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으로 나직나직한 산들이 키재기하고 논과 밭들이 다정하게 얼굴 부비는 농촌에서 나는 태어났다. 우리 마을에서 4㎞ 정도 떨어진 곳에 제법 높은 연화산이 있는데, 그 산 8푼 능선쯤 일제강점기에 조그마한 절을 지었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 젊을 때 총무를 맡아 앞장서서 지으셨다는데, 우리 절이 아니고 절 주인은 따로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연로한 조부모님은 그 절에 다니시는 것을 본 적이 없지만, 어머니께서는 바쁜 농사일 가운데도 초하루 보름은 꼭 다녀오셨다. 몸을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보시할 공양미도 챙겨서 구불구불 산길을 즐겁게 다녀오셨다. 가져온 떡과 과일을 우리 6남매에게 나눠주면서 부처님께 올린 것이니 꼭 먹어야 한다고 권하셨다. 그런데 절에서 가져온 음식은 무엇이든지 맛이 있어 서로 더 먹으려고 다투기도 하였다.

이러한 어머니의 신앙생활은 나에게 막연하게나마 절에 대한 동경심을 갖게 하였다. 그러나 초, 중, 고, 대학에 다니면서 그저 나는 ‘불자 집안의 아이다’라는 것만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지, 어머니를 따라서 직접 절에 가 본 적은 없었다. 그 후 고향을 떠난 교직 생활은 내 생각 속에서 절을 점점 멀어지게 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불교에 대한 생각, 어머니의 불교에 대한 절실한 신앙심을 잊을 수 없었다.

몇 해 전, 할아버지께서 지었다는 고향 마을 절에 화재가 나서 불상이 모두 타버렸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끔 초파일과 설 명절에만 절을 찾았던 나에게 불상을 부탁하여 삼존불 중에 본존불을 시주한 적도 있었지만, 꼭 절에 다니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또한 산을 오를 때나 내려오는 길에 절에 들러 삼배를 올리곤 했지만, 남의 눈치도 보이고 주뼛주뼛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이처럼 나는 불교에 대해 당당하지 못하고 관심 또한 적극적이질 못했다.

이러던 내가 2015년 2월에 교단을 퇴직하고 불교에 대한 것을 좀 공부해 보고자 마음먹었다. 그러던 차에 내가 살고 있는 시내의 절에서 ‘2017년도 불교대학’을 개설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입학 수속을 밟고 1학년에 입학하여 ‘부처님 생애’ ‘불교 입문’ ‘불교 개론’을 공부하였다. 스님의 말씀이나 책을 보고 스스로 앎을 터득하는 초보적인 불교 공부인지라, 모든 것이 생소하고 생경해서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녔다.

다음 해 2학년 때에는 무비 스님께 《천수경》과 《금강경》을 공부하였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글로 승화되어 남겨진 것이 팔만대장경이라고 불리는 경전인데, 《천수경》은 그중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불자라면 누구나 다 지니고 있고 외우는 경전이라며, 스님은 전체를 사경하는 과제도 내시고 점검까지 하셨다. 그리고 세상이 변하고 혼탁하더라도 그것을 말끔히 씻어버리고 사람이 살아가는 데 보람을 느끼게 한다는 《금강경》도 강조하셨다. 《금강경》을 공부하면서 다이아몬드를 찾기 위해 오는 졸음도 참고 열심히 공부하였지만, 결과는 미지수였다.

2017년 3월, 시내 곳곳에 ‘108사찰 순례단’을 모집하는 현수막이 내 눈을 번쩍 뜨게 하였다. 바로 입회를 하고 3월부터 첫 순례에 나섰다. 매년 2월을 제외한 월 1회, 하루 두 곳의 사찰을 순례하는 계획이었다. 관내 조그마한 사찰의 주지 스님을 지도법사로, 그 사찰의 신도회장님을 단장으로 순례단을 꾸렸는데, 나도 수석부단장으로 임명되었다. 경남 합천 해인사와 백련암을 필두로 코로나19가 오기 전까지 전국의 이름난 사찰을 총 32회 54곳을 순례하였다. 아침 일찍 출발하면 버스 안이 법당이라 생각하고 순례용 책자에 의하여 예불을 올렸고, 순례 사찰에서는 스님의 집전 아래 관음예문을 독송하고 예불을 드리며 백팔 배를 올렸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도 경전 공부, 찬불가 부르기, 스님의 법문 듣기 등으로 하루해가 짧을 정도로 빡빡한 일정을 보냈다. 이렇게 3년 동안 이어지는 순례 날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아서 얻은 것은 참으로 많다.

우리 집 내 서재에는 불교 관련 서적이 눈에 띄게 많아졌고, 벽 전면엔 석가모니 부처님 사진을 걸어 두고 아침마다 경전을 독송하며 예불을 올렸다. 그리고 〈불교신문〉을 구독한 지 5년째 되는데, 중앙 일간지보다 〈불교신문〉을 더 탐독한다. 〈불교신문〉을 읽으면 왠지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하며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휴대전화 메모장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불교 관련 용어, 구절, 부처님 말씀 등이 빼곡히 저장되어 있어 필요할 때 볼 수 있고, 또 계속 저장할 것이다.

절에도 다니지 않던 내가 백팔사찰 순례의 인연으로 지도법사 스님이 주지로 계시는 절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스님은 작년 가을 ‘국난극복을 위한 상월선원 자비순례 전국 걷기’에 동참하였다. 나도 신도회장, 총무 등과 함께 경북 구미시에서 도계면 초전지까지 약 27㎞ 걷기에 참여하였는데, 스님의 안내로 자승 스님과 기념사진도 함께 찍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마지막 회향 때는 서울 봉은사로 가서 21일간 500여㎞의 대장정을 무사히 마친 스님을 큰 박수로 맞이하며 꽃다발을 걸어드렸다.

불교에 대한 생각과 이해가 부족했고 왕초보이던 내가 일상적 삶 속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앞으로 더욱 절실한 신행으로 높고 깊은 부처님 가르침에 ‘가까이,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벽암록》에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고, 내일은 다가올 오늘”이라는 말이 있다. 삶의 기준이 ‘저기’가 아니라 ‘여기’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 번 사는 생의 남은 날에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갈까. 그 답은 여기에서 지금 부처님 곁으로 ‘가까이, 좀 더 가까이’ 가는 길밖에 없을 것 같다. 나무 석가모니불!

 

박정우
동시 시인 / pjw1089@hanmail.net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