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발행인 무산 스님 열반 3주기

2021년 5월 23일(일) 오전 10시 / 설악산 신흥사

傳佛心燈 證悟無生 雪嶽禪風 詩禪行化 

雪嶽堂 霧山大宗師 碑銘

無明과 癡愛를 해탈의 眞源으로 삼고 중생을 顚倒迷惑케 하는 三毒을 변화시켜 菩提의 大用을 이룬 出格丈夫가 여기 있다. 虛徹靈通한 無生의 面目을 증득하여 佛祖의 骨髓를 얻고 生死繫縛에서 벗어나 無漏智慧로 人天의 導師가 되신 霧山大宗師가 그분이다.

스님의 諱는 霧山이고 法號는 雪嶽이며 俗名은 五鉉이다. 1932년 경남 밀양시 상남면 이현리에서 出胎聖生하니 天性이 溫雅英特한 天賦의 法器였다. 童眞으로 밀양 성천사 印月和尙에게 祝髮하여 藏敎를 읽고 頭陀精進을 익혀 大智를 터득하였다.

盛年이 되어서는 佛祖가 咐囑한 心印을 얻기 위해 삼랑진 金舞山으로 들어가 토굴을 짓고 불철주야로 정진하여 生死의 담벼락을 무너뜨리고 百尺竿頭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轉身之機를 이루었다.

六年修行을 마친 스님은 1975년 봄 설악산에서 晶浩堂 聲準和尙을 친견하고 超宗越格의 法擧揚으로 入室建幢한 뒤 龍城 古庵 聲準으로 綿綿히 전해온 법맥을 이었다. 蒲團을 新興寺로 옮긴 스님은 스승의 뒤를 이어 住持로 취임하여 遠近의 僧俗에게 근기에 맞춰 慈愛를 보였으며 安心을 얻게 하였다.

이후 뜻한 바 있어 渡美를 敢行하여 禪法西傳의 大役을 遂行했으며 歸國하여서는 양양 洛山寺에 錫杖을 내려놓고 不怠의 정진을 했다. 行住坐臥가 修行이었던 스님은 어느 날 수많은 法身이 森羅萬象 가운데 顯現하고 있음을 깨닫고 千聖不傳의 頌을 읊었다. 밤늦도록 책을 읽다가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먼 바다 울음소리를 홀로 듣노라면 千經萬論이 모두 바람에 이는 파도란다.

이로써 鐵眼銅睛의 안목을 얻은 스님은 雪嶽山門의 會主가 되어 중창의 大業을 착수했다. 曹溪宗 第三敎區本寺인 新興寺에는 香城禪院을 개원했으며 내설악 百潭寺에는 無門關인 無今禪院을 建創하여 六祖의 玄旨와 臨濟의 玄義가 구현되도록 하였다. 더하여 海東禪法의 祖師인 道義國師가 曹溪禪風을 濫觴한 聖地인 陳田寺를 복원하고 百潭寺에는 종단의 교육기관인 基本禪院을 열어 드디어 雪嶽山門이 曹溪宗의 宗乘中事를 잇게 하였다. 중생제도의 大願力은 佛事로 이어져 퇴락한 서울 興天寺를 重修하고 道場을 일신하여 三角禪院을 개원하니 이곳에 앉고 머문 이는 빈손으로 왔다가 把手上高山의 實利를 얻었다.

이렇게 佛祖의 玄關을 열고 頭頭物物에서 大機大用을 顯現하니 마침내 諸方의 久參上士들은 宗門의 鉗鎚를 위해 기본선원 祖室로 추대하였다. 스님의 家風은 理事에 無碍하고 진퇴에 집착이 없었다. 이에 千人萬口는 스님을 일러 自己를 지우고 낮춘 至人無名한 禪師요 恒無學師하는 雲水이며 萬行의 자비를 실천하는 菩薩이라 하였다.

그럼에도 스님은 다시 백담사 無門關에 들어가 수년간 閉關한 채 外緣을 닫고 內心靜觀에만 전념한 후 凡聖의 미혹을 떨쳐버리고 古家의 소식을 玩味하였다. 이에 종단은 스님의 禪德을 흠앙하여 大宗師의 法階에 오르게 하고 원로의원으로 추대하여 叢林法侶의 스승으로 삼았다.

天稟이 詩人이었던 스님은 평생 二百餘의 詩文을 남겼다. 이를 輯錄한 尋牛圖와 아득한 성자는 章句가 高絶無雙이라 江湖文士가 忘前失後하였다. 文壇에서는 그 높은 경지를 기려 많은 문학상으로 상찬하였으나 도리어 沐猴而冠이라 하며 不顧하고 오로지 깊은 禪悟를 大文으로 보여줄 뿐이었다. 다만 詩禪一如로 化益衆生하고자 내설악 용대리에 만해마을을 짓고 萬海祝典을 열어 天下文士를 한곳에 운집케 하니 世界一花가 여기에 있었다.

스님의 大方無外한 慈悲攝化는 出世間을 가리지 않았고 넓은 德化는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으며 머무는 곳마다 法의 要諦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法語는 귀천을 가리지 않았으며 自性을 直指케 하여 本來面目을 돌아보게 하고 얼굴을 돌리고 싶은 이웃이 未完의 如來라고 깨우쳐 주었다. 또한 衲僧들과 捲簾觸面할 때는 죽는 날이 가장 기쁜 날이라는 寂滅의 一句로 無着에 이르게 하여 盲龜遇木의 인연을 맺어주었다.

晩年에 이르러 스님은 雪嶽山에 古佛古祖의 禪風을 잇는 山門이 다시 열렸음을 내외에 천명하는 曹溪禪風始源道場雪嶽山門을 懸板하고 終身의 때를 豫備하였다. 어느 날 微疾이 일자 髑髏前임을 알고 侍子를 불러 이르기를 天方地軸 氣高萬丈 虛張聲勢로 살다 보니 온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았구나 憶! 이라는 臨終의 要語를 받아적게 하고는 사흘 뒤 2018년 5월 26일 만해마을 尋牛室에서 홀연 大寂三昧에 들었다. 이러한 스님의 寂滅智光은 還歸本處하여 無生의 本分을 드러내는 데 있으니 讚하건대,

 

소 머슴으로 出家하여 落僧이라 자처하고

牧牛子가 되어 返本還源의 길을 찾아

金舞山 土窟로 들어가 六年間 精進한 후

다시 無門關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정진한 끝에

줄 없는 거문고가 되어 聲前一句를 풀어내었다

문득 凡聖의 迷惑을 떨쳐 버리니

古家의 消息이 頭頭物物 속에 나타나고

百尺竿頭에서 生死의 틀을 벗어버리니

佛祖의 大機가 손아귀에 잡혔다

一言一句는 法界를 장엄하는 詩가 되고

一草一木은 부처를 이루는 귀를 열었다

한번 喝을 하니 大千世界가 무너지고

한번 발길질에 毘盧의 바다가 뒤집혔다

손끝으로 宇宙를 자유롭게 부리고

입으로 百億化身을 吐해내니

이것이 霧山의 詩禪一如의 禪風이로다

 

佛紀二五六五年 孟夏 金剛山沙門 正休 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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