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불교의 특성과 실상

1. 시작하는 글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오후 2시 46분 동일본대진재(東日本大震災)가 발생한 지 올해로 10년이 지났다. 대규모 쓰나미 발생으로 인해 해안지역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 다수의 해안지역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진도 6 이상이 발생한 미야기(宮城), 후쿠시마(福島), 이바라키(茨城), 토치기(栃木), 이와테(岩手), 군마(群馬), 사이타마(埼玉), 치바(千葉) 등 8현(県)을 중심으로 재해구조법이 적용된 곳만 해도 241시구정촌(市区町村)에 이른다.

2020년 3월 1일 현재, 동일본대진재로 인한 사망자 수는 19,729명(재해 관련 사망 포함), 행방불명 2,559명, 가옥 121,996채가 전괴(全壊)되었다. 한편, 동경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부터 10년이 지난 올해 2021년 4월,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 탱크에 보관 중인 방사성 물질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기로 결정했다.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일본 내 압도적인 반대 여론에도 해양 방류를 강행한 것이다. 동일본대진재로 큰 피해를 입고 아직도 복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동북지방에는 필자가 이 글을 집필하는 2021년 5월 1일 오전 10시 반경에 진도 5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긴급속보가 발표되었다.

크고 작은 지진이 많은 나라가 일본이지만, 동일본대진재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일본사회에는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 동일본대진재는 피재(被災) 지역의 복구 및 피재민들에 대한 지원부터 일본 정부에 대한 신뢰를 실추시켰고, 일본인들의 자신감 상실, 빈곤과 사회적 고립 등의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또, 작년 초부터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의 확산세가 멈추지 않으면서 일본사회의 빈곤과 사회적 고립은 가정폭력, 아동학대, 자살률 증가 등의 결과를 초래하면서 한층 더 심각한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반면, 동일본대진재는 일본인, 일본사회 나아가 종교자 및 종교단체의 적극적인 사회참여와 사회공헌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된 것이 사실이다. 일본 종교계 및 종교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버블경제 붕괴 이후 급속히 약화된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 체계에 대한 종교적, 종교 연구적 차원에서의 대응 마련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종교의 공공성, 즉 종교의 사회참여 및 사회공헌 관련 연구 모임이 늘어났다. 이러한 연구 모임들이 동일본대진재 발생 이후 재해 지원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재해 발생 이후부터 지금까지 피재지(被災地) 및 피재민(被災民)들을 위한 ‘경청(傾聴) 볼런티어’ ‘마음의 상담실(心の相談室)’ 운영, ‘임상종교사(臨床宗教士)’ 탄생 및 활동 확대 등이 활발하게 이어졌다. 1995년 ‘한신 · 아와지대진재(阪神淡路大震災)’ 때도 ‘마음 케어’가 주목받았지만, 당시에는 주로 정신과 의사와 임상심리사가 피재민들의 마음 케어를 담당하였다. 이에 반해, 동일본대진재 이후 종교자의 참여가 이루어지면서 현재 종교자들이 피재민들의 마음 케어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 점이 큰 변화 중 하나이다. 이뿐만 아니라, 진재 이후 일본 각지의 빈곤 및 사회적 고립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활동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아동 인구 7명 중 1명이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데, 이 아동 빈곤 문제를 해결을 위해 시작된 ‘어린이 식당(子ども食堂)’ 개설 및 운영에 불교단체와 교회가 다수 관여하고 있다.

이처럼 동일본대진재는 종래 종교단체의 재해지원 활동의 범위를 확대시켰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이면서도 특히 일본인의 불안에 대응하고자 마음 케어 활동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왔다. 또 과거 재해 발생 시와 비교해 볼 때 종교자와 종교단체의 활약이 다수 매스컴을 통해 보도, 주목받은 점에서 동일본대진재는 차이점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주요 불교단체의 동일본대진재 발생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다양한 지원활동에 대한 검토를 통해 지원활동의 특성과 일본사회에서 불교단체의 공적 역할에 대한 기대 및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동일본대진재와 종교의 사회공헌

현대 일본사회는 ‘포스트 전후사회(Post-Postwar Society)’로 일컬어지는데 이 포스트 전후사회가 위기적 국면을 맞이한 것이 바로 1995년이었다. 1995년에 발생한 한신 · 아와지대진재와 옴진리교 사건은 버블경제 붕괴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발생하면서 포스트 전후사회의 위기를 드러냈다. 이 1995년을 기점으로 일본 종교연구 분야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특히 컬트 연구가 종교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게 되는 한편, ‘포스트 옴 종교현상’으로서 2000년 이후 대두한 ‘스피리추얼리티(Spirituality) 붐’에 종교 연구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한편, 1995년 한신 · 아와지대진재는 일본 종교학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1995년 이래 ‘진재와 종교’ 관련 연구성과가 축적되기 시작하였다.

이들 연구성과 중에서도 한신 · 아와지대진재와 동일본대진재에서의 종교자 및 종교단체의 활동에 대한 비교 검토가 다수 이루어졌다. 특히, 미키 히즈루(三木英)는 동일본대진재 피재 지역에서 한신 · 아와지대진재 당시에는 볼 수 없었던 많은 시도가 이뤄진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들 활동을 구체적으로 (1) 장기적 지원, (2) 마음 케어, (3) 연대라고 하는 3가지 특징으로 정리하였다.

첫째, 한신 · 아와지대진재 당시, 긴급지원을 필요로 하는 피재자 수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피재자 자립을 지원해야 한다는 판단에서 지원활동이 약 1년 만에 종료되었다. 하지만 긴급지원 종료 이후 피재자 중 자살, 고독사,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문제로 나타났다. 이후 피재자에 대한 지원은 진재 직후 혼란한 시기에 끝내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과 함께 오히려 긴급지원 활동이 끝난 이후부터가 본격적인 지원활동의 시작점이라는 인식이 정착되어 갔다. 이러한 인식은 종교자 및 종교단체의 지속적 지원활동으로 이어졌고, 동일본대진지에서는 현지에 본부를 설치하여, 현지 상황을 숙지하는 활동 스태프를 현지에 장기적으로 파견함으로써 피재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한 적극적 노력이 이어졌다.

둘째, 이 같은 지원활동을 통해 피재 지역 주민들의 마음 케어에 크게 공헌할 수 있었다. 이 부분은 종교단체가 처음부터 강하게 의식하고 임한 활동 중 하나이다. 많은 종교단체들이 독자적 혹은 연대를 통해 현지에서 ‘위령(慰霊)의식’을 집행하였는데, 이를 통해 마음의 치유를 경험한 희생자 유족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종교색이 짙은 위령의식뿐만 아니라, 종교색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형태로 실시된 ‘경청 활동’에도 종교자 및 종교단체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졌다. 이 경청 활동은 긴급지원이 종료된 이후 현재까지도 피재자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활동 중 하나이다.

셋째, 동일본대진재에서는 종교단체 간 연대 및 지자체, NPO와의 협동이 실현되었다. 한신 · 아와지대진재 당시 종교자가 한데 모여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의식을 제외하면 종파 간 연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 동일본대진재에서는 대진재 희생자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종교, 종파의 경계를 초월하여 종교자가 집결한 것을 시작으로, ‘전일본불교회(全日本仏教会)’와 ‘신일본종교단체연합회(新日本宗教団体連合会)’도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피재지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종교자와 종교시설에 대해서는 종교, 종파를 구분하지 않는 광범위한 지원의 손길이 이어졌다. 또, 종교단체와 지자체 및 NPO 단체, 대학과 연대도 이뤄졌다.

이와 같은 연대가 실현된 배경에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의 보급이 크게 영향을 미쳤는데, SNS를 통해 구호물품이 과잉집중한 곳에서 구호물품 지원이 충분하지 못한 지역으로 물자 및 인원을 재배치하는 단체 간 조정이 가능해졌다. 게다가 동일본대진재에서는 종교 연구자도 크게 관여하였는데, 연구자들이 ‘종교자 재해구원 맵(宗教者災害救援マップ)’을 페이스북에 개설하여 피난소로 지정된 종교시설 및 구원활동 거점으로서 기능하는 종교시설에 관한 정보를 입력하여 검색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종교 및 종파 간 연대를 위한 플랫폼을 마련했다. 이 ‘종교자 재해구원 맵’에 관여한 연구자를 중심으로 이후 ‘종교자 재해지원 연락회’가 2011년 설립, 종교계 전체로 확대하여 구원활동을 위한 정보교환의 장으로서 설립되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얻는 정보 및 의견 등이 SNS 등을 통해 일반 사회로 발신하는 계기로 이어졌다.

이처럼 동일본대진재는 피재 지역 및 피재자에 대한 지원에서 종래의 종교단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한신 · 아와지대진재 당시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의 다방면에 걸친 연대가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행정기관에서 미처 손을 쓸 수 없는 영역을 포함하여 긴급지원에 크게 공헌할 수 있었다. 또, 과거 긴급지원 종료 이후 썰물 빠지듯이 피재지에서 철수하기 마련이었던 종교단체들이 지금까지 장기간에 걸쳐 피재 지역 피재민들에게 다가가 마음 케어에 노력하고 있다. 아래에서는 동일본대진재에서 불교단체의 지원활동을 (1) 장기적 지원, (2) 마음 케어, (3) 연대로 구분하여 지원활동의 특성에 대해 검토하기로 한다.

 

3. 지역자원으로서 불교 종교시설과 종교자

한신 · 아와지대진재에 비해 동일본대진재의 경우 구원 · 지원활동에 임한 종교자 및 종교단체에 관한 기록이 조사보고서 및 자료집으로 발행되었다.

 

① 전일본불교회 〈동일본대진재 중간보고서(제1차~제2차)〉(2011)

② 전일본불교회 〈동일본대진재 중간보고서(제3차~제5차)〉(2012)

③ 전일본불교회 〈동일본대진재 지원보고서(제6차~제7차)〉(2013)

④ 오카모토 마사히로 〈동일본대진재 18종교교단의 피재자 · 피재지지원활동 조사에 대하여: 조사보고와 약간의 고찰을 덧붙여〉(2014)

⑤ 전일본불교회, 일본불교사회복지학회 감수 〈동일본대진재에 있어서의 일본불교 각 종파의 활동에 관한 앙케트조사〉(2015)

⑥ 전일본불교회, 일본불교사회복지학회, 불교NGO네트워크(BNN) 감수 〈피재지 사원의 교훈을 금후 사원방재에 활용하기 위한 조사표(앙케트조사) 보고서〉(2015)

⑦ 전일본불교회, 일본불교사회복지학회, 불교NGO네트워크(BNN) 감수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진재에 있어서의 불교계 각종 단체의 진재 지원에 관한 앙케트조사 보고서〉(2015)

 

이 중에서도 ④는 일본NPO학회와 중외일보사(中外日報社)가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보고 개요를 정리한 논고이다. 위 논고에 따르면 18개 종교교단을 통해 약 10만 명 이상의 볼런티어가 지원활동에 참여, 163억 원 규모의 기부 및 의원금 지출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18개 종교교단 중 불교계 천태종(天台宗), 고야산 진언종(高野山真言宗), 진언종 지산파(真言宗智山派), 진언종 풍산파(真言宗豊山派), 정토종(浄土宗), 정토진종 본원사파(浄土真宗本願寺派), 진종 대곡파(真宗大谷派), 임제종 묘심사파(臨済宗妙心寺派), 조동종(曹洞宗), 일련종(日蓮宗)의 10개 교단과, 신사신도 신사본청(神社本庁), 기독교 가톨릭교회, 일본기독교단의 2개 교단, 신종교 금광교(金光教), 진여원(真如苑), 입정교성회(立正佼成会), 천리교(天理教), 창가학회(創価学会)의 5개 교단이 참여했다. 상기 18개 교단 중 10개가 불교계 단체로 전체 종교 교단 중에서도 동일본대진재 관련 지원활동에서 불교가 공헌한 역할과 비중이 매우 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④ 보고서 가운데 불교 10개 교단을 중심으로 불교 교단이 실시한 지원활동의 개요 파악 및 특성에 대해 검토하기로 한다.

1) 장기적 지원

동일본대진재는 피재 지역의 종교단체가 관련 시설을 널리 개방함과 동시에 시설을 거점으로 지원활동을 전개한 측면에서 종교의 사회공헌적 측면이 언론 보도를 통해 일반 사회로 널리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 〈표 1〉에서 보다시피 불교 교단별로 시설개방에서는 차이가 존재하지만, 앙케트 조사가 실시된 2012년 기준, 대부분의 교단이 해당 지역 종교시설을 개방하여 직접적인 지원활동을 활발히 전개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피난소 및 시신안치소, 유골보관소, 볼런티어 활동 거점본부, 귀택곤란자 일시 수용 등 다방면에 걸쳐 종교시설이 활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종래 일본에서는 종교단체 및 종교시설의 공공성을 둘러싸고 행정기관이 정교분리의 원칙을 내세워 재해 지원을 거부하는 사례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동일본대진재 이후 재해 발생 시 피난소 및 활동거점으로서 종교시설 활용 기능성을 행정부처에서도 인식하게 되면서, 일본 각 지자체에서는 종교시설과 재해협정을 체결하는 경우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종교교단은 전체적으로 행정시설보다 훨씬 방대하고 기본 설비를 갖춘 시설체계를 보유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 전국의 종교단체 수는 215,090개 단체, 이 중 신도계 87,322개 단체, 불교계 84,329개 단체, 기독교계 8,546개 단체, 기타(諸教) 34,893개 단체가 있다. 다만 전화번호 안내사이트 ‘타운페이지’에서 업종 검색 키워드를 ‘종교’로 할 경우 88,323곳, ‘사원’ 58,903곳, ‘신사’ 10,021곳, ‘불교’ 1,118곳, ‘신도’ 1,805곳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종교 교단이 관할 당국에 보고하는 종교단체 수와 실제 활동 중인 종교시설과는 큰 차이가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일본 전국의 편의점 수 55,924, 초 · 중 · 고교를 합한 수 35,327과 비교해 볼 때, 편의점 수보다 종교시설이 훨씬 많고, 초 · 중 · 고교 수보다 두 배 정도 많다. 물론 종교시설의 규모가 학교보다 크지 않고 상주하는 직원이 없는 경우도 많지만, 종교계가 거대한 시설 네트워크를 지니고 있다는 점과 해당 지역에서 중요한 사회자원인 점은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한편, 전국 1,916개 지자체(이 중 유효 회답 수는 1,184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종교시설과 재해협정 및 협력 관계에 대한 실태 파악 조사에 따르면, 2014년 7월 현재 재해협정을 체결한 지자체는 95곳(종교시설 399곳, 이 중 지정피난소는 272곳), 협정체결 없이 협력 관계가 있는 지자체는 208곳(종교시설 2,002곳, 이 중 지정피난소는 1,831곳)으로 나타났다. 즉, 종교시설이 피재민 수용피난소로서 678곳, 일시피난소로서 1,425곳이 지정, 합계 2,103곳의 종교시설이 지정피난소로 지정된 것을 알 수 있다. 상기의 협정체결과 협력 관계를 모두 포함하면, 재해 발생시 303개 지자체와 2,401개 종교시설이 연대 가능한 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종교별로 살펴보면, 재해협정을 체결한 95개 지자체의 종교시설 399곳 가운데, 불교시설이 189곳, 신종교시설이 27곳, 신사 26곳, 기독교 6곳, 기타 불명 순으로 나타났다. 전체 종교시설 가운데 불교가 약 47%를 차지하여 재해협정을 가장 많이 체결하고 있으며, 시설개방에 매우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재해협정을 체결한 시기를 보면 동일본대진재 이전, 진재 발생 이후 2011년 12월 말까지, 2012년, 2013년, 2014년으로 분류, 399개 시설 중 167개 시설이 진재 발생 이후 협정체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동일본대진재 이후 긴급지원 활동이 종료된 이후에도 지원활동을 중단하지 않고, 현재도 장기적인 지원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다음페이지 〈표 2〉의 전일본불교회가 발행한 〈2019년도 재해등 지원보고서(제18차~제19차 지원)〉에 따르면 교단 본부 혹은 개별단위 사원 및 단체가 경청 볼런티어, 교류회, 식사 제공, 여가/문화 활동 지원, 방학을 이용한 어린이 캠프 지원, 위령제 등등 다방면에 걸친 지속적인 활동이 확인된다. 이처럼 동일본대진재는 이전 진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피해 규모가 막대하고 오늘날까지 지원활동이 계속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2) 마음 케어

(1) 독경 볼런티어

독경 볼런티어는 불교를 중심으로 실시되었지만, 실제로는 신도, 기독교, 신종교에서도 비슷한 활동을 실시, 종교, 종파를 넘어 공동으로 이루어진 사례도 있다. 이 독경 볼런티어는 진재 직후부터 피재지 안팎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이루어졌다. 이 활동은 그 영역에 따라 ‘진재 직후 혼란기에 소속 사원과 연락을 할 수 없는 신자들에게 종교적인 장송(葬送)을 제공한 활동으로 화장터 등이 활동거점이 된 경우’와, ‘신원미상의 시신, 여러 사유로 유족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안치소에 방치된 시신의 공양을 위한 활동’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의 화장터에서의 독경 볼런티어는 ‘센다이 불교회(仙台仏教会)’가 진재 발생 4일 뒤인 2011년 3월 15일에 센다이시 담당자와 화장터에서 독경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여 17일에 센다이 시영 화장터 내에서 독경 볼런티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와 병행하여 ‘마음의 상담실’ 부스를 화장터 내에 설치하여 누구나 언제든지 상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당초 센다이시와의 협의에 따라 4월 말까지 화장터에서 독경 볼런티어가 허락되었기 때문에 마음의 상담실은 조직개편을 통해 이후 활동을 계속하기로 하면서, 경청 이동식 카페 ‘카페 데 몬쿠’와 ‘라디오판 카페 데 몬쿠’, 전화 상담, 강연회, 매달 11일 장례를 볼런티어로 실시해왔다. 한편, 후자의 시신, 유골 안치소에서의 독경 볼런티어는 ‘정토진종 본원사파 동북교구 재해볼런티어센터’가 구호물자 배부와 함께 방문한 지역의 시신안치소에서 독경을 실시했다. 3월 23일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福島県南相馬市)의 시신안치소에서 독경 볼런티어를 시작으로, 이후 미야기현(宮城県), 후쿠시마현, 이와테현(岩手県) 내 14곳에서 8월 14일까지 단속적으로 실시되었다. 해당 안치소 담당자(경찰, 소방, 시정촌 직원, 볼런티어)의 허락을 구한 뒤 제단 및 개별 관, 유골함 앞에서 독경을 실시하였는데, 거의 대부분의 안치소에서 환영받았다고 한다. 진재 발생 직후 각 안치소에서는 독경을 읊어 줄 승려가 방문해주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모습들이 다수 보고되었는데, 독경 볼런티어가 피재민들의 마음 케어에 일조한 것을 엿볼 수 있다.

 

(2) 위령비 건립과 추도식

위령비 건립의 목적은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것’이며, 영혼을 위로하는 이유는 ‘불안정한 영혼을 안정시킴으로써 살아남은 자가 안심하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 케어에서 이 위령비와 추도식은 간과되기 쉽지만, 실제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미야기현 내의 승려와 신직(神職)의 보고에 따르면, 진재 후 1년 정도 ‘유령이 나오니까 어떻게 좀 해달라’는 내용을 포함하는 공사 관계자들의 지진제(地鎮祭) 및 주민들의 공양 의뢰가 쇄도했다고 한다. 유령의 유무를 떠나 유령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공사 관계자와 주민들이 적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러한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각 지자체에서는 위령비 건립을 실시하여 공사 관계자와 거주민들의 불안을 감소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이 위령비 앞에서 묵도 및 헌화, 위령제, 추도식이 이루어졌다. 다만 정교분리원칙을 내세우는 시정촌 주최의 식전에서는 가능한 한 특정 종교를 연상시키지 않도록 무난한 형식의 추도식이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그러나 피재자 및 유족들이 방문하여 기도하는 것까지 행정 당국에서 막을 수는 없다. 따라서 실제로 위령비와 추도식은 종교자가 깊이 관여되어 있었다. 위령비, 추모비가 건립됨으로써 그곳 자체가 종교적인 장소로서 의미를 지니게 되고, 사람들에게 기도하는 곳으로서 강하게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즉, 종교자도 종교단체도 다수 관여하고, 종교 · 종파에 제약되지 않는 곳으로 승화되어 간 것이다. 이러한 위령비의 건립은 희생자의 진혼(鎮魂)과 진재의 기억을 후세에 ‘영원히 기록하는 것’인 동시에, 지원해 준 이들에 대한 감사와 우호의 의미 또한 내포하고 있다.

 

(3) 마음의 상담실과 ‘카페 데 몬쿠’

‘마음의 상담실’은 센다이에서 진재 직후에 설립된 연합체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미야기현 종교법인연락협의회 소속 단체 종교자들이 장례식장에서 합동으로 ‘위령(慰霊)’에 임하면서 시작되었다. 센다이에서 오래전부터 종말기 간호, 특히 재택 완화 케어 활동을 전개해 온 고(故) 오카베 타케시(岡部健) 의사를 실장으로, 동북대학교 종교학 연구실에 사무국을 두고 활동을 시작했다. 종교자, 의료자, 종교학자, 그리프 케어(Grief care) 전문가 등이 협력하여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마음의 상담실’의 활동은 매달 시영 장례식장에서 이루어지는 합동위령제, 종교자에 의한 무료 전화 상담, 경청 카페 ‘카페 데 몬쿠(Café de Monk)’, 라디오 카페 데 몬쿠 방송 등이다.

이동식 경청 카페 ‘카페 데 몬쿠’는 승려들이 경트럭에 카페 도구 일식을 싣고, 피재 지역 가설주택 등을 순회하며 피재민들에게 무료로 커피를 제공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공간을 제공하는 활동이다. 영어 ‘Monk’는 승려를 가리키며, 일본어 ‘몬쿠(文句)’는 말, 고충, 불평, 불만, 푸념을 가리킨다. 이 카페에 모여 함께 고충과 푸념, 불평, 불만을 발산, 공유를 유도하기 위해 만든 장이 바로 이 ‘카페 데 몬쿠’이다. 이 활동에 참가하는 종교자는 마음의 상담실에서 작성한 ‘채플렌(chaplain) 행동규범’을 준수하며, 특정 종교를 선전하는 등의 직접적인 전도 포교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 라디오 카페 데 몬쿠 방송은 당초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 3현에서 FM으로 방송되었는데, 2014년까지 계속되었다. 이처럼 마음의 상담실과 경청 카페에서 보듯이 종교와 종파를 초월한 지원활동은 마음 케어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다가가기’의 자세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4) 임상종교사

‘임상종교사’는 서구의 병원 및 복지 관련 시설에서 마음 케어를 담당하는 ‘채플렌(chaplain)’을 모티브로 한 ‘일본형 채플렌’으로서 ‘임상종교사’를 육성하기 위해 시작된 연수 프로그램이다. 동일본대진재를 계기로 동북대학교에 ‘실천종교학 기부강좌’ 개설을 요청하여, 2012년 4월에 동북대학교 대학원 문학연구과에 이 강좌가 개강하게 되었다.

임상종교사 연수 프로그램의 특징은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경청’과 ‘스피리추얼 케어’의 능력 향상, 둘째, ‘종교 간 대화’ ‘종교 협력’의 능력 향상, 셋째, 종교자 이외의 기관과의 연대 방법을 배우는 것, 넷째, 폭넓은 ‘종교적 케어’의 제공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첫 번째 ‘경청’과 ‘스피리추얼 케어’ 능력 향상이 매우 중요시된다. 특히,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종교자는 스스로의 종교 · 종파의 교의나 세계관을 전제로 대상자를 접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먼저 상대방의 목소리를 진심으로 듣고, 슬픔을 공감하며,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종교성을 존중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현장의 실천 및 그룹워크를 통해 습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때 케어를 제공하는 측이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케어를 제공받는 측의 주체성을 배우는 것, 고통과 슬픔에 가득 찬 이들이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기다려 주는 것, 이를 위한 계기를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상대방의 마음 회복으로 이어진다는 자세를 철저히 배운다. 2016년에는 전국 조직인 ‘일본임상종교사회’가 설립, 2018년 3월부터 자격인정이 시작되었다. 종교 · 종파를 불문하고 2018년 9월까지 159명이 자격인정을 받았다. 이들 임상종교사들은 전국의 병원, 복지시설, 재택 방문 단체 등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처럼 동일본대진재에서는 일본불교의 저력이 재평가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흔히 일본불교를 가리켜 ‘장식(葬式)불교’라 하여, 삶(生)보다는 죽음(死)과 관련된 종교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한신 · 아와지대진재에 대한 반성과 특히 동일본대진재 이후 불교계의 적극적인 지원활동은 기존의 죽은자를 위로하는 역할과 더불어 산 자를 위로하고 지원하는 역할이 첨가되면서 일본 불교가 공공성 확보에 주력한 결과 공공재로 자리매김하는 일면을 엿볼 수 있다.

 

3) 연대: 종교 · 종파 간 연대 및 NPO와의 협동

동일본대진재를 계기로 슬픔을 함께 나누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기도의 힘이 재평가되었다. 재해 지역에서 승려와 목사가 나란히 걷는 모습이 재해자들에게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동일본대진재는 타 종교 종교자들이 연계하여 지원하게 되는 적극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는데, 여기에 종교 연구자도 연구자와 연구대상이라는 틀을 넘어 지원활동에 관여하게 되었다.

종교 간 연대가 이뤄지게 된 요인으로는 크게 3가지 들 수 있다. 첫째는 대규모 재해라는 경험을 통해 다수의 종교자가 함께 기도하고 지원하기 위한 공통의 장이 마련됨으로써 자연스럽게 네트워크 조직으로 이어진 것이다. 둘째는 지원활동을 통해 다가가기(寄り添い)와 경청(傾聴) 활동이 중요시된 것도 다른 종교자 간에 연대를 촉진한 요인이 되었다. 기존에 종교자가 실시해 온 자살대책, 자살 유족 지원, 말기환자 케어 등에서 다가가기, 경청 등의 축적된 경험이 발휘되었다. 셋째는 재해 지역 종교시설의 복구 및 종교단체에 의한 재해자 지원에서 정교분리의 장벽이 공통문제로서 인식된 것도 요인으로 들 수 있다. 시신안치소에서 승려의 독경이 행정직원으로부터 거부된 경우나 쓰나미 피해지역의 구획정비사업, 복구도시건설, 원발사고 피난구역 보상 등에서 재해 피해를 입은 종교시설의 복구가 고려되지 않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 문제에 대처하고자 종교 간 연대가 활발해졌다.

한편, 주요 불교 교단의 지원활동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전통불교(정토진종 대곡파, 본원사파, 정토종, 조동종, 천태종 등)는 지진 발생 직후 대책본부를 설치하여 실시간으로 재해 지역 이외 교구에 지원물자를 요청하고, 사찰의 피난소 등록 협조요청을 하는 동시에 재해 지역 사찰의 피해 상황 파악에 주력했다. 재해 지역 현지에 복구지원을 위한 본부를 설치한 경우도 다수 있었는데, 적극적으로 피재지, 피재 지역민에 다가가려는 교단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원물자 배부 및 식사제공, 잔해 정리 등은 현지 본부와 교단 내 하위 부문인 청년 신도 조직 등이 중심이 되어 담당하였다. 일본 최초의 푸드뱅크(food bank) NPO법인 세컨드 하버스트 재팬과 연계하면서 구호물자 지원 및 식사제공 등을 한 정토종의 활동은 주목할 만하다.

또한, 전일본불교회의 활약에 대해서도 주목할 만하다. 이 단체는 2021년 현재 59개 종파 37개 도도부현(都道府県) 불교회, 그리고 10개 불교단체, 총 106개 단체가 가맹한 일본 전통불교계에서 유일한 연합조직이다. 이 단체는 진재 발생 후 재빨리 가맹단체에 대해 피재지 지원에 관한 정보제공을 요청하여 이를 반영한 정보제공을 본 단체 홈페이지에 게재하였다. 또 승려에 의한 피재지 지원 볼런티어 결성 협조, 피재자 수용, 피재지 파견 지원활동에 대한 협조를 발신하는 등 종파, 단체의 틀을 넘어 난국을 극복하려는 면모를 보였다. 또 수집한 지원금의 활용 방법으로서 종래의 일본적십자사와 같이 일부를 위탁하는 방법과 함께 실제 피재지에서 지원활동을 하는 직접지원 단체 및 피재지에서 피난소 등을 제공하는 직접 지원 사원에 활동조성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점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직집 지원은 종래 일본에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지원 형태로서 크게 주목받았다. 또, 〈표 3〉과 〈표 4〉에서 볼 수 있듯이 타 종교, 타 종파와의 연대, 지자체 및 NPO, 재단/사단법인, 사회복지협의회, 행정부서, 대학 등 다방면에 걸쳐 연대 및 협력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동일본대진재 이후 전국 곳곳에서 교단 내 연대 및 종교 · 종파 간 연대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시가현(滋賀県) 정토종 청년회 소속 470개 사원은 신도들로부터 시주받은 쌀을 전달하는 ‘오미 쌀 한 되 운동(近江米一升運動)’을 진재 전 2010년부터 생활곤궁자를 대상으로 실시하였는데, 진재 이후 피재 지역으로 확대하여 가설주택 등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시중에 파는 쌀과는 달리 부처님의 자비와 단가의 마음이 담겨 있어 현지에서 크게 환영받았다. 또, 가나가와현(神奈川県) 가마쿠라(鎌倉)에서는 신도, 불교, 기독교 세 종교가 만든 ‘가마쿠라종교자회의(鎌倉宗教者会議)’가 매년 ‘동일본대진재 추도 부흥기원제-가마쿠라’를 개최하고 있다. 매년 불교 사찰, 기독교 교회, 신도 신사 장소를 옮기면서 실시하고 있다. 2019년 3월 9회째 기원제에는 100명을 넘는 종교자와 시민 약 1천 명 이상이 참석하는 등 꾸준히 활동이 지속되고 있다.

 

4. 맺는 글

종교 및 종교자의 역할은 약자의 편에 서서 다가가는 것, 행정기관의 지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이들을 찾아가 지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특히, 동일본대진재 이후 신문 등 매스미디어에 주목받은 불교 활동의 대부분은 현지에서 실시된 직접지원단체에 의한 활동이었다. 동일본대진재는 일본 전통불교의 저력이 재확인, 재평가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사사 페스티벌(寺社フェス), 절 카페(寺カフェ), 비구니 바(尼僧バー) 등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불교단체와 승려가 관심을 모으게 되는 계기로도 이어졌다. 2011년 동일본대진재가 발생한 이래 지속적으로 개최되고 있는 ‘사사페스’는 젊은 승려들을 중심으로 종파를 초월하여 기획되었다. 해가 갈수록 참가자 수가 증가하여 6천 명이 넘게 참가한 해도 있었다. 동일본대진재를 계기로 불교가 장식불교를 탈피하여 사회에 열린 종교단체로서 성격이 확대되고, 일반인들의 인지 또한 확산되고 있는 듯하다.

동일본대진재가 발생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불교사원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극히 ‘보통’의 절이었다. 선조 공양 및 사자(死者) 제사를 집행하고 지역 불교 행사를 주관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2012년 가을부터 진언종 풍산파 피재 사찰 10곳의 신도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대다수 신도들은 “우리는 돌아갈 수 없지만 절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으면 한다”고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40) 이들에게 고향이라는 개념은 선조의 묘와 이를 지켜온 절, 그리고 이를 이어온 사연(寺縁)은 느슨하지만 끈끈한 연대를 형성하며 일본사회에 뿌리 내려 온 것이 잘 드러난다. 이 사연을 잇는 역할을 승려가 담당하고 사라져버린 고향일지라도 그것을 재구성하는 역할을 해당 지역 승려가 담당하기를 원하는 것이다.41)즉, 진재 이후 신도 및 지역주민과 강한 연대감이 형성되면서, 그동안 내재하여 있던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으로서 사원의 존재가 대진재로 인해 재조명된 것이다.42)

그럼에도 동일본대진재에서 일본 전통불교의 지원활동에 대한 사회 일반적 관심은 여전히 단편적 혹은 한정적이다.43) 재단법인 니와노평화재단이 실시한 종교단체의 사회공헌 활동에 관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불교 교단의 장의, 의례 외의 활동에 대해서는 인지도가 매우 낮았으며, 전혀 모른다고 대답한 회답자가 50% 이상으로 나타났다. 정당한 사회적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실제 활동과 일반 사회에서 인식의 폭을 좁혀나가는 것이 금후의 과제 중 하나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동일본대진재가 일본의 전통불교 교단을 포함한 종교단체 및 종교자들의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이끈 계기가 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 결과 불교 사원이 지역사회에 열린 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하고 NPO단체, 지자체, 전문 조직 등과의 연대를 통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다 폭넓은 지원활동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모처럼 고조된 일본 전통불교의 사회참여적 성격이 후퇴하지 않도록 제반 단체들과의 협동과 연대를 통해 동일본대진재의 성과 및 교훈이 다음 세대로 계승되어야 할 것이다. ■

 

이현경 azumani119@tsc.u-tokai.ac.jp
일본 홋카이도대학교(北海道大學校) 문학연구과에서 박사학위 취득. 주요 논문으로 〈離島奄美大島における宗教とトランスナショナリズム〉 〈韓国キリスト教と日本社会〉 〈韓国の政教関係と社会参加仏教の展開〉 〈日韓における宗教文化交流の再考〉 등이 있다. 현재 일본 도카이대학교(東海大學校) 문학부 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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