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는 인간의 상상에서 이루어진 세계요, 초자연, 초논리의 세계다.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 오는 옛이야기가 지니고 있었던 것이며, 고대소설이 지니고 있던 문학의 표현 형식이었다. 세계의 문학이 모두 그러했다.

우리나라 고대소설은 연대가 확실한 《홍길동전》 등을 비롯해서, 500여 편에 이른다. 이 중에서 춘향전 등 몇 편을 제외하면 거의 판타지 형식이다.

이러한 판타지 기법은 리얼리즘(寫實主義)이 등장하면서부터 소설에서 물러앉아 동화문학 전체를 이루게 되었다. 어린이들의 동심이 바로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동시문학이 판타지를 수용하게 되었는데, 한국 동시의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육당 작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부터 판타지 동시다.

이 시는 인격화된 바다가 인간의 언어로써 소년을 찬양하는 판타지로 구성되어 있다.

 

담 크고 순정한 소년배들이
재롱처럼 귀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오나라 소년배 입맛텨듀마.

 

바다가 인간의 언어로 소년을 찬양하고 있다. 소년에게 입맞춤을 하겠다고 한다. 이 판타지 시 작품이 동시가 틀림없다는 사실이 위의 결구(結句)에서 확실해진다.

이렇게 육당에서 시작된 판타지 동시는 우리 한국 동시의 작품성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가? 판타지 세계는 온갖 동물, 온갖 식물, 온갖 형체(물건)가 사유와 언어를 가지는 세계다. 고양이와 잠자리와 나무와 돌멩이가 생각하고 말하는 세계라는 것이다. 이러한 동시 · 동화 작품은 수두룩하다.

판타지 세계의 흙은 필요에 따라 온갖 것을 싹 틔운다. 바둑알을 싹틔우기도 한다. 판타지 세계의 나무에는 필요에 따라 강아지 같은 동물이 열릴 수도 있다. 판타지 세계의 하늘에서는 온갖 비를 내린다. 캡슐에 싸인 사탕을 비로 내리기도 한다.

판타지 세계에서는 주술에 의해서 자기 몸의 확대와 축소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자신이 거인국 사람이 됐다가 소인국 사람이 되기를 자유롭게 하고, 에베레스트산의 키를 줄여서 오르기 좋은 남산 높이로 할 수도 있다.

판타지 세계에서는 시간의 과거 · 현재 · 미래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어린이가 미래의 나라 한국에 와서 여왕께 편지를 쓰기도 하고, 수억 년 전 공룡을 오늘에 길러서 골목 동무와 같이 타고 세계를 한 바퀴 돌기도 한다. 요술(Magic)이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고 불가능이 전혀 없으며, 재미만 있는 세계가 판타지의 세계다.

필자는 이러한 판타지 세계를 부처님 경전에서 배웠다. ‘동화의 바다’로 불리는 부처님의 경전에는 참으로 재미있고 놀라운 판타지 이야기들이 많다. 부처님이 설하신 아함경에서 겁초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하나의 세상이 시작되었다가 없어질 때까지가 1겁이다. 겁이 시작될 때를 ‘겁초’라 한다. 겁초의 사람들은 모두 착한 마음만 지녔다. 착한 사람들은 몸이 가벼워서 허공을 마음대로 날아다니고, 몸에서 빛을 낸다. 먹거리는 땅에서 솟는 땅젖(地味)이었다.

사람의 욕심이 생겨 먹거리를 다투게 되자 그것이 원인이 돼, 먹거리는 차츰 격이 낮아지게 되었다. 땅젖은 땅떡(地餠)으로, 땅떡은 임등(林藤)이라는 과일로, 임등에서 껍질이 없는 벼가 됐다가, 껍질이 있는 벼로 바뀌고 토지의 경계선이 생기게 된다. 이 부처님의 판타지 이야기는 인간의 욕심이 인간의 고통을 불러왔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수미산 동서남북에 네 개의 우주가 있다. 이를 사주세계(四洲世界)라 한다. 이들 사주세계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가, 수미산 북쪽 울단월 세계다. 울단월 세계에는 칠보의 땅에 절로 나는 벼가 돋아나 자라는데, 껍질이 없는 멥쌀이 벼 이삭에 열린다. 쌀을 가마솥에 안쳐 두면 절로 생긴 마니구슬이 불을 일으켜 밥을 지어준다.

옷나무에는 옷이 열린다. 옷나무 아래에서 손을 벌리고 “옷나무야 나들이옷 한 벌만 다오. 고운 걸로 줘.” 하면 나무가 스스로 줄기를 굽혀 옷을 손에 놓아준다. 그러한 악기 나무, 그러한 그릇 나무가 있다.

부처님이 참으로 중생을 위해서 사셨다는 것은 들려주신 판타지 이야기만 살펴도 알 수 있다. 부처님 고맙습니다.

 

신현득
동시 시인 / shinhd7028@hanmail.net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