 사려 깊은 사람이라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또 대부분의 실내악 트리오 구성은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곡을 이끌어가지만, 이 작품에서는 호른이 주인공이다.

브람스의 〈호른 트리오〉의 첫 악장은 론도형식(주제와 에피소드가 반복되며 교차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목가적으로 온화하게 시작되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코드 위로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한 호른의 주제가 등장한다. 평온한 싯다르타의 궁궐 생활을 연상케 하는 첫 악장은 종종 나타나는 애잔한 바이올린 선율과 피아노의 견고한 패시지(악곡을 구성하는 여러 부분 중 일종의 경과구적인 부분)의 열정도 담고 있어 곧 출가를 결심할 싯다르타 내면의 소용돌이에 빗대어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빠른 스케르초 악장인 두 번째 악장은 활기찬 스타카토 선율들이 강조되는 음들을 표현한다. 홀로 나선 첫 나들이에 대한 기대감과 앞으로 마주하게 될 세상의 민낯에 대한 놀라움 등이 표현된 것 같다. 설렘, 충격, 절망 등 지금까지 느낄 수 없었던 감정들과 세상이 감추고 있던 늙음, 병듦, 죽음을 대하기 전, 태자는 그야말로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직면하고 놀라움과 절망에 휩싸이게 된다. 노병사(老病死)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자각은 지금까지 누려왔던 모든 풍요로움을 한순간에 빼앗아 버렸다. 북문 나들이에서 수행자와의 만남은 태자에게 절망 속에 마주한 한 줄기 빛과 같았다.

가장 브람스적인 악장인 세 번째 느린 악장은 흔히 말하는 비가(Elegy) 악장이다. 다소 무거운 조성인 E♭단조로 시작되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늙고 아프고 병들고 죽어야만 한다는 피할 수 없는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곡의 전반을 지지하는 피아노 위에 바이올린과 호른의 선율이 먼 곳에서 느린 걸음으로 다가오는 근심의 세계를 나타내는 것 같다. 특히 피아노의 리듬이 변형되어 빠른 걸음걸이로 표현되는 부분은 북문의 출가 사문을 마주한 심리상태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리듬과 화성의 변화는 출가로의 결심을 재촉하는 싯다르타 태자의 결심인 것 같다. 초췌하지만 맑고 강인한 눈빛과 평온한 얼굴의 수행자 모습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한 싯다르타 태자의 단호하기까지 한 모습이다.

마지막 악장은 여느 피날레와 같이 빠른 템포의 악장으로, 앞의 세 악장에서 보여준 주제의 조각들을 모두 담고 있다. E♭장조에서 경쾌한 16분음표의 시작으로 곡을 풀어가고 있으며 다른 악장보다 바이올린의 화려한 선율이 돋보인다. 침착하거나 안정된 분위기보다는 당당하게 휘몰아치는 것 같은 성격의 4악장은 출가의 결심과 실행에 옮기는 청년 싯다르타의 강건한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특히 곡의 클라이맥스에서 여덟 마디 동안 계속되는 E♭의 반복음은 굳은 의지의 표본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30여 분에 달하는 대곡에서 호른 연주자는 뒷부분으로 갈수록 자신의 모든 기교와 음악성을 발휘하게 된다. 마치 또 다른 세상, 출가의 길을 가기 직전의 청년 싯다르타의 강한 모습과도 같다. 이 마지막 악장을 슬픔을 이겨낸 기쁨으로 비유하는 학자도 있을 만큼 부처님의 출가와 함께 생각해보기에 좋은 작품이다.

브람스는 오케스트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한 번도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호른이라는 악기에게 독주에 가까운 역할을 맡겨 무대의 앞쪽으로 이끌어냈다. 동시에 언제나 앙상블에서 주인공 역할을 도맡아 했던 바이올린에게 호른의 따뜻한 음색을 잘 받쳐주며 더욱 돋보이게 하는 조력자 역할을 부여했다. 어느 종교에서도 찾을 수 없는 ‘사문유관’은 부처님이 수행자로서의 삶으로 큰 걸음을 내딛는 두 번째 탄생, 출가를 결심하게 한 일화이다. 싯다르타 태자가 왕궁을 떠나 주어진 모든 현실을 버리고 더 나은 것을 위한 선택을 결심한 역사적인 날은 또 다른 의미의 탄생이다.

 

부처님이 ‘위대한 포기’를 결심했던 출가재일이 두 번째 부처님오신날이라면, 성도재일 역시 또 다른 의미의 부처님오신날이라고 할 수 있다.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은 ‘붓다’의 탄생을 뜻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깨달은 자, ‘붓다’의 탄생이야말로 새로운 의미의 부처님오신날이 아닐까.

출가를 결심하고 수행한 지 6년만인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 싯다르타 태자는 진정한 깨달음을 얻었다. 중도에 입각한 선정 수행을 통해 고행이나 쾌락, 그 어느 쪽에도 편향되지 않은 가장 적절하고 탁월한 상태를 맞이한 것이다. 중도를 통한 부처님의 깨달음은 번뇌의 완전한 소멸과 그것에 대한 명확한 통찰력으로 인생의 궁극적인 숙제를 해결한 것과 같은 의미가 있다.

음악에서 ‘깨달음’은 어떤 의미일까. 익숙한 악기의 소리에서 벗어나 소리와 소음에 관해 탐구했던 작곡가 존 케이지를 소개한다. 1952년, 그는 대표작인 〈4분 33초〉를 발표했다. 한 대학의 무음실에 들어갔을 때, 그는 완벽한 흡음으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두 가지 종류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것은 자신의 자율신경계에서 나는 소리와, 혈액이 흐르는 소리였다.

순간 그는 평소에 생각하던 ‘침묵’은 사실은 존재하지 않다는 것, 즉 ‘완전하고 영원한 침묵’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새로운 소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면서 동시에 ‘침묵’에 관해서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컬럼비아대학에서 2년 동안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에게 수업을 듣기도 했다. 새로운 것, 비어 있는 것에 대한 연구가 ‘선’에 대한 관심을 가져왔고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4분 33초〉는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악보에는 오선과 음표 대신 세 개의 각 악장 첫 부분에 침묵을 뜻하는 타셋(Tacet)이라는 표시 외에 피아노 뚜껑을 여닫는 지시가 있으며, 각 악장을 1분 33초, 2분 40초, 1분 20초간 연주해야 한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되던 날, 피아니스트는 무대에 등장하여 악보의 지시를 그대로 지켰으며, 청중들의 반응은 상당했다.

평론가들의 평가도 극과 극을 달렸다. 온갖 혹평이 쏟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4분 33초〉는 콜럼버스의 달걀과도 같은 의미였다. 이날 피아니스트는 아무 음도 소리 내지 않았지만, 이 연주가 이루어지는 순간 발생한 모든 소리는 이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었다. 청중의 기침 소리,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아서 궁금해하며 옆 사람에게 물어보려고 귓속말할 때 스치던 코트 소리 등등, 그 장소에 함께 있었던 모든 의도되지 않았던 소리들이 음악이 되었다.

 

익숙한 악기의 소리에서 벗어난, 소리와 소음에 대한 연구가, 역으로 ‘침묵’에 대한 물음으로 바뀌고, 오랫동안 고민했던 침묵, 근본적인 소리에 관한 의문이 선불교를 만나게 되어, ‘완전한 침묵은 없다’는 아주 중요한 깨달음까지 도달하게 된다. 관념을 뛰어넘어 진정한 비어 있음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존 케이지의 사유는 부처님의 깨달음에 비유해 볼 수 있다. 〈4분 33초〉를 통한 존 케이지의 음악적인 깨달음을 성도재일에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극단적인 것을 떠나 해탈에 이르고 깨달음을 성취하는 가장 적절하고 훌륭한, 진정한 부처님의 탄생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깨달음으로 진정한 자유를 얻은 붓다의 열반은 ‘우리에게 오신 진정한 부처님의 탄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궁극적인 완성의 의미를 가진 ‘열반’ 역시 또 하나의 탄생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부처님의 ‘열반’ 여정을 생각하며 헝가리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프란츠 리스트의 작품을 감상해 보기를 권한다. 젊은 시절 누구보다도 화려한 연주자로서 슈퍼스타의 삶을 살았던 리스트는 노년에 이르러서는 제자들을 양성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정기적인 레슨과 함께 마스터 클래스를 통하여 예술적인 표현과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건강에 이상 신호가 나타났던 시기에도 끝없이 연주 여행과 작곡, 지휘를 강행했던 리스트의 노년 작품들은 청년기의 작품에 비해 어둡거나 비장한 느낌을 많이 담고 있다. 〈잠 못 이루는 밤, 질문과 대답(Schlaflos, Fra-ge und Antwort)〉은 리스트의 후기 피아노 작품 중 독특한 분위기의 곡이다. 첫 부분은 잠들지 못하는 밤의 형언할 수 없는 감정과 더불어 무언가에 대한 의문을 그대로 표현한 듯 거칠고 도전적이다. 그러나 짧은 숨표 뒤에 나오는 유니즌(unison, 몇 개의 악기가 같은 음 을 동시에 연주하는 것) 앞부분의 선율을 다소 메마른 느낌으로 고요하게 보여주며, 간결하지만 또렷한 답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이 서사적인 곡은 ‘질문과 답’이라는 일반적인 구조를 선명하게 보여주며, 노년의 리스트의 명상적이고도 철학적인 모습을 나타내 주고 있다.

음악의 감동이 반드시 장대하거나 큰 음향, 또는 장식적인 화려함에서 오지 않는다는 리스트의 철학이 담긴 작품들은 또 다른 진지함을 가져다준다. 노년의 리스트는 음악가로서의 목표를 ‘한계가 없는 미래 세계를 향해 창을 던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중생을 향한 자비심과 연민으로 교화를 결심하고 약해진 몸을 이끌고 뜨거운 뙤약볕 아래 마지막 여정을 떠나신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 “저마다 자신을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하라.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법의 등불을 밝혀 수행하라(自燈明法燈明)”를 떠올려본다.

 

4. 클래식을 만난 불교

철학, 종교, 사상, 예술의 공통점은 인간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가 다루는 인간의 삶과 죽음의 직접적인 모습을 예술은 간접적으로 다룬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음악 작품이 담고 있는 작곡가의 예술적 통찰력은 듣는 이의 상상과 경험에 의해 이해되므로 철학과 사상 그리고 종교를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의 창을 통해 만나는 불교. 이 글을 통해 인류에게 남겨진 보석과도 같은 두 진리의 세계를 함께 만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김준희 pianistjk@naver.com
예원학교, 서울예술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박사과정과 샌프란시스코 콘서바토리 전문연주자 과정을 마쳤다. 주요 논문으로 〈슈베르트의 소나타 D. 960, 삶과 죽음을 통한 해석〉과 〈윤이상의 오라토리오 ‘연꽃 속의 진주여!’에 관한 연구〉 등이 있고 저서로 《클래식을 만난 붓다》가 있다. 현재 국립인천대, 경희대, 고려대 등에서 강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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