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으로 오는 동녘의 햇살을 받으며 매일 아침에 절을 드린다. 그리고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소리 내어 읽는다.

나의 전생은 어떠했는지 모르나, 이생에서는 여태껏 고통 없이 건강하게 이 자리까지 오게 해주신 부처님께 두 손 모아 합장한다. 그리고 이제 남은 생애는 세심하게 주위를 돌아보며 더욱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함을 느낀다.

삶의 시간은 이리도 빨리 흘러가고 있으므로, 깊은 인연의 부모님 은덕을 새기지 않을 수 없다.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 고집멸도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를 뇌며 새삼 비우려는 마음 항아리에 정을 쏟는다.

아버지는 수년 동안 제주의 척박한 땅에서 돌을 골라내며 공들여 동산을 개간하셨다. 그곳에 귤나무 묘목을 심고 흙을 돋워 여린 잎들을 애지중지 키웠다. 5월이 되면 귤꽃 향기가 동산을 넘어 수평선을 향해 달려갔다. 그 덕에 바다에서 자란 나의 동심은 작은 풀잎, 들꽃, 돌멩이 하나까지 친구가 되어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머님은 불심이 강하셨던 분으로, 어느 날 내게 아버지를 잘 부탁한다고 하며 조용히 떠나셨다. 그해, 법정 스님이 열반에 드셨다는 뉴스가 전국적으로 보도되었다. 마음 깊이 합장하였다.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해 아버지를 모시면서 진정으로 효심이 생겼다. 끼니때마다 잘게 썬 반찬을 한 상 차려 드리면 아버지는 잇몸으로 맛있게 드셨다. 그리고 언제나 잊지 않고 인사를 하였다.

“오늘이 내 생일이구나, 잘 먹었다. 100살은 거뜬히 살겠다.” 하시면서 평온한 미소를 보내주셨다.

늙어 가면 몸의 조절기능이 떨어져 소화가 안 될 때가 자주 있다. 스스로 간호사가 되어 아버지 배를 만져서 관장을 해드렸다. 또 당뇨 치료를 위해 인슐린 주사를 매일 놓아 드렸는데, 아버지는 그런 딸을 미더워하셨다. 그 시절을 떠올리다 보니, 귀가 부처님 귀를 닮으셨던 아버지가 몹시 그리워진다.

아버지는 집에서 70미터쯤 거리의 바닷가를 자주 걸어 다니셨다. 아마 먼저 떠난 반쪽의 영혼을 찾아 바닷가에서 대화를 나누곤 하셨을 것이다. 그러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추억은, 여생을 사시는 아버지께 포도당 같은 든든한 영양이 되었다.

곽지해수욕장 근처의 우리 집은 굽은 소나무가 있어서 그늘을 만들어 준다. 하얀 백발의 노인은 항상 그 자리에 계셨다. 그 소나무 아래에 앉아, 육이오 때 전쟁에 나갔던 이야기며, 옛적 불굴의 정신으로 보릿고개를 넘기며 척박한 땅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버지의 한평생 삶을 메모하며, 살아생전에 조금이나마 자식 된 도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집 《천륜의 바다》를 상재하였다.

책이 나오던 날, 부녀는 마당의 소나무 아래 편안히 앉았다. 저 멀리 항상 부녀를 바라보고 있던 한라산 바람이 시 낭송을 듣기 위해 급히 산새들을 데리고 내려와서 푸른 잔디의 마당에 앉아 경청하였다.

그때 아버지는 “나를 위해 한 권의 시집을 냈다니 너무 고맙구나. 사랑한다, 내 딸아!” 하면서 따뜻한 눈물을 보이셨다. 관객 없이도 시집 한 권을 다 읽어 드렸던 그날이 잊히지 않는다.

아! 인간의 육신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에, 이듬해 98세로 영면하신 아버지는 연꽃밭에서 기다리는 어머님을 향하셨다.

“부생아신(父生我身) 모국오신(母鞠吾身)!” 부모님의 은혜에 합장한다.

평소 《천수경》을 읽으시던 아버지는 넓은 바다였다. 들과 바다를 잔잔히 재우시며 평온하게 기도하던 아버지의 음성이 아직도 귓가에 머물러 있어 곁에 계시는 것처럼 언제나 든든하다.

애월읍 곽지리 집에서, 부화하는 아기 비둘기를 소나무가 품어 주는 걸 가끔 본다. 주인이 서울에 있어도 비둘기들은 마당에서 평화롭게 놀고 있다. 그곳 ‘시가 있는 해송의 집’에 있으면 글이 잘 써진다. 돌담 안 풍경 속의 생물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서산의 해도 짧게 넘어간다.

신축년, 2021년 1월 27일 한국불교아동문학회 정기총회에서 나는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낮은 자세로 회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심부름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특히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큰 별이신 여러 선생님이, 한국불교아동문학회를 위하여 초창기부터 40여 년 동안 회원들과 꾸준히 애써 오신 데 대하여 깊이 감사 드리며, 부처님 곁에서 기도로 문을 연다.

 

고광자
동시 시인 / 1949kkj@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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