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올라온 한 장의 사진이 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슬리퍼 차림에 백팩을 맨 젊은 미얀마 아빠가 어린 딸과 작별인사를 하는 장면이다. 군경이 무차별적으로 발포하고, 수백 명이 희생된 상황이라 어쩌면 마지막 인사가 될지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진을 보고 가슴이 아픈 이유는 1980년 광주에서 계엄군의 총칼에 희생된 아버지 영정을 든 또래 사내아이의 눈망울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지금 미얀마의 상황은 여러 가지 면에서 광주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왜 돌아오지 못할 역사의 현장으로 달려가는지 모르겠지만, 미래 세대에게 민주주의를 물려주고 싶은 희망 때문임을 우리는 안다.

제3세계에서 군부 쿠데타는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사건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미얀마의 상황을 보고 아파하는 것은 인권과 평화라는 보편의 가치 말고도 다음과 같은 이유가 더 있을 것이다. 첫째 미얀마의 비극은 광주의 아픔을 되살리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 대표적인 불교국가에서 자비와 불살생이라는 가르침이 부정되고 있다는 점이고, 셋째 군부의 총칼에 저항하는 미얀마 젊은이들이 한국 같은 민주국가를 희망한다고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미얀마는 오랜 군정을 끝내고 민주국가로 이행하고 있었다. 지난 11월 미얀마 총선에서 아웅 산 수 치를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무려 83%의 의석을 차지하면서 민주주의가 대세로 자리 잡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는 각종 이권을 쥐고 특권을 누리던 군부에게는 위기로 인식되었고, 마침내 그들은 쿠데타를 통해 주권을 강탈했다.

그러나 평화적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던 민중들이 이런 역사적 퇴행을 수용할 리 만무하다. 거리는 ‘군부독재 타도’ ‘아웅 산 수 치 석방’을 외치는 군중들로 가득 찼다. 시민들은 오른손 검지, 중지, 약지를 나란히 세운 손을 높이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세 손가락 경례는 ‘자유 · 선거 ·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총칼에 맞선 시민들의 손에는 무기가 아니라 불의에 대한 저항과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들고 있었다.

시위에는 시민은 물론 승려와 의료진들까지 참여하며 범국민적으로 전개되었다. 경찰에게 장미꽃을 주는 등 평화적 방식으로 전개된 시위는 거리 곳곳을 메웠다. 애초 이런 상황을 예상했을 군부의 대응은 계획적이고 가혹했다. 물대포가 등장하고, 계엄령이 내려지면서 부상자가 속출하고, 맨손의 시민들을 향해 곤봉 세례가 가해졌다. 급기야 단지 손가락만을 든 자국민들을 향해 총격이 가해졌다. 시위대는 물론 여성과 어린이들까지 희생자 명단에 올랐고, 집안까지 따라와 총을 난사하는 야만이 뉴스를 장식했다. UN 미얀마 인권특별보고관에 따르면 이런 무차별적 진압 작전으로 “최소 737명이 숨지고 3,200명 이상이 체포”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체포된 사람들은 고문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판다로 불리던 청년 웨이 모 나잉(26)은 체포 이후 만신창이가 된 얼굴 사진이 공개되었다. 평화적 시위를 했을 뿐인 그에게 살인, 감금, 납치 등 5가지 흉악범죄 혐의를 씌웠고, 어쩌면 최대 28년형이 선고될지도 모른다는 소식도 들어왔다.

민주주의를 호소하는 자국민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발포하는 계엄군의 야만성, 자신들의 만행을 덮기 위해 시민들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행태 등, 광주에서 경험한 것과 너무도 흡사한 풍경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 강경 진압으로 집회가 소강상태를 맞고,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한 군부가 즉각적인 폭력 중단 등에 합의하면서 일말의 기대를 갖게 했다. 하지만 군부는 ‘법과 질서 유지’가 우선이라며 합의 준수를 미루면서 민간인의 희생은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지금 당장 폭력이 멈춘다고 할지라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세계식량계획에 따르면 정치적 불안에 따른 실직으로 340만 명 이상이 굶주림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얀마 언론에 따르면 쿠데타 이후 해외 업체들의 주문 취소로 20만, 국제원조 사업 중단으로 최대 40만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실직했다고 한다. 게다가 유엔 관계자에 따르면 25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난민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특히 소수민족 반군 지역에 대한 무차별 폭격 때문에 밀림이나 국경을 떠돌며 불안한 삶을 연명한다고 한다.

상황이 이럼에도 UN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한 미얀마 청년은 “70일 동안 단 700명밖에 죽지 않았다. UN은 천천히 해도 된다.”며 국제사회의 비인도적 방관을 조소했다. 그러면서 청년은 “우리는 여전히 수백만 명이 남았다.”고 덧붙였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청년의 말처럼 한 나라의 민주주의는 각성된 시민들이 감당해야 할 문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감내해야 할 희생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한국 불교계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비교적 둔감하고, 해외 상황에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미얀마와 관련해서는 비상한 관심을 갖고 대응하고 있다. 승가가 살아 있는 대표적 불교국가라는 연대의식과 부처님의 가르침이 배반당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이에 신대승네트워크는 “미얀마 군부는 살생을 멈추고 즉시 물러나라”라는 성명을 발표했고,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은 살생과 폭력 종식을 위한 기도를 위해 특별입국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이 밖에도 ‘미얀마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불교 행동’이 결성되었고, 경북 지역에서는 쿠데타 반대와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집회를 봉행했다. 전국비구니회도 미얀마의 민주화와 평화를 기원하는 법회를 봉행하고, 진관사와 법륭사 등에서 릴레이 기도회를 이어가기로 했다. 한국 불교계의 이런 행보는 전에 볼 수 없던 것으로 군부에 의한 유혈사태를 규탄하고, 자비와 불살생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구현되기를 바라는 염원 때문일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은 언론통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미얀마 불교계의 움직임이 크게 보이지 않는 점이다. 신대승네트워크도 미얀마 승가는 “피로 물든 총칼을 군경의 손에서 내려놓게 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외면당하고, 자국민이 총칼에 죽어간다면 자비와 불살생을 신봉하는 승가는 마땅히 그들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평화집회가 총칼로 제압되면서 저항은 소수민족을 중심으로 한 반군들에게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반군들은 10곳이 넘는 미얀마군 진지를 장악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국가 폭력에 대응해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결국 패배하거나 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그런 선택은 인종과 종교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미얀마의 상황을 더욱 혼돈 속으로 몰아넣을지도 모른다.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종교와 인종적 갈등을 부각하여 분열을 조장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미얀마 민주진영의 최대 무기는 국민의 지지와 단결이며, 여기에는 미얀마에서 절대적 위상을 갖는 승가의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미얀마는 불교를 빼고 생각할 수 없는 국가다. 60여 년에 걸친 식민지 시절부터 불교는 미얀마 민족주의의 구심이었다. 2007년 샤프란 혁명 때도 승려들의 역할이 컸다. 당시 버마승려총연맹 의장은 ‘복발(覆鉢)’을 선언하며 군부의 공양을 거부함으로써 국민적 지지를 촉발시켰다. 지금도 승가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승가가 나서서 폭력이 아니라 평화적이고 대중적인 저항 운동으로 인도해야 한다.

《법구경》에 따르면 선행을 행한 사람도 선의 열매가 영글기 전까지는 고통받을 수 있다고 했다. 민주를 열망하는 미얀마 시민들도 고난의 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선의 씨앗은 반드시 싹을 틔우는 법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굳건한 열망과 승가가 바르게 인도한다면 미얀마의 시민들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그들의 염원처럼 한국 같은 민주국가로 거듭날 것이며, 부처님의 가르침도 역사에서 실현될 것이다. 그것이 인과법이고,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궤적이다. 그런 여정에서 미얀마 승가가 자비로운 길잡이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2021년 6월
서재영(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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