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6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우리 대통령이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자 김여정 북한노동당 부부장이 ‘실로 뻔뻔스러움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라고 하면서 ‘미국산 앵무새’라고 했다. 북한이 이렇게 거친 말로 우리를 비난하는 일은 수없이 있어 왔지만, 들을수록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다.

부처님께서는 나를 비난하더라도 그것을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라고 하셨지만 말에는 감정을 조정하고 행위를 유도하는 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인격적 살인을 하는 행위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불교의 오계에도 불망언(不妄言)이 있어 말로 죄를 지으면 죽어서 발설지옥에 떨어진다고 가르치고 있다.

언젠가 방송에서 본 이야기다.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손오공의 후예라며 귀히 여기는 황금원숭이가 두 번째 새끼를 낳았는데, 천방지축인 첫째가 마구 날뛰며 몹시 괴롭혔다. 사육사가 생각 끝에 중국의 원숭이 사육사에게 연락했더니, 그곳 황금원숭이들이 즐겁게 떠들며 화목하게 지내는 소리를 녹음해서 보내왔다. 둘째를 괴롭히는 첫째에게 그 소리를 반복해서 들려주었더니, 천방지축이던 행동이 바뀌더라는 것이었다. 미물에게도 언어(소리)가 그들의 감정을 조정하여 행위를 유도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다.

지금 우리는 70년이 넘게 북한과 직접적인 무력행사는 아니더라도 심리전이 계속되고 있다. 그중에서 말로 하는 북한의 대남비방은 철저히 계획된 심리전이다. 북한은 ‘언어는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의 힘 있는 무기’라고 하여 교육이나 방송에서 이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방송언어에서는 매우 격정적이고 고저장단이 인위적인 어조가 1980년대부터 크게 강조되어 ‘쇳소리가 나게 쟁쟁 울리는 소리’로 전투성, 선동성, 호소성을 보장하도록 하였다.

대남방송에서는 낱말의 선택부터가 대상에 따라 절대 존칭과 극단의 비속어를 쓰게 함으로써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언어의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일테면 우리를 향해서는 ‘인민의 피를 짜는 반동악질 부르조아 집단의 악랄한 짓을’ ‘철천지 원쑤 미제국주의 앞잡이놈의 대갈통을 까부시자’ ‘인간 오작품의 잿빛 승량이 눈깔’과 같은 최하의 거친 비속어를 쓰면서, 자기들의 지도자에 대해서는 ‘혁명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영생불멸의 혁명적 기치를 높이 든 민족의 태양’ ‘천추만대에 길이 빛날 혁명의 령도자’ ‘해와 달이 다하도록 위대한 수령님을 높이 모시자’와 같이 최상의 존칭과 수식어를 동원하여 표현한다.

이런 언어는 적대시하는 대상을 향해서는 극도의 증오와 투쟁심을 길러주고, 자기네 지도자에게는 절대복종과 존경심을 갖도록 하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가장 순수하고 고운 말을 가르쳐야 할 인민학교 교과서에서도 난폭한 말을 의도적으로 쓰고 있다. 주체 91, 92년도에 나온 북한 인민학교 교과서를 살펴보니, “할아버지는 지주놈의 상판을 힘껏 때렸습니다”(2-34), “선교사놈은 눈깔을 사납게 부릅뜨고”(3-18), “산 속을 개싸돌 듯 돌아다니던 놈”(4-17), “놈들이 비행기와 대포로 지랄을 부릴 때”(4-23), “놈들의 골통을 박살냈습니다”(5-26)와 같은 말들을 마구 쓰고 있다(괄호 속의 숫자는 학년과 쪽수이다).

방송언어나 인민학교 교과서 문장이 이러니 어린이들이 쓰거나 읽는 글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의 삽살개
하루 종일 졸졸 나(북)만 따른다지만
이상도 하지
제 죽을 줄 모르고
승냥이(미국)만 따르네’

‘꽈릉 꽈릉‘ 불벼락에 승냥이놈 즉살되면
청와대의 삽살개
불고기가 될 걸 뭐.

— 〈미국산 삽살개〉

(북한 성인동시집 《축포성》)

 

보름달 둥실 뜬
달 밝은 이 밤
백두 밀영 고향집
뜨락에 서니

조용조용 귓전에
들려 오지오
어머님의 정 깊은
자장가 소리

귀틀집 창가에
별들이 앉은 밤
어린 아들을
잠재우시며

자장자장 부르시던
어머님의 노래
소백수 맑은 물은
속삭여주지요

하늘보다 땅보다
큰 염원 담아
어머님은 조용히
자장가 부르셨지요.

— 〈자장가 소리〉

(북한 청진소학교 3학년 천세진)

 

이렇게 함으로써 언어정책의 중요 목표로 하는 저들의 말이 사상무장을 공고히 할 뿐만 아니라 혁명의 무기로서 선동성, 공격성 내지는 전투성을 갖도록 하는 데 큰 몫을 다 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 치러진 서울과 부산의 시장 보궐선거를 선거운동에서 출마자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세력들의 유세를 들으면서 우리도 말이 저들과 똑같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불망언(不妄言)의 계율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김종상
동시 시인 / jongsang-g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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