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서울식물원 근처 코오롱 사옥 앞에 거꾸로 된 코끼리상이 있다. 네 다리로 허공을 버티고 코로 땅덩이를 떠받친 형상이다. 프랑스 작가 다니엘 피르망의 ‘인프라 그래비티(중력을 넘어 섰다)’라는 제목의 설치 조각물이다.

도반의 안내를 받으며 코끼리를 보려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혔다. 하늘색이 봄처럼 연하고 바람도 따듯하니 부드럽다. 기다란 코끝으로 땅을 버티고 거꾸로 몸을 공중으로 들어 올린 코끼리의 고행이여! 하늘을 향한 네 다리와 몸뚱이의 웅장함이여! 스스로를 저렇듯 고통스럽게 학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코끼리는 신(神)이 타고 다니는 짐승으로 불교를 상징하는 영수(靈獸)라서 나는 천근 같은 몸집을 코 하나로 버티고 있는 모습에서 부처님의 출가수행이 느껴졌다. 이렇게 거꾸로 서서 ‘자, 나를 보라’ 하며 묵언수행을 한다는 상상도 했다.

반쯤 뜬 눈에 긴 속눈썹을 매달고 피부에 새긴 주름 하나하나가, 꼬리 끝에 붙은 자디잔 털이 환상인 듯 실제인 듯, 신비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코끼리를 보는 찰나, 나는 다른 시공간에 서 있는 착각을 했다. 코끼리 조각물 앞에서 찻길을 건너는 사람도 달리는 자동차들도 느릿느릿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필경 그동안 나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흰 코끼리는 부처님의 불제자’라는 의식이 섬세하면서도 거대한 조각물을 만나 충격을 받은 것이리라. 부처님을 경건하게 등 위에 모시고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자 보리수나무 아래로 모인 수많은 중생을 굽어보는 모습이 그동안 코끼리에 대한 나의 인식이었다. 또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장군이 수많은 코끼리 부대와 함께 로마군과 대결하기 위해 얼어붙은 알프스산맥을 넘어가는 장면도 역사소설과 함께 내 인식 속에 남아 있다.

영물 중의 영물 코끼리가 코를 땅바닥에 박고 거꾸로 선 채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 도로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거리를 쓸고 지나가는 소음과 식물원에서 바람에 실려 온 봄꽃 향기가 코를 간질여도, 코끼리는 그토록 고통스러운 자세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묵언수행을 한다. 부처님 세상에서 건너와 포행 정진을 하고 있다.

 

90대 노년의 삶을 생각해 볼 때가 많다. 나에게도 서서히 다가올 내일이므로 나의 삶을 그 위에 포개어도 보았다. 올해로 아흔네 살을 맞이하신 시어머니의 하루에서 90대를 살아가는 노년의 시대를 읽는다. 신실한 불자인 어머님은 아침을 드시면 방에 들어가 불경을 읽으신다. 작은 소리로 조곤조곤 읊으시는데도 조각 글은 날아와서 내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는 나비가 되어 온종일 집안을 날아다녔다.

가끔가다가 어머님과 나와의 인연을 생각한다. 남편과 만남으로 40여 년을 함께 살아가는 나와 어머님의 관계는 어떤 억겁의 인연이었을까. 필경 전생에서 맺은 필연적인 인연이 있었을 것이다. 한 공간에서 한 식구로 살면서 어느 날은 봄바람이었다가 어느 날은 싸늘한 겨울바람이기도 하다가, 큰소리가 태풍처럼 몰아오다가도 금방 조각배를 띄우는 잔잔한 물결이었다가 하는 그런 세월을 같이 쌓으며 살아왔다. 간절하게 보고 싶어도 돌아가셔서 뵙지 못하는 엄마보다 두 배나 가까이 되는 세월을 어머님과 살고 있다. 이제는 고부간을 떠나 ‘식구’라는 공동체로 뭉쳐 있다. 세월의 응원으로 남편보다 내가 더 어머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 들여다본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부처님의 말씀이 나비가 되어 내 마음을 순하게 어루만져 주는 일상이다.

불교TV에서 방송하는 〈사시예불〉(영축총림 통도사 법회)도 나에게 잔잔한 성찰을 안겨준다. 어머님이 즐겨 보시는 프로그램이다. 어머님은 소파에 앉아서 통도사 스님들이 진행하시는 법회 의식을 그대로 따라 하신다. 나도 주방에서 거실로 왔다 갔다 하다가 두 손을 모은다. 절에 가서 기도하고 싶어도 다리가 아프고 힘이 들어 못 가신다고 애석해하시다가 찾아낸 영상 법회이다. 화면으로도 장엄한 의식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코로나 시대에 절에 가지 못하는 불자들을 위한 좋은 프로그램이다.

통도사 스님들이 읊는 불경 가락에서 아흔두 해에 부처님 나라로 가신 시아버님이 떠올랐다. 아버님을 산소에 모시고 어머님이 다니시는 약사사에 49재를 올렸다. 7일마다 재를 올릴 때 약사사 큰스님들도 이런 가락으로 읊었다. 나도 불경을 펼치고 스님들의 가락에 얹어 아버님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법당 왼편에 그린 탱화를 보고 ‘아버님이 이제 저 고개를 넘으셨구나. 아버님 막재 날까지 힘내세요.’ 하며 마음을 모아 기도하였다.

아버님은 맏며느리인 나를 참으로 사랑하셨다. 내가 문학 행사로 귀가가 늦을 때면 어머님의 성화에도 주무시지 않고 기다렸다가 내 얼굴을 보고서야 잠자리에 들으셨다. 뇌일혈로 어눌해진 말씀을 식구들이 못 알아듣는다고 역정을 내셨다가도 내가 미루어 짐작하는 대답을 하면 틀려도 활짝 웃으셨다. 반찬 타박도 안 하시고 맛있다며 한 그릇 뚝딱 드시던 아버님이셨다. 그런 아버님이 통도사 스님 곁에서 웃으신다. 불경 읊는 가락이 리듬을 타고 아버님에 대한 기억을 불러 모았다.

꽁꽁 매듭지어 한구석에 밀쳐두었던 마음의 보따리가 스님의 불경 소리와 함께 끈이 느슨해졌다. 언젠가는 풀어야지 하며 마음이 쓰였던 보따리였다. 서로 의견이 달라서 매듭으로 묶고 마음을 닫았던 도반이었다. ‘두 손을 모으고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합니다.’ 하고 예불하면서 동여맨 보따리가 부끄러워졌다. 내가 먼저 풀어야겠다는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부처님이 화두로 주신 마음이 달아날까 봐 서둘러 번호를 눌렀다.

인프라 그래비티를 본다. 육중한 네 다리로 허공을 딛고 코로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코끼리. 도반과 팔짱을 끼면서 시간과 시간 사이에 있었던 갈등을 털어버린다. 도반이 설명하는 코끼리 조각상을 보며 오히려 코끼리가 바로 서 있고 내가 중력을 거스르고 거꾸로 서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득해졌다.

 

홍재숙
동화작가 / hongjaisu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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