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 코로나 전염병이 크게 창궐하자 템플스테이를 찾는 수련생 수가 뚝 떨어졌다. 비례해서 내 할 일이 쑥 줄었다. 종루 뒤 잡초 터가 보였다.

‘그렇다면 저곳을 꽃밭으로 바꾸는 일을 해야겠군.’

가을쯤 되면 전염병은 쇠락할 것이고, 템플스테이를 찾는 수련생들은 꽃밭을 보면서 환해질 것이다. 스님은 만류하셨다.

“팀장님, 농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에요.”

유일하게 아내만 응원해 주었다. 둘은 삽과 괭이로 밭을 일구고, 멀리까지 외발 수레를 끌고 가서 구절초 모종을 수십 차례 캐 왔다. 4월 하순쯤에는 약 300평 잡초 밭이 그럴 듯하게 꽃밭이 되었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지?’

우리 부부는 아침마다 쿵쿵 걸어 다니며 잡초를 뽑아냈다. 오가는 불자님들이 한마디씩 했다.

“풀과 전쟁을 벌이다간 사람이 먼저 죽는대요.”

아내와 나는 그저 웃었다.

‘그냥 뽑으면 되지. 수행이라 생각하면 되지.’

잡초는 구절초보다 훨씬 빨리 올라왔다. 우리도 굴하지 않았다. 이미 단단하게 마음먹은 일이었다. 마치 서원이나 되는 양.

6월 중순, 꽃밭에 나가보니 곳곳에 굵은 실 같은 덩굴이 구절초를 타잔처럼 건너뛰어 다니면서 휘휘 감고 있었다. 농부 선배에게 물어보니, “이름은 몰라. 고약한 기생식물야. 덩굴 감긴 구절초까지 뽑아 태워야 돼.”라는 말만 한다. 너무 늦게 발견했다. 정신이 아득했다. 나중에 실새삼이라는 이름을 들었다.

나쁜 놈! 내 꽃밭을 고사시키고 있다. 여름 내내 걷어냈으나 끝없이 파고드는 실새삼을 막지 못했다. 밭이 황폐화될수록 수행의 꿈은 쪼그라들고 미움을 키우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름다운 마음을 키우고자 시작한 일이었는데 미움을 키우는 일로 바뀌었다. 구절초가 뭉텅뭉텅 빠져나간 가을철 꽃밭은 사막의 선인장 밭 같았다.

다시 봄을 맞았다. 올해는 작년보다 코로나가 더 심각했다. 템플스테이 수련생 수는 더 줄었다.

‘흠, 이번에는 꽃밭을 정말 제대로 가꾸어야지.’

봄이 오기 전부터 근처 잡초 땅을 정비하여 꽃밭을 늘리고 개양귀비와 수레 국화 씨앗도 뿌렸다. 나중에는 끈끈이대나물, 금잔화도 뿌렸다.

봄비도 매주 한 번씩 내렸다. 구절초가 싱싱하게 순을 벋었다. 풀도 덩달아 줄기를 신나게 올렸다. 잠시 참아야 했다. 구절초의 빈 자리를 메꾸는 일이 우선이었다. 꺾꽂이도 하고, 이식도 했다. 하지만 풀의 성장 속도는 초음속 비행기 같았다. 이식을 중단하고 풀매기 작업에 들어갔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김을 매어나갔다.

‘이제는 미워하지 않으리.’

생각을 끊고 잡초 아래로 호미를 깊숙이 찔러 넣는다. 호미 날을 들어올려서 대지진을 일으킨 후, 잡초 머리를 잡아끈다. 놈들은 맥없이 뽑혀 나온다. 질긴 인연을 끊는다. 개망초, 씀바귀, 쇠뜨기, 쑥, 토끼풀…….‘무상무념!’ 가끔은 보라 제비꽃이, 노랑 민들레꽃이 나온다. 예쁘다. 무상무념이 깨진다. 아깝다. 이놈들은 그냥 못 본 체 지나간다. 고정관념을 깨는 것은 쉽지 않다. 다시 무상무념! 두세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남는 것은 허리 통증. 그래도 다음 날, 다음 날, 또 나간다.

이상한 풀이 보였다. 금계국 새싹과 비슷한데 아니다. 같은 풀이 이곳저곳에 자라고 있다. 호미질을 해보니 뿌리가 서로 이어져 있다. 뿌리로 전파되는 잡초다. 뿌리가 고무줄처럼 탄성도 있다. 이건 땅밑 코로나로구나. 한눈에 강적임을 알겠다.

벌떡 일어나서 둘러보았다. 동쪽 밭으로 갈수록 더욱 많고 더욱 크고 더욱 굵다. 아니, 언제 이놈들이 이곳을 점령했지? 농부 선배가, ‘그것이 생기면 그 밭은 끝장’이란다. 다른 선배도 답신을 보내왔다. ‘애기수영! 생태계 교란 외래종. 농약도 효과 적음. 보이는 대로 뽑아낼 것.’

마음이 급해졌다. 괭이로 마구 헤집고, 마구 내리찍는다. 하지만 너무 많다. 지친다. 다음날 돌아와보면 덜 캐낸 뿌리에서 조그만 떡잎이 또 나오고 있다. 미움덩이가 구름처럼 부푼다. 도망간 애인보다도 밉다.

‘좀 있으면 실새삼도 깨어날 텐데……. 꽃 재배, 아름다운 수행이 아니네.’

풀보다 먼저 죽기는 싫었다. 스님을 찾아갔다. ‘이쯤에서 포기하세요’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스님, 혹시 꽃밭을 다른 용도로 쓰실 계획은 없는지요?”

빙그레 웃으신다. 마음을 들켰나?

“욕심이 큰 것은 아닌지요?”

욕심이란 탐욕이다. 템플스테이 수련생에게 탐진치의 해악을 줄기차게 설명해왔는데, 정작 나를 들여다보지 않았나 보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머릿속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위로를 받고 싶었다. 아내에게 물었다.

“잡초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을까?”

“잡초가 있으니 꽃밭에 자주 가는 거?”

헛웃음이 나오지만 맞는 말이다. 우화 하나가 생각났다. 옛날 어느 부자가 게으른 세 아들에게 포도밭 땅 속에 보물이 묻혀 있다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세 아들은 열심히 땅을 팠고, 덕분에 포도가 풍년이 되었다. 그제서야 진정한 보물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거다.

잡초가 있으니 수행이 계속되는 거다. 잡초를 수행의 문으로 삼아볼 거나? 내일은 마거리트 심은 밭도 들여다보아야겠다.

 

김일환
동화작가 / falad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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