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애너 메이시의 재연결작업과 생명으로 돌아가기

우리 앞에 적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 적이 우리다

한번 상상해보자. 외계인이 지구를 습격하여 인류에게 전염병을 뿌리고 달아났다. 그래서 인간은 빠르게 전염되는 감염병을 막기 위해 모든 나라마다 각기 처한 시급한 문제를 뒤로 제쳐두고 이 문제를 우선적으로 대응하게 되었다. 지금의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이다. 여기서 좀 더 상상을 해보자. 이번에는 외계인이 전염병이 아니라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뿌리고 달아났다. 그로 인해 지구가 더워져 앞으로 10년 안에 대응하지 않으면 인류가 전멸할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당연히 모든 나라가 열 일 제쳐두고 우선적으로 긴급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지금 기후위기는 바로 이런 상황이다. 그런데 이산화탄소를 뿌리고 달아난 적은 바로 우리이다.

실제 인류는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2030년까지 10년밖에 남지 않았다. 이 위기의 대처에는 ‘가속 행동’과 ‘감속 행동’이 필요하다고 한다. 가속 행동은 긴급하게 탄소 중립을 만드는 정책을 국가별로 시급히 시행하자는 것이다. 한편으로 감속 행동은 위기를 초래한 근본 원인인 근대적 거대 발전과 성장 패러다임의 속도를 늦추고 문명적인 전환을 하는 것이다. 시급한 증상도 대처해야 하지만 근본치료, 원인치료도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스템이론가, 페미니스트, 불교생태운동가 조애너 메이시

조애너 메이시(Joanna Macy)는 시스템이론가이며 불교학자이자, 여성운동가이며 생태운동가이다. 그녀가 제안하는 재연결작업(WTR: Work That Reconnects)이 바로 기후위기 시대 원인치료를 위한 실천적인 전략지침이다. 그녀는 오늘날 위기는 본래 연결되어 있는 사회와 자연을 나누고 구분해온 과보가 원인이다.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어서, 근대사회의 끊어지고 갈라진 사회와 의식을 다시 연결하는 재연결작업을 통해 극복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2004년 이중표 교수가 번역한 책 《불교와 일반 시스템이론》으로 소개되었다. 상호인과율의 불교의 연기설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일반 시스템이론을 기반으로 그녀는 오래전부터 불교학자이면서 심층생태주의자이자 페미니스트로서 지금까지도 수많은 생명환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거대한 전환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세계적 학자와 활동가들이 인류문명의 방향에 대해 역설한 책 《두려움 없는 미래》(공저)에서 그녀는 대전환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호스피스’의 역할과 ‘산파’의 역할임을 강조했다. 사라져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그 성과가 발전적으로 전수되도록 호스피스 역할을 해야 하고, 새로운 대안적 문명과 가치들이 다양하게 태어날 수 있도록 산파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산처럼 생각하라》는 책에서는 자연에 대한 심층생태적 각성을 중심으로 인간이 지구상의 중심이 아님을 깨닫고, 동물과 식물 등 유정, 무정의 생명들과 과거 선조들의 전통과 미래세대를 연결하여 그들의 고통과 입장을 이해하고 체득하는 ‘온생명회의(Council of All Beings)’ 프로그램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어 2016년에는 기후정책학자인 양춘승 박사의 소개로 《액티브 호프(Active Hope)》가 출판되었다. 이 책은 불교사상을 기반으로 한 문명전환을 위한 사회운동 프로그램인 ‘재연결작업(WTR : Work That Reconnects)’을 이론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후 2020년에 출판된 《생명으로 돌아가기(Coming Back to Life)》는 앞의 《산처럼 생각하라》와 《액티브 호프》의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포함하면서 재연결작업을 구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게 만든 전략서이자 실행 지침서이다. 놀랍게도 그녀는 90세가 넘은 지금도 여전히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위기가 중심인가, 전환이 중심인가

그녀는 오늘날 위기의 문제를 받아들이는 3가지 관점과 태도가 있다고 소개한다. 첫 번째 관점은 ‘별 문제 아냐. 그냥 살았던 대로 살자(Business as Usual)’는 입장이다. 이제껏 그랬듯이 정치인이나 과학자들이 정책으로 과학기술로 다 해결할 것으로 생각하고, 걱정은 되지만 잘 해결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두 번째는 현재의 위기상황이 대단히 심각하다고 생각하며 ‘대파국, 대균열의 시대(The Great Unraveling)’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이 위기 상황은 전 지구적으로 너무도 규모가 크고 심각하여 이에 대응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한다. 그런데 위기에 대응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안이 고조되고, 정치적 공방이 높아지며 사회적 공포가 조장된다. 심지어 거대한 파국 앞에 무력감을 느끼고 우울증과 자포자기의 심정을 갖게 하기도 한다.

세 번째의 관점은 현재의 위기를 대전환(The Great Turning)의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위기는 심각하지만 그 거대한 심각성 때문에 오히려 더 큰 희망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입장은 ‘위기’를 인식하지만 생명사회로의 ‘대전환’ 입장에서 두 번째를 바라보는 것이다.

조애너는 세 번째의 초점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위기와 불안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전환의 큰 설렘과 희망을 말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하는 운동은 어떠한 혁명보다 크나큰 “역사상 최대의 사회운동”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전환의 관점에서 현재를 오히려 “축복받은 불안(Blessed Unrest)”이라고 한다. 두렵지만 잘못된 것을 바꾸어 정상적인 바른 삶으로 회복하는 중요한 전환의 기회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제껏 수많은 환경운동가나 정치인들은 두 번째인 ‘위기성’에 초점을 두었다. 그런데 만일 세 번째의 대안과 희망을 말하지 않고 두 번째만 강조되면 그야말로 공포마케팅이 된다. 위기의 강조가 절박하고 긴급할수록 대응과 실천을 촉발하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무력감을 느끼게 하고 심지어 강한 독재자가 나타나 이 엄청난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주길 기대하는 ‘에코파시즘’의 출현을 조장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개벽이라고 표현되는 거대한 전환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현재의 위기는, 이제껏 왜곡된 자연과 관계를 정상적이고 건강한 관계로 ‘올바로 펴는’ 기회, 전환의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이 대전환은 이제까지의 성장주의 반생명적 산업문명의 지속불가능한 패러다임을 ‘폐절’하고 전환하여 생명친화적인 문명으로의 전환을 꾀하는 것이다. 이 운동은 생태적 전환, 생명평화로 통칭되는 문명전환 운동이라고 할 수 있으며 탈근대 운동, 지속가능한 발전, 녹색순환사회 운동, 개벽 운동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거대한 전환을 위한 3가지 전술

그녀는 이 거대한 문명적 전환 운동을 위해 3가지 전술을 소개한다. 첫째로는, 지연전술 행동이다. 사회나 국가가 더 이상 부패하고 나빠지지 않도록 감시하고 저항하면서 약자와 피해자를 보살피고 생명이 파괴되거나 죽지 않도록, 억압과 착취와 전쟁과 불평등을 막고 방어하는 행동 전술이다.

두 번째는, 일상의 토대를 바꾸는 행동, 생명시스템이 유지되고 살 수 있는 바른 사회의 가치를 실현하는 행동 전술이다. 왜곡되고 잘못된 것을 바로 세워 평등과 호혜의 원칙과 정의를 바로 세우고, 균형을 만드는 생명사회 운동이다. 자연과 생명을 보호하고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며, 인권을 옹호하는 활동이다. 또한 지역통화, 기본소득 운동과 협동조합 등 대안적 사회운동을 전개하며 공동체적 사회관계를 중심으로 생명 중심의 사회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인식과 가치관 바꾸기이다. 자연과 인간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대안적 패러다임으로 생각과 철학, 사회적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다. 지구의 권리, 미래세대의 권리, 자연의 권리를 위한 의식과 정신적 수행과 사회적 변화를 위한 동시적인 실천, 자연과 교감하는 의식과 문화예술 등 모든 변혁의 궁극은 인식과 가치관의 전환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피부 속에 갇힌 ‘개별적 자아’의 관념에서 당신이 있어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의 ‘관계적 자아’로, 자연의 은혜로 인해 내가 존재한다는 ‘생태적 자아’로, 나아가 타인과 뭇 생명의 이익이 곧 나의 이익이라는 ‘보살적 자아’로 확대되는 것이다.

이 3가지 활동은 각자 선 자리에 따라 집중하는 의제와 중심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목표를 향한 다른 방법이기 때문에 서로를 격려하고 강화해주며 동지로서 함께 돕고 협력한다.

 

산업성장 사회에서 생명지속 사회로 희망 만들기

앞으로 10년간, 즉 2030년까지 기후상승 1.5℃를 막지 못하면 기후위기는 회복 불가능한 파국으로 접어들 것이라고 한다. 이제 국제사회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긴급한 대책을 마련하고자 부심하고 있다. 그동안 자연개발과 자원파괴를 성장과 발전으로 동일시했던 어리석은 과보를 현재 인류가 받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위기는 두 가지의 과제를 던지고 있다. 하나는 실제 닥친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대응하는 노력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위기를 초래한 원인인 인류는 어리석음과 잘못을 깨닫고 삶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인류는 부처님 말씀처럼 삼계화택(三界火宅)의 상황이다. 불행히도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에 사는 우리는 불난 집에서 뛰쳐나올 방법이 없다. 꼼짝없이 나가지 못하고 집안에서 불을 끄는 방법과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지금 불이 났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고, 우리가 그동안 불을 지르면서 행복을 구가했던 잘못된 삶을 폐절하고, 전환의 삶으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

오늘날의 위기는 바로 소비주의라는 탐욕[貪]이 제도화된 것이며, 군사력을 앞세운 전쟁과 갈등은 바로 분노[瞋]가 제도화된 것이고, 자연의 자원은 분명히 한정되어 있음에도 마치 무한정하다는 착각과 어리석음[癡]에 기반한 성장주의가 초래한 것이다. 결국 희망 만들기(Active Hope)는 ‘산업성장 사회를 생명지속 사회로 전환’하는 것으로, 그 희망을 만들기 위해 인류의 수많은 지혜의 자산이 동원되어야 한다. 조애너 메이시는 불교의 가르침과 수행에서 희망의 근거와 해법, 방법을 찾아내었고, 많은 영역에서 그것을 현대적으로 변용하여 전략과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재연결작업(WTR)이다. 이 제안은 파국을 막는 실천 행위만이 아니라 대안적 삶을 찾고 실천하는 총체적인 변화를 위한 실천 디자인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상이론적 근거를 제공할 뿐 아니라 대안적 활동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며, 변화를 위한 실천수행의 구체적인 방법과 체험을 위한 수행 실습과 실험, 게임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는 아주 흥미로운 실천 지침이다.

 

재연결작업(WTR: Work That Reconnects)

이제 재연결작업을 설명하고자 한다. 현재 자신이 겪는 모든 고통은 모두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끼리 복잡하게 인연을 맺고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그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 고(苦)라는 것이다. 개인적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고통은 결국 사회적이라고 본다. 따라서 그 고통에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이러한 두려움은 인간의 욕심[貪欲]과 분노[瞋恚]와 어리석음[愚癡]에서 비롯되며, 그래서 재연결작업의 4가지 차원이 계속 돌아가는 나선형 순환임을 강조한다. 이 책에서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동시대 수많은 사람과 자연과 연관되어 있다는 ‘공간적 연기’의 깨달음과 수십억 년 동안 인류 역사, 우주 역사에 걸쳐 미래세대까지 이어지는 ‘시간적 연기’에 대한 실질적이고 다양한 깨달음이다.

그녀의 재연결작업은 4가지 단계의 나선형 순환으로 진행한다. 곧 ‘고마움에서 시작하기’ ‘현재 우리의 고통을 존중하기’ ‘새로운 눈으로 보기’ ‘실행하며 나아가기’가 그것이다.2) 그리고 그것은 다시 고마움으로 시작하면서 또다른 순환으로 진화하는 과정이 된다는 것이다.

이 재연결작업 활동의 처음은 ‘고마움에서 시작하기’이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새로운 대전환의 시작은 바로 고마움과 감사할 줄 아는 힘이 동력이라고 말한다. 이웃과 동료, 다른 사람들에게 고마워하고, 자연에 감사하고, 그 많은 은혜를 기뻐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분노와 적개심, 증오는 ‘파괴의 동력’이 될 수 있어서 ‘창조의 동력’이 되기 어렵고, 과거 낡은 사회의 운동 동력은 될지 몰라도 새로운 대전환 사회의 동력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과 자연의 은혜에 고마움을 섬세하게 느끼고 감사할수록 그 감사의 감각은 발달하여 행복한 마음과 즐거움이 넘치며, 바로 그것이 활동을 오래 해야 할 동력이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세상에 대한 고통을 존중하기’이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슬픔, 비탄, 분노 등의 고통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통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여 그 감정을 인정하고, 그 고통을 표현하고, 널리 공유하며 또한 그 고통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세상과 함께 괴로워하는 감각을 발견하고 그 고통 안에 우리가 서로 속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자신에게 우려되는 사건, 현 사회와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 예를 들어 우리 아이들을 남겨두고 떠날 때 가장 걱정되는 일들을 살펴보며 그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대면하라고 한다. 이를 위해 관계 속의 고통을 체험해보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제시되어 있다. ‘고통을 존중하는 열린 문장’ ‘서로 마주하기’, 잘못된 세계관에서 고통을 느끼는 ‘시애틀 추장에게 보고하기’, 멸종위기종의 고통을 애도하는 ‘사라져가는 벗들에게’,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을 애도하는 ‘애도의 돌무덤’, 두려움, 슬픔, 분노, 결핍 등을 구체적으로 표출하는 ‘진실 만다라’ ‘절망의식’, 슬픔을 해소하는 ‘눈물 그릇’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와 자연, 생명과 미래세대의 고통을 자신이 직접 느끼며 공감해보도록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보아야 열리는 대안사회

세 번째는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기’이다. 이는 나선형 순환의 세 번째 단계로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전환사회의 변화를 구상하고 계획하는 것이다. 세계는 상호의존하고 자기조절하는 체계임을 분명히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대승불교의 파리나마나(parinamana, 回向)와 같이 환희에 찬 마음으로 만물의 행복에 헌신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드라망의 구슬처럼 전체론적 사고에 기반하여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들과 세계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체험하는 ‘시스템 게임’, 가렛 하딘의 ‘공유지의 비극’을 체험하는 ‘공유재의 수수께끼 게임’ ‘변화를 일으켰던 힘의 체험’, 자신의 관점과 반대하는 사람의 관점, 사람이 아닌 생명 존재의 관점, 미래세대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도록 하는 ‘넓어지는 원’, 인간의 손과 발, 머리가 과거 수많은 진화의 결과이며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임을 체득하는 ‘고이 받들기’, 무아를 체득하며 존재를 인식하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자아를 버리는 춤’ 등을 통해 이를 깨닫는다.

이 단계에서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은 ‘보살의 선택’ 게임이다. 보살은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들 수 있지만,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다시 중생의 세계로 돌아가고자 서원을 세운 사람이다. 그래서 참여자에게 사고실험을 하도록 한다. 먼저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런 보살이 되기를 서원하는지를 묻고 보살들이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기 직전 그 문 앞에 대기하고 있는 상황을 연출한다. 새로운 환생을 통해 위대한 변화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태어난 해, 태어난 곳, 피부색, 사회경제적 여건, 종교, 성별과 성적 취향, 부모와 형제자매, 장애 여부, 소질과 재능을 스스로 선택하게 한다. 그 뒤 보살로서 특정 임무를 갖고 지금 자신이 태어난 것임을 깨닫게 한다. 부모와 성격, 장애까지도 스스로 선택했고 현재의 조건은 우연이 아니라 보살의 실천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삶임을 체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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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재연결작업(WTR)의 나선형 순환을 표현한 그림
1) 뿌리는 ‘고마움에서 시작하기’ 2) 줄기는 ‘현재 고통을 존중하기’3) 열매는 ‘새로운 눈으로 보기’ 4) 퍼지는 홀씨는 ‘실행하며 나아가기’를 상징화한 것

 

온생명회의, 모든 생명의 고통에 동참한다.

재연결작업에서 아주 흥미로운 프로그램은 바로 ‘온생명회의(Council of All Things)’이다. 참가자들이 명상을 통해 사방의 생명들을 불러내고 그 생명으로부터 각자 선택을 받는 의식을 한다. 그래서 자신이 늑대, 돼지, 기러기, 벌레, 산, 강 등으로 선택된다(한다). 가면을 쓰고 그들 자신이 되어 그들이 겪었던 아픔을 대신 느껴보고 그 고통을 대변한다. 이어 인간을 불러들여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행했던 무자비한 착취와 폭력을 고발한다. 그러나 파괴한 것도 인간이지만 회복시키는 것도 인간이기에 산이나 강, 동물들은 자신이 지닌 지혜를 인간에게 전하면서, 이들 생명의 고통을 벗어나는 실천과 행동을 하도록 당부하고 지원한다.

이렇게 생명과 생명을 연결하는 것뿐 아니라 사고실험을 통해 과거 세대와 미래세대를 연결짓는 체험으로 ‘딥타임(Deep Time) 작업’을 한다.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가 얻은 능력을 진화 과정에서 조상으로부터 받은 선물로 인식한다. 그래서 그들로부터 받은 능력을 우리는 미래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나가는 무기로 활용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시간관념은 장기적인 것보다 단기적인 안목에 우선하는 풍조이다. 그러다 보니 긴 안목으로 재앙을 보지 못하고, 좁은 시야에 급급하여 결국 현재의 문제를 미래로 미루고 떠넘겨버린다. 그래서 이러한 체험을 통해 시간적 연관성을 확장해서 체험해 보도록 요구한다. 이때 절대 속도에 연연해서는 안 되고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또한 모든 행동은 결과에 매이지 말고 긴 호흡으로 실행하라고 한다. 그래서 인디언의 전통처럼 우리의 결정과 행동은 앞으로 7세대(200여 년) 이후 관점에서 옳은 일인지 돌아보며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딥타임이라는 시간적 연결의 체험은 자신의 나이가 30세나 60세가 아니라 지구와 함께 시작된 46억 살임을 깨닫게 한다. 또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가는 힘은 위계적이고 물리적인 ‘지배적 파워’가 아니라 집단적 의식이 모여 옆으로 협동하며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집단지성의 ‘동반형 파워’임을 인식하게 된다.

 

앞으로 나아가기 : 과거 선조들과 유 · 무정 생명들의 가피

네 번째의 나선형 순환은 바로 ‘앞으로 나아가기’이다. 우리가 바라는 미래상을 그려보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상상한 뒤, 그 미래의 시점에서 거꾸로 거슬러 현재를 살펴보면 가능한 해결책을 찾는 데 더욱 창의적일 것이라고 제안한다. 그래서 여성의 참정권, 남아공과 미국의 흑인 대통령 선출 등의 사례에서 보듯, 불신의 벽에 맞서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가능했던 역사적 사건을 상기하며 현재 활동의 힘을 얻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 앞을 가로막는 훼방꾼과 장애물을 걷어내는 돌파의 힘과 창의적인 활동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환 운동’은 주위에 지지세력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지지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조들과 유정 무정의 동식물, 자연의 지지도 중요함을 강조하는 점이 특별하다. 불교의 가피(加被)는 위기 시대에 소중한 깨우침이며 조상을 모시는 전통과 자연물을 숭배하고 받드는 동양의 문화의례는 생명의 시대에 중요한 인류의 자산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활력을 유지하고자’ 열정을 소중한 재생자원으로 인식하고, 마음속 깊이 즐거움을 느끼고 좋은 삶, 성공적인 삶을 새롭게 규정하며 음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대전환을 위해서는 앞서 언급했듯이 이기심과 아상에 근거하여 피부 속에 갇힌 ‘고립적 자아’에서 확장하여 ‘관계적 자아’로, 나아가 ‘생태적 자아’로 확장되어야 한다. 궁극에는 모든 자연과 과거세, 현세, 미래세 3세 중생들의 고통에 동참하며 그들의 고통을 벗어나게 하려는 원력의 ‘보살적 자아’로 확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보리심을 갖고 희망을 놓치지 않는 실천을 통하여 문명의 대전환은 가능하며 그 무기는 ‘지혜’와 ‘자비’라고 말한다.

조애너 메이시의 모든 글과 주장에는 불교적 사고와 사상이 깊게 토대가 되어 있다. 실제로 그녀는 티베트불교를 공부하고, 개인의 깨달음에서 시작하여 가족, 마을, 지역, 국가의 깨달음으로 실천을 확장하는 불교사상을 기반으로 한 세계적인 마을개발 운동, 스리랑카의 A.T. 아리야라트네 박사가 주도한 사르보다야 슈라마다나(Sarvodaya Shramadana) 운동에 깊은 영감을 받았다. 또한 태국의 불교사회운동가인 슐락 시바락샤와 깊은 사상적, 실천적 교류를 나눠왔다. 더욱이 《불교와 일반시스템이론》을 통해, 자연계가 음과 양의 피드백을 통한 자기조절 기제를 갖고 있으며, 원인과 결과가 상호영향을 주는 상호인과율에 대한 시스템이론을 소개한다. 그녀는 단순한 사상가나 이론가를 넘어서 노구에도 불구하고 반핵운동과 평화운동, 환경운동 등에 참여해온 실천가이다. 그래서 그녀의 불교는 단순히 훈고학적 해석이나 강단의 사상이 아니라 현장의 사상이며,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해결해주는 대안이다. 또한 인류의 위기와 미래세대의 고통을 희망으로 전환해주는 가르침으로서 불교의 수행을 실천하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조애너 메이시가 벌여온 활동은 그동안 불교사상이 사회변화와 사회운동에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실천의 구체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며, 그녀의 저서는 불교사상을 기반으로 한 사회변화와 문명적인 전환, 나아가 인류의 전환적 희망을 모색하는 지침서로 이제껏 간행된 책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녹색불교로의 전환

조애너의 제안에 따라 위기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3가지가 있다. 하나는, BAU(살던 대로 살자) 입장, 두 번째로는 현재 상황은 위기와 파국이라는 인식, 세 번째는 이것이 대전환의 메시지임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모색하는 태도이다. 물론 첫 번째는 올바른 태도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두 번째 시각만에 한정되어 사태와 상황을 바라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올바른 것은 세 번째의 시각(대안과 희망의 관점)에서 두 번째 상황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러한 관점을 불교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첫 번째의 입장은 불교가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는 태도다. ‘항상 그래 왔듯이 뒤죽박죽이지만 어찌 되겠지’ 하는 태도이다. 두 번째는 오늘의 불교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났고 기득권세력의 독점과 부패, 타락을 비통하고 절박하게 바라보는 관점이다. 세 번째는 대전환의 관점, 희망과 대안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적폐 청산으로 대표되는 저항 주체의 활동이라면, 세 번째는 창조와 대안 주체로서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시각은 중요한 관점이지만 이 사고에 매몰된다면 곤란하다. 비통과 낙담의 불교 현실만 보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활동은 특정 세력의 타도와 파괴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미래의 대안과 창조 주체로서는 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 저항과 감시, 분노와 적개심만으로는 새로운 창조를 할 수 없다. 세 번째는 파괴 과정에서 건설과 대안의 씨앗을 볼 수 있듯, 이 상황이 대전환을 도모할 중대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조애너처럼 본다면 이 대전환의 행동은 세 가지 활동이 있다. 첫 번째 지연전술 행동은 더 나빠지지 않도록 저항하고 감시하는 활동이다. 약한 사람들과 생명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입장을 옹호하고 변호하는 활동이다. 두 번째 행동은 사회의 희망과 대안을 만드는 운동, 불교의 희망과 대안을 창조하는 운동이다. 세 번째 행동은 인식과 가치관을 바꾸는 운동이다. 무엇이 행복이고 삶의 목표인지, 삶의 방식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과 변화이다.

조애너 메이시의 이 세 가지 활동 제안에서 주목되는 것은 우선 저항과 대안 운동이라는 사회활동이 궁극에는 세 번째인 개인의 깨달음과 인식의 변화로 귀결된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다시 말해 외부세계의 변화는 곧 내면의 변화로 완결된다는 인식이다. 두 번째로는 세 가지 행동이 각각 분담되어 있지만, ‘대전환’이라는 통합적인 관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저항과 감시에 매몰되어서는 안 되며 그것이 대전환의 일부임을 자각하고, 대안 사회운동 또한 저항과 감시 운동을 소중하게 생각하되 궁극에는 인식과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을 소중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녹색불교운동은 생명 살림으로의 거대한 전환 운동

운동 측면에서 위의 세 가지를 풀어보자면 첫 번째는 지연전술 ‘더 나빠지지 않도록 감시하고 저항하며, 지연하는 활동’이다. 무분별하게 4대강을 개발하고, 설악산과 지리산에 케이블카나 산악열차를 건설, 특정한 집단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공항건설 등을 반대하고, 30년간의 전력공급을 위해 10만 년 이상 미래세대에게 방사능의 고통을 주는 원자력발전을 중단하게 하며, 화석연료 의존을 줄이고 태양광이나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산림벌채를 반대하고 여성의 권리와 약탈적인 금융자본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조직하고 강연회나 교육 활동을 전개하며 실태를 알리는 활동 등이다. 불교적으로 보면 불교 내 비불교적인 관행과 문화, 관행과 제도를 감시하고 저항하고 비판하는 활동이다. 전통적인 NGO 활동으로서 불교 내 약자를 대변하고 감시하는 운동이 지속되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토대를 바꾸는 생명지속 사회의 대안 행동’이다. 평등과 호혜를 기반으로 정의를 바로 세우고, 균형을 만드는 생명 사회운동이다. 공유재를 보호하고 지역사회의 권리, 자연의 권리, 미래세대의 권리를 공인하고, 사전예방원칙을 수립하며, GNP를 해체하여 대안적인 지표로 바꾸는 운동 등이다. 생태공동체운동, 공유사회운동, 농적 문화를 근간으로 마을공동체운동, 쓰레기 제로 운동, 지역통화, 기본소득 운동, 직접민주주의 등 생명 중심의 사회문화를 만들어가는 모든 대안적 활동을 말한다. 불교적으로는 외부자로서 비판이 아니라 내부자, 책임자로서 대안을 만들고 희망을 만드는 활동이다. 4부대중의 평등을 주장하되 스스로 동일한 주체가 되는 운동, 비구만이 아니라 비구니나 우바새 우바이가 공히 수행과 실천을 맡아 새로운 승가의 모델과 수행을 만들어가는 운동, 불교가 지역사회와 환경위기의 해결을 위해 다양한 실천을 모색하며 활동해나가는 것이다. ‘네가 하는 불교가 아니라 내가 하는 불교’이다.

세 번째는 ‘인식과 가치관 바꾸기 운동’이다. 정신적인 깨달음, 인식과 가치관의 전환 운동이다. 자신이 세상과 따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며 서로 연결되어 있고, 시간적으로 조상들과 미래세대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행동하는 삶이다. 소유를 통한 행복이나 물질과 권력의 상승을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경쟁이라는 낡은 개념을 뛰어넘어 이웃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며 자연의 풍요가 자신의 풍요임을 깨닫고 협동하고 협력하며 배려하고 섬기는 것이다. 나아가 살아 숨 쉬는 지구와 생명의 상호일체감을 느끼는 정신 활동이다.

녹색불교운동은 사회변화(사회운동)와 자기 변화(수행)를 동시에 실천하며, 자연과 생물의 권리, 미래세대권리 등,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우리가 지녀야 할 가치와 태도를 깨닫는 것이다. 궁극에는 연결된 사회 속에서 자연과 타인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임을 깨닫고 그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각성 운동이다. 이러한 녹색불교운동의 근본은 생명살림 운동이지만, 방편적으로 환경운동으로 가장 많이 표현될 것이다.

 

녹색불교의 동력: ‘감사’와 ‘은혜’의 깨우침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불살생은 불교의 첫 번째 가르침이다. 내 옆의 이웃들이 잘 살아야 내가 잘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뭇 생명이 존재해야 인간이 살아갈 수 있으며 바람과 구름, 비와 풀벌레들의 ‘천지자연의 은혜’와 이들 생명 ‘덕분에’ 내가 살고 있음을 ‘감사’하고 ‘고마움’을 깨닫는 마음이 녹색불교의 동력이다.

한때 우리에게는 지사적 비장함이 운동의 동력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남다른 결단의 비장함은 일점을 돌파하는 동력은 될지 모르지만 오랜 시간 동안을 스스로 지속할 동력이 되기 어렵다. 오래가려면 즐겁고 기쁜 마음,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어야 한다. 자타일체를 증득한 깨달음의 자리에서는 ‘00를 위하여’라는 생각은 사라져야 한다. ‘위한다는 생각’은 스스로 상(相)이 되어 보상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연결되고 긴 시간 자신과 남을 괴롭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지사적 결단은 중요하고 존경받아야 한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이 따라 할 수 있는 삶과 실천이 더욱 필요하다. 남을 위하는 일이 곧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닫고 가난한 삶과 조금 불편한 삶이라고 할지라도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활동할 일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이 따라서 하게 될 테니 말이다.

또한 ‘결과와 목표’를 중심으로 한 실천이 아니라 ‘과정과 관계’를 중심으로 한 활동이 되어야 한다. 짧은 결과와 목표에 집착하게 될 경우, 스스로 희망과 보람이 있지만 한편 좌절과 낙담도 발생한다. 세대를 넘어서는 긴 시간 과정을 소중히 여기고 관계를 통해 만들어진 ‘동반형 파워’를 만들어 한 사람의 사소한 행동과 실천이라도 그것이 작은 변화의 원인 행동으로 축적되어 사회와 역사에 작은 파장을 만들어낸다는 ‘우공이산 전략’,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고 …… 여러 겁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는 〈보왕삼매론〉의 가르침으로 행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조애너의 문명 전환의 실천 제안을 통해 불편함과 어려움을 즐기되 고마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놓치지 않는 것, 그리고 긴 과정과 관계의 파워를 소중히 만들어가는 것이 문명 차원의 전환이라는 장구한 시간을 견디는 것의 중요함을 새삼 깨닫게 한다. 우리 보살들의 수행은 좌선과 명상만이 아니라 이 행동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퇴불심을 내려놓는 수행을 마음공부로 삼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

 

유정길 ecogil21@naver.com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 녹색불교연구소 소장. 주요 저서로 《생태사회와 녹색불교》 등과 공저로 《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 《녹색당과 녹색정치》 《생태생명의 위기와 대안적 서알》 등이 있다. 현재 한살림 연수위원, 모심과살림연구소 감사, 환경운동연합 정책위원, 정토회 에코붓다 이사, 귀농정책연구소 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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