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용 책을 쓰는 일을 하며 살아온 지 30년이 넘었다. 여러 소재의 글을 썼는데 그중에 불교와 연관된 책이 두 권 있다. 불교 공부를 따로 깊게 한 적도 없고 다만 불교는 생명 존중 사상을 크게 강조한다고 생각되어 친근감을 갖고 있다. 또 절밥 먹기를 좋아하여 템플스테이를 가끔 가는 정도이니 불교 관련 소재가 들어간 책이라도 불교를 깊이 공부한 분이 보기에는 너무 함량 미달일 수 있는 책들이다.

하나는 동화책으로 《땅끝마을 구름이버스》라는 제목으로 해남 미황사와 그 인근의 분교 이야기를 실제로 보고 쓴 이야기이다. 폐교될 뻔한 분교였는데 미황사가 온 힘을 다해 도운 끝에 살아남았고, 지금은 학생 수가 많아져 본교가 되었다. 다큐멘터리 책이 아니므로 여러 에피소드는 창작된 것이긴 하지만, 기본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아름다운 일이라 널리 알리고 싶었다. 그 책을 쓰고 나서 미황사 어린이 한문학당에 봉사를 간 적도 두 번 있다.

또 하나는 그림책인데 《내 친구 까까머리》라는 제목으로 꼬마 여자아이가 처음 할머니를 따라 절에 와서 동승과 절 구경을 여기저기 다니며 절집 요소를 배우는 줄거리로 구성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유럽에 여행을 가면 오래된 성당을 방문하여 아름다운 건축양식을 보듯이 문화재로서의 절집을 알아보는 건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관심 가져야 하는 것이라 여겼다. 절집의 기본 요소들을 어릴 때 관심 있게 들여다볼 기회가 있다면 커서도 불교문화에 대한 기본 이해가 있는 폭넓은 사고를 하게 되겠지 싶었다. 그래서 《내 친구 까까머리》 그림책의 글을 썼고, 윤정주 화가가 아름답게 그림을 그려주었다. 이 책은 프랑스에 수출이 되기도 하였다.

그 후로는 불교 관련 소재가 등장하는 책을 쓸 일이 없었다. 가끔 템플스테이를 가서 맛난 절밥을 먹는 게 나의 큰 호강이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태국에 스토리텔링 축제를 가게 되었다. 10개 나라에서 온 스토리텔러들이 태국 스토리텔러들과 함께 여러 도시를 돌며 여러 대학에서 축제를 여는 방식이었는데, 그중 하루는 승가대학을 간다고 했다. 미리 준비사항 연락이 왔는데 승가대학에서는 불교 스토리텔링 축제로 운영하니 불교 관련 이야기를 준비해달라고 했다. 우리는 승가대학 캠퍼스 안의 게스트 호텔에서 묵고 그다음 날 스토리텔링 축제를 열었다. 불교문화권이 아닌 나라에서 온 스토리텔러들은 평화나 자연존중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해왔고, 나는 원효 대사와 해골의 물 이야기를 준비해갔다.

처음에 이메일 연락이 왔을 때는 왜 불교대학에서 스토리텔링 축제를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찾느라 여러 불교설화 자료를 보면서 한 가지 깨닫게 되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야말로 이야기꾼이셨다. 예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분들은 스스로 한 글자도 기록한 바가 없이 계속 이야기를 하셨다. 그분들은 말씀만 하셨고 후에 제자들이 불경으로, 성경으로 기록을 했다. 이래라저래라 훈화를 한 게 아니라 주인공과 사건이 있는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을 깨우치게 하셨다. 물론 그 당시에는 글을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았을 테고 책을 인쇄하기도 어려운 시절이었기는 하지만 성인들은 말씀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수많은 불교설화들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다가 ‘이 귀한 자료들을 잘 살려 내놓는 것도 동화작가가 할 일이겠구나. 그래서 어린이들이 세상을 밝은 눈과 마음으로 살아가게 돕는 것도 필요하겠구나’ 생각했다. 그러고는 스토리텔링 축제가 끝나고 나니 싹 잊어버리고 이런저런 일에 바쁘게 지냈다.

그러다 올해 4월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예술인 패스가 있는 이들에게 템플스테이를 제공하는 혜택을 준다는 공지를 보았다. 템플스테이가 가능한 절을 쭉 살펴보는데 낙산사가 눈에 들어왔다. 낙산사에서 불이 났었던 기억이 났고 그 후 어찌 복구되었는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예약하고 1박 2일 템플스테이 혜택을 누리고 왔다. 바다를 볼 수 있어서 낙산사를 택한 이유도 있었는데, 절 여기저기에 쓰여 있는 유래들을 읽어보고 몰랐던 새로운 설화들을 알게 되었다. 낙산사는 의상 대사만 연관이 있는 줄 알았더니 원효 대사 이야기도 한 자락 들어 있었다.

원효가 낙산사에 거의 다 왔는데 목이 말라 개울에서 빨래하는 여인에게 물을 청했다. 그 여인은 빨래하던 더러운 물을 떠서 주었다. 원효는 바가지에 담긴 물을 버리고 빨래하는 곳보다 상류에 있는 깨끗한 물을 떠먹었다. 그러고 나서 보니 그 여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소나무 위에 파랑새가 “제호(우유죽)를 마다한 화상아!”라고 비웃었는데, 나무 아래엔 신발 하나가 있었다. 낙산사에 도착해 보니 관음상 아래 그와 같은 신발 한 짝이 또 놓여 있었다. 관음보살이 원효에게 친히 나타나셨으나 원효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다. 원효 대사가 물과 관련되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과정이 또 한 번 있다는 걸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낙산사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오면서 생각했다. 파랑새가 지금 나타난다면 나에게는 뭐라고 말을 할까? ‘이야기 보물단지가 있는데 써먹지도 못하는 바보야’라고 소리치지 않을까?

불교설화들로 스토리텔링 원고를 정리해볼 때가 된 것인가.

 

임정진
동화작가 / storyteller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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